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38)>
13차까지 무사히 막아 냈다.
이제 참칭자가 내 앞에 나오기까지 남은 붕괴는 단 하나 뿐이다.
‘14차 붕괴.’
그 14차 붕괴를 하루 앞둔 게 오늘.
오늘은 평소처럼 소파에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지 않았다. 그 짓은 주변의 이목을 끄는 걸 알았기에 자중하고 있다.
대신 오늘의 나는 평소와 반대로, 주점 내의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었다.
“…….”
이세라. 강서윤. 그리고 강수아까지.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두런두런 대화하고 있다.
떠도는 공기는 불안과 초조함이 감돈다. 하지만 그것을 다들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다.
덕분에 태연함을 가장하면서 오는 긴장감도 공존했다.
“…….”
나는 그 장면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14차 붕괴가 목전인 지금. 아직 세 사람이 살아 있다.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고 있다.
‘…신기하네. 뭔가.’
그 사실 자체가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까부터 뭐랄까. 꿈속을 허우적대는 듯한 몽롱한 기분이다.
“저… 정용 씨?”
그러자니 문득 이세라가 조심스럽게 날 불렀다.
나는 퍼뜩, 눈썹을 들어올렸다.
“왜.”
“혹시,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딱히.”
“근데 왜 아까부터… 계속 빤히 쳐다보세요?”
“…….”
나름 몰래 쳐다본다고 한 건데. 이미 다 들켜 있었다.
이세라는 역시 생각보다 시선에 민감하다. 눈도 없으면서 어떻게 강서윤보다 시선에 민감할 수가 있지. 신기한 노릇이다.
아니. 오히려 눈이 없어서 더 민감한 걸 수도 있겠다.
‘염탐은 관두자.’
나는 미련 없이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내일 사용할 장비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대충 점검해보기 시작했다.
괜히 단검의 칼날에 기름칠이나 하고 있자니.
“저… 오, 오빠. 바깥 상황은, 어때요?”
스르륵.
수아가 조심스레 다가오며 질문을 해왔다.
수아가 먼저 다가온 건 놀랍지만, 한 편으론 지겹기 짝이 없는 패턴이다. 저건 전번 회차에서도 몇 번이나 들어보던 질문이니까.
‘궁금할 만도 하지.’
수아는 거의 이 주점에 감금당하다시피 살고 있는 상태다.
오늘이 12월 23일. 이곳에 틀어박힌 지 정확히 27일차인데. 5차 붕괴쯤 이후로 그녀는, 주점의 출입문을 단 한 발자국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다른 둘은 몰라도. 수아는 위험하니까.’
강서윤과 이세라는 붕괴가 없는 날엔 비교적 자유롭게 방목(?)했다.
그녀들에겐 최소한 자신을 지킬 무력이 있다. C급 헌터의 스킬 풍압만 스쳐도 치명상을 입는, 일반인 수아와는 취급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일반인… 이란 말도 웃긴가.’
저 강수아가 일반인? 개소리.
이 주점에 더 이상 일반인은 아무도 없다.
“흐.”
뒤틀린 조소가 입가에 절로 패였다.
오히려 가장 일반인에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D급 헌터. 나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불현 듯 들어서 그랬다.
“저기. 오빠. 바깥은, 음. 말… 안 해주시려고요?”
내가 침묵을 일관하자 수아가 재차 물어온다.
나는 이번에도 침묵을 고수했다. 그저 나른한 시선을 수아에게 향한 채, 묵직하게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긍정. 대답하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아… 네, 네. 알겠어요. 미안… 해요.”
수아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팩 돌리며 중얼거렸다.
미안하다니. 전부터 그랬지만 강수아의 사과 타이밍은 뭔가 이상하다.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듣는 내가 미안하게 말이야.’
그러고 보면 수아는 항상 그랬지. 죽을 때마다 저러곤 했다.
항상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죽곤 했어.
“…….”
왜인지 모르겠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 최후의 사과가 귓가에 어른거린다.
대뜸 엄청나게 불쾌해졌다.
* * *
그 뒤로 딱히 대단한 사건은 없었다.
대단한 사건은 없었고. 아무 일 없이 다음날 해는 밝았다.
사실상 마지막 레귤러 붕괴일, 12월 24일을 맞았다.
“크,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오늘요.”
“와아, 아아…….”
“있잖아요. 정용 씨. 일 마치고 돌아오면… 파, 파티라도 할까요?”
“그, 그러자. 이럴 때일수록, 힘내야 하잖아? 그치?”
이런저런 사건들로 한껏 곱창 난 분위기 속에서. 이세라와 강서윤이 어떻게든 분위기 띄워보자고 개드립을 쳤다.
실제로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건 맞으니, 개드립은 아니긴 하다.
