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46)>
어영부영 하루가 지났다.
나는 결국 다음날이 되어서야 고향집에 찾아갔다.
덜컹! 내가 열쇠로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자, 이세라와 수아, 그리고 서윤이가 차례대로 날 쳐다봤다.
“…뭘 그렇게 쳐다보냐.”
셋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툭 내뱉었다.
다만 이세라는 눈깔도 없으니 논외고. 서윤이와 수아 자매가 날 동물원 원숭이 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어… 음.”
“와아. 흐응~.”
일단 경계하는 기색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신기함이 한 가득. 외계인이라도 봤다는 행색이다.
“헤에. 진짜 왔잖아?”
“그러게. 세라 언니는 틀리는 법이 없네?”
그리고 두 사람이 한 마디씩 주워섬겼다.
그렇게 된 거였구만. 나는 대충 내막을 짐작하고 시선을 흘깃 돌렸다.
돌아간 시선 끝에는 이세라가 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냐.”
“으음, 좀 반신반의 했지만요.”
예상대로였다. 이세라가 미래시로 스포일러(?)를 해놓은 모양이다.
이젠 놀랄 일도 아니니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뭐, 그러면…….”
나는 세 사람을 한 번씩 스윽 둘러봤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넌지시 제안했다.
“밥이라도 먹자. 일단.”
“…아, 음?”
“밥 먹자고.”
“…….”
“배고프잖아. 배를 채워야 뭐라도 하지.”
그 시점에서 이세라는 이미 움직이는 중이었다.
거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앉은뱅이탁상의 다리를 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들의 중심에 조심스럽게 배치한다.
파지직!
나는 재빨리 인벤토리로 손을 넣었다.
“메뉴.”
흠칫.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고. 세 사람이 동시에 그대로 벙쪘다.
식사 메뉴 묻는 질문인지를 몰랐다고 한다.
진짜 밥 먹었다.
최후의 만찬은 놀라울 정도의 평온과 고요 속에서 진행됐다.
“자, 잘 먹었습니다.”
“…꺼윽.”
이세라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처음엔 상당히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어제 내내 쫄쫄 굶다 먹는 첫 식사라 그런가. 중간부턴 일절 대화도 없이 게걸스럽게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후아…….”
“사, 살 것 같다.”
결국 식사가 끝난 시점엔, 모두 만족스럽게 웃으며 배를 두들기게 됐다.
털퍽.
이브가 내 옆으로 병든 닭처럼 널브러졌다.
“으음. 아빠, 배부르니까 졸리다.”
“…자라. 졸리면.”
“으응, 아빠! 다리 좀 빌려줘. 히히. 베고 잘 거야!”
이브는 내 허락도 없이 그대로 허벅지에 머리를 덥석 올렸고. 그대로 새근새근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창졸간에 일어났다. 채 말릴 새조차 없었다.
뭐라 따지기도 피곤하니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뭐, 아무튼…….’
이브는 그렇다 치고. 나는 나머지 세 여인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이내 흡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오길 잘했네.”
“후후. 그러네요. 안 그래도 식량 문제로 걱정이 많았거든요.”
옆에서 젓가락을 깨작이던 이세라가 맞장구를 쳐왔다.
사실 별 관심 없었는데, 저렇게 말하니 좀 궁금해진다. 나는 식기들을 대충 한 곳에 치워놓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안 왔으면 어쩔 생각이었냐.”
“어쩌다니, 뭘요?”
“식량 문제 말이야.”
“으음, 글쎄요. 산에 가서 나물이라도 캐먹었으려나요?”
“겨울 산에는 생각보다 먹을 게 없어.”
참고로 이건 경험담이다.
그렇다고 생계 때문에 캐봤던 건 아니고. 어렸을 때 아버지의 취미 겸 심심풀이로 산행을 좀 해봤기에 알고 있을 뿐이다.
내 말에 이세라는 난처한 듯이 웃었다.
“그러면 뭐, 서윤 씨랑 같이 멧돼지나 고라니라도 잡아야겠죠?”
“…허.”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여기가 산간오지에 틀어박힌 외딴 집이라지만. 설마 저런 서울 촌놈스러운 발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집 앞에 난 비탈길 타고 내려가면. 작은 마을 하나 있다.”
“그런가요?”
“차 타고 20분 정도. 서윤이 텔레포트면 당장이라도 도착해.”
“흐음. 그렇군요.”
“큰 마을은 아니지만 읍내에 편의점 몇 개는 있어. 통조림 같은 보존식이 있겠지. 내가 넘겨줄 보존식들도 무한하진 않으니까, 최대한 확보해 놓으면 좋을…….”
