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1)>
그날 저녁부터 곧바로 스캔 작업에 들어갔다.
붕괴 현장 주변으론 취재진부터 구경꾼, 피해자 유족과 시신 수습을 위해 출동한 헌터들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바글바글 모여든다.
내가 노린 것은 바로 그 혼란의 틈바구니였다.
‘현자의 눈. 현자의 눈. 현자의 눈…….’
삐빅. 삐빅. 삐비빅.
쉴 새 없이 스킬의 시동음이 들려온다.
시야는 수많은 일반인들의 상태창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한치 앞도 안 보였다.
“눈알 뽑히겠다.”
입으론 투덜대면서도, 묵묵히 작업을 계속한다.
이건 누군가에게 시키거나 분업할 수도 없는 일이다.
‘현자의 눈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 덕에 드러나지 않는 육사도를 감지할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이 X같은 생노가다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아빠아. 이번엔 또 뭐 하는데~!”
꾸우욱.
이브가 그런 내 옷깃을 연신 잡아당겼다.
참고로 아까부터 계속 이 상태다.
“저기 아빠. 아까부터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
“아아, 진짜아~! 왜 내 말 무시해? 응? 나 상처받는다? 나 울어버릴 거야?”
들러붙고 징징대고 칭얼대고. 관심을 온몸으로 갈구하는 행색이다.
결국 나도 무시하는 데 한계가 왔다.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는데. 거부한 건 너잖냐.”
나는 붙잡힌 옷을 정중히 떼어내며 혀를 찼다.
이브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며 다시금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으응, 그야! 아빠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그렇지!”
“난 분명히 통보했다. 나랑 같이 있어봤자 재미없을 거라니까.”
“그런가? 그래도 그 우중충한 술집에 있는 것보단 훨씬 재밌는데?”
아무렴 그렇겠지. 지금도 날 놀려 먹으면서 세상 재밌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나는 한숨을 슬쩍 내쉬었다.
“…수아는 어쩌고. 엄마랑 놀면 되잖아.”
“아. 그… 엄마는, 음.”
수아 얘기가 나오자 이브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며 손가락을 꼼지락댄다.
알기 쉬운 반응에 나는 눈썹을 틀었다.
“싸움이라도 했냐.”
“으, 으음. 싸운 건… 아니긴 한데에.”
“아닌데. 뭐냐.”
“그냥. 뭐랄까. 좀, 서먹해. 친해지기가 힘들달까. 친해지고 싶지가 않달까…….”
“그게 무슨?”
“어차피 금방 잊어버리잖아. 너무 허망하고 허전해서… 견디기가 힘들단 말이야.”
“…….”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전에 내가 좋아했던 엄마랑은… 완전히 똑같은 관계가 될 수는 없는 거잖아. 그게 뭐랄까. 좀, 비참하게 느껴져서.”
이브가 하얀 이를 드러내 웃었다.
해맑은 웃음이었지만. 내겐 우는 표정보다도 처절하게 다가왔다.
그녀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웃고 있는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도망치지 마라. 이브.”
위로할 말은 모르겠고. 나는 내가 저럴 때마다 가슴에 되새겼던 말을 그대로 들려줬다.
굳이 따지자면 위로보단, 약간 질책 같은 말이다.
“어차피 도망칠 곳은 아무 데도 없어.”
“…아?”
“그러니까 그냥 매번, 매 회차에 최선을 다해라. 그러면 최소한… 후회는 적더라.”
“…으, 으응. 그럴게?”
“그래. 알았으면 됐어.”
갑자기 이런 진지한 조언을 들을 줄 몰랐던 건가. 이브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녀가 덥석! 내 허리를 부술 것처럼 세게 끌어안았다.
“으히히. 거 봐! 역시 아빠랑 있길 잘했잖아!”
“…또 뭔 소리냐. 갑자기.”
“으응, 아냐! 아무것도… 으헤헤.”
