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14화 (214/235)

214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36)>

이번 회차도 명백히 후반부에 이르렀다.

앞으로 남은 붕괴는 총 3번. 그리고 다음은 12차 붕괴.

“이제부터가… 사실상 진짜 시작인데.”

몬스터의 양과 질, 그리고 던전 마스터의 스펙까지. 던전의 전체적인 난이도가 눈에 띄게 업그레이드되는 시점이었다.

아무리 1033회차의 나라도, 지금부턴 진지하게 긴장해야 한다.

‘다음 던전이 열리는 건.’

이세라에게서 전갈은 이미 받았다. 나는 그때를 상기시켰다.

이내 그녀가 말해준 붕괴지 관련 정보를, 입 밖으로 소리 내서 중얼거렸다.

“…3일 뒤. 상무대 부근.”

이세라의 예언은 이번에도 정확했다.

다시금 대한민국 한복판에 던전이 열렸다. 상무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득달같이 게이트 붕괴 방어에 돌입했다.

‘온다.’

콰콰콰쾅!!

까마득한 상공에서 열린 게이트 너머. 이글거리는 어둠을 찢고, 거대한 칠흑의 첨탑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둔중한 충격파와 가공할 스파크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왔다.”

제23던전 <클락워크 그라운드>.

비선형 던전으로, 거대한 첨탑의 형상을 띄고 있다.

탑의 각 층마다 온갖 함정장치가 설치됐거나 몬스터가 등장하고. 층이 올라갈수록 점점 돌파 난이도가 상승한다.

―키이이이!!

―츠츠츠츠……!

강철과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거미 무리.

눈에서 광선을 발사하며, 초음파로 사람의 뇌를 터뜨려대는 인공 박쥐 떼.

그 외에도 체장이 3미터에 이르는 강철 개미 군락. 거대한 메카 테디베어까지.

―크레레레렉!

―키오오오!!

온갖 괴생명체들이 타워의 각 층에서 쏟아져 나온다.

한계도 없이 무럭무럭 쏟아져 나와서. 근처의 생존자들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X발… 이, X발 새끼들… 결국은 여기까지 나오는구만!”

“다, 당황하지 마! 대열 유지해!!”

상무대는 우리나라 군사 교육시설 중에서 가장 큰 기관이다.

그런 만큼, 국가체제가 사실상 붕괴한 지금도 꽤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고. 그들을 지휘하는 군인출신 장교들도 꽤 있었다.

적어도 서울보단 아직, 사람 살아 있는 냄새가 진하게 났다.

―츠츠츠…….

―키이이이!!

같잖은 바리케이트 뒤에 숨어, 기계군단의 진군을 바라보는 상무대의 생존자들.

전방으로 겨누어진 총구가 하염없이 떨리고 있다. 도열한 병사들의 시선에선 이미 죽음의 공포가 짙게 서려 있었다.

“X발! 쏴! 갈겨버려!!”

“다 죽여 버려!!”

투두두두두!!

지휘관의 일갈에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는다. 일부 헌터 생존자들은 마력이 일렁거리는 불벼락을 쏟아냈다.

“으아아아아!!”

―키기기기기!!

그리고 푸확! 뿌드드득!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인간들은, 학살당하는 쪽이었다.

“끄아아아아악!!!”

“아아악! 그, 그만… 카하아악!!”

처절하고 구성진 비명이 쉼 없이 터져 나온다.

나는 거기서 고개를 돌렸고. 지금도 계속해서 몬스터를 쏟아내는 거대한 타워로, 빠르게 입장했다.

“드가자.”

<클락워크 그라운드>의 클리어 조건은 간단하다.

온갖 함정장치와 기계 몬스터가 도사린 탑을 돌파해 꼭대기까지 도달. 던전 마스터인 <희생자 엘리아데>라는 여인을 죽이면 되는 던전이다.

물론 매우 당연하게도. 난 이 던전을 이미 통과한 이력이 있다.

