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24)>
12월 14일. 9차 붕괴일이 밝았다.
그 날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정용 씨. 저기… 그게, 왔어요.”
붕괴지 알람(?)이 도착했다. 꽤 이른 시각이었다.
그녀의 예언은 통상 3시간 안팎의 미래를 봐준다. 즉 앞으로 3시간 안에, 대한민국 어디선가 게이트 붕괴가 일어난다는 소리.
“장소.”
벌떡.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어봤다.
이세라는 잠깐 우물거리다, 이내 쓴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좀 멀어요. 대전역 동광장 쪽인 것 같던데.”
“대전역. 확인.”
벌써 9번이나 되풀이 된 질문이다.
묻는 나도 능숙했고, 대답하는 이세라도 능숙하다.
“시간은.”
“12시 정각쯤이요. 지금이 9시 반이니까… 2시간 반 정도 남았네요.”
“확인.”
평소라면 이대로 대화가 끝날 것이다.
이세라는 특유의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잘 다녀오세요. 다치지 마시고요.”라는 틀에 박힌 격려를 했겠지.
“근데… 저기, 정용 씨.”
하지만 이번엔 그 레퍼토리가 깨졌다.
나갈 채비를 하던 나는 움찔, 이세라에게 시선을 뒀다. 그녀는 여전히 자리에 서서 팔다리를 배배 꼬고 있었다.
뭔가 긴히 할 말이 있는 기색이다.
“왜. 뭔데.”
맘껏 하라는 의미로 보챘다.
이세라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니고요. 어제 일 때문에요.”
“어제 무슨 일.”
“그… 이브랑 하셨던 말들. 그게 좀, 아니, 꽤 신경 쓰여서.”
“아.”
그제야 잊고 있었던 어제의 대화가 퍼뜩 떠올랐다.
왜 간신히 잊어가는 흑역사를 되살리고 그러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뭐.”
“그… 그래서, 실제로 정용 씨는 어떠신가 해서.”
“무슨 의미냐.”
“이브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산 넘어 산. 돌변한 이브도 골치 아픈데, 얘까지 또 갑자기 왜 이러지.
이세라를 쳐다보는 내 눈초리는 한없이 가늘어졌다.
“약 먹었냐. 갑자기.”
“아니, 그… 다, 다들 궁금해 하더라고요.”
“…다들?”
“네. 수아 씨랑 서윤 씨. 그리고 저도 뭐, 당연히 그렇고. 아하하…….”
“그게 대체 왜 궁금한데.”
진심으로 궁금해져서 진지하게 물어봤다.
내가 이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자로 보는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한가. 알면 뭐, 당장 던전 붕괴가 사라지기라도 하나?
내 기준 하등 쓸데없는 일에, 자꾸 얽매이는 것이 슬슬 짜증나기 시작한다.
“아, 아니. 그게.”
내 목소리가 한없이 낮게 깔려서인가.
이세라가 히끅, 숨을 삼켰다.
“그야… 구, 궁금할 법도 하죠. 특히 저희는요.”
“그러니까 대체 왜.”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천 번이나 넘게 저희를 봤다면서요.”
“…….”
“시치미 떼지 좀 마요. 그 정도까지 눈치가 없진 않잖아요. 그 정도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뇌가 없는 병신이에요. 병신.”
우리의 이카콜라. 풀 죽은 목소리로도 할 말은 다 한다.
저건 차라리 뚝심 있어서 좋네. 호감이다.
“…흐음.”
얘는 가만 보면 강서윤이랑 성격이 완전히 다르면서도, 생각보다 비슷한 면이 많다. 생각보다 금방 친해지는 게 이해가 된다고 할까.
저렇게까지 몰아붙이면 빼기도 뭐하다. 결국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이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사실대로 주절대기 시작했다.
이세라도 뾰로통하던 표정을 가라앉히고, 입을 굳게 닫은 채 경청한다.
“세상에서 가장…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주 귀중한 존재지.”
“세상에서, 가장이라니? 수아 씨보다요?”
“지금은 그럴지도.”
수아의 진짜 정체는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다.
게다가 높은 확률로 흑막과 관련된 무언가다. 지금까지 밝혀낸 파편적인 단서들이, 모두 그런 믿기 힘든 현실을 내게 들이밀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래. 지금의 수아보단, 당연히 이브지.”
내게 있어서 수아의 중요도는 현저히 낮아져 있었다.
하등 전투력도 쓸모도 없는 식충이. 게다가 극도의 위험성까지 내포한 원자폭탄.
그럼에도 중요한 비밀을 품고 있기에, 함부로 버릴 수도 없다.
“좀 심하게 말하면. 처치곤란의 애물단지 정도지.”
냉정하게 보면 그게 팩트다. 현재 수아의 포지션은 그 수준까지 전락한 상태다.
