225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47)>
12월 27일
나는 집 앞의 작은 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동이 트며 밤이 서서히 물러가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대망의 날이 조용히 밝아오고 있었다.
“후으응. 음냐아. 에헤.”
옆에선 이브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여전히 내 허벅지를 베고 자는 중인데. 하룻밤 사이 침이 줄줄 흘러내려서 아까부터 왼쪽 허벅지가 축축하다.
“…슬슬 가긴 해야지. 이제.”
스스로 재촉하듯 중얼거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마당 구석에 방치된 소파에 걸터앉아 멍하니 시간을 죽인다. 서서히 밝아지는 하늘이나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으으음.”
솔직히 말하면 그냥 가기가 싫었다.
이유는 한결같다. 진실을 마주하기가 무섭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내가 무슨 짓을 벌이러 가는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패배가 확정된 전투 이벤트… 같은 거지. 말하자면.’
명량해전 나가는 이순신 장군조차 최소한의 승률은 챙겼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그야말로 100% 확률로 죽음이 확정돼 있다.
오히려 살아 있으면 안 되지. 내 손으로 자살하러 떠나는 거니까.
‘죽을 걸 알면서도 죽을 장소로 향한다… 라.’
기분이 어지간히도 착잡했다.
살아날 걸 안다 해도. 영 불쾌하기 그지없다.
‘솔직히, 생각대로 잘 될지도 모르겠고.’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돌아가 줄지도 미지수다.
그것도 지금의 주저에 한 몫 한다.
‘자살했는데. 뭔가가 잘못돼서 옥좌가 꺼내지지 않으면… 어쩌냐.’
어쩌긴 뭘 어쩌냐.
나는 이번 생 내내 개삽질을 한 게 된다. 결과야 어찌됐든 죽어버렸으니, 당연히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이 짓을 반복해야겠지. 그뿐이다.
그뿐이지만. 바로 그게 존나게 무서운 거고.
“휴우.”
숨을 길게 내뱉었다. 한숨에 가까웠다.
심란하니 담배가 오지게 땡긴다. 오랜만에 토식이와 대화하며 맞담배나 피울까 싶다.
토식이를 깨울 생각에 인벤토리를 뒤적거리고 있자니.
“오빠.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우뚝. 아공간을 뒤적이던 손이 멈췄다.
고개가 슬쩍 올라갔다. 내 옆으로 목소리의 주인… 수아가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툭 내뱉었다.
“…일찍 일어났구나. 수아야.”
“네, 그냥. 눈이 떠지더라구요.”
“그렇군.”
시시콜콜한 아침인사가 몇 마디 오간다.
한동안 수아를 빤히 쳐다봤고. 직전에 그녀가 뭘 물어봤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이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딱히. 난 아무 문제도 없어.”
“와. 이젠 진짜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하시네요?”
“무슨 노력.”
“거짓말을 숨기려는 노력이요.”
“…….”
이젠 수아도 솔직담백하게 정면으로 들이박는군. 너도 듣기 좋게 꼽 주려는 노력을 안 하게 됐구나.
내가 알던 초창기와는 사뭇 다른 리액션에 좀 벙쪘다.
“오빠. 저한텐 진짜 아무것도 말 안 해주시잖아요. 요즘 들어서 특히나요.”
“…그야. 뭐.”
수아가 볼멘소리를 꿍얼거렸다. 묵혀놨던 불만이 가득 담긴 목소리다.
할 말이 없어 뒷머리만 긁적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느껴졌다면 미안하다.”
“흐음. 미안한 줄은 아세요?”
“근데 변명을 좀 하자면. 딱히 너한테만 말하지 않는 게 아니야.”
“…그, 그래요?”
“그래. 내가 너한테 말하지 않는 건. 대부분 이세라나 강서윤한테도 말 안 한다.”
실제로 이세라와 강서윤은 수아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저희가 알아봤자, 하등 도움이 안 될 만한 일이라서?”
내 사고를 앞지르듯이 수아가 말했다.
순간 이세라와 대화하는 줄 알았다. 생각을 읽혀버리니 반사적으로 어깨가 굳었다.
그리고 수아는 그 미약한 반응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응. 맞나 보네요.”
수아의 입가에 진득한 쓴웃음이 짙게 배였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슬슬 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아니. 뭐… 음.”
“근데 좀 의외네요. 오빠.”
“뭐가.”
