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103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5)>
옛날엔 꽤 자주 이런 상상을 했다.
이번에야말로 죽고 나서, 다시는 못 일어나면 어쩌지. 이번이 사실 진짜 내 마지막 기회였던 거 아닐까.
뭐 대충 이런 생각들 말이다.
“정말… 최후의 죽음인 건 아닐까?”
99번째 죽음, 100번째 죽음.
그 외에도 300, 444, 500, 666, 777, 999번째 죽음 등.
상징성이 있는 횟수의 전생 때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죽고 싶지 않아.”
그래서 처음엔 미친 듯이 두려웠다.
어차피 다시 살아날 건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혹시나?’하는 일말의 가정이, 나를 숨죽인 공포로 몰아넣었다.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또 살아나 버렸나.”
그게 약 300회차 때부턴 급격하게 무뎌졌다.
죽음은 여전히 본능적인 공포를 끌어올렸지만, 그뿐이다. 나는 이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자살할 수 있다. 살가죽 뒤집어 쓴 로봇이 되었다.
그 본능적인 공포마저 점점 무뎌지는 것이 나날이 실감되는 중이다.
“죽는다느니,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지금의 나를 붙드는 건 죽음의 공포가 아니다.
옛날에 서윤이와 나눴던 약속. 당사자인 서윤이도 진작에 잊어버린 구두계약뿐이다.
“이번에는 정말… 최후의 죽음인 건 아닐까.”
그렇게 1031회차에 이른 지금.
여전히 죽을 때마다 똑같은 상상을 한다.
다만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도 안 나는데. 그 말이 내포한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마지막이면 소원이 없겠네.”
내 죽음을 바라게 됐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오빠. 오빠!”
멍한 정신으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텅 비어있는 햄스터 우리에서 시선을 떼고, 옆을 슬쩍 쳐다봤다.
“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수아에게 대답해 줬다. 목소리는 나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퉁명스럽다.
그리고 그것을 수아도 느낀 듯했다.
“어, 그. 그게… 아니…….”
수아가 엄청나게 당황하며 횡설수설했다. 자기가 하려던 말도 잊은 행색이다.
이내 수아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중얼거렸다.
“제, 제 말, 또 안 듣고, 딴생각 하시길래… 그.”
“듣고 있었어. 그렇게 보였다면 미안하다.”
“아, 아뇨. 저야말로… 미안해요. 좀 듣기 거북했나요? 이런 얘기.”
“아니. 흥미로웠다.”
“…진짜로?”
“그래. 진짜로.”
사실 하나도 안 들어서 뭔 얘기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대충 짐작은 가능하지.
‘12월 3일. 지금이 오후 3시쯤이니…….’
이 타이밍에, 수아가 우리 집에 와서 하는 이야기의 레퍼토리들.
이미 수십, 수백 번씩은 반복했던 나다.
“연속 게이트 붕괴가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런 얘기였던가.”
“아, 네. 진짜로 듣고 계셨구나……?”
“그렇다니까.”
“미, 미안해요. 괜히 착각해서.”
“미안할 건 없고.”
몇 가지 선택지 중에 찍었는데 한 방에 정답. 운이 좀 따라줬다.
나는 잡생각 물리고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게이트 붕괴였잖아요. 그것도 하루 걸러서 계속, 일주일 동안 세 번 연속으로요.”
“그랬지.”
“오빠는 이게 왜 갑자기 이런다고 보세요? 지금까지… 10년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잖아요. 이건 뭔가가 확실히 잘못됐다고 다들 수군대던데.”
“…….”
나는 명확한 대답을 못했다.
고작 몇 회차 전까지는 나도 몰라서 대답을 못 했다. 알지를 못하니 똑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이런저런 추측이나 싸지를 뿐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의 이유로 입을 못 열었다.
‘10년 전부터 세상에 게이트를 발생시킨 건, <의지의 화신>이라는 놈이야.’
게이트와 던전의 발생 원인.
그리고 던전과 던전 마스터의 정체.
대부분은 이미 빠삭하게 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세히 안다고 자부한다.
‘화신은 이 세상을 무대삼아서. 스케일이 존나게 큰 연극을 하고 있다.’
그것을 위한 사전작업이 지난 10년이었다.
