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43)>
언제는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수아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는 아주 시답잖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진 것이다.
“어… 제, 제가 오빠랑 친해진 이유요?”
“그래.”
그래서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렇다고 ‘너 나 왜 좋아하게 됐냐.’라고 묻기는 좀 자뻑 같아서 싫고. 좀 돌려서 ‘어쩌다 친해졌는지 기억나냐.’라고 물어봤다.
그리고 그 때 수아의 대답은 이랬던 걸로 기억한다.
“글쎄요? 뭐였더라?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그러냐.”
“네! 원래 오래된 친구사이가 다 그렇잖아요? 그냥 정신 차리고 보니 친해져 있고, 그런 거죠 뭐! 히히.”
“…그렇구나.”
영원회귀로 박살난 멘탈을 치유하고자, 자아 찾기에 한창이었던 나였으나. 기대에 비해 싱겁게 문답이 끝나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영 아쉬웠던 나는 그 외에도 이것저것 질문을 이어나갔다.
“어… 철학과는 왜 갔냐고요?”
평소에 궁금했지만 중요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가거나, 질문하기 꺼렸던 것들. 그 회차를 기회삼아 날 잡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의아하게 쳐다보는 수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원래 이과였잖아. 수학을 꽤 잘했지.”
“아 네. 그랬죠.”
“어쩌다 철학과로 유턴을 하게 된 거냐.”
“으음, 굶어죽고 싶어서?”
“…….”
상상 이상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덕분에 반응이 좀 늦었다.
그런 나를 보고 수아가 슬며시 웃었다.
“당연히 농담이에요! 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아. 그래…….”
“으음, 그냥 뭐랄까요. 제가 많이 힘들 때, 철학자들의 명언에서 되게 기운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갑자기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그렇구나.”
“네에. 제 인생 최대 실수였죠 뭐! 으후후.”
난처한 듯이 웃어넘기는 수아.
딱히 진짜로 후회하는 기색은 아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나름 자부심까지 느끼는 기색이다.
“아. 오빠한테도 알려줄까요? 철학자들이 멋진 명언이 많다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신나서 떠벌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기분을 굳이 잡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뒤진 놈들 염불 외는 소리 따위 관심 없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흐음, 잠깐 고민하는 침음을 흘렸고.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별안간 그런 말을 꺼냈다.
나는 순간 벙쪄서 수아를 멍하니 쳐다봤고. 수아는 슬며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런 나를 빤히 마주봤다.
“혹시, 들어본 적 있으세요?”
“그런 거 같기도 한데.”
“이거요. 그 유명한 니체가 한 말이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구요.”
“…그렇구나.”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강하게 만든다고.
머릿속으로 그 말을 가만히 되뇌었다. 그러자니 문득, 의문 하나가 뇌리를 퍼뜩 스쳤다.
나는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그리고 거기까지. 나는 다시 입을 콱 다물었다.
발작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다.”
그러면 나를 죽일 만한 고통은 어떻게 되냐.
그렇게 물어보려다 관둔 거다.
죽일 만한 고통을 받으면 죽으면 된다. 이건 세상 통틀어서 오직 나만이 궁금할 만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한다고.”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되뇌었다.
그걸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수아가 신나서 내게 머리를 디밀었다.
“되게 멋있는 말이죠? 그쵸?”
“…으음.”
멋있는 말인지는 모르겠고. 공감되기는 하는 말이다.
실제로 나는 아무리 고통 받아도 죽을 수가 없고. 그렇게 죽지 못한 나는, 전생의 나보다 더 강해지니까.
‘니체도 사실 회귀자였나.’
그런 실없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왜 갑자기 생각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났다.
* * *
“그… 으으.”
아득해졌던 정신이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들려온 건, 심하게 갈라지는 숨소리였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잿빛의 하늘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아.”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봤다.
직전의 갈라지는 숨소리는 내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희미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이건. 쓰러져… 있는 건가.’
등에서 느껴지는 뭉툭하고 딱딱한 감각. 시야에 가득 찬 하늘. 그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함으로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지면에 짐짝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끄… 하. 쿨럭!”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힘을 줘봤고. 그대로 핏줄기와 함께 기침을 토해냈다.
꿈틀거리던 상체에서 다시금 힘을 쭉 뺐다.
정확히는, 힘이 알아서 빠져나갔다.
“무르, 무르는…….”
지금 중요한 건 내 목숨 같은 게 아니다.
그런 건 죽고 나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투는, 어떻게 된 거야.’
공격은 성공했나. 무르무르는 아직 살아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아직 살아 있는 건가. 붙어 있는 내 목숨보다도 중요한 의문점이 한 가득이다.
“크으윽……!”
목과 눈알을 어떻게든 돌려서 주변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파지직, 바직! 주위에서 시퍼런 스파크가 연신 날름거린다. 내가 사용했던 라이트닝 헬릭스 8중첩의 후폭풍이 아직 남은 듯하다.
그리고 지금 내 최대의 관심사, 무르무르의 행방은…….
“…어딜 간 거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스킬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아니면 유유히 회피하고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두 가지 가정이 동시에 머리맡을 스쳤고.
긍정적 가정과 부정적 가정이 있으면, 나는 부정적인 쪽을 먼저 상정한다.
“리스, 토……!”
육체를 수복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스킬을 영창한다.
