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34)>
프라키는 갑자기 내 앞에서 자살을 했다.
자살이라고 해야 하나. 빙의돼 있던 오경태의 목을 스스로 뜯어내버렸다.
“…무슨.”
나는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의 헛숨을 삼켰고. 거칠게 뜯겨나간 오경태의 목 위로 핏줄기가 세차게 솟아나왔다.
주위가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어간다.
―이제 우리가 함께, 연극의 막을 내려 보자고. 옥좌.
잘린 오경태의 머리가 그런 말을 해왔다.
나는 흠칫, 그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이변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육사도, ‘목 잘린 붉은 용’이 진정한 모습을 현현합니다.]
우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패널이 솟아났다. 그리고 투하악! 오경태의 잘린 목 단면에서, 시뻘건 뭔가가 솟구쳤다.
그것은… 내게 있어선 꽤 익숙한 광경이었다.
“…나오는 거냐.”
프라키가 드디어 허물을 벗는다.
오경태라는 껍질을 벗어던지고. 진신(眞身)을 내 앞에 드러내려고 한다.
―아아. 그러고 보니.
그리고 장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경태의 안에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성량. 내 머리를 뒤흔드는 걸로 모자라, 주위의 공기가 쩌렁쩌렁 울린다.
―지금껏 입을 다물어서 미안한데 말이야.
쿠르륵, 쿠륵!
알을 깬 새끼 도마뱀이 빠져나오듯, 시뻘건 비늘을 두른 도마뱀의 거체가 오경태의 목 위로 꾸역꾸역 솟아났다.
거대한 한 쌍의 날개가 인상적인 그 도마뱀은… 놀랍게도 머리가 없다. 목 위가 예리하게 도려내져 있었다.
―자네는 나와 싸워야 하는 게 맞아. 옥좌.
쿠우웅!
거대한 그림자가 내 앞으로 한 발짝.
나는 천천히 고개를 위로 올렸다.
“…허.”
온 시야를 뒤덮을 정도로 장대한 거체가 그곳에 있다.
흡사, 빌딩 한 채가 걸어 다니는 듯한 위압감.
―그러니 난… 당연히, 그에 저항할 걸세.
쿠우웅!
다시금 지면이 요동쳤고. 프라키는 내게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스스스스.
놈이 고개를 천천히 숙여 내 쪽으로 가져왔다. 잘려나간 목의 단면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시뻘건 속살이 퍽이나 그로테스크하다.
―굳이 저항할 이유는 없긴 하지만, 그게 더 재미있으니까 말이야!
광기 어린 목소리가 들린 직후였다.
파팟! 나는 황급히 지면을 박차고, 그 자리에서 이탈했다.
―촉은 좋군! 옥좌!!
콰콰쾅!!
기습적으로 뻗어온 프라키의 왼손톱이 그곳을 할퀴고 지나갔다.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를 정확히 노렸다.
서늘한 죽음의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하기 시작한다.
―크큭. 땜빵이라곤 해도. 역시 초인은 초인인가!
쿠구궁!
프라키는 곧장 2차, 3차 공격을 이어왔다.
놈이 머리 없는 길다란 목을 채찍처럼 후려쳤고. 후속타로 날카롭게 벼려진 양손의 손톱이 날아왔다.
―자아… 뭐하고 있는가, 초인! 나를 죽여서… 마지막 육사도의 파편을 모으시게나!!
콰콰콰콰!!
최후엔 지면을 낮게 휩쓰는 꼬리 공격.
호쾌한 괴성과 함께. 내 온몸을 박살낼 기세로 쇄도한다.
‘늦었다.’
상상 이상으로 지능적이고 예리한 연격에 혀를 내둘렀다.
방금의 손톱을 회피하느라 자세가 무너졌다. 꼬리까진 물리적으로 피할 수 없다.
[스킬 발동: 텔레포트]
쉬쉭!
그래서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스킬을 발동. 프라키의 위를 점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온몸을 한껏 둥글게 웅크렸다.
[스킬 발동: 비약]
콰아앙!
허공을 힘껏 박차고 그대로 수직하강. 쐐기처럼 프라키를 향해 쏟아졌다.
걸린 시간은 넉넉잡아 1초 남짓. 날아가는 와중에 사복검을 어깨 뒤로 한껏 당겼다.
‘이놈의 약점은……?’
동시에 머리를 팽팽 굴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생물이라면, 약점의 기본인 머리를 노렸을 것이다.
‘하지만 저 새낀 상식 밖이다.’
내가 상대하는 건 목 위가 통째로 잘려나간 용.
머리와 뿔이라는 대표적인 던전발 용족의 약점은, 시작부터 봉쇄됐다.
‘그러면 우선은… 심장이다.’
드래곤 하트.
