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103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
끼이익!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서둘러 들어왔다.
이브는 아직도 침대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고. 혼자 집을 보던 토식이가 그런 나를 반겨줬다.
“으음? 옥좌야. 생각보다 금방 돌아…….”
심심했는지 반갑게 맞아주던 토식이의 얼굴이 우뚝. 바짝 굳어버렸다.
아마 내 뒤에서 쭈뼛거리는 이세라를 포착한 거겠지.
“어… 음. 그, 음.”
토식이가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탄성을 흘렸다.
눈깔이 바쁘게 춤을 추다가, 이내 내게 향했다. 놈의 떨리는 시선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뭐야. 괜찮냐? 나 말하는 거 들켜도 되냐?’
다른 사람들 앞에선 웬만하면 인형인 척을 하라고 해놨었다. 그래서 저렇게 당황하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토식이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쫄지 마. 얘는 이미 웬만한 건 다 안다.”
“아, 아아. 그러냐? 그러면 됐고.”
그제야 토식이도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이내 놈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어렸고. 내게 뽈뽈 다가오더니 내 종아리를 툭툭 두들기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귀 좀 빌려달라는 제스처다. 할 말이 있나보다.
“…뭔데. 갑자기.”
나는 상체를 숙여 토식이에게 귀를 가까이 댔다.
토식이가 이세라의 눈치를 살살 보며 내게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냐 저건. 숨겨둔 첩이냐?”
첫마디부터 어지럽다.
이건 뭐랄까. 길게 대화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 손사래를 쳤다.
“헛소리 할 거면 이브 죽부인이나 계속해.”
“아니, 헛소리랄 것까지야 있나? 타당한 추측 아니냐?”
타당하긴 예미 지랄.
놈의 입가에 걸린 실실거리는 웃음만 봐도 안다. 저 새끼도 아닌 거 뻔히 알면서, 골탕 한 번 먹이겠다고 저러는 거다.
나는 곧장 고개를 휘저으며 토식이를 노려봤다.
“그보다… 왜 처가 아니고 첩인데.”
“네 본처는 그 여자 아닌가? 옆집에 머리카락 긴 계집.”
“…….”
“아니면 짧은 쪽이었냐? 더 늙은 계집?”
“말을 말자. 그냥.”
병신에겐 먹이 금지. 더 말해봐야 아가리만 아프겠다.
나는 의식적으로 토식이에게서 관심을 끊은 뒤. 아직도 현관 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이세라에게 손짓했다.
“서있지 말고 들어와라.”
“어… 아, 네, 네에…….”
이세라는 어색하게 신발을 벗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천천히 걸어와 내 앞에 섰고. 이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토식이를 살피며 탄성을 흘렸다.
“정말 있었네요. 토끼를 닮은, 던전 생물이라더니…….”
“있다고 했잖아.”
집까지 오는 사이, 나는 이미 토식이와 이브의 존재에 대해 이세라에게 대충 설명해 놨다.
그녀가 토식이를 보고도 반응이 미적지근한 건 그 때문이었다.
“되게 신기하네요. 제 미래시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라니……. 처음 봤어요.”
이세라는 연신 자기 눈가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그녀에겐 토식이가 던전 생물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다. 자기 미래시에 포착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게 더 중요한 듯하다.
이내 이세라는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랄까. 좀 긴장되네요.”
“뭐가.”
“저, 남자 집에 와보는 거 처음이에요. 이것도 신기하다면 신기한 기분?”
“…신기할 것도 없구만.”
저리 말하니 무슨 이상한 의도로 데려온 것 같다.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합병이었지만, 아마 누가 봐도 무조건 오해하겠지. 지금부터 그 오해를 원만하게 종식시키는 것도 나의 과제 중 하나였다.
“엄마, 깜짝이야!”
문득 이세라가 엄마 찾아가며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침대 쪽을 가리키며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저, 정용 씨. 저, 저 사람은……?”
“아아. 저거.”
그러고 보니 이브가 아직도 자고 있었다.
나는 태연하게 침대로 걸어가 이브가 숨 잘 쉬고 있나 확인했다. 손끝에 미약한 숨결이 느껴진 뒤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해 줬다.
“얘가 이브다.”
“아. 이, 이브라면…….”
“토식이랑 똑같지. 얘도 던전 생물이다.”
“그, 그렇군요.”
이세라가 얼떨떨한 얼굴을 이브 쪽으로 고정했다.