“저야 아무 짝에 쓸모도 없는 사람이니 그렇다 치지만요. 세라 언니나 우리 언니는 나름 강하잖아요? 그래도 오빠한테 충분히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쓸모없다고 하지 마라.”
흠칫.
우리는 동시에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뜬금없이 상상 이상으로 단호해진 목소리 때문이었다.
“아.”
“어?”
듣는 수아야 놀라는 게 당연하다.
근데 내뱉은 나도 엄청 놀랐다. 예상치 못한 말이, 상상도 못한 타이밍에 멋대로 튀어나갔기 때문이다.
“그거. 저, 저한테… 하신 말이에요?”
결국 수아가 얼떨떨하게 되물어왔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주워섬겼다.
“아니. 그, 자기비하는 안 좋잖아. 그러니까. 음.”
“아… 네. 뭐, 그렇죠. 그렇긴, 하죠.”
“…그래.”
“…네에.”
어떻게든 수습은 했지만 분위기는 이미 곱창났다. 개드립 한 번 잘못 친 뒤의 소개팅 자리 같은, 숨 막히는 어색함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인가. 수아가 쓰게 웃으며 조심스레 말문을 텄다.
“하지만 뭐, 솔직히 사실이잖아요? 저도 그 정도는 다 안다구요.”
“…뭐가.”
“오빠는 괜한 걱정 끼치기 싫어서 저한테 안 말하는 거잖아요. 들어봤자 저는, 이렇다 할 도움이 안 되니까요.”
“…….”
“제가 지금 세상에 하등 무쓸모 한 사람이라는 거. 제가 누구보다 잘 안다구요.”
갑자기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하는 수아.
당황한 나는 하염없이 입만 뻐끔거렸다. 덕분에 적절한 반응을 제 때에 해주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수아의 넋두리는 계속된다.
“가끔은 저도 생각해요. 이렇게 쓸모도 없는 년이, 이런 험한 세상에 살아 있어 봤자… 뭐 의미가 있긴 한가. 그런 생각이요.”
“수아야.”
나는 수아를 나직이 불렀다.
그러자 퍼뜩, 그녀가 고개를 쳐들어 날 쳐다봤다. 호쾌한 기세에 어깨를 움찔했다.
수아는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잖아요. 어울리지가 않는다고요. 저 같은 건… 진작에 게이트 재해에 휘말려서 죽었어야 했어요. 그게 올바른 흐름이었을 거라고요!”
“아니. 그게 무슨…….”
“그 당연한 흐름을 오빠가 막은 거예요. 오빠 같이 무지막지하게 강한 사람이 개입을 해서! 저는, 오빠 덕에,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거라고요.”
토로하는 목소리가 점점 격해졌고. 습기가 더해지며 울먹거렸다.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지금까지도 자기비하에 빠진 적은 있지만, 이 정도까지 자포자기 상태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서윤이도 그러더니.’
자매는 생각하는 것도 닮는 건가.
어제 서윤이와도 비슷한 대화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좀처럼 보여주지 않은 패턴에 나는 당황할 뿐이었다.
‘일단 당장.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그래. 뭐라도 하자.
저대로 놔둬선 안 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뭐라도 하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아니. 내려고 했다.
“있잖아요. 오빠.”
퍼뜩, 수아가 고개를 쳐드는 것이 약간 빨랐다.
나는 열었던 입을 재빨리 닫아야 했다.
“제가 이런 세상에, 살아 있어도 되는 걸까요?”
뭔 당연한 소리를 지껄이냐.
단언하려고 했다. 하지만 직전에 덜컥 멈췄다.
문득 지난날의 내 모습이 뇌리에 스쳤기 때문이다.
‘…나부터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수아의 정체를 한창 의심하던 나를 떠올렸다.
나 역시 그녀를 하등 쓸데가 없는 짐짝, 애물단지 취급했다.
분명히 그랬지.
“…….”
넌 쓸모없지 않다. 충분히 살아 있을 가치가 있다.
이제 와서 내가,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가.
그건 좀 많이 역겨운, 위선이 아닐까.
“…음.”
그런 생각들이 잠깐 들었고.
아주 잠깐, 내 말과 사고를 틀어막아 버렸다.
“너는.”
지금까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솔직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나는 지금. 눈앞의 수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전에 없이 심사숙고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일념으로 열심히 생각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그리고 난, 떠오르는 말들을 천천히 입 밖으로 옮겼다.