그것도 수십 번이나 말이다.

‘세 걸음 후에 측면에서 도끼. 그 뒤로 여덟 걸음에 화살세례. 여기서 아래에 화염.’

투학! 파바바박!!

덕분에 사방에서 쏟아지는 함정 기믹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12번째 붕괴에서 어떤 식으로, 몇 층에 몇 마리나 몬스터가 배치되는지까지. 전부 머릿속에 때려 박힌 상태다.

―키에에에엑!!

―케겍! 쿠에에엑!!

덕분에 놈들의 기습은 통할 일이 없다.

그리고 기습이 통하지 않으면. 힘으로 죄다 박살내 철분 쪼가리로 만드는 일만 남았지.

실제로 그렇게 해줬다.

“여기도, 통과.”

함정과 몬스터만 통과하면 별거 없다.

문자 그대로 엘리아데를 죽이면 클리어 되는 던전이다.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던전 마스터인 엘리아데는 일체 저항을 하지 않는, 이른바 비선공 몬스터라는 점.

“…대단하시네요. 듀라 님의 한평생이 새겨진 탑을, 이렇게 빨리 돌파하시다니.”

이걸 다시 말하면.

이곳에 설치된 수많은 함정장치는 엘리아데 본인이 설치한 것이 아니다. 엘리아데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설치한 것들이지.

엘리아데 본인의 말에 의하면, ‘듀라’라는 사람이 그 주인공이다.

“그래요. 꼭, 이 탑의 구조를 전부 아는 듯한 움직임이던데.”

그 ‘듀라’가 누구인지는 타워의 곳곳에 숨겨진 히든 퀘스트를 통해 내막을 알 수 있지만. 나는 아무래도 관심이 없다.

이미 진작에 그 히든 퀘스트도 싹 다 클리어 했고, 그 최종 보상품인 <듀라의 유산>도 수중에 넣은 지 오래였다.

“당신은… 신인가요? 아니면, 사신?”

“X대로 생각해.”

“그러면 사신님. 혹시 대화는… 좋아하시나요?”

“안 좋아한다. 그러니까 용건부터 말한다.”

그래서 엘리아데 앞에 오자마자 그런 말을 했다.

솨아아.

탑의 꼭대기층. 인위적인 느낌이 다분한 정원의 들판. 작위적인 바람이 불어와 그녀와 나 사이를 휩쓸었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별안간 엘리아데가 씁쓸하게 웃었다.

“…네. 그러죠. 용건이 뭔가요?”

“초면에 실례지만. 죽어줘라.”

엘리아데는 나보다 살짝 나이가 많아 보이는 금발벽안의 여성이었다.

이렇다 할 사악한 기운도, 특별한 낌새도 없고. 중세시대 마을 처녀처럼 수수한 복식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여인.

나무 그루터기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재차 되새겼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의 형상.

그것이 일부러 퉁명스레 대하는 이유였다.

‘그냥, 던전 마스터라고.’

대화는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죽여야 할 관계이니까.

엘리아데도 굳게 잠긴 태도를 보고 그런 기색을 눈치챈 것인가. 그녀는 오히려 동정어린 미소를 보내며 가슴을 내밀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죽을 줄은 몰랐네요.”

“상대가 나니까.”

“듀라 님에겐 면목이 없네요. 저를 지켜주시려고, 정말 뼈를 깎는 고생을 하셨는데.”

“그 새끼의 함정과 피조물들은 대단한 편이야. 내가 아니었으면… 수십만 명이 달려들어도 6개월은 버텼을 거다.”

실제로 이 던전은 영원회귀 이전에도 한 번 열렸었다.

그리고 던전 붕괴의 마지노선인 6개월 동안 끝끝내 공략을 실패해서, 결국은 게이트 붕괴까지 일어난 던전 중 하나다.

그때는 아마 우리나라가 아니었고, 일본인가 홍콩인가로 기억한다.

“…어머. 지금 위로해주시는 건가요?”