수아가 그런 상태라면. 반대로 이브는 어떨까.
“이브는 전생의 나를 기억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나 외에도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생겼다.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을 기억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또 없어졌다는 사실에 공허해하는 광인.
회귀자 한정용.
그런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 이브다.
또한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브가 있어서, 지나간 전생들에 가치가 생겼다.”
옛날의 나는 가끔 헷갈릴 때가 있었다.
내가 겪은 전생들이 사실 전부 꿈은 아닐까. 봐라, 아무도 기억을 못 하잖아. 사실 내가 미쳐서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아니었다. 지금은 누군가 물어보면, 꿈이 아니라고 확답할 수 있게 됐다.
이브라는 증인 덕분에 처음으로 확신이 생겼다.
“나는… 이브 덕분에,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한다.”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있다.
내가 발악했던 한 달이 전부 개삽질이 된다 해도. 그 삽질을 기억해줄 사람이 있다.
“이제 이브가 없는 회귀 생활은.”
이 무간지옥의 한 달 동안.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이브가 기억해주기에 의미가 생겼다.
“…상상도 할 수 없어.”
원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장비의 사양이 좋아진 건 체감이 안 돼도. 안 좋아지는 역체감은 빡세게 오는 법이다.
“이브가 혹시나, 만에 하나, 죽거나 사라지게 되면…….”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를 이미 맛봐버린 나다. 이전의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 개같은 생지옥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나도, 이제 그만둘 거다.”
나는 죽음을 택하겠다.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살아나던가. 그러면 또 다시 죽겠다. 죽을 때까지 계속 자살이나 반복하겠다.
옛날에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그게 차라리 낫게 느껴질 정도로,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저, 정용 씨가 그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봤어요.”
이세라는 한참 후에 얼떨떨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퍼뜩 얼굴을 굳혔고. 내 반응에 이세라가 살포시 웃었다.
“정말 많이… 소중해졌나 봐요. 그런 표정까지 지을 정도면.”
내가 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걸까.
대체 뭔 면상을 했길래, 이세라가 저렇게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는 것인가.
의문이 강하게 들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 대답해줬다.
“…중요하지. 많이.”
음음.
이세라가 뭔가 납득한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내 그녀가 퍼뜩, 손가락을 세우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 존재라면 더더욱, 이성적으로 욕정하는 건 아니겠네요?”
“그럴 수가 있겠냐.”
“왜요. 저렇게 미녀인데다 몸도 다 자랐는데. 게다가 정용 씨를 엄청나게 잘 따르잖아요. 흑심이 못 생길 건 없지 않나?”
“얼마 전까진 갓난애였다고.”
고작 33회차 전… 이라고 하면 좀 많아 보이는군. 자살런 때문에.
고작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브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갓난애였다.
“너 같으면 가능하겠냐. 그딴 게.”
그리고 그 기억이, 적어도 나한테는 분명히 박혀 있다.
이세라는 팔짱을 끼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정용 씨 기준이구요. 저한테 이브는 거의 처음부터 지금 모습이었는데요.”
“어쨌든 받아들이는 건 나다. 내 기준이 중요하지.”
“뭐… 그야 그렇지만요.”
“나한텐 징그럽게 커져버린 우량아로밖에 안 보여.”
“그,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사실이 그런 걸 어쩌냐.”
“네네.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전해놓을게요.”
이세라는 그제야 후련해진 표정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요즘 통 대화가 뜸한 수아와 서윤이의 얼굴이 뇌리를 스친다.
“…그 둘은 좀 어때.”
이세라를 통해 동향을 좀 묻기로 했다.
좀 치사하긴 하다만, 난 원래 근본이 하남자다.
이세라가 날 빤히 쳐다보다가 슬쩍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해줬다.
“뭐… 별 거 있겠어요? 평소랑 똑같아요.”
“평소랑 똑같다면?”
“허구헌 날 여기에 갇혀 있으니 엄청나게 지루해하죠 뭐. 가끔씩 체스 두고, 칵테일도 좀 마시고요. 아, 정용 씨가 발전기 구비해준 뒤로는 폰게임이랑 콘솔게임도 하던데요. 이제 솔로게임밖에 안 되지만요.”
“…그렇군.”
발전기는 8차 붕괴 이후에 하나 가져다 놨다. 며칠 전부터 슬슬 가게 조명등이 오락가락해서 필요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는 군. 뿌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평범하게 사는구만. 전체적으로.”
“네. 지금 같은 세상에, 이렇게 평범할 수 있다는 건… 기적인 거겠죠.”
“그렇지.”
별안간 피식, 이세라가 악동처럼 웃었다.
나는 슬쩍 쳐다봤고. 그녀가 안대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모순적이네요.”
“뭐가.”