비룡과 고룡들의 힘의 원천이자, 또 하나의 약점.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약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통상 머리를 노리는 게 선호되는 이유는…….
‘비늘 때문에 뚫기가 힘드니까.’
드래곤은 머리보다 배갑과 등갑의 비늘이 훨씬 두텁다.
특히 심장과 가까울수록 마법과 물리 저항이 상상을 초월한다. 방어력을 대폭 무시하는 블라이스의 단검조차 생채기가 잘 안 날 정도.
‘그래서 더더욱. 심장밖에 없어.’
드래곤의 심장은 뿔과 더불어 강력한 마력의 원천이다.
뿔이 힘의 발산을 담당한다면 심장은 힘의 축적을 담당한다. 둘 중 하나라도 파괴되면 보통 드래곤은 제 힘을 내지 못해야 정상이다.
그래서 뿔이 없음에도 저리 날랜 움직임을 보이는 걸 보면…….
‘효과가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 모 아니면 도.
어차피 지금 시도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잡생각이 너무 많군. 옥좌!!
잠깐의 찌르기를 주저하는 그 찰나.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위험하다. 위기를 느낀 나는 즉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스킬 발동: 텔레포트]
콰콰콰콰!
재빠르게 회전한 프라키의 목이 나를 겨누었고. 적나라한 절단면에서 시뻘건 혈사포가 세차게 솟구쳤다.
“큿……!”
푸화아악!!
혈선의 파도가 순식간에 허공을 휩쓸고 지나갔다.
쉬쉭! 텔레포트로 다시 한 번, 놈의 후방을 잡은 것과 거의 동시였다.
“너는 말이 너무 많고 말이지.”
아까보다 더 완벽한 타이밍. 그림으로 그린 듯한 기습 각이 나왔다.
습격까지의 일직선. 경로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가리도 안 달린 주제에 말이야.”
푸화아악!
전신으로 느껴지는 선명한 경로 위. 나는 온 힘을 쥐어짜 단검을 내던졌다.
전력투구한 단검이, 경로 위를 가공할 속도로 미끄러진다.
―이런……!
프라키의 당황에 찬 목소리. 그리고.
푸지직! 놈의 두터운 배갑 한복판에, 단검이 깊숙이 박혀 들어간다.
―키오오오오오!!!
쩌렁쩌렁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콰앙, 콰콰쾅!
음압만으로도 광풍이 몰아닥친다. 주변의 지면이 펑펑 터져 나간다.
그런 와중에, 나는 광풍을 뚫고 전방으로 돌진했다.
‘얕았다.’
단검은 칼날의 반절쯤이 박혔다.
저 정도론 안 된다. 심장까지 칼날이 도달하려면 한참 멀었다.
프라키의 거대한 몸뚱이를 생각했을 때. 최소한 단검의 손잡이가 안 보일 정도까진 파고들어야 한다.
‘여기까진 모두 예상대로.’
하지만 전투의 흐름은 순조롭다.
순조롭다 뿐일까, 거의 내 손바닥 안이었다.
한 번의 기습 실패. 프라키에게 역공의 기회를 준 후, 더 좋은 타이밍을 잡아 재역습까지. 모두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놈이 공격해 올 건 처음부터 예측했다.’
애초에 확률은 반반이었다.
공격해 오거나. 공격해 오지 않거나.
그 두 가지 미래가 있다면, 나는 무조건 최악의 사태를 먼저 대비하지.
‘혹시나는 역시나였고.’
아까부터 머릿속으론 계속, 몇 번이고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이 싸움은… 이미 한참도 전부터. 놈이 신나서 떠벌거리던 그 순간부터, 이미 절찬리에 시작됐던 셈이다.
‘가장 먼저 떠올린 시나리오가 적중했다.’
프라키는 거기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일부러 빈틈과 여유시간을 줘서 공격을 꾀어냈고. 상대는 멍청할 정도로 솔직하게 반응해 준다는 가정.
내가 가정할 수 있는 한, 가장 허접한 프라키가 현실로 다가왔다.
‘역시… 저 놈은.’
대가리가 안 달려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전투의 초짜인 건가.
전투 센스가 좋은 놈은 아닌 듯하다.
“유언.”
잡생각 좀 하는 사이. 프라키와의 거리는 한계까지 좁혀졌다.
나는 스스로도 못 들을 만큼 작게 중얼거렸고.
―이 정도면… 합격일세. 클클.
그것을 귀신같이 들어낸 프라키가 대답해줬다.
나는 인상을 바짝 찌푸린 채, 허공의 인벤토리에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쉬리릭! 또 다른 단검을 호쾌하게 꺼내들었다.
“처발려 놓고 시험한 척하긴.”
검붉은 기운이 감도는 얇고 긴 칼날. 크로노스 대거다.
