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103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2)>
“…이의.”
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미미하게 생글거리는 이세라의 입꼬리를 쳐다봤다.
“내가 자살하는 데 불만 있냐. 이세라.”
“네. 그럼요. 엄청 많죠.”
“뭐 그리 불만이셨을까. 대답 못하면 주먹으로 뺨 맞을 줄 알아라.”
“으음, 그냥 전부 다요!”
여전히 이세라는 방글거리고 있다.
전면적으로 내 결정을 부정하고 있구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 뭐, 더 좋은 해결책이라도 있으신가.”
“아뇨? 없어요.”
“…….”
“있을 리가 있겠어요? 제가 봐도 정용 씨가 자살하는 게 정답이에요.”
“그러면 왜…….”
“그래도 싫어요. 그냥 싫어요.”
이세라치고는 대책 없고 얼척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약간 어이가 없어졌다.
어안이 벙벙한 내 앞에서, 이세라는 이런 말을 했다.
“난 말 한 번 안 섞어본 수십만 명보다요. 저한테 다시 희망을 심어준 정용 씨가 죽는 게 싫어요. 훨씬 싫다구요.”
“아니. 나 어차피 다시 살아난다니까…….”
“그래도 싫어요. 어차피 지금의 제 입장에선 영원히 죽어버리는 거잖아요. 다시 살아났다는 걸 정작 지금 저는 느낄 수가 없으니까.”
“…허.”
나는 궤변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서윤과 수아도 의아한 표정으로 이세라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의 의도가 가늠이 안 되는 건 모두 똑같은 듯하다.
그러나 이세라는 오히려 뻔뻔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왜요. 안 돼요? 나도 사람인데, 팔은 안으로 굽어야죠.”
“아까 수아한테도 말한 것 같은데. 해결책이 없는 비판은…….”
“그냥 비난이라고요?”
“…그래. 그러니까…….”
“잘됐죠 뭐. 난 지금 정용 씨를 비난하고 싶은 거예요. 비판이 아니고요.”
정면으로 개기니까 더더욱 할 말이 없다. 있을 리 없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제 약간은 비웃는 듯한, 동정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슬슬 저도 좀 혼란스러워서 그러는데요. 좀 확실히 정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정용 씨는 여기에 모여 있는 저희를 지키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그냥, 사람들을 최대한 살려서 정의의 히어로가 되고 싶으신 건가요?”
“…….”
“혹시 전자였다면요. 서윤 씨를 울린 시점에서… 아니지. 이렇게 쉽게 자살할 마음을 먹은 시점에서. 이미 완전히 실패한 거예요.”
맹비난이 쏟아진다.
퍼뜩, 나도 모르게 시선이 서윤이에게 향했다. 강서윤은 그 순간에도 하염없이 울고 있다가, 내 시선을 느끼고 퍼뜩 고개를 돌려버렸다.
가슴 한편이 갑갑해졌다. 묵직한 추가 얹힌 듯하다.
“뭐… 근데 이렇게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겠죠?”
멍하니 넋이 나가 있자니. 갑자기 이세라의 목소리에 깊은 체념이 어렸다.
그녀의 비릿한 미소는 어느새 쓴웃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열심히 설득해봤는데. 역시나 고집불통이네요.”
“…뭐가.”
“미래가 좀체 바뀌질 않아요. 정용 씨는 결국 자살해요. 어떤 미래에서도 무조건요.”
“…….”
그 말대로, 난 내 결정을 철회할 마음이 없었다.
속내를 훤히 읽혔다. 어김없이 치솟는 불쾌감에 어깨를 떨었다.
“자, 그럼! 어차피 곧 죽을 사람한테 이런 쓸 데 없는 얘기는 그만하고요. 우리 좀 나중의 얘기나 해볼까요?”
갑자기 이세라가 대화의 분위기를 바꿨다.
억지로 밝게 꾸며낸 어조로, 그녀가 이런 말을 해왔다.
“전생의 저도 알아챘는지 모르겠는데요. 지금의 저는 정용 씨의 사고방식을… 아주 약간은 알 것 같거든요.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뭐냐. 갑자기.”
“나중에, 만약에요. 정용 씨의 영원회귀가 끝나고, 던전 붕괴도 완전히 종식되는 형편 좋은 미래가 찾아온다고 쳐봐요.”
“그래. 그랬는데.”
“그때 정용 씨는요.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좀 막연한 질문이 나왔다.
어조는 그대로 나긋나긋하다. 입가의 가벼운 웃음도 여전하다.
“…….”
그러면서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잠깐의 침묵 끝에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몰라.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다.”
“그건 거짓말이고.”
“…….”
“무조건 거짓말이죠. 제 목숨을… 몸을 걸어도 좋아요.”
“뭘 믿고 그렇게까지…….”
