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18)>
의외의 상황에 사고와 행동이 잠깐 굳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순순히 항복에 들어간 강서윤 때문이었다.
“최소한, 이유는 알려줘야 할 것 아냐……!”
저항한다면 한계까지 저항할 줄 알았다. 그녀는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
이건 강서윤이 나와의 전력 차이를 잘 알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만큼 어머니 건이 절박하다는 건가.
‘아마도 후자겠지.’
강서윤은 힘으로 꿀린다고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상대가 나던, 몬스터건, 헌터협회장이나 암부장 장수혁이건. 그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제 명에 못 살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 강서윤은, 어머니 때문에 극한까지 참고 있다.
“왜냐하면.”
나로선 형편이 잘 된 일이다.
알아서 평화적으로 일도 잘 풀렸고. 그녀가 해명할 기회를 줬다. 이유를 말해주는 건 쉽다. 이제 이유를 말해주면 된다.
하지만 역시,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말하는 순간 확정되어 버릴까봐.
너는 곧 죽는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조차 입에 담기가 무섭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우습고 답답해 보일지 모르겠다만. 지금의 나는, 그 정도로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뭐. 왜냐하면?”
“그게…….”
“그게?”
“안 되는 이유는…….”
“아 뭐! 이유가 뭐! 뭔데! 왜 그러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으니 강서윤이 결국 폭발했다.
가슴을 쾅쾅 두들기더니 이내 콰직, 내 멱살을 쥐어 챘다. 그리고 상하좌우 전후좌우로 신명나게 흔들며 나를 재촉했다.
결국 나는 눈을 감으며 이실직고했다.
“…너. 원래라면. 곧 죽어.”
말하고 나니 좀 후련하다.
그리고 가슴 한편이 뭔가 허탈하다.
강서윤 본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 본 게 얼마만인가. 그녀는 가장 먼저 어떤 반응을 했더라.
그래. 분명 이런 말로 시작했을 거다.
“허? 가, 갑자기 뭔 소리야. 병신이냐?”
…라고 말이다.
감았던 눈을 뜨고 눈앞을 주시했다. 내 예상 그대로의 반응을 내뱉은 강서윤이, 당황과 황당을 담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죽어? 그,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응?”
이번에도 똑같은 말로, 똑같이 납득시키면.
또 똑같이. 똑같은 결말을 되풀이하는 건 아닐까.
“…….”
순간 길바닥에 짓이겨진 햄버거 패티의 형상이 머리맡을 스친다. 갑자기 이게 뭐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금세 깨닫는다.
햄버거 패티가 아니고, 수없이 곤죽이 돼왔던 강서윤의 몰골이었다.
“…12월 8일. 6차 붕괴일. 바로 오늘.”
고개를 세차게 휘저어, 불길한 상상을 억지로 지웠다.
그리고 담담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너는, 내 앞에서. 수백 번을 죽었어.”
“뭐?”
“이해하려고 하지 마.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어. 못 믿는 것도 당연해.”
“……!”
“일단은 들어. 다 듣고… 판단은 네게 맡긴다. 서윤아.”
문자 그대로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손짓발짓과 표정과 어조.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설명했다.
건조한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강서윤의 표정은 찡그러졌고, 일그러졌고, 끝내는 측은한 듯이 날 쳐다봤다.
“그걸 몇 번이나. 몇백 번이나 봐 왔다고?”
“그래. 그랬지.”
“…괜찮은 거야?”
“누가.”
“너. 너 말이야. 이 병신아!”
“내가 왜.”
“에휴. 거울 있으면 보여주고 싶네. 등신 진짜.”
아무래도 내가 또 볼만한 표정을 지었나 보다.
나는 그제야 오만상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황급히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그녀의 말은 이어졌다.
“그러면 난… 더더욱 너랑 같이 나가야 하는 거 아냐?”
“무슨,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냐.”
“내가 죽는 게 확정인 거잖아. 그러면 내가 여기 남아 있으면… 수아나 세라 언니,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잖아.”
“…….”
“나는 그런 건 싫어! 나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위험해질 바엔. 혼자… 죽는 게 나아. 이게 내 순순한 진심이야.”