내가 날린 단검의 궤도를 그대로 쫓아온 나는, 다시 한 번 어깨를 한껏 당겼고.
“쿨찐은 사형이다.”
나직한 사형선고 후. 그대로 단검을 힘껏 휘둘렀다.
콰아앙! 인간탄환 한정용의 탄두. 크로노스 대거의 예리한 끝단이, 청백색 단검의 손잡이 끝자락을 정확히 후려쳤다.
―그헉……!
프라키의 아찔한 신음성이 터진다 싶더니.
우드드득!
블라이스의 단검이 프라키의 몸속 깊은 곳을 향해 한없이 파고들었고. 이내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
―…….
한동안 압도적인 적막이 사위를 지배했다.
프라키는 미동도 없다. 허전한 목 위가 부들부들 떨려오더니. 이내 천천히 움직여 내쪽을 향했다.
―모쪼록, 건투를 빌겠네, 옥좌. 아니… 새로운 초인.
느껴질 리가 없는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놈은 어렵사리 목소리를 쥐어짜냈고. 더듬더듬 유언을 중얼거렸다.
―행여나 멈추지 말게. 무슨 일이 있어도.
“……!”
―이제 와서 멈춰 봐야 바뀌는 것도 없으니까 말이야. 클클.
그리고 프라키는 말했다.
당장이라도 꺾일 것 같았던 내 마음을 간파한 것처럼.
―끝까지 가서. 내가 말해주지 못한, 나머지 진실을 마주하게나.
파스스스!
프라키의 까마득한 거체가, 위 아래로 빠르게 허물어졌다.
―이쯤에서… 난 퇴장하도록 하지.
프라키의 붉은 비늘은 새빨간 잿가루가 되었고. 이내 허공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으레 모든 던전 마스터가 사라질 때 그러하듯이 말이다.
“…끝났나.”
붉은 잿가루가 흩날려 시야가 온통 새빨갛게 물든다. 그리고 그쯤 돼서야 나는 전투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꾸드득. 나는 단검 손잡이를 힘껏 말아 쥐었다.
“이 정도까지는… 분명 아니었을 텐데.”
내 손으로 죽여 버리니 확실히 알았다.
프라키는 아마 진짜로 전력을 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진짜 나를 시험하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무려 던전 마스터가, 자기 의지로 죽을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새끼도 다 있네. 오래 사니까.”
놈이 뿜어내던 압도적인 기세에 비해 보여준 것이 너무 없다. 힘을 억눌렀다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했다.
기가 막혀서 연신 헛바람을 픽픽 쏟아냈다.
‘좀 기분이 나쁜데.’
역시 프라키는 끝까지 대단한 새끼였다.
상대가 손대중을 해줬다. 농락당했다는 굴욕감.
난 이미 뼛속까지 효율충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그런 감정을 느껴야 했다.
‘어쨌든. 끝난 건 끝난 거지.’
나는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그것으로 모든 감정을 정리했다. 굴욕감과 약간의 실망감, 그리고 사람이라면 느껴선 안 될… 싱거운 전투에 대한 아쉬움까지.
“…….”
더더욱 세차게,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모든 감정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그래서 이제. 뭐 주냐.”
지나간 일은 가급적 빠르게 잊자. 어차피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나는 당연히 나와야 할 패널의 등장을 기다렸다.
[히든 던전 마스터 ‘목 잘린 붉은 용’ 사냥 보상을 획득합니다.]
[아이템 ‘미완의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푸스스스!
어느새 사방으로 흩어졌던 붉은 먼지들이 내 손 언저리로 모여들었고. 그것들은 빠르게 뭉쳐들어 시뻘건 석상의 형상이 되었다.
목이 잘린 드래곤의 모양을 한, 내 손바닥만 한 석상이었다.
[아이템 정보]
[명칭: 미완(未完)의 심장 (S급)]
[타입: 토템/보조]
[효과: 소유자에게 용의 힘을 일부 부여한다.]
[효력범위: 아이템의 실질 소유자에 한함.]
[상세: 잊혀진 던전 마스터 ‘목 잘린 붉은 용’의 처치 보상. 소유자의 심장을 일시적으로 ‘드래곤 하트’로 변환한다. 사용 후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나, 그 열매는 실로 달콤하리라.]
상세설명은 그러했다.
내 심장을 드래곤으로 만들어준다는, 터무니없는 아이템이었다.
무려 육사도의 처치보상에 걸맞다. 어떤 면에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 X발.”
갑주와 검. 방패.
그리고 불꽃과 심장이랬던가.
혈천갑과 무형검. 피안계와 멸망의 화염. 마지막으로 이 석상까지. 토식이가 말해줬던 모든 피스가 맞아 떨어진다.
드디어, 모든 육사도의 힘이, 내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