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
“아윽, 아아앗!!”
이세라는 눈가를 쥐어 싸매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갑작스런 상황에 가까이 있던 강서윤이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엄청 당황한 기색으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어, 어어? 저기, 언니! 어디 아파요? 가, 갑자기 왜 그래요?!”
“아윽. 크흣……!”
강서윤이 허둥지둥 이세라를 토닥이고, 부축해주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지만. 이세라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몸을 잘게 떨뿐이다.
소란이 일어나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드디어.’
당연히 시선 중엔 내 것도 있었다.
다들 걱정스러워하는 것과 달리, 나는 혼자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이세라의 예지에 뭔가가 걸렸다. 저건 그 전조가 틀림없었다.
“어디냐. 이세라.”
나는 성큼성큼 다가갔고.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어조는 평탄했지만, 더없이 진지하다.
“뭐? 야. 너 이 상황에, 갑자기 뭔 소릴……!”
뜬금없이 개소리에 강서윤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나와 마찰하기 직전, 이세라가 다급히 손을 뻗어 강서윤을 저지했다. 서윤이의 시선이 퍼뜩 이세라에게 향했다.
“어, 언니. 좀 괜찮아요?”
“…네,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세라는 이마를 틀어쥔 채 연신 비틀거렸다. 하지만 입가의 미미한 웃음은 어떻게든 돌아와 있었다.
아까보단 나아보이는 행색에 서윤이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 다행이다.”
“미안해요. 놀랐죠?”
“깜짝 놀랐어요! 왜, 왜 갑자기 그런 거예요?!”
“그게…….”
불쑥.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별안간 손을 집어넣은 것은,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강서윤이 깜짝 놀라서 약간 물러섰고.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어디. 몇 시. 무슨 던전.”
두 번째 질문을 강행했다.
이세라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게 돌렸고. 강서윤은 이세라 덕분에 잠깐 잊었던 화가 다시 뻗친 기색이다.
“야 한정용! 아까부터 뭔데! 뭔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그런 게 있어. 좀 비켜봐.”
“못 비켜! 그런 게 있긴 X발! 그게 뭔지 설명하라고!”
뭘 어디부터.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설명해야 강서윤이 알아들을까.
‘…모르겠다.’
전생에서 이어진 인연? 눈에서 피를 뿜었던 사연? 아니. 갑자기 미래가 틀어지기 시작한 이유부터 들어가야 하나?
답도 안 나온다. 생각만 해도 까마득하다.
“야, 너 좀 떨어져 있어! 아픈 사람 붙들고 이상한 소리만 하지 말고!!”
덥석!
강서윤이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린다. 그리고 나를 이세라 주변에서 어거지로 끌어내려 안간힘을 쓴다.
물론 그것도 곧 우뚝 멈췄다.
“…서울월드. 앞으로 20분쯤 뒤네요. 어떤 던전인지… 거기까진, 보이지 않았어요.”
이세라의 나직한 대답이 들려온 것이다.
강서윤은 벙찐 표정 그대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반면 내 머리는 쉴 틈 없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울월드. 20분 뒤.”
이세라의 대답을 음미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멱살을 채인 강서윤의 손을 정중하게 풀어버린 뒤. 매무새를 정돈하고 곧장 나갈 채비를 마쳤다.
벙찐 강서윤을 스쳐 지나가며, 나는 이세라에게 고개를 슬쩍 숙였다.
“고맙다.”
“위험 부담 떠안고 저를 지켜주시는데요. 밥값을 한 거죠. 뭐.”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더 고맙고.
나는 카운터 쪽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있던 이브와 토식이에게 슬쩍 턱짓을 했다.
“일하자.”
“오냐.”
토식이는 눈치만 보고 상황을 깨달았는지 내 옆에 따라붙었다.
문제는 이브 쪽이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인사불성이 되어서 헤롱거리느라 바빴다.
“으헤에. 아빠아. 아빠다아! 아빠아, 내가 아빠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이?”
“그래. 그런갑지.”
“에헤헤. 아빠아, 나느은, 아빠만 있으면 돼. 헤헤.”