자기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은 마당인데. 이 와중에도 강서윤은 사람 좋게 남의 걱정이나 하고 있었다.
진저리치듯 고개를 휘젓는 강서윤이었고. 나 역시 그런 그녀에게 진저리가 났다.
“…남들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럴 일은 없어.”
“아니. 내가 죽을 정도잖아! 최소한 너 빼고 나머지는 전부 위험해 질 만한 거 아냐? 붕괴지가 가까워서 몬스터가 쳐들어온다든지!”
“그래. 혹시나 몬스터가 쳐들어온다 해도. 너 말고는 아무 걱정할 거 없어.”
“뭐야? 어떻게 그걸 확신하는데!”
“너도 아직 눈치 못 챘나 본데. 이 주점엔 S급 방벽을 둘러쳐 놨다.”
“…아.”
직전 회차의 서윤이라면 배리어의 존재를 알았을 거다.
내가 해운대로 광대사냥 갈 때. 방어플랜을 설명하며 배리어의 존재를 언급했으니까.
‘이번 생은 내가 해운대에 갈 일이 없었지.’
그래서 내가 설명할 일도 없었고. S급 배리어의 은폐력이 뛰어난 덕에 서윤이는 여전히 배리어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래서 저런 쓸 데 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네가 여기서 나가면, 다른 사람이 더 위험해진다. 서윤아.”
“어, 어?! 왜, 왜 그렇게 되는데!”
“여길 감싼 배리어는 던전발 몬스터만 막아줄 뿐이야. 악의를 가지고 침입하는 인간들을 막아주지 않아.”
“그, 그래? 왜 그 따위야? 막으려면 다 막지!”
“사람까지 막아버리면 우리도 출입을 못 하잖아.”
“아. 그것도 그러네……?”
잘 납득하는가 싶던 강서윤의 표정은 거기서 돌연 일그러졌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그녀가 묻는다.
“그 수백 번 중에 있잖아. 내가 그 배리어 안에서 존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아니. 있었지.”
“그런데도 내가 죽었어? 그건 앞뒤가 안 맞지 않아? 대체 왜 죽었는데?”
“…글쎄. 이유야 워낙 다양해서.”
“무슨 이유인데.”
“셀 수도 없지만. 제일 많은 패턴은 심장마비 정도.”
“허허? 심장마비? 내가?”
어지간히 기가 막힌지 코웃음을 연신 치는 강서윤.
그렇겠지. 명색이 초인의 육체를 가진 S급 헌터가 심장마비 걸려서 뒤진다니. 내가 그녀였어도 믿기 힘들 것이다.
나는 쓴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믿기 힘들겠지. 하지만… 분명히 진실이다.”
“아아, 아니. 하도 개같은 소리가 나오니까 더 리얼하긴 하다, 야.”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근데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안 되기도 하네.”
“이번엔 또 뭐가.”
“그러면 말이야. 우리가 아무리 발악해봤자… 나는 결국, 꼼짝없이 죽는다는 거 아냐?”
역시 강서윤은 바보가 아니다.
결국은 이런 문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 흘러갔다.
그녀가 피식, 지친 듯이 미소 지었다.
“대답을 못하네. 한정용.”
“…….”
“넌 꼭 그러더라. 불리하면 아가리 닫아버려. 치사하게.”
“…….”
“사람이 알기가 너무 쉽다고. 진짜로. 푸흐.”
강서윤이 눈을 내리떴다. 그녀의 복잡한 시선이 한동안 바닥을 방황한다.
이내, 체념이 깊게 찌든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역시 있잖아. 나 마지막으로, 엄마 얼굴만 보고…….”
“포기하지 마.”
“…어?”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왔다.
말을 잘라 먹힌 강서윤이 깜짝 놀라 쳐다봤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몰라. 모르겠다.’
아직 정리는 되지 않았다.
됐어. 말하다 보면 알아서 정리되겠지. 우선은 강서윤의 주둥아리부터 막고 본다.
언제나 그렇듯 일단 박았다.
“강서윤.”
“어, 응.”
“나는 1033번째 회귀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어.”
“응? 그, 그야. 그렇다면서.”
“1033번 정도 회귀하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래서 이 지랄을 1033번이나 반복했다고 생각하냐.”