“지금 세상 기준으로는, 저희의 평범한 생활이 평범하지 않은 거잖아요?”
“그렇지.”
“그 짧은 사이에 이렇게까지 세상이 변할 수가 있구나. 새삼 실감이 나서요.”
“…하긴.”
키득거리는 이세라에게 쓴웃음으로 화답했다.
슬슬 붕괴 예정지로 나가봐야겠다. 이세라의 용건도 대충 일단락된 것 같으니, 나는 그녀를 지나쳐 휴게실을 나가려 했다.
“있잖아요. 정용 씨.”
별안간 웃음기 싹 빠진 이세라가 나를 불러왔다.
걸음이 멈췄다. 자의는 아니다. 이세라가 내 소매를 힘껏, 있는 힘껏 붙잡아 나를 붙들어 세운 것이다.
나는 잘게 떨리는 이세라의 손끝을 가만히 주시했다.
“왜.”
“저… 혹시 조만간, 죽나요?”
“……!”
청천벽력 같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동요는 적었다. 표정관리도 완벽했다고 자부한다.
나는 무표정을 가장한 채 그녀를 쳐다봤고.
“하아. 정말 죽나 보네요. 세상에.”
갑자기 이세라가 그렇게 확신했다.
뭐냐. 뭔데. 나는 당황한 나머지 퍼뜩 목청을 높였다.
“…미래라도 보고 온 거냐.”
“아뇨?”
“그러면.”
“지금 정용 씨 표정이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 있거든요.”
“…….”
표정관리 완벽하다고 자부한 한정용 나와라. 엎드려뻗쳐. X발.
속으로 자학 삼매경에 빠져 있자니.
“제가 항상, 이쯤에서 죽었나 봐요?”
이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온다.
내 소매를 굳게 잡은 손가락도 한층 더 떨린다. 이젠 누가 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녀의 시커먼 안대가 나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정용 씨. 그러면 나, 이번에도… 죽는 걸까요?”
“아니.”
“…….”
“그럴 일 없어. 절대로.”
원래의 나 같으면 ‘글쎄’나, ‘장담할 수 없다’ 같은 말을 했다. 무의미한 희망을 주기보단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게 내 나름의 자비다.
하지만 난 이번만큼은, 나 자신도 속일 기세로 거짓말을 했다.
“갑자기 뭔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세라.”
“아니. 그……!”
“네가 죽긴 왜 죽냐. 갑자기 미쳐가지고 붕괴지에 뛰어들기라도 할 거냐?”
“그건… 아니지만요.”
“그게 아니면. 네가 죽을 이유가 전혀 없잖아.”
“하, 하지만! 미래… 미래가! 제 미래가, 전혀 안 보였는데!”
이세라가 답지 않게 고성이 오갔다.
이내 그녀가 퍼뜩, 자기 고함소리에 놀란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대로 입을 닫고 고개를 침몰시켰다.
그 반응으로 나도 대충 깨달았다.
‘그런 거였군.’
이세라가 시답잖은 이브 얘기로 말문을 텄던 이유를 알았다.
처음부터 이 대화가 목적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갑자기… 자기 미래가 안 보이기 시작했나.’
이번 회차도 레드스컬이 창단된 걸까?
아니. 꼭 그 새끼들이라는 보장은 없다. 레드스컬을 미리 쳐부숴놔도, 이세라는 각양각색의 이유로 꼼짝없이 죽곤 했다.
레드스컬은 이세라의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좀 있어 보이는 말로 하면…….’
운명의 수속.
그리고 내가 쓰는 말로 하자면 ‘개X같은 억까’. 강서윤의 확정적 죽음과 결이 똑같다.
그래. 강서윤과 똑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넌 안 죽어. 이세라.”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는…….”
“죽게 놔두지 않을 거니까. 내가.”
“읏……!”
“나를 믿어. 이세라.”
“…….”
한 번 포기했었던 강서윤도 아직 살아 있다. 그러니 분명히 살 수 있다.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내겠다.
“끝까지 무사히 살아남으면, 너한테 청혼하겠어.”
“…푸흣. 있던 목숨도 달아나겠어요!”
막간의 사망플래그 개드립이 나름 선방했다.
이세라의 얼굴에서 약간 근심이 걷혔다. 다시 그녀가 살며시 웃는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제야 그녀를 지나쳐 걸어갔다.
“넌 웃는 게 어울린다. 입밖에 안 보여서.”
사심도 농담도 없이 사실 그대로 말했다.
덜컹.
넋이 반쯤 나간 그녀를 놔둔 채, 나는 휴게실을 나왔다.
“이브. 가자.”
“아, 응!”
부르기도 전에 이브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깨에는 토식이가 건조 과메기 마냥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저벅저벅. 우리의 발소리가 나란히 주점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