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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18화 (218/235)
  • 218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40)>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상대의 전투법.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뼛속까지 이해하고 있는 그 전투법.

    최종국면에 다다른 지금, 나는 그것을 모방해냈다.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파지지직!

    덕분에 허전해진 오른손과 왼손. 거기에 빠르게 두 가닥의 번개를 결집시켰다.

    벼락의 아찔한 섬광으로 시야가 명멸하는 가운데.

    “준비 끝났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렸고.

    투학! 이번엔 이쪽에서, 먼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후우우……!!”

    숨을 길게 내뱉으며 공격을 개시한다.

    외통수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 그 첫 번째 수.

    승패를 가르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

    ―흐흐. 와 봐라!

    무르무르는 호쾌하게 웃으며 도발을 해왔다.

    놈이 상체를 한껏 웅크렸다. 다리를 한계까지 구부려 신형이 더더욱 낮아진다.

    이내 한계까지 수축했던 몸이, 지면을 박차고 솟구쳤다.

    ―하아아앗!!

    푸화악!!

    폭격이라도 떨어진 듯한 폭발음. 동시에 무르무르의 고함소리가 쇄도해왔다.

    둘의 신형이 음속을 초월한 속도로 가까워진다.

    ‘여기부턴, 도박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순간이동 하듯 가까워지는 무르무르의 신형. 나는 이를 악물며 무형검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쉬쉬쉭! 내 앞으로 세 개의 날붙이가 붉은 궤적을 그리며 쏟아졌다.

    ―같잖은 잔재주를!!

    콰드드득!!!

    무르무르는 가볍게 손을 한 번 털어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내 무형검의 3방향 공격을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막아냈다.

    ―전력을 다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인!!

    콰콰콰콱!

    무르무르는 여전히 내게 돌진하는 중이다.

    각력은 전혀 쇠하지 않았다. 첫 무형검의 일격은 잠깐의 견제조차 되지 못했다.

    ‘한 번 더.’

    놈과 나의 거리 차는 넉넉잡아 수 킬로미터.

    지금의 무르무르에겐 5초 안에 따라잡힐 거리. 앞으로 남은 견제의 기회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앞으로 2번 정도다.

    차라리 일단 한 번 회피에 전념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아니. 한 번 더……!’

    도망쳐선 안 된다.

    어차피 도망칠 곳은 아무데도 없다.

    장수혁의 전투법. 어검술의 사용에 최대한 익숙해져야 한다. 그것이 내 승리로 이어지는 아주 실낱같은, 단 하나의 돌파구니까.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파지지지직!

    그러는 와중에 다시 한번. 손아귀에 벼락을 한줄기 축적했다.

    이제 손아귀에 모인 벼락은, 각각 한손에 두 개씩. 총 네 줄기였다.

    ‘앞으로 6번만 더.’

    현시점에서 내 최강의 기술.

    양손에 8개씩, 도합 16줄기의 나선 뇌전을 중첩하기. 지금은 그것을 무르무르의 면상에 때려 박기 위한 빌드업을 쌓는 중이다.

    ‘이길 수단은 이것뿐이야.’

    사실 이걸 사용한다 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최종형태까지 변신한 무르무르에게 이 기술을 박아본 적이 없다. 지금의 전투는 나로서도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다만 그렇기에, 최소한 이길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면 도전한다.’

    이 기술을 사용하려면 양손이 비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 최대한, 어검술의 사용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번엔… 이거다.”

    쉬쉬쉭!

    다시 한번 세 가닥의 날붙이가 공중에 떠올랐고. 이내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무르무르에게 쇄도했다.

    양 옆에서 두 자루. 그리고 손도끼가 배후를 노리고 날아간다.

    ―소용없다!!

    그러나, 콰콰쾅!!

    무르무르가 일갈하며 손을 양옆으로 마구 휘저었다. 파리 쫓는 듯한 그 가벼운 움직임에 두 칼날은 곧장 나가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배후에서 날아오던 손도끼는…….

    ―카아아앗!!!

    콰아아앙!

    무르무르가 지면을 한 번 힘껏 박차고. 더욱 가속하는 것으로 해결해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진 나머지 탄성을 터뜨렸다.

    “거기서, 더 빨라진다고?”

    콰콰콰콱!

    무르무르의 진격 속도가 절정에 달했다.

    손도끼가 날아가는 속도가 도저히 그 꽁무니를 쫓지 못한다. 기습적인 속공을 더 빠른 속도로 압도해버렸다.