“고맙구나.”
아무렇게나 대답해주며 이브를 어깨에 들쳐 멨다.
주점을 나가기 직전.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 그리고 약간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여인들을 빤히 쳐다봤다.
“…자세한 건 이세라한테 문의해.”
설명을 전적으로 떠넘겼다.
이게 팀플레이. 업무의 효율적인 분담이란 거지.
아무튼 그런 걸로 하겠다.
“갔다 온다.”
한결 후련해진 마음.
푸화악!
나는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 * *
서울월드는 월미도보다 규모가 더 큰 테마파크다.
이름부터가 ‘서울월드’인 만큼 위치는 당연히 서울일까?
아니다. ‘서울월드’는 이름값 못하게도 서울에 없다. 경기도 과천 쪽에 있었다.
“…X발. 근데 왜 이름이 서울월드냐.”
혹시 서울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일까?
애석하게도 나는 몰랐다. 덕분에 찾아오는 데까지 좀 헤맸다.
‘제 시간에 도착해서 그나마 다행이군.’
먹고 살기 바빠서 놀러온 적이 없다 보니, 월미도 테마파크랑 정확한 차이는 모르겠고.
일단 면적 자체가 훨씬 큰 느낌이다. 대충 그 정도 감상뿐이다.
“흐음.”
서울월드 상공. 롤러코스터 레일이 지나가는 그 언저리.
나는 투명화 스킬을 두른 채 한없이 시계만 쳐다봤다.
‘앞으로 5분 뒤.’
현재 시간은 오후 2시 17분.
내가 칵테일 바를 나온 지 15분 정도가 흘렀고. 5분 뒤면 이세라가 예언했던 붕괴 예정 시각이 된다.
그때까지 딱히 할 것도 없다. 이대로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끝까지 대기할 생각이었다.
“으우. 아빠아… 토, 토할 것 같아아…….”
어깨쯤에서 연신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브였다. 이곳까지 전속력으로 날아온 반동으로 그녀는 멀미를 하고 있다.
술에 잔뜩 꼴아 있던 게 원인이다. 원래는 멀미 같은 거 안 한다.
“…….”
골골대는 소리가 점점 심해지니 잠깐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숙취 해소 같은 스킬은 없는데.’
당연히 아이템도 가진 게 없다.
번역 스킬이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런 범용성과 실전성이 낮은 잡동사니 스킬을, 내가 굳이 목숨까지 버려가며 계승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봐야 1차 붕괴니 대단한 일이야 있겠냐만.’
사실 이브가 변신을 못 한다 해도 딱히 상관이 없다.
내가 가진 고유의 힘으로만 다 패 죽이면 된다. 이대로 이브를 한쪽 팔에 메고, 한쪽 팔로만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어라 마셔라 하는 걸 관망했던 거다.
‘죽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니 문제지.’
주기적으로 어깨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오니, 5분의 대기시간도 엄청 길게 느껴진다.
이제 과음은 무조건 말려야겠다. 새삼 다짐한다.
“…됐다.”
그리고 인고의 시간이 끝났다.
시계가 정확히 2시 22분을 가리키는 순간.
파지지직!
강렬한 마력 파장이 서울월드 전역을 뒤덮으며, 세계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강력한 마력 반응. 게이트가 붕괴했다.
“정확하네.”
나는 옅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멀쩡하던 하늘이 거적때기처럼 찢어져 일렁거리는 진풍경이지만. 나는 그저 하품을 쩍쩍 머금으며 잡생각을 하고 있었다.
감탄의 대상은 게이트가 아니라, 이세라 쪽이다.
‘시간이나 장소나. 완벽하게 예측해냈다.’
이세라의 예지에 신뢰도가 추가됐다.
이세라는 적중률 100%의 게이트 붕괴 탐지견. 그렇게 취급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는 쏟아지기 시작하는 던전의 몬스터들에게 슬쩍, 고개를 돌렸다.
―키이이이이!!
―키륵! 키키키키!!
―케에에엑!!
각양각색의 괴성들을 쏟아내는 괴물들이 보인다.
