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19)>
그리고 또 다시 하루가 지난 후.
6차 붕괴가 일어났다.
―그우우…….
―그오오오……!
12월 8일.
이번에 붕괴한 것은 제85던전 <거신제국>.
체장 50미터를 상회하는 장대한 거신. ‘코스모의 거신병’들이 허공의 균열을 찢고, 지면에 거대한 땅울림을 새겨나갔다.
“으, 으아……!”
“흐아아, X발… X발!!”
이번 6차 게이트 붕괴지는 서울. 압구정동 인근의 올림픽대로 한복판이다.
한강물을 가르고 지상으로 하나씩 상륙하는 거신병들. 그 앞에는 S부터 D급까지, 다양한 계급의 헌터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오, 온다! 긴장해!!”
“캐스터들! 광역 배리어 준비해!! 빨리!!!”
헌터협회의 사활을 건 총력전.
사실상 전생들과 붕괴 지역만 달랐지. 그 내용물은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러니 결과물도 당연히,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으아아악!!”
“꺄아아앗! 하지 마! 시, 싫어어엇!!”
S급부터 D급까지. 남녀노소 차별 없이 헌터들이 터져나간다.
지난 4차 붕괴 때. 이미 헌터협회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 덕에 이번 붕괴의 총력전은 전생들보다 인원도 적었고, 그만큼 전멸도 순식간이었다.
―그오오오오오!!!
콰아아앙!!
미친 듯이 양손을 휘두르는 거신병. 주먹의 방대한 궤도에 있던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폭발사산 한다.
그 중에는 당연히 간신히 살아남은 헌터들도 포함돼 있다.
“끄욱……!”
“카하악!!”
콰작! 뿌드득!!
사람의 육편이 사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배리어도 방패도 회피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거신병은 그 덩치에 어울리게 공격 한 방 한 방이 지나치게 강했다.
그리고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놀랍도록 빨랐다.
―그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
콰콰콰쾅!!
놈들은 급기야 헌터들에게서 흡수한 스킬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눈부신 입자포가 사방을 쓸어버렸고. 거대한 양손에서 시뻘건 불꽃이 쏟아져 나온다.
“으아… 아아아!”
“끄아아아악!!”
푸확! 퍼버벅!
쏟아지는 단말마.
늘어나는 시신과 인간의 쪼가리들. 그리고 그 사이를 질척하게 흐르는 혈액과 뇌수의 향연.
그나마 사람의 형태라도 남아 있으면 운이 좋은 편이다.
“끄… 거걱!”
퍼거걱!
대부분은 유언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찰나에 절명했고. 거신병들의 주먹질과 발길질에, 손톱만 한 고기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질 뿐이다.
“끄아아아!! 도, 도망… 도망쳐!!”
“죽을 거야. 끝났어. 인류는, 이제. 끝났다고…….”
S급부터 D급까지.
더 이상 전의가 남아 있는 헌터는 어디에도 없다.
저 거대한 사냥꾼 앞에선 모두 똑같은 사냥감에 불과하다. 저항은 무의미했고, 그저 눈물과 오줌을 흩뿌리며 혼비백산 도망칠 뿐이다.
―그오오오오!!!
물론 거신병들은 도망치게 놔두지 않는다.
콰콰콰콰!!
놈들의 가슴팍을 감싸던 갑주가 열렸고. 그 안에서 발사된 시커먼 광탄들이 삽시간에 주위를 초토화시킨다.
저것도 이름 모를 A급 헌터의 스킬을 흡수한 것이다.
“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사위는 다시 한 번 비명으로 점철되었다. 도처에서 터져 나오는 피보라가 시야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렇게 남은 헌터들이, 육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 그 순간.
―그오옷……?
―그륵?
문득 일부 거신병들이 의문의 탄성을 터뜨렸다.
놈들이 당황한 듯이 투구 속 안광을 깜빡였다. 그리고 일제히 고개를 양옆으로 돌려가며 허겁지겁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놈들은 아마, 찾던 것을 못 찾았을 거다.
“이거 찾냐.”
그래서 친절하게 목소리를 내줬다.
당황한 기색으로 두리번거리던 거신병. 그중 한 놈의 머리통 바로 뒤에서였다.
―그오옷……!?