“이브. 너, 너를 위한 날이네. 오늘!”
“으엥? 아줌마. 그게 뭔 소리야? 오늘이 무슨 날인데??”
이세라는 거기서 이브에게 뇌절까지 쳤다.
저건 개드립 맞다. 게다가 드립 칠 상대까지 잘못 고른, 실패한 개드립이지.
“내 생일인가? 응? 그런 거야? 그건 아닐 텐데?”
“아, 아냐.”
“그치? 뭐야 그럼??”
정작 못 알아들은 이브가 연신 고개를 꼬았다.
이세라도 그쯤에서 되도 않는 농담을 그만뒀다.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야…. 미안해. 잊어줘.”
분위기는 좀 침체됐지만 전체적으론 목가적이다. 적어도 평소의…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14차 붕괴에선, 상상도 못할 수준이었다.
애초에 다 같이 살아 있던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소리긴 하다.
‘진짜로… 이번에야말로 큰 거 오나.’
눈앞의 평화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낙관적인 미래를 그렸다.
나란 인간은 정말이지 학습능력이 없다.
“도, 도망쳐야 해요. 지금 당장요!!”
콰아앙!
갑자기 머리를 싸맸던 이세라가 신음성을 흘리고. 테이블을 후려치며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순간.
이번에도 내 낙관적 예측은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다, 다음. 다음 붕괴지가……!”
도망쳐야 한다. 다음 붕괴지.
거기까지 키워드를 들은 순간 예측은 끝났다.
“후우.”
지긋지긋할 정도의 익숙함을 느낀다. 나도 모르게 표정에서 힘이 좀 풀렸다.
철그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의 단검을 점검했다.
“붕괴지가 여기인 거겠지. 노원구.”
그리고 추측한 바를 중얼거렸다.
흠칫! 이세라와 강서윤, 그리고 강수아가 동시에 날 쳐다봤다. 다른 이들도 엄청나게 놀란 얼굴이지만, 특히 이번엔 이세라가 심했다.
그녀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날 쳐다봤다.
“네, 네에. 맞는데, 어, 어떻게……?”
“전에도 자주 그랬어.”
“아, 아아.”
그제야 이세라는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여전히 얼굴엔 의문이 가득하다. 아마 내가 지나치게 태연한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나갈 채비를 하며 그녀들을 안심시켰다.
“당황하지 마. 흔한 억까 패턴이다.”
“아니. 다, 당황을 안 하고 싶어도…! 괘, 괜찮은 거예요? 배리어가 버텨줄까요??”
“안 괜찮지. 14차쯤 되면.”
12차에서 14차까지는 던전 마스터의 무력이 최고조에 달한다.
여기서 최고조에 달한다 함은, 최소한 나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이라는 소리. 그리고 14차는 그 중에서도 최강이라는 소리다.
“다른 건 몰라도 14차는. 무조건 안 괜찮아.”
다시 말하면.
놈은 나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스펙을 가지고 있다.
“안 괜찮으니까. 지금부터 발바닥 불나게 도망을 가야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것.
즉 내가 쳐놓은 배리어도 부술 수 있다는 뜻.
어떤 던전 마스터가 등장하든. 이 주점의 배리어는 무조건 와해된다.
“짐 싸. 다들.”
나는 태연하게 통보했고. 그녀들을 지나쳐 먼저 주점 출입구로 나가버렸다.
이내 퍼퍽! 뒤쫓아온 강서윤이 내 등짝을 후려쳤다.
“아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뭐? 안 괜찮으니까 열심히 빤스런? 이게 말이냐 새꺄?!”
“왜. 당연한 소리를 했는데.”
“왜 그리 말투가 당당한 거냐고 인마! 뭐 대단한 해결책이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
“해결책이 있다곤 한 적 없는데.”
“아오… 진짜!”
퍼억!
시원하게 등짝 한 대 추가. 그걸로 강서윤의 불만은 끝났다.
이내 스르륵, 쫓아온 이세라와 강수아가 우리 옆으로 합류했다. 이세라가 그새 바리바리 싸온 짐들을 어깨에 이며 날 쳐다봤다.
“행선지는, 정용 씨의 고향으로 가는 거죠?”
“…….”
이세라가 앞뒤 잘라먹고 최종결론을 들이밀었다.
이제부터 어딜 가죠? 어디로 간다. 왜 거기죠? 이러이런 이유다. 이런 당연한 질문의 흐름이 전부 생략되어 있었다.
나는 새삼 불쾌감에 어깨를 떨었다.
“미래의 내가 말해줬냐.”
“아. 네에.”
“…그래. 그렇겠지.”
“미, 미안해요. 지금은 저도, 못 본 척해줄 여유가 없어서.”
“미안할 것까지야.”
아무튼 이세라가 말한 대로였다.