이브가 내게 얼굴을 부비며 헤죽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또 뭔가를 건드린 모양이다. 쳐다봐도 눈만 아프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현자의 눈.’
그리고 계속해서 무수한 인파들을 하나씩 스캔해봤다.
반응을 안 해주면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 안일했을까. 내가 반응이 있든 없든, 이브의 장난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아빠아. 아름다운 레이디를 심심하게 해서야 되겠어? 응? 으응?”
“그런 말하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냐. 이브.”
“내가 왜 부끄러워? 내가 안 이뻐서? 그런 거야?”
“…그렇진 않다만.”
“진짜아? 아빠가 이쁘다고 말해주니 기분이 더 좋아! 이히히.”
이브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양 뺨이 상기된 채 어깨를 으쓱이는데, 저건 좀 진심으로 좋아하는 듯하다.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져서 눈썹을 틀어 올렸다.
“아빠한테 외모 칭찬받아서 뭐 좋다고 그러냐.”
“뭐 어때! 아빠가 진짜 내 아빠도 아니잖아.”
“어… 그야, 뭐.”
저것도 외형이 성장한 영향인가.
이 악물고 ‘아무튼 넌 내 아빠다’라고 우기던 게 엊그제 일이건만. 지금의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쌈박하게, 내가 친아빠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많이 변하긴 했군.’
이브의 성장은 지능이 눈에 띄게 발전하진 않았다.
대신 성격이나 어휘 능력은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대격변을 했다. 이번에도 그것은 예외가 없었다.
‘성격적인 부분이 특히.’
매번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확확 바뀐다.
장난을 좋아하는 이브 양. 최종적으로 그녀의 성격은 이것으로 확정됐지 싶다.
“차라리… 사춘기가 나았던 것 같기도 하고.”
“으응? 뭐라 그랬어?”
“아니. 그냥 좀.”
“아하하. 아빠는 정말 변하질 않네. 그놈의 말버릇! 요거요거!”
이브가 내 옆구리를 쿡쿡 쑤시며 꿍얼거렸다.
수색작업은 이제 시작했을 뿐인데. 벌써 피곤해지는 것 같다.
“이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브를 내려다보는 시선은 어느새 한껏 가늘어졌다.
“혹시 이 장소에 대해 뭔가… 더 기억나는 게 있냐.”
여수의 밤바다가 유난히 익숙하게 느껴진다던가.
본격적인 던전 폐쇄에 들어가기 직전. 이브는 분명 내 앞에서 말했었다.
나는 지금 그것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음? 아아.”
이브는 금세 내 말을 이해하고 탄성을 흘렸다. 이내 그녀가 턱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끝내는 갸웃,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으으음,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
“으응. 뭐랄까. 예전에 분명 본 거 같은데. 그럴 리는 없잖아?”
“그야 그렇지.”
“엄청 어렴풋하고… 그냥, 뭔가 알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잘 모르겠다. 그런 애매모호한 느낌만 있거든.”
“흐음.”
말마따나 애매하기 그지없다.
명색이 최종 진화까지 한 그녀가 갑자기 꺼낸 말이다. 잠깐 노망나서 지껄인 헛소리로 치부해 버리기조차 애매하다.
과연 이 이벤트는 호재인가 악재인가. 괜히 의문만 한 겹 더 쌓였다.
“으웅, 미안해 아빠.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버려서.”
문득 이브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내 표정이 심각해져서 그런가. 그녀의 얼굴에서도 장난기가 많이 사라져 있었다.
“그… 너,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마. 분명 그냥 내가 착각한 거겠지! 응?”
이브는 자기가 뭘 잘못한 건 아닌가 걱정하는 듯했다.
내 눈치를 살살 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나름 귀염성이 있다. 요염하고 성숙한 외관에서 오는 갭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역시… 이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으응? 뭐라고?”
“아니. 그냥 좀.”
“그… 아빠, 그냥 좀. 안 하면 안 돼?”
결과적으론 나름 화기애애하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게 하루해가 꼴딱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 이브와 간간이 티격태격하며, 답도 안 보이는 노가다 작업을 계속했다.