“글쎄요. 그게 아직 남아 있을까요?”
그 대목에선 나도 어깨를 움찔했다.
내가 슬쩍 쳐다보자, 귀신같은 타이밍에 이세라가 희미한 쓴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이.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이세라를 지그시 쳐다봤다.
“무슨 의미로 한 말이냐.”
“그냥 말 그대로요. 그 편의점들에 보존식이 남아 있을 리가 없을 거 같아서요.”
“왜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뭐, 지금까지 힘 빼가며 고라니랑 멧돼지 잡아먹었게요?”
“…아.”
아주 기본적인 건데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생각이 짧았군. 나도 그쯤에서 통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멍청한 소리를 했다.”
“아뇨. 다 저희 생각해서 해주신 말인데요.”
“…흐음.”
“산길 아래로 차타고 20분 거리에 마을. 저희 같은 생판 외지인한텐 이것만 한 꿀팁도 없죠. 고마워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달그락, 덜그럭.
이세라는 끝까지 성심성의껏 대꾸해줬다. 그리고 탁상 위의 식기들을 한 곳으로 그러모으기 시작한다.
설거지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아, 제가 할게요!”
낌새를 눈치챈 수아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세라가 모아놓은 설거지거리들을 한 아름 품에 안아들기 시작했다.
달그락. 따라 일어선 이세라가 그것을 조금 나눠 들었다.
“같이 하죠. 그게 좀 더 빨리 끝날 테니까요.”
“아, 하하. 그럴까요?”
두 사람이 나름 화기애애하게 부엌 쪽으로 멀어진다.
첨벙첨벙. 달그락달그락. 한동안 식기 씻는 소리가 부엌에 울려 퍼졌다.
“…….”
당연한 말이지만 수도는 이미 끊긴지 오래다.
다만 싱크대 옆으로 내가 만들어온(진짜 마법으로 만들었다) 물이 대야에 한 가득 있었고. 두 사람은 그것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캠핑 온 줄 알겠어. 누가 보면.”
그 순간. 지금껏 침묵을 지키던 서윤이가 목소리를 냈다.
흘깃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뚱한 얼굴로 수아와 이세라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다 툭 물었다.
“불만이라도 있냐.”
“설마. 그냥 좀… 실감이 안 될 뿐이야.”
“그건 뭐, 동감이긴 하다.”
실감이 안 난다.
집 바깥으로 펼쳐진 처절하고 비극적인 현실. 그것과 도무지 매치가 안 되는 이곳의 분위기에 대한 어색함.
서윤이가 느끼는 건 아마도 그것이다.
‘나도 똑같으니까.’
지금 누구보다도 그걸 크게 느끼는 게 나다. 그래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강서윤은 지금 아마, 역대급으로 나와 마음이 통하고 있다.
“있잖아. 어떻게 됐어?”
문득 강서윤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뭐가.”라고 모른 척 얼버무리기엔, 물어볼 만한 요소가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회피할 생각은 버렸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다 뒤졌어.”
“다… 라고 하면?”
“말 그대로 다야. 전부. 어제부로 서울은 지도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지, 지도에서, 사라져…? 그, 그 정도야?!”
서윤이가 경악을 담아 되물어왔다.
예상은 했지만 도저히 예상도 못했다는 느낌. 말이 좀 이상하지만, 이것만큼 서윤이 기분을 대변하는 말도 없을 테다.
나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어야 했다.
“미안. 사실 거짓말이야.”
“뭐, 뭐야. 역시……!”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권도 8할은 궤멸했다. 사실 서울만은 아니긴 해.”
“…아.”
복잡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내 허탈한 신음 겸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어딘가 초연해진 얼굴로, 연신 김빠지는 숨소리를 내뱉었다.
자괴감이 깊게 어린 탄식이 들려온다.
“나… 진짜 아무 쓸모도 없네. 꼴에 S급 헌터인데.”
“세계최강인 양호성도 진작에 뒤졌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래. 그렇게 다 뒤져나가는 게 당연한 세상이지. 근데 우리들만 이렇게… 네 빽으로 느긋하게 살아도 되는 거냐……?”
“흐.”
거기선 반사적으로 웃음이 튀어나갔다.
직후 입을 콱 다물었지만. 당연히 이미 늦었다.
“뭐야. 뭐가 웃긴데!”
서윤이는 날카롭게 반응해왔다.
쌍심지를 확 치켜세우고, 날카로운 시선이 날 똑바로 향했다.