지금부터 예산 산골의 방치된 내 본가로 향한다. 이세라와 서윤, 수아를 거기에 놔두고. 나는 다시 서울로 귀환해 14차 붕괴를 막는다.
나는 그 계획을 서윤이와 수아에게도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어… 그, 근데. 정용아.”
그러자니 문득 서윤이가 날 불렀다.
내가 그녀에게 시선을 흘깃 향하자, 그녀는 미간을 바짝 모은 채 물어왔다.
“넌 애초에, 서울 위주로 붕괴가 일어난다는 걸 다 알고 있었잖아?”
“그랬지.”
“그렇지? 그, 근데 생각해보니까 좀 이상하다?”
“뭐가.”
“왜… 안전한 지방 쪽으로 미리 피신하지 않았던 건데?”
이건 뒤늦게 부랴부랴 도피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느낄 법한 의문. 그리고 육체파인 강서윤치곤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대답해줬다.
“붕괴 후반부가 아니면. 도통 납득을 못 했으니까.”
“누, 누가 납득을 못해. 내가?”
“…누구든 간에.”
사실 ‘누구’는 강수아 하나를 지목하는 말에 가까웠다.
나머지 중 하나는 6차 붕괴에 사망 확정, 하나는 9차에 확정이었으니까.
‘쟤네도 뭐, 다를 건 없긴 한데.’
생각해보니 강서윤과 이세라도 한 고집 한다.
그녀들은 죽을 때까지, 각자의 이유로 이 악물고 서울을 벗어나길 부정했다.
그것도 육사도가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던 운명의 수속이었던 걸까. 나도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지금은… 꽤 고분고분한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 회차는 억지로 막혀 있던 혈이 뚫린 뒤다.
뚫리기 전, 무수한 억까가 판을 치던 과거의 영원회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회차지.
그러니까 전 회차들에선 애초에 살아 있을 리가 없던 그녀들이 붕괴 후반부에 어떻게 반응할지, 내가 알 턱이 없다.
“뭐… 아무튼 그런 게 있었어.”
“뭐야, 그게. 얼버무리면 납득이 안 되잖아.”
“사정이 있어. 일단은 내 말에 따라줘. 부탁한다.”
“아, 아니. 안 따르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했다는 거지. 뭐.”
그렇게 때 아닌 예산행이 확정되었다.
시간이 꽤 촉박했다. 이세라가 본 붕괴 예정 시각은 약 30분 후.
“가자. 지금 바로.”
“으응.”
그녀들을 무사히 이송하고 다시 서울로 귀환하기까지. 30분밖에 여유가 없다.
나는 대규모 텔레포트가 없으니, 꾸준히 비행해야 한다.
그렇게 최종국면 직전에 도달했다.
힘 좀 빼고 쉽게 말하자면. 중간보스전이 시작되었다.
“사실 저번 조우 때부터 말이야.”
마지막 내 한 걸음을 막아선 자는… 당연한 말이지만. 구면이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구면이다.
“결국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었네. 초인.”
이세라의 주점 건물 옥상에서 그와 마주했다.
익숙한 얼굴과 익숙한 목소리. 정말이지 끈질긴 인연이다.
“이건 우연의 일치였는가? 아니면… 설계자 놈의 역겨운 안배인 것인가.”
놈은 공중에 멀찍이 떠 있었고. 특유의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날 내려다봤다.
문득 사라락. 새하얀 털뭉치가 날카로운 강풍에 휘날렸다.
“뭐,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꾸르륵! 쿠르륵!!
주먹 만했던 앙증맞은 털뭉치가 울룩불룩 일그러졌고. 사정없이 팽창한다.
시커먼 안개가 휘몰아쳐 놈의 몸을 감싼다. 이내 거대하고 새빨간 눈알이 되어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나는 그저 기쁠 뿐이다. 초인.”
콰작! 콰지직!
안개를 뚫고 솟아난 새하얀 다리들. 굵직한 짐승의 다리 넷이 지면에 무겁게 착지한다.
빠르게 걷히는 안개 속에서, 곧 놈의 전신이 드러났다.
“자네와 이렇게 마지막까지 싸울 수 있다는 게. 그것도 서로가 최상의 무력과,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후의 자웅을 겨룰 수 있다는 게. 그저 순수히 기쁠 뿐이라고.”
이번 회차의 14차 붕괴. 중간보스.
백청색 갈기를 휘날리는 전장 수백 미터의 짐승.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못하는, 걸어 다니는 순백색 지형지물.
이름은, 악의 꽃 무르무르.
―이미 육사도는 다 모은 것 같고. 그러면 피차 긴 말은 필요 없겠지.
놈은 변신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시작하지. 마지막 전투를!
대화는 그걸로 끝이다.
쿠르르륵!! 거대한 앞발이 쇄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