“정용 씨의 처지에 생각을 안 해봤을 리 없잖아요. 생각을 했다가 허무해져서, 금방 지워버렸다는 대답이면 모를까.”
지금 이세라가 말한 저게 딱 맞다.
나는 가끔 얘가 예언자인지 독심술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사실 뭐… 그래. 생각한 적은 있지.”
“거 봐요. 어때요? 정용 씨가 꿈에도 그리던 평화로운 미래가 찾아왔을 때요. 정용 씨는 제일 먼저 뭘 하고 있나요?”
“나는…….”
“아마 지금이랑 비슷한 짓을 하고 있겠죠. 아닌가요?”
지금 내가 하려고 한 짓.
스스로를 죽여서 생을 마감하는 것.
자살.
“…….”
대꾸하지 못했다.
왜? 그야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 오빠……?”
“야. 하, 한정용!”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건 이세라뿐만이 아니었다.
강서윤과 강수아가 경악에 찬 시선을 내게 향한다. 나는 애써 딴청을 피우며 그것을 무시해버렸다.
“이미 괴물이 돼버려서. 평화로운 세상에 적응할 자신이 없나요?”
이세라의 목소리가 상념을 찢어발겼다.
나는 홀린 듯이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는 내 시선을 느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니면 적응할 자신은 있어도,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걸지도 모르겠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사는 것 자체가 지긋지긋해진 걸 수도 있겠네요.”
“…….”
“이유까진 잘 모르겠네요. 불사신이 아니니까. 난 정용 씨가 느끼는 고충을 잘 몰라요.”
“…그러냐.”
“네네. 그래서 어느 쪽인가요. 셋 중에 정답은 있나요?”
나는 잠깐 고민해봤다.
아무래도 이미 발뺌하기엔 늦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셋 중에 뭣도 아냐.”
“어머. 그럼 어떤 이유로?”
“셋 다지.”
“…아하. 이해했어요. 좀 복합적이었네요.”
“복합적이야.”
1032번이나 이 무간지옥에 절여진 나다.
나는, 지금의 반복되는 한 달에만 완벽하게 적응된 괴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람 모양의 몬스터 그 자체였다.
“솔직히 이제 사람 행세도 지긋지긋하다.”
어찌저찌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온다 한들. 그곳에 다시 섞여들 자신이 없다.
적응해서 꾸역꾸역 살아가면 그것대로 문제다.
“내 숨이 붙어있으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평화로운 세상이 아니야.”
나라 하나를 하루 만에 멸망시킬 힘을 가진 나.
실제로 화풀이 하겠다고 수천만 명을 하루아침에 학살한 전적이 있는 나.
이런 내가 일반인 사이에 섞여서 살아간다니. 그야말로 핵폭탄 수십 개가 미친놈 하나의 손에 쥐어진 꼴이다.
“그런 걸 진짜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할 수 있냐?”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마왕이 사라진 세상에서 초인적인 힘을 가진 용사는 위험분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평화로운 세상’과 ‘한정용’은 공존할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앞의 두 이유도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건데.
“그냥, 내가 더 살고 싶지가 않아.”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그렇듯. 나는 내 온전한 죽음을 바란다.
분명 세상이 평화로워져도 똑같을 거다.
“자살하고 싶어서 세상을 구하는 주인공이라니. 뒤틀려도 너무 뒤틀렸네요. 정용 씨.”
이세라가 쓴웃음을 연발하며 중얼거렸다.
주르륵.
그녀의 안대 밑으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고. 그와 반비례해 내 단검은 점차 솟아올랐다.
그녀의 턱을 타고 톡.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과거의 저는요. 정용 씨가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놔준 거… 기억 못 하겠죠?”
푸화악!
공허한 질문과 함께 단검이 내 목을 쑤셨다.
한 방에 뒷목까지 관통했다. 강서윤도 강수아도 미처 반응조차 못할 스피드였다.
“꺄아아악!!”
“오, 오빠! 오빠아앗!!”
한 템포 늦게 두 사람의 비명이 고막을 윙윙 울렸다.
그나마도 빠르게 의식 너머로 흩어진다. 듣기 좋은 자장가는 아니다.
“충고는… 새겨, 듣겠… 다. 이세… 쿨럭.”
아무튼 이세라의 비난은 허투루 흘릴 수 없었다.
새삼 내가 진짜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떠올렸다.
‘우선순위를, 가슴에 새겨야지.’
뭘 지키고 뭘 희생할 것인가.
나는 영웅이 아니니까. 희생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억지를, 부리는 건. 딱 이번만.’
목에 박았던 단검을 힘껏 옆으로 휘둘렀다.
서걱!
서늘한 절삭음. 시야가 방바닥 위로 데굴데굴 회전한다.
머리통이 잘려나갔지 싶다.
* * *
[현재 시간선]
[2031년 11월 27일. 오후 2시.]
1033번째 전생에서 눈을 떴다.