천차만별의 괴성만큼이나 천차만별인 괴물들의 끔찍한 외형. 언제 봐도 새롭지만 분위기 자체는 꽤 익숙하다.
저 던전은 비교적 최근에 마주친 적이 있다.
“…진화의 끝자락.”
그 정체를 소리 내서 한 번 읊조렸다.
제84던전 진화의 끝자락. 키메라 지네 ‘장송의 백족’과 기타 등등, 개성 있는 괴물 친구들이 가득한 던전이다.
붕괴한 던전을 특정하니 이거 하나는 확실해졌다.
‘완전히 생뚱맞은 던전이 나오는 건 아니군.’
모든 육사도가 모이기까지 앞으로 단 한 발자국.
혹시나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던전들만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건 아닌 듯하다.
최소한 내가 알던 기존의 던전들이 튀어나온다. 확인.
―케에에에에엑!!
―키이이이이!!
쾅! 콰콰쾅!
균열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괴물들이 하나둘 지면에 착지한다.
콰자작!
때마침 내 옆의 레일 위로 롤러코스터가 지나갔고. 레일 위에 바글거리던 키메라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꺄아아아아악!!”
“흐악! 으아아아아!!!”
“뭐, 뭐야! X발 뭐야아아!!”
롤러코스터에 따라붙던 비명의 성질이 격변했다.
즐거움은 사라지고 혼란과 당황, 그리고 공포만이 가득해졌다.
―키에에에에엑!!
―키오오오!!
그리고 비명은 곧 고통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콰자작! 우득!
롤러코스터에 치이고도 살아남은 키메라들이, 곧장 열차를 기어 올라가 사람들을 뜯어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 캬아아아악!!”
비슷한 상황이 도처에서 연출되고 있다.
바이킹. 범퍼카. 자이로드롭. 회전목마나 후룸라이드까지. 비명이 들려선 안 되는 어트랙션들까지 비명과 절규가 난무한다.
―키이이이!
―케헥! 키헤에엑!!
푸확! 푸드득!
키메라들은 게걸스럽게 식탐을 해소했고. 피와 살점이 삽시간에 낭자했다.
사람들이 비명 한 번 제대로 질러보지 못한 채 목째로 씹어 삼켜졌다. 팔다리를 잃은 채 경련하는 시체 지망생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불 바닥에 널브러진다.
“…얘는 왜 안 나와.”
그 순간까지 나는 무얼 하고 있었는가?
그냥 아무것도 안 했다. 아까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먼발치에서 불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아빠아.”
그러자니 이브가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거기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브도 광학미채 슈트를 뒤집어썼다는 게 뒤늦게 뇌리를 스친다.
나는 다시 학살의 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사람들… 다 죽어가고 있어.”
그새 목소리에서 취기가 많이 달아나 있다.
충격적인 장면을 눈앞에 둬서 그런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다들 아파 보여. 불쌍해.”
“그렇구나.”
“아빠. 아빠는 안 불쌍해?”
“…음.”
언제부터였을까. 이브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에서 연민을 느낀다.
사람인 나보다도 더.
“아빠. 안 구해주는 거야?”
내가 왜.
혀끝까지 치미는 말을 간신히 삼켰다.
내가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혈안이 돼있었던 건 연민 때문이 아니다. 순전히 수아의 멘탈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수아를, 내가 못 믿는 상황이 돼버렸지.’
그 유일한 동기 부여도 실낱처럼 희박해진 지금. 왜 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엑스트라들을 위해 내가 X빠지게 고생해야 하냐.
왜 똥은 저놈들이 싸는데. 내가 힘을 줘야하냐 이 말이다.
“…나왔다.”
그나마 타이밍이 좋았다.
어색한 우리의 분위기를 타파해주려는 듯이, 콰지지직! 이 무대의 주인공이 등장해줬다.
―퀘에에에에엑!!
특유의 등줄기를 긁는 포효가 들려온다.
콰지지직!
게이트의 균열이 비좁아 보일 만큼 거대한 지네. 던전 마스터 <장송의 백족>이 균열에 대가리를 디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