* * *
당연히 그날도 무소득.
그다음 날인 휴일도 무소득이었다.
딱히 기대는 안 했다지만, 이 정도면 슬슬 나도 지친다. 금쪽같은 휴식까지 반납하고 하는 헛수고라 더더욱 그렇다.
“후우.”
어김없이. 그리고 용서 없이 시간은 흐른다.
정신 차려보니 이미 4차 붕괴의 날. 12월 4일이었다.
“돌고 돌아 또 여기냐.”
눈앞에 우뚝 서 있는 남산타워를 빤히 올려다봤고. 헛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1033번째 4차 붕괴지는 남산타워 앞이었다.
‘협회가 예상보다 빨리 붕괴하겠네.’
이세라한테 붕괴지를 들었을 때 그 생각부터 들었다.
남산공원 인근에는 헌터협회의 본관 건물이 있다. 그래서 붕괴지가 고정되었던 전생들에선, 헌터협회가 완전히 와해되는 게 보통 7차 붕괴쯤이었다.
‘수뇌부가 죄다 뒤져버려서 그런 것도 있다만…….’
헌터협회의 중심지가 물리적으로 개박살 나서 그런 것도 한 몫 한다.
어쨌든 이세라가 예지해줬던 오후 17시 35분 경.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시간에 맞춰 남산공원 상공이 허물어졌다.
“으, 으아아……!
“온다아아!!”
파지지직!
종잇장처럼 찢어지는 하늘 한편. 초현실적인 광경에 공포의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내 주위로 바글거리는 D급 헌터들의 외침이었다.
“위치 사수해!!”
“다들 무기 들어라! 앞에 뭐 해!!”
모든 미래들이 내 예상과 틀려가는 가운데. 4차 붕괴 직전의 전조만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일어났다.
그래서 D급 헌터들도 전생처럼 급하게 징집되었다.
“쪼, 쪼, 쫄지 마! 할 수 있어!!”
“버텨라! 딱 5분! 5분만 버티면 S급들이 온다고!!”
각 부대의 임시 부대장들이 사기 진작을 위해 목청을 연신 높인다.
당연히 효과는 없다. 쫄지 말라고 고함치는 본인부터가 팔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데, 뭘 믿고 용기를 얻어야 할지 나부터가 모르겠다.
“으, 으으… X발……!”
“끝났다. 뒤질 거야… 다 뒤질 거라고……!”
아직 몬스터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건만. 전장엔 온통 패색과 절망이 감돌았다.
주변에선 훌쩍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 으, 씨, X발. 왜 하필. 왜 하필 내가 헌터가 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냐고.”
근데… 가만있어 봐라.
방금 그건 좀 너무 익숙한 푸념인데.
퍼뜩!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시선이 향했다.
“아.”
그리고 내 눈을 의심했다.
바로 옆에서 눈물 콧물 질질 짜는 남자가 하나. 놈의 얼굴부터 들려오는 목소리까지, 내 기억에 똑똑히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야. 너.”
푸념하는 남자는 오경태였다.
나는 홀린 듯이 놈에게 다가가기 시작했지만. 그가 채 인기척을 느끼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방해가 들어왔다.
―두려운 것은 죽음인가.
문자 그대로 부지불식간이다.
서늘한 목소리가 귓전을 후려쳤다.
―아니면, 죽음 뒤에 찾아올 미지인가.
허공을 묵직하게 울리는 웅혼한 울림이었다.
화들짝! 모두가 깜짝 놀라 허겁지겁 사주 경계를 시작했다.
“뭐, 뭐야! X발!!”
“뭔 소리야! 적이냐?!”
“겨, 경계대형! 작전대로 이동해! 위치로!!”
하지만 모두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목소리의 주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름끼치는 목소리만이 등줄기를 연신 긁는다.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직후에, 푸화악!
갑자기 내 주변에서 수십 명. 머리가 예리하게 잘려나가 목 위로 솟구쳤다.