그녀가 연거푸 온몸에서 마력 파동을 쏘아 보냈다. 이브의 정확한 생김새를 몇 번이나 제대로 확인해 보려는 듯이.
이내 그녀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생김새만 보면, 영락없이 사람이네요?”
“맨눈으로 봐도 그렇지.”
“이 정도면 지구인이 아닌 게 이상할 정도인데……?”
“던전에 언제는 인간형 몬스터가 없었냐.”
“아뇨. 그, 그렇긴 한데. 이렇게 마력 파장까지 지구인과 비슷한 경우는 없잖아요…….”
“그건 맞지.”
그쪽은 나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브는 외관으로나 성분(?)으로나 명실상부한 지구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에서 부화한 던전 생물. 주인인 내가 직접 봤으니 틀릴 리가 없다.
“흐음.”
이 수상쩍은 괴리.
이것도 육사도를 모으다 보면 결국… 풀리게 될까?
무의미한 고민을 하는 건 거기까지다. 그쯤에서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잠깐 토식이랑 친해지고 있어봐.”
이세라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현관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빠르게 신발을 신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갑작스런 행동이었지만 이세라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가시는 건가요?”
다만 그렇게 물어온다.
내가 뭘 하러, 어딜 가는지도 이미 다 보인 거겠지. 어쩌면 결과까지도 미리 봐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 갔다 온다.”
어디까지 봤는지는 캐묻지 않기로 했다.
이세라가 내 행동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해도. 나는 그걸 미리 듣고 싶지 않다. 운명에 놀아나는 것 같아서 기분만 나빠지니까.
“조심해요.”
그리고 그녀는 장난스럽게 건투를 빌어줬다.
그런 내 생각도 미리 읽었다는 듯이.
“혹시라도 다치면 화낼 거니까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대충 휘적여 주고 빠르게 복도로 나왔다.
덜컹. 현관문이 닫힌 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
잠깐의 심호흡.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뜬다.
키잉! 마력광으로 날카롭게 벼려낸 시선. 주변의 풍광들이 한층 실감나게 들이닥친다.
보이지 않던 것들도 훨씬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제안을 할 테니까 들어봐라.”
허공에 대고 대뜸 말을 걸었다.
“수혁아. 자리를 옮기자.”
축축한 어둠에 잠긴 빌라의 복도 끝.
구석진 어딘가를 집요하게 쳐다보며, 나는 계속 말했다.
“너도 날 본격적으로 심문하려면… 이런 개활지는 난감하잖아.”
미끼는 던졌다.
내가 아는 장수혁이라면 반드시 문다. 그래서 큰 걱정 없이, 입질이 올 때까지 묵묵히 대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물고기는 곧 정직하게 반응해 왔다.
“놀랍군요. 정말 놀라워. 한정용 헌터.”
슈르륵.
마치 복도의 음영이 재구성되듯, 사람의 형태로 끈적하게 뭉쳐든다.
머리와 몸통. 그리고 팔다리와 손발까지. 커다란 윤곽이 빚어진 뒤엔 디테일한 이목구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눈치챈 건 둘째 치고. 찾아온 목적까지 이미 알 줄은 몰랐네.”
완성된 이목구비는 장수혁을 닮아 있었다.
닮았다 뿐일까. 복장부터 건들거리는 태도까지, 암부장 장수혁이 확실했다.
휘리릭! 놈이 허리춤의 손도끼를 뽑아 현란하게 회전시킨다.
“대뜸 이세라의 거처를 알아내서 접촉한 것도 그렇고. 한술 더 떠서 자택까지 끌고 온 것도 그랬지. 당신만큼 정체가 궁금해지는 개새끼는… 내 살다 살다 처음이야.”
저것이 장수혁이 우리 집에 잠복하고 있던 이유다.
물론 나도 이렇게 될 건 예상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쥐새끼 색출부터 감행한 거다.
‘삭초제근 메타로 간다.’
거슬리는 장수혁을 일찌감치 무대에서 퇴장시킨다.
혹시나 장수혁이 아직 잠복하지 않았다면, 나는 혼자 복도에서 대뜸 혼잣말 개빡세게 했던 미친놈이 되고 끝났겠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수혁은 X같이도 성실했다.
“천하의 장수혁이가 뭐 그리 혓바닥이 기냐.”
본격적으로 담소나 나눌 생각은 없었다.
놈이 제 할 말을 지껄였듯이. 나도 비릿한 조소를 머금으며 내 할 말을 할뿐이다.
“아무튼 너한텐 기대가 크다. 수혁아.”