“그냥 사실이야. 일어났던 사실.”

“일어났던……?”

스르릉.

대화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청백색 단검을 들어올렸다.

단검을 목격한 엘리아데는 잠깐 바짝 굳은 채 꼼짝도 안 했고. 이내 희미한 체념의 미소가 입가에 어렸다.

“후훗.”

자신의 말로를 직감한 듯하다.

그 초연한 모습에 잠깐 숨을 삼켰고. 이내 난 반사적으로 질문했다.

“너는…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거냐. 그리고 무얼 이루려 했지?”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번복하는 내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면…….”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나요. 정신 차려보니까 이미 이 상태였는걸요.”

“…그렇군.”

“근데 한 가지. 머릿속에 이상한 목소리 같은 게 맴돌아요. 지금도 계속요.”

“…….”

“여기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말고, 다만 여기 앉아서. 너를 죽여 줄 누군가가 올 때만 기다리라고. 그게 제가, 지금 살아 있는 이유라고.”

문득 엘리아데는 고개를 푹 떨궜다.

그녀의 금발 끝단이 격하게 찰랑거린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주시했다.

물기 어린 목소리가 그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쓸모가 없어서 미안해요. 저, 끝까지. 아무한테도… 도움도 안 되다 죽네요.”

“아니.”

서걱.

청백색 서늘한 칼날이 여인의 목을 갈랐다.

사람 하나 죽는 것치곤 심각하게 조용했고. 또한 갑작스럽다.

‘아니지.’

사람 아니었지. 그래, 던전 마스터.

말이 잘못 나왔다.

“…충분히, 도움이 됐다.”

털퍼덕!

엘리아데의 몸이 바닥에 엎어졌다. 이쪽으로 데굴데굴 굴러오는 머리통은 어딘가 후련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감겨주며 중얼거렸다.

“만나지 말자. 다시는.”

나는 무기력한 행색으로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삼 단검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이템 정보]

[명칭: 블라이스의 단검 (A급)]

[타입: 무기/단검]

[효과: 물리방어력을 일정치 무효화한다.]

[효력범위: 단검의 칼날 부분에 한정.]

[상세: 제23던전의 던전 마스터 ‘희생자 엘리아데’의 클리어 보상. 발명가 듀라의 역작 중 하나로, 칼날 전체에 미세한 초진동을 발생시켜 방어를 와해한다. 단검의 숙련도에 따라 방어력 무시 효과가 대폭 증대한다.]

듀라 블라이스.

이 던전, <클락워크 그라운드>의 설계자.

히든 퀘스트의 주역이자. 엘리아데라는 던전 마스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남자의 풀네임이다.

‘얄궂구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역작은 지금 내 주무기가 되었다. 그리고 엘리아데의 목을 자르는 데 수십 번이나 사용됐다.

그렇게 13차 붕괴는 엘리아데의 죽음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나갈까.”

던전 마스터 보상품은 ‘듀라의 염원’이라는 보주를 획득했다.

사용하면 체력과 마력을 영구적으로 3씩 올려주는 A급 보주였다.

“이건… 개이득봤네.”

이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 중 최고의 아이템을 얻었다.

후반 붕괴라고 딱히 더 좋은 아이템이 나오진 않을 텐데. 체감 상으로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좀 애매하다.

“아, 어서오… 세요.”

그렇게 다시 베이스로 복귀했을 때.

대기하고 있던 여성진들은 하나같이 말을 아꼈다.

“…….”

“…….”

아마 그만큼 내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클락워크 그라운드>는 난이도는 둘째 치고. 깨고 나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쪽으론 단언컨대 원탑이었다.

‘왜지.’

그러게. 왜일까.

이제 와서 추측해보기론, 무저항의 던전 마스터를 죽여야 하니까. 그것도 지구의 인간 여성을 한없이 닮은 던전 마스터.

“…아하.”

인간을 심하게 닮은.

아마 이 부분이 중요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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