놈이 황급히 상체를 휙 돌렸다. 혈천갑을 두르고 공중에 떠있던 나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쿠우웅! 나는 들고 있던 것을 놈에게 던졌다.
“네 친구들 미국 갔다.”
쿠당탕!
내가 던진 건 거신병의 머리였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그것이, 아직 살아 있는 거신병의 발치에 떨어져 맥없이 굴러다녔다.
스르륵. 거신병들의 안광이 뒤늦게 그것에 닿았다.
―그오…….
―크오. 오오오오……!!
놈들의 움직임이 일순 정지했고. 기묘한 그로울링을 발했다.
나는 그 행동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무섭냐.”
기분 나쁘게 이죽거리며 묻는다.
그런 내 뒤쪽으로. 처참하게 사지가 갈려나간 거신병들이 지면에 늘어져 있었다.
전부.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린 놈들이다.
“무서울 거 없어.”
철그럭!
왼손에 붉은 특대검 다인슬라이프. 그리고 오른손목 위로 흐느적거리는 사복검.
붉게 빛나는 두 날붙이를 전방에 겨누었고,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 뒤지면. 감정도 못 느낀다.”
키기기긱!
기분 나쁜 쇠 긁는 소리가 한동안 만연했다.
내 앞에 있는 놈들부터 차례로 한 명씩, 거신병들의 강철 육체가 차례대로 갈려나갔다.
―그르르르……!
―쿠오오오오!!
거신병들의 포효는 처절한 비명이 되어 있었다.
10분 정도가 지난 뒤. 더 이상 사지가 멀쩡히 달려 있는 거신병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거기서 3분 정도가 더 지나자 게이트가 닫혔다.
[게이트가 힘을 잃고 소멸합니다. 던전의 붕괴가 종식됩니다.]
그리고 그 알림이 뜬 순간.
나는 이미 전속력으로 베이스캠프에 귀환하고 있었다.
푸쉬이익!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다. 칼바람이 뺨을 찢을 기세로 부딪쳐온다.
‘빨리. 좀 더 빨리……!’
그럼에도 조바심이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든 더 빨리 날아갈 방법이 없을까. 그것만 한없이 찾게 된다.
그리고 머릿속에선,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 했던, 아까의 상황이 계속 되풀이된다.
‘사실도 전부 밝혔고. 분명히 당부해놨고. 서윤이는, 나를 믿어줬어.’
서두르는 이유는 강서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서윤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주점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의아해하는 서윤이를 위해 진실을 전부 털어놓기도 했다.
혹시나 해서 이세라에게 간곡히 부탁도 해 놨다.
―서윤이의 몸 상태를 예의주시해.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긴다 싶으면… 곧바로 날 호출해라.
물론 나도 안다.
혹시나 호출이 와서, 때려잡던 몬스터 팽개치고 달려간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쯤은, 당연히 나도 안다.
‘멀쩡하던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면… 이미 끝이니까.’
이번 세상도 서윤이의 죽음이 확정됐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시점에서 내가 벌이는 어떤 발악도 의미는 없다.
알고는 있어도. 그래도 난 언제나, 현시점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괜찮아. 괜찮다. 분명… 괜찮겠지.”
스스로를 설득시키듯 미친놈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머릿속 한편에서는, 계속해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소용없어.
―지금까지도 그래왔지.
―얼마나 더 실망해야 정신 차릴 거냐.
불안한 상상과 불길한 가정들. 끊임없이 머리맡을 파고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갉아먹듯이 속삭인다.
―강서윤이 죽어버릴 확률은 여전히 높잖아.
―사망확정이 아니다 뿐이지. 안 죽는 걸로 확정된 것도 아니라고.
―대체 뭘 믿고 기대하는 거냐? 응?
더럽게 시끄럽다. 진짜 내 대가리에서 나온 망상이라지만, 욕 나오게 쫑알거린다.
이를 으드득, 악물었다.
―심장마비 같은 걸로 진작에 비명횡사 했겠지. X발.
―그렇게 뒤통수를 처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냐?
―이야. 독하다, 독해.
“X발 닥쳐.”
전부 아가리 물어. 제발.
결국 입 밖으로 욕 한 번 박은 후. 사고를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생각하지 마. 지금은. 아무것도.’