아무렴. 놈은 나한테 뒤지고 끝이 아니다.
장수혁의 죽음은 내 큰 그림의 시발점. 이제 장수혁은 시체가 되어서도… 중요한 준비물이 되어 내게 이용당해 줄 예정이다.
“…뭐라는 거야. X같은 새끼가.”
장수혁은 자기가 무시당했음을 깨닫고 인상을 구겼다.
스르륵. 놈의 신형이 시커멓게 일렁거린다. 그림자에 동화되듯 흐릿한 잔상이 점멸한다 싶은 순간.
파팟! 어느새 내 목엔 싸늘한 도끼날이 드리웠다.
“아무튼 먼저 말을 꺼내줘서 고맙네. 자리를 옮겨 보자고. 한정용 헌터님.”
장수혁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놈은 내 귓가로 입을 한껏 가까이 가져갔고. 단숨에 제압당한 나를 놀리듯이, 웃음기 잔뜩 어린 목소리로 뇌까렸다.
“얌전히 나를 따라와라. 한정용.”
“…그러지.”
“강서윤, 강수아. 이세라까지 사이좋게 저승길 소풍 가긴 싫겠지?”
“당연한 말을.”
두 손을 번쩍 들어 항복을 표명했다.
다만 내 분위기가 약점 잡힌 사람치곤 워낙 여유로웠다. 지켜보는 장수혁의 입장에선 김 모 화백식 ‘강자의 포즈’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X발. 기분 나쁜 새끼.”
빠악!
장수혁이 내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겼다.
진짜 그런 식으로 느껴졌나 보다. 방금의 감정적인 행동으로 확실히 알았다.
“예. 접니다.”
삑, 삐삑.
문득 등 뒤에서 미약한 전자음이 들려왔고. 장수혁의 혼잣말이 뒤를 이었다.
“예. 방금 확보했죠. 아니, 그렇진 않았고. 이제부터 철저하게 알아볼 겁니다. 예.”
가만히 들어보니 혼잣말은 아니었다.
누군가와 통화하는 말투다. 직전의 전자음은 헌터 전용 스마트워치를 조작하는 소리인 듯하다.
지금 상황에서 장수혁이 저럴 만한 사람이라면.
“양호성이냐.”
나는 태연하게 물어봤다.
등 뒤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다.
“…다시 걸게요. 형님.”
삐빅. 익숙한 통화 종료음이 들려온다.
놈이 급하게 전화를 끊은 것이다.
“잠깐 눈 좀 감자. 십새야.”
얼음장 같은 장수혁의 목소리와 함께.
스르릉! 도끼날이 한층 내 목으로 밀착했다.
나로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놈의 명령대로 순순히 두 눈을 감았다.
“이동.”
쿠르르륵!
장수혁과 내 신형 위로 무정형의 그림자가 덮쳐왔다.
이전에도 몇 번 겪어본 적이 있는 장수혁의 이동계 스킬. ‘그림자 도약’이었다.
* * *
눈떴을 때는 어김없이 헌터협회 지하 7층이었다.
한 30분쯤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끄… 커헉. 크극.”
왼팔과 오른다리가 뜯겨나가고. 얼굴 반절의 가죽이 산 채로 뜯겨나가고.
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내용물을 훤히 드러낸 장수혁이, 산처럼 쌓인 슈레더 대원들 시체 위를 발발 길 때까지.
“사, 살려. 살려주십쇼……. 제, 제발… 하, 한정용 헌터. 거, 거래. 우리, 거래를…!”
온통 피 칠갑 된 하얀 복도에서.
장수혁의 피눈물 섞인 사죄와 구걸이 들려올 때까지.
대충 30분쯤 걸렸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고.”
나는 피로 흠뻑 젖은 얼굴을 소매로 대충 닦아냈다. 그리고 피가 잔뜩 엉킨 블라이스의 단검은 장수혁의 소매에 닦았다.
스르릉, 그대로 칼날을 놈의 목에 한껏 밀착시켰다.
“머리는 잠깐 좀 빌려간다.”
“…아?”
장수혁은 잠깐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해한 뒤에는. 입과 눈을 한껏 벌리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 아. 아아아……!”
“쓰고 나면 다시 풀로 붙여줄게. 걱정 말고 죽으면 된다.”
“으아아아! 하, 하지 마! 제발……!”
우드득!
단검이 용서 없이 움직였다.
장수혁의 애원은, 경추를 파고든 푸른 칼날에 틀어 막혔다.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테즈몬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