―그 하찮은 죽음은. 빠짐없이 이 뇌리에 각인되리라.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냥 그렇게 죽어버렸다.
압도적인 침묵이 강림했다.
“…….”
“…….”
중대장급부터 일개 졸개들까지.
그 누구도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고 있었다.
다들 반쯤 정신이 나가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걸 따라잡는 것만도 버거운 표정이다.
“…으, 어?”
“어어. 어, 으어어!!”
눈치 빠른 놈들부터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씩 일그러진다. 절망과 공포로 뒤범벅되고, 이내 경기를 일으키며 시체에게서 후다닥 멀어졌다.
“으아아악!!”
“X발! X바아아알!!”
“뭐야! 뭐, 뭐, 가,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그들이 혼란에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푸확, 푸화악! 피분수가 도처에서 솟아난다.
속속들이 잘린 머리통이 허공을 날았다. 목 없는 시신이 기하급수적으로 바닥에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야가 순식간에 빨강 일색으로 물들어간다.
“흐아아아악!!”
“사, 살려… 살려줘!!”
“야 이 개새끼들아! 돌아와! 대, 대열 유지하라고!!”
대부분의 헌터들이 이미 전의를 완전히 잃었다. 탱그랑! 무기도 단숨에 팽개쳐버린 채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적의 정확한 정체조차 드러나지 않았는데. 전투는 이미 완전히 끝나있다.
“으아! 으아아악!!”
“크아악!!”
“끄, 우욱……!!”
어디로 귀를 기울여도 비명뿐이다.
뿔뿔이 흩어져 지리멸렬하게 도망치는 헌터들. 통제를 시도하는 지휘관과,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인파에 섞여 도망가는 지휘관.
“흐아아악! 주, 죽기 싫어……!”
“도, 도망치지 마! 위치를 사수하… 크하악!!”
그 와중에 순식간에 목이 잘려 죽어 나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의 지옥도로 변해갔다.
“이 X발. X바알……!”
그런 대혼돈의 한복판.
내가 한껏 눈여겨보던 남자, 오경태는 여전히 제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저딴 걸, D급 헌터들이 어떻게 버티냐고오오…….”
살아남길 완전히 포기한 것인가. 이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꺼이꺼이 신세 한탄 하기 바빴다.
그가 쉴 새 없이 질질 짜며 부정적인 말을 주워섬겼다.
“우린 X발, 고기 방패야. 뻔하지. 죽을 거야. 어차피, 다 죽을 거라고……!”
그 와중에 꼿꼿이 위치를 사수하던 한 부대원이 인상을 팍 찡그렸고, 급기야 “X발! 재수 없는 소리 좀 쳐하지 마! X발아!!” 하고 소리친다.
그리고 빠악! 오경태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 갈겼다.
“으극!”
시원한 타격음.
하지만 오경태의 흐느낌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으흑. 이럴 줄 알았으면 X발, 그냥 엄마 말대로 공시 공부나 하는 건데… 엄마. 엄마아!”
엄마 찾아 음메, 아빠 찾아 음메. 난리가 났다.
그 비루한 모습에 다들 치를 떨었지만. 나는 아무 감상을 내뱉지 않았다.
“…….”
아니지. 내뱉지 못했다는 게 정확하다.
그 비루한 모습과 멘트. 직면한 상황조차 심하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맞네.”
그저 오경태의 뒤통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흥분한 나머지 혼잣말이 귀신같이 재발했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지금 나는 정신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세 번째.”
정확히 하트 기어를 입수한 그 순간부터였지.
4차 붕괴만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등장하던 금수저 징징이. 이번까지 해서 무려 세 번째 만남이다.
네 번이나 만난 박현우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기적’이라 해도 좋을 희박한 확률의 산물.
“너도, 있었다고.”
가장 유력했던 박현우가 꽝으로 판명된 지금.
눈앞의 사내는 <붉은 용>의 숙주 의심군, 넘버1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