지금 해야 하는 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서윤이 옆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생사를 확인하는 것.
오직 그뿐이다.
‘이제… 곧.’
익숙한 풍경들이 빠르게 발아래를 스쳐갔다.
아파트 단지가 시야에 한 가득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세라의 칵테일 바가 은닉되어 있는 상가 건물을 포착했다.
평소처럼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활강해 고도를 줄이지 않았다.
“후웃……!”
투하악!
미사일이 내리꽂히듯, 속도를 유지한 채 그대로 고공낙하 했다.
콰아아앙! 덕분에 착지할 때는 거대한 폭음이 일어났다.
“서윤……!!”
콰당탕!!
굴러 떨어지듯이 계단을 내려가 주점 문을 열었다. 하도 세게 열어서 문짝이 그대로 쪼개졌지만, 지금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훤히 드러난 칵테일 바를 빠르게 훑었고.
“아오 X발, 미친놈아! 뭐 그리 파워풀하게 들어와! 깜짝 놀랐잖아!!”
노발대발하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강서윤을 눈에 담았다.
두 눈이 한계까지 크게 뜨였다.
“아.”
아아.
아아아.
안심에 찬 탄성이 나도 모르게 연신 흘러나왔다. 그리고 서윤이는 그런 내 태도도 마음에 안 드는 듯하다.
“야 한정용. 나 좀 보자?”
툭툭.
성큼 다가온 강서윤이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해명을 요구하는 찡그린 얼굴.
나는 날아가던 참새 불알이라도 본 것처럼, 한동안 넋 놓고 그녀의 행색을 관망했다.
“뭐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겁주더니, 조또 없다?”
“…그래. 정말, 그렇구나.”
자동차 대시보드에 놓는 장식용 흔들인형마냥, 나는 멍하니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 미적지근한 태도에 드디어 강서윤의 참을성이 폭발했다.
“뭔데 대체! 내가 죽는다느니 어쩌느니… 역시, 그거 다 거짓말이었지? 엉?!”
“…어. 거짓말… 이었나.”
“그럴 줄 알았어! 이 개새끼 이거! 나 놀리려고 구라 친 거였잖아! 뭔 몰카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찍냐? 이 미친 새끼 진짜!”
그 말에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서윤이에게 한 발짝 다가갔고, 그대로 덥석,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
“……?”
잠깐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이 흐르나 싶더니.
이내 쩌적. 벌어진 강서윤의 입술 사이로 얕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 어엇?”
분명히 살아 있다.
그것을 실감시켜주는 얼빠진 목소리, 그리고 푸근한 온기가 품안에 한가득 들어왔다.
버둥버둥버둥. 곧 품 안에서 격렬한 저항이 쇄도해왔다.
“끼야앗! 뭐, 뭐야! 뭔데! 가, 가, 갑자기 왜 이래!! 미친 새꺄! 놔!! 이거 놓으라고!!”
퍽, 퍼억! 퍼퍽!!
얼굴이 불난 듯이 붉어진 강서윤. 말로 안 되자 본격적으로 날 패기 시작한다. 가슴과 복부에 연신 매콤한 주먹이 꽂힌다.
나는 격정적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 좋아. 더 해.”
“어… 어? 뭐?!”
“더 때려. 때리고 싶은 만큼. 마음껏 때려라. 서윤아.”
“이런 씨이팔 소름 돋는 새끼…!! 그, 그런 취향이었어?!”
지금의 내겐 일방적인 폭력조차 오히려 업계포상. 강서윤이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선명한 증거들에 불과하다.
꽈악! 나는 서윤이를 안은 양팔에 오히려 힘을 불어넣었다.
“잠깐만. 잠깐만… 이대로 있을게.”
“…으극!”
“잠깐이면 되니까. 이대로 있게 해줘. 부탁한다.”
“하, 하지 말래도… 어차피 할 거잖아! 이, 개노답 변태 새끼야……!”
내가 씹어 뱉듯이 중얼거린 말에서 뭔가를 느낀 것인가.
서윤이는 말로는 매도하면서도, 서서히 저항을 멈춰갔다. 사지를 연신 꼼지락거리나 싶더니, 이내 얌전히 몸을 맡겨온다.
“…….”
“…….”
보다 못한 이세라와 수아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상냥한 침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