“어… 뭐라고?”
서윤이는 벙찐 표정으로 날 퍼뜩 올려다봤다.
갑자기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나도 모르겠으니 그럴 법도 하다.
어쨌든 나는 혓바닥 가는 대로 아가리를 놀렸다.
“아무도 나한테 목적지조차 설정해주지 않았지. 그런데도 난 이 미친 짓을 1033번째 들이박고 있다.”
“허… 그, 그래. 장하다 새꺄.”
“왜 그랬다고 생각하냐. 강서윤.”
“너 같은 미친놈 발상을 내가 어떻게 알아.”
“포기를 못 해서 그런 거야.”
“…….”
“수아를 살릴 가능성. 널 살릴 가능성. 이세라를 살릴 가능성. 던전 붕괴가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올 가능성. 그걸 도저히 포기 못해서.”
혹시나 있었을지도 모르는 천분의 일. 만분의 일.
그걸 포기하지 않아서 지금 난 여기에 서있다. 1033번째 강서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그렇게나 실패하고 좌절했음에도, 그녀를 설득하려 한다.
그래. 난, 이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 나도 널 포기하지 않았다고. 1033번이나 실패한 나도.”
“…응.”
“그러니까… 너도 널 포기하지 마라. 그러지 말아줘. 제발.”
“…으, 응.”
강서윤은 전에 없이 무표정을 고수했다.
무표정 그대로 후두둑, 눈물만 조용히 떨궜다. 내가 이렇게 말해서 원망스럽다는 듯이. 혹은 안심했다는 듯이.
이내 그녀가 내게서 팩, 고개를 돌려버렸고.
“동생한테는, 내가 잘 설명해볼게. 엄마에 대한 거.”
마침내 납득했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그제야 나도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가능하겠냐.”
“해볼게. 하게 해줘. 어떻게든 납득시켜볼게.”
“…그래. 고맙다.”
“한정용 주제에 이렇게까지 해줬으니까. 나도… 이 정돈 해야겠지.”
강서윤은 어딘가 후련한 기색이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고. 그런 나를 지나치던 강서윤이 툭 말했다.
“그리고 너. 꼴에 남 말 하지 마.”
“…뭘.”
“날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지랄. 너나 널 쉽게 포기하지 마.”
“……!”
“다른 사람들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여. 회귀는 안 했어도… 내가 너랑 같이 살아온 게 얼만데. 병신아.”
내 근본 심상을 꿰뚫는 듯한 서늘한 한 마디.
대체 무슨 의미로 말한 거냐. 그렇게 물어보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할 말 다 했다는 듯이 손사래를 휙휙 쳤다.
저벅저벅. 그녀가 멀어지는 걸 가만히 관망하고 있자니.
“아 참.”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휙, 강서윤이 날 흘겨본다.
그러나 이내 우물쭈물 침음을 삼키고, 입술을 깨물더니. 결국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나는 선수를 쳤다.
“할 말 남았냐.”
“으음. 아니, 됐어! 딱히 없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강서윤 치고는 허술한 행색이다. 나는 괜히 물고 늘어졌다.
“있었는데?”
“아니. 없다고.”
“원래는 있었고?”
“없다니까! 집요하게 왜 이래!”
없으면 없는 거지 화낼 것까지야.
나는 그쯤에서 물러났다. 어깨를 으쓱이며 손사래를 쳤다.
“방금은, 할 말이 없으면 더 이상한 정도였는데.”
“으… 있었어! 있었는데! 그냥 안 할 거야!”
“왜.”
“좀, 너무… 사망플래그 같으니까.”
“음?”
“그, 그리고! 혹시나 아무 일 없으면, 쪽팔리기도 하고…….”
말끝을 흐리는 강서윤.
그쯤 되니 나도 대충 예상이 갔다. 뭔가 오글거리는 유언이라도 남길 생각이었나 보다.
“아 씨! 내가 왜 이딴 거 설명하고 있어야 하는 건데! 이 개새꺄!!”
퍼억!
결국 내가 등짝 한 대 얻어맞는 걸로 대화는 끝났다.
솔직히 이젠 이게 없으면 좀 허전한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데 눈뜬 거 아닌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