    ‘예상 밖이다……!’

    쉬리릭!

    황급히 세 자루의 무형검을 내 주위로 회수했다.

    놈의 돌진이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계산이 완전히 어긋났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견제를 쑤실 타이밍은 오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저런 무지막지한 불도저에게 어떤 견제를 한들. 잠깐이라도 멈출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그러면 내가 취할 행동은 자명하다.

    [스킬 발동: 안티 노멀 리플렉터]

    [스킬 발동: 아이언 스킨]

    …….

    …….

    캐스팅이 빠른 방어스킬들부터 다중영창으로 전개. 순식간에 내 앞으로 형형색색의 방어막이 겹겹이 생성되었다.

    이건 충격을 대비한 거고. 진짜는 지금부터다.

    ‘저건, 정면으로 막으면 죽어.’

    돌진하는 무르무르를 목전에 둔 지금.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통감하고 있었다.

    “씨이… 발.”

    턱이 덜덜 떨리는 압박감과 압도감. 이건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

    심장을 박박 긁는 듯한 원초적인 공포.

    ―크하하하하핫!!!

    쩌렁쩌렁 울리는 광소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충돌까지 앞으로 1초 남짓. 그 이하.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크게 삼켰고.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스킬 발동: 비약]

    파지지직!

    손아귀에 번개 한 줄기를 더 충전하는 한 편. 비약 스킬을 연발해 무르무르의 돌진궤도를 필사적으로 이탈했다.

    푸화악! 지척에서 가공할 풍압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크욱!!”

    콰자자작!!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모든 방어스킬이 갈려나갔다.

    말 그대로 모두, 전부였다. 단 한 방에 모든 방어가 와해되는 건 물론이고, 내장이 뒤엉키는 듯한 충격이 뒤따랐다.

    “장난 아닌데 이건……!”

    당황에 찬 목소리가 절로 흘러나온다.

    그 와중에도 몸뚱이는 솔직하다. 살고자 하는 본능에 따라, 필사적으로 무르무르와 거리를 벌리는 내가 있었다.

    투화악!

    나는 울컥 솟아난 흙먼지를 꿰뚫고 날아갔다.

    ‘멀리. 더 멀리!’

    푸쉬이익!

    재빨리 블러드 스트림을 발동. 아예 무르무르가 시야에 잡히지 않을 때까지 일직선으로 날았다.

    주변의 시야가 휙휙 지나간다. 폭심지에서 순식간에 신형이 이탈했다.

    “이쯤이면……!”

    최소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한 뒤. 나는 비로소 제동을 걸었다.

    나는 그제야 한숨 돌리며 내가 날아온 방향을 슬쩍 쳐다봤다.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파지지직!

    그리고 네 번째 번개줄기가 손아귀에 모여든다.

    서서히 잦아드는 흙먼지 너머. 아득히 먼 곳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선명하게 피부를 찌른다.

    “……!”

    하나의 점처럼 작게 보이는 무언가. 그것이 웅크렸던 몸을 천천히 폈다.

    놈이 시선을 돌린다. 정확히 나를 보고 있다.

    느껴질 리가 없는 시선을 느낀다.

    ―그래. 웬 헛짓거리를 그래 열심히 하나 했더니… 뭔가 노림수는 있나보군?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놈이 전음 스킬을 사용했다는 건 뒤늦게 깨달았다.

    워낙에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인가. 전음 스킬 같은 기초적인 것조차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린 것 같다.

    ―질질 끌면서 힘을 축적하고, 한 방에 승부를 보시겠다. 이런 건가?

    들려오는 전음으로 깨달았다.

    놈은 이미 내 전략을 전부 간파하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혀 식은땀을 흘리자니. 이내 무르무르의 진득한 웃음이 들려온다.

    ―나쁘지 않군. 해보게. 얼마든지.

    이게 웬걸. 무르무르가 흔쾌히 허락했다.

    의아함에 눈을 조금 크게 뜨는 찰나. 나는 곧 불후의 명언을 하나 떠올리게 된다.

    ―그 때까지 살아 있다면 말이야. 크큭.

    역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직후, 쿠우우웅! 위기감이 온몸의 모공을 미친 듯이 들쑤신다.

    “커허……!”

    별안간 숨 막히는 존재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호흡까지 통제당하는 압도감 속에서. 나는 가쁘게 숨을 내뱉으며 허겁지겁 몸을 움직였다.