“넌 살아 있어야 해. 적어도 나한텐 의미가 있어.”
강수아의 생존은 내 목표였다.
내가 직접 정한 회귀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고. 그렇기에 더더욱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목표다.
“정확히는 그거 말곤,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
그걸 뼈저리게 깨닫고 난 뒤. 더더욱 절실한 목표가 되었다.
목표는 곧 집착이 되었고, 광기로 번졌다.
“어쨌든… 수아야. 목표는 중요한 거다. 정말로.”
농담 하나도 안 섞고. 세상의 누구보다도 더 중요했다.
나중엔 그게 조금 뒤틀려서, ‘세상의 모두를 희생해서라도 수아를 살린다’라는 광기의 회귀자 한정용이 됐지만.
뭐 일단,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차치하고.
“그래서 나한텐, 지금도… 네가 살아 있는 게 중요해.”
그저 똑같은 시간을 토 나올 정도로 표류하는 회귀생활.
유일한 목표였던 수아의 안위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녀의 안전만이 내 관심사였고, 그녀의 생존만이 내 반복되는 삶에 의미를 준다.
“그리고 지금은…….”
정확히는, 의미를 줬었다.
지금은 안다. 눈앞의 강수아는 가짜였다.
죽어버린 진짜 강수아가 남기고 간, 일종의 껍데기에 불과하다든가.
“…지금은…….”
내가 알던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나는 진짜 강수아, 화신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버린 지금. 수아에 대한 내 인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변한 건, 하나도 없어.”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애초에 나는 진짜 강수아 같은 건 모른다. 기억도 일체 못하니 관심도 전혀 없다.
내가 아는 강수아는 진짜든 가짜든, 눈앞의 강수아 뿐이다.
“지금도 넌 내 유일한 목표고, 의미다.”
이제 곧 내가 진짜 강수아를 만난다 해도. 분명 그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
아니지. 애초에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맞아. 그렇지.”
말하다 보니 스스로 깨달았다.
내가 여기에 주저앉아 뭉그적대고 있었던 진짜 이유. 바로 이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구나.
나는 멍하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변할 건, 없는 거였어.”
더 이상 대화는 의미가 없다.
두려움이 말끔히 사라졌다.
‘대체 뭘 쫄아 있었던 거냐.’
지금까지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다.
잃어버렸던 목표의식을, 이제야 제대로 되찾은 느낌이다.
“수아야.”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수아의 이름을 불렀다.
터벅, 그녀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아, 네, 넷?!”
수아는 갑작스런 터치에 화들짝 놀라며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오글거리는 얘기를 해서 그런가. 그녀의 양 뺨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시선을 좀처럼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동그랗게 뜨인 그 눈을 반강제로 마주봤다.
“…음.”
근데 막상 멍석이 깔리니 할 말이 없다.
가짜나 진짜에 대한 애매한 얘기도. 내가 지금 뭘 하러 가는지도 침묵했다.
곧 내가 자살할 예정이라, 이게 마지막 대화라는 것도 물론이다.
“갔다 온다.”
복잡한 기분을 뒤로한 채.
나는 성큼성큼 현관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빠. 이번이 마지막… 이라고 했었죠?!”
떠나려는 나를 수아가 붙잡았다.
고개를 슬쩍 돌려 뒤를 쳐다봤다. 그녀는 전에 없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래. 아마도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무사히 돌아오실 거죠?”
“장담은 못 하지. 다만…….”
“다만?”
“노력은 하겠지. 최선을 다해서. 지금까지 그랬듯이.”
푸훗.
수아가 묘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아니. 제가 예상한 그대로 대답이 나와서요. 좀 웃겼어요.”
“…그러냐.”
“네에. 흠, 크흠.”
별안간 수아가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씨익, 익숙하면서도 낯선 잔잔한 미소를 두른 채. 그녀는 말했다.
“제발 열심히 노력해주세요.”
“…그래.”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요! 알겠죠?”
“알겠어.”
장난스런 어조에 숨은 절박한 기색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난처하게 웃으면서도 고개는 묵직하게 끄덕여줬다.
이번 생의 그녀가, 적어도 마지막까지 최대한 안심하도록.
* * *
12시 27일.
정확히 오후 12시 정각이었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이브와, 무너진 63빌딩 잔해에 올라가 있었다.
―그그그그그그그그……!!!
시커먼 종말이 하늘을 가득 메워간다.
끝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