푸화악!
입에서 영창 대신 핏덩이가 쏟아졌다.
“쿨럭! 크윽… 커헉!”
격한 기침을 쏟아내며 온몸을 펄떡거렸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격통이, 온몸의 신경 줄을 찢어발기듯 치달렸다.
하도 심한 고통에 한동안 소리도 제대로 못 냈다.
“그… 하악.”
수 초가 지난 후. 쩍 벌어진 입에서 막혔던 숨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동시에 긴장으로 바짝 굳었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하아아.”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대로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 못한 채. 폐허가 된 지면에 온몸을 맡겨 버렸다.
“…….”
지끈거리는 눈을 전방에 고정했다.
잿빛으로 지글거리는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곧 눈이 오겠다. 직감했다.
“……?”
그리고 그 때까지 내 목숨이 멀쩡히 붙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 나는 본격적으로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르무르가 살아 있다면, 내가 살아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설마.”
그리고 그것을 깨닫자 연쇄적으로 이변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잿빛의 하늘. 평범한 12월 24일의 겨울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이것부터가 이미 이상한 부분이었다.
‘던전 게이트가, 사라졌다.’
부정적인 가정이 물러나고 긍정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확인. 확인을……!’
그 사이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체력과 힘 스탯이 만렙을 찍으면서, 육체의 회복력도 괴물같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심각한 탈진상태가 회복되려면 몇 시간은 걸릴 것 같긴 하지만. 적어도 목과 눈을 돌리는 정도는 가능해졌다.
“…아.”
그렇게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킨 뒤. 주변을 둘러본 결과. 나는 내 발 아래에 널브러진 무언가를 목격했다.
자세히 보니 나는… 지면에 엎어져 있던 것이 아니었다.
“…….”
잠깐 말문이 막혀버렸다.
복잡한 상념들이 폭주하는 열차처럼 뇌속을 헤집었다. 미친 듯이 날뛰다가, 어느 순간부턴 놀랍도록 다시 고요해진다.
차분해진 나는, 보이는 것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무르무르.”
시커멓게 온몸이 지져진 채, 석탄처럼 바싹 메마른 시신이 그곳에 있었다.
수백 미터가 넘는 체장을 가진 거체.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크기 덕에 착각할래야 착각할 수가 없었다.
발아래에 죽어 있는 이건 분명히, 무르무르였다.
“해, 해치웠……?”
반사적으로 중얼거리다 흠칫.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나도 모르게 부활주문을 읊어버릴 뻔했다. 아가리를 꽉 동여맨 나는 천천히, 손끝과 발끝을 움직여 놈의 몸을 쓸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르무르의 생사여부를 한창 확인하던 어느 순간.
―꼴이… 말이 아니군. 카핫.
별안간 다 죽어가는 전음이 들려온다.
심장이 갈비뼈 뚫고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죽었다고 반쯤 확신했던 무르무르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내가 온몸을 긴장으로 바짝 굳히는 찰나.
―뭘 그리 딱딱해져 있나.
“……!”
내 동요를 조롱하듯. 무르무르 특유의 여유작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어딘가 공허한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곧 소멸한다. 걱정할 거 없어.
“소멸, 한다고?”
―네가 이겼다는 소리다. 초인.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일격이었구만 그래.
혼잣말을 넋두리처럼 중얼거리는 무르무르.
그리고, 푸스스스! 무르무르가 장담했던 대로였다. 놈의 숯덩이가 된 몸이 바스라지며, 허공으로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만 봤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초인.
문득 무르무르가 물어온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해주기로 했다.
“딱히. 아무 생각도 없어.”
―하핫. 그런가? 그러면 어떤 기분이 드나. 기쁜가? 아니면 허무한가?
“…딱히.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아.”
무념무상. 그 자체였다.
기쁘지도 허무하지도 않다. 굳이 따지자면 실감이 잘 안 나고 있었다.
꿈인가 싶다가도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딱히 벅차지도 않다.
그냥 어쩌다 보니 결과가 이렇게 됐구나. 그 정도의 건조한 감상이었다.
“운이… 좋았군.”
―굳이 자기비하 할 것 있나. 네 전술과 기지가 좋아서 승리한 거다.
“…….”
―승리를 만끽해라. 살아남았다는 건 좋은 거지. 아무리 죽지도 못하는 저주받은 몸뚱이라도 말이야. 클클.
저 새낀 꼭 한 마디씩 더 많다. 그 한 마디로 사람 기분 잡치게 하는 재주가 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크… 윽.”
가까스로 일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탈진증상이 어지간히도 심하다. 빨리 베이스로 돌아가서… 좀 편하게 쉬고 싶었다.
비척비척, 걸음을 힘겹게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알아낸 진실은 달콤하던가? 초인.
무르무르는 최후까지 날 불쾌하게 하려고 작정한 듯하다.
우뚝. 당연히 내 걸음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냐.”
―그거라니. 뭐 말인가?
“내가 알아냈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아냐고.”
―자네에게 이미 모든 육사도가 모였잖나. 지금 타이밍에 아직도 모르면 이상하니까 그렇지.
“…….”
그 당연하다는 말투.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거냐.”
무르무르는 잠시 침묵했다.
놈의 시커먼 몸이 반절쯤 사라진 시점. 희미하게 조소 어린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