    위험하다. 뭔지는 몰라도,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위험하다!

    ―블레이드 아크.

    직후 들려온 나직한 목소리.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영창.

    그것을 듣는 순간. 나는 덮쳐온 압박감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크윽!!”

    푸화아악!!!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한 채, 공중에서 갑자기 솟아난 거대한 손톱의 참격. 내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자르고 지나간다.

    직전에 회피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머리통이 으깨졌겠지.

    “끄… 극!”

    직격은 피했지만 풍압까진 피할 수 없다.

    손톱이 휘둘린 충격파에 스쳤을 뿐인데.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속절없이 광풍에 휘말려 날아갔다.

    ‘머, 멈춰야……!’

    블러드 스트림을 발동. 신체를 제어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소용없다. 내 통제를 아득히 벗어난 상식 밖의 힘이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남은 건…….

    ‘… 대비를!’

    이제 곧 찾아올 충격에 대비하는 것.

    예상대로 내 몸은 한참을 곤두박질치다, 콰아아앙!! 그대로 바닥에 머리부터 들이박았다.

    그 뒤로도 지면을 수십 미터는 긁어댔고. 땅 속까지 깊숙이 파고든 다음에야 가까스로 제동했다.

    “커, 헉. 크으……!”

    막혔던 숨을 일거에 토해냈다.

    순간 아득해졌던 흑백 시야에 서서히 색채가 돌아온다. 어질어질한 머리에 하나씩 정보가 주입되었다.

    “…….”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했다.

    인지한 순간. 나도 모르게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

    “…허. 허허.”

    헛웃음에 가까운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통제 불능이다. 나는 한동안 미친놈처럼 웃어대길 반복했다.

    경이로움과 공포. 그 감정이 어느 한계를 넘으니 그냥 어이가 없다.

    “그래. 원래… 네 스킬이었지. 그거.”

    ―오호. 써본 적이 있는가 보군. 내 기술, 꽤 괜찮지 않나?

    “…….”

    웬걸. 다 듣고 있었군.

    혼잣말에 반응해올 줄은 몰라서 좀 놀랐다.

    ―결국 지금도 안 쓰는 걸 보면… 다음 생에 계승할 정도까진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인데. 맞나?

    “…….”

    ―뭐, 침묵은 긍정이지. 기술의 주인으로선 좀 애석하구만. 크큭.

    놀란 나는 그대로 아가리를 묵념했다.

    그러자 무반응이 재미없어진 것인가. 청산유수처럼 이어지던 무르무르의 말도 천천히 느려진다.

    이내 어조까지 살살 굳기 시작했다.

    ―자네를 깜짝 놀라게 할 용도로 쓰긴 했지만. 사실 난 이 기술을 좋아하지 않아. 초인.

    쿠웅. 쿠우웅!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정확히 나를 향해 가까워진다.

    ―끝없이 지식을 탐한 끝에 권태만 얻었지.

    무르무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전을 때린다.

    그 순간에도 지면은 주기적으로 계속 흔들렸고. 진도는 점점 더 강해졌다.

    ―한없는 권태 끝에 난, 지식을 버리고 무(武)의 한계를 탐했다.

    이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시커멓게 거대한 균열이 난 하늘 아래. 검붉은 색으로 물든 쑥대밭의 한 가운데.

    까마득한 백색 야차는, 폐허에 고고히 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 자와 만났다.

    “…….”

    ―설계자와 만나서.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너와 싸우고 있다.

    “…….”

    ―긴 말도. 깊은 생각도 필요 없다. 원하는 건 오가는 죽음의 공포.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실감. 이젠 이거면 충분하지.

    “…….”

    ―그래서 난. 내 의지로 그놈과의 거래를 받아들였다.

    쿠르르륵!

    이제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무르무르는 그 거대한 앞발을 한껏 들어올렸다.

    시뻘건 외눈의 안광이, 아득한 저편에서 날 노려보고 있다.

    ―일어서라. 초인.

    무르무르가 종용한다.

    거부할 수 없는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상상불허의 압도적인 살기를 내뱉으며.

    쇄애애액! 앞발을 내 정수리에 내리치며.

    ―어서. 나와! 최후까지 싸우자!! 초인!!!

    혼신을 다해 일갈한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무르무르의 주먹이 지면을 강타한다.

    서울의 지도가 그 순간 격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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