X됐음을 직감하면서도. 난 일단 항변했다.
“아니. 별 건 아니고.”
“별 게 아니긴 X발아. 지금 내가 뭐 웃긴 말을 했다고. 빨리 말 안 해?”
“그 말. 언젠가 네 동생도 똑같이 했었다. 나한테.”
“…아.”
“그래서 웃은 거야. 익숙한 말이라서.”
그 말에 서윤이도 합죽이가 됐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 속에서. 나는 변명하듯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너희들은 내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다.”
“…….”
“다른 사람들은 몰라. 솔직히 알 바가 아니야. 나는 다만 너희가 살았으면 좋겠을 뿐이야.”
“…….”
“이젠 그것뿐이야.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내 목표고. 바람이다.”
지나치게 솔직한 토로였다.
그래서인지 서윤이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흐, 흥. 뭐래! 오글거리게. 병신 한정용이.”
자세히 보니 강서윤의 멍한 시선은 좀 멀찍이 가 있었다. 가만히 그 경로를 따라가 봤다.
그녀는 자기 동생, 수아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제…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리고 강서윤은 별안간 툭 물어왔다.
의도가 가늠되지 않는다. 나는 눈썹을 슬쩍 틀어 올렸다.
“무슨 뜻이냐.”
“그게… 음, 나도 잘 모르겠네. 그냥 전부 다!”
“…전부?”
“이제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 거고.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그리고 우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런 거 전부 말이야.”
서윤이는 수많은 의문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존나게 놀랍게도. 그 중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뭐, 한 가지 확실한 게 있긴 하지.’
내 호언장담은 이번에도 귀신같이 틀렸다.
이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결착이 나든. 그건 적어도 이번 생은 절대 아니다.
‘이제… 내 죽음이 확정되어 있으니까.’
나를 죽여서, 내 안의 옥좌를 세상에 꺼내야 한다.
지금 내가 아는 시나리오의 진행은 딱 거기까지. 나 역시 그 이후는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해답을 아무것도 모른다.
“…음.”
서윤이에게 적절한 대답은 못 해주겠고.
나도 그저 강수아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후우.”
내가 모르는 해답을 쥐고 있는 유일한 사람.
정확히는, 그 사람을 똑 닮은 가짜를.
* * *
나는 이번에도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아마, 그리 오래된 기억까진 아닐 거다.
“으음? 아빠의… 피 말이야?”
알아챈 이유는 이브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브 자체가 999번째 회차에 등장했다. 그러니 오래된 기억일 수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10회차 이내의, 비교적 최근 회차다.
“아빠.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봐?”
아무튼 그 날. 나는 이브에게 뭘 좀 물어봤다.
그녀의 입장에선 엄청 뜬금없고, 약간은 엽기적인 주제였을 테다.
“아빠의 피 맛? 피 맛이 왜 궁금한데? 응?”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피에서 무슨 맛이 나냐고 물어봤다.
예상한 대로 이브는 날 빤히 쳐다보며 의아해했다. 다만 나는 대답해줄 말이 궁색했다.
“…그냥. 갑자기 궁금해졌어.”
이게 진짜 이유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먹는 사람은 차치하고. 빨리는 사람도 궁금할 만도 하지 않나? 하루가 멀다 하고 체력치가 반 토막이 날 때까지 피를 쭉쭉 빨리니까.
대체 무슨 맛이 나길래 그렇게 한 드럼통씩 빨아대는 걸까. 궁금하잖아.
“뭐, 딸기우유 맛이라도 나냐.”
“으엥? 아니!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그러냐.”
“응응. 애초에 아빠 피, 전혀 맛있지 않아! 굳이 따지자면 맛없는 편인데?”
“…으음.”
딸기우유한테 진 것도 서러운데. 면전에서 맛없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묘하게 서운하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괜히 혼자 찝찝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빠 피는 말이야. 으음.”
이브가 특유의 요염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연다.
나는 숨을 슬쩍 삼켰고. 이브는 그런 내게 한 발짝 성큼 다가왔다.
“그래. 녹슨 쇠 맛이 나!”
그녀의 가느다란 검지가 툭, 툭.
내 가슴팍 위로 유영하기 시작한다.
“이건 아빠의 마음이… 녹슬어 버려서 그런 걸까? 으히히.”
스스로도 오글거리는 말을 했다는 자각이 있는 것인가. 직후 이브는 멋쩍은 듯이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다만 듣고 있던 나는 쉽게 웃지 못했다.
“…….”
벙찐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대로 멍하니 서서. 손바닥을 한 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녹슨 피가 흐르는 내 손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