돌아온 직후. 나는 거실에 멍하니 서서 머리를 긁적였고, 그런 내 옆에는 이브와 토식이가 멀뚱하게 서있었다.
“…….”
“…….”
성숙해진 이브는 슬픈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할 뿐. 내가 멋대로 자살한 것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쪽에서 머쓱하게 대화를 걸었다.
“미안하다. 이브.”
“으응? 뭐가?”
“네게 말도 없이 자살해 버렸다.”
“으응, 아냐! 아빠가 미안할 게 뭐 있어. 나도 이해해.”
“…그, 그러냐.”
“그럼. 이제 나, 어린애가 아니잖아!”
이브가 의연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이 어째 더 죄책감을 부추겼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줬다.
그 뒤론 곧장 행동에 나섰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전생과 최대한 비슷한 프레이즈.
그리고 최대한 비슷한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러자 다행히도, 전생과 꽤나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믿어볼게요. 제 눈에 다시… 한 달 후의 미래가 보이는 날이 올 거라고.”
먼저 이세라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전생과 비슷하게 금방 나를 따라줬다.
이제나 저제나 국밥 같은 여자다. 뜨뜻하고 든든한 반응에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 그렇구나. 정말로 1033번이나… 돌아왔다고?”
그리고 다음은 강서윤의 설득.
이건 전생과 달리 약간의 차이가 발생했고. 그래서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장수혁이 아직 없을 줄이야.’
전생에선 참수한 장수혁의 머리가 결정타로 작용했다.
그런데 그 꼼꼼하고 예민한 장수혁이 어쩐 일인가. 이번 생에는 곧장 우리 집에 따라붙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내 말은 믿어주는 걸로 알아도 되겠지.”
“아아, 그래. 좀 미심쩍지만 뭐, 일단은 믿는 걸로 쳐.”
하지만 이세라와 나의 끈덕진 설득 끝에 결국 함락됐다.
애초에 그녀는 내 말을 잘 믿어주는 편이다. 아마 강서윤만큼은, 딱히 이세라가 없었어도 이 정도는 믿어줬을 것이다.
“일단은, 반만 믿어볼게요. 오빠.”
마지막으로 강수아까지. 이세라의 비밀 프로세스(?)로 이번에도 무사히 성공시켰다.
그렇게 가장 굵직한 과제들은 대체적으로 원만하게 넘어갔다.
‘문제는…….’
모든 흐름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그렇다 보니 전생과 달라진 점이 몇 개 있었는데. 크게 세 가지 정도였다.
‘일단 서윤이의 신뢰도.’
장수혁의 머리 놓고 제삿밥을 안 먹여서 그런가.
내가 회귀자라는 걸 강서윤이 반신반의 수준으로만 믿고 있다.
어떤 면에선 수아보다도 낮은 것 같기도 한데. 하필 이번엔 게이트 붕괴지나 붕괴 던전도 예측할 수 없다.
아직 신뢰도를 떡상 시킬 방법이 없어서 좀 아쉽다.
‘둘째론, 약간의 관계 변화.’
전생에선 이세라와 강서윤이 꽤 오랫동안 서먹한 느낌이었는데. 이번 생에선 무슨 조화가 있었던 건지 순식간에 친해졌다.
이건 오히려 좋은 변화라 크게 신경 안 써도 되고.
‘셋째가 제일 큰데…….’
마지막은 어찌 보면 별거 아니고. 달리 보면 가장 큰 변화다.
이세라의 제안으로 본진이 바뀌어버렸다.
“저기, 정용 씨.”
“왜.”
“생각보다 식구가 바글바글해졌네요. 그쵸?”
“그렇게 됐다.”
“6명… 아니. 5명이랑 한 마리가 거주하기엔, 이 집은 좀 좁지 않나요?”
“그건… 하긴.”
“그냥 제 칵테일 바로 돌아갈래요? 저는 사람이 북적이면 오히려 환영이에요!”
지극히 옳은 말.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신세 좀 지자.”
* * *
그렇게 지금의 풍경이 완성되었다.
이세라는 강서윤과 다음 체스 대국을 준비하고 있다. 수아는 속이 안 좋다고 징징대기 시작한 이브를 토닥여주고 있다.
“…후우.”
바로 어제. 부산에서 수십만 명이 떼죽음 당했다곤 상상도 못할 정도로 목가적인 풍경.
사실 이게 당연하다. 이번 생에선 대참사 따위, 정말로 일어난 적이 없다.
“잘됐구만. 잘됐어.”
“으응? 정용 씨, 뭐라고요?”
“그냥 좀.”
추임새에 반응한 이세라에게 대충 얼버무렸다.
다시 멍하니 정신을 놓았다. 그리고 이 폭풍전야의 평온함이나 좀 더 즐기기로 했다.
“아윽……!”
그리고 잠시 후. 이세라가 고통스럽게 안대를 감싸 쥐었다.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