세계관을 엑스트라들에게 적응시키고. 주연과 악역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등.
‘최후의 연속 15차 붕괴’라는 본편 연극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 기나긴 리허설 기간이 바로 지난 10년의 세월이었다.
‘던전이란 건. 화신에 의해 이미 멸망한 다른 세상들의 파편이었고.’
그 수장인 던전 마스터는, 이전 연극에 희생당한 ‘주인공’들이다.
정확히는 그 중에서도 실패자들. 그들은 ‘화신’을 만족시킬 만한 연극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한, ‘실패자들’이었다.
‘화신은 실패해 버린 연극은 즉각 폐막시킨다.’
그리고 실패한 주인공에겐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무대를 개조해서 일종의 감옥을 만들고.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존재와 일부 조연들을 그 안에 유폐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수족처럼 부리기 시작하겠지.’
다음 연극을 더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장기말.
한때 주인공이었던 자는 던전 마스터가 되고. 자기가 살던 세상과 똑 닮은 감옥에 갇혀, 무차별적으로 악의를 쏟아내는 조무래기 악역으로 전락한다.
‘화신은 아마 그걸… 앞으로도 계속 반복한다.’
지구가 무대인 이번 연극이 끝이 아니다.
분명 이다음. 그리고 그다음도 있다. 그리고 만약 내가 화신을 만족시킬 만한 연극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나 역시, 다음 연극에 이용당하는 ‘던전 마스터’ 중 하나로 전락하리라.
“…….”
보시다시피 웬만한 내막은 알고 있긴 한데.
그래서 뭐. 어쩌겠다고. 이걸 수아한테 그대로 말하기라도 할 텐가?
아니. 천만에. 그럴 수 있을 리가.
‘수아가 믿어줄지는… 차치하더라도.’
좀 솔직해지자.
단순히 안 믿을 거 같아서가 아니겠지. 한정용.
네 옆에서 대화하고 있는 수아. 아니… 한 번 죽었다가 되살아난 강수아를, 너는 지금 절찬리에 경계하고 있잖아.
‘경계라고 해야 하나.’
경계를 넘어서 한 가지 의심을 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일전에 베르페아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 계집… 강수아는 말일세. 자네의 영원회귀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소리지.”
지금의 부활했다는 수아는, 내 영원회귀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토식이는 분명 이런 말도 했었다.
“이번의 왕은 취향이 독특하고 과격하구만. 이딴 정신 나간 조건을 최초 트리거부터 걸다니.”
영원회귀의 저주를 건 것은 화신이 아니었다.
죽어버린 왕. 내 안에 깃들어 있다는 ‘죽어버린 왕의 옥좌’의 주인장이 범인이었다.
그런 짓을 한 계기는 모른다.
그건 토식이 역시 모른다고 했다.
‘어쨌든 에티는 초인이 주인공. 반대로 육사도는 악당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육사도들이 받들어 모시는 ‘왕’ 역시 빌런 중의 하나.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최종 보스쯤 되는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최종 보스. 내게 있어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언제나 하나뿐이었다.
‘수아가 사실, 진짜 15번째 던전 마스터인 거… 아니야?’
그러니 여기까지 왔으면.
누구라도 이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눈앞의 강수아가, 그 <왕>인 거 아니냐고.’
이 무한 반복 되는 연극의 주인공인 내가, 엔딩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때려 죽여야 하는 ‘최종 보스’의 진정한 정체. 바로 강수아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을 아까부터 지울 수가 없었다.
“…오빠.”
한참을 상념에 잠겨있어서 그런가. 수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침묵을 참기 힘들어진 듯하다.
“혹시, 저한테 화난 거 있으세요?”
“…….”
허를 찔려서 말문이 막혔다.
그것을 긍정으로 해석했는지, 수아가 내 쪽으로 퍼뜩 한 발짝 다가왔다.
“있구나. 역시 그런 거죠?”
“…왜 갑자기.”
“그야, 갑자기 며칠 전부터. 오빠가 저를 묘하게 피하니까요.”
“…….”
“오늘따라 말투도 좀… 쌀쌀맞은 느낌이 들어서요. 제 착각이면 좋겠는데.”
여전히 눈치 하나는 귀신같은 수아였다.
나름 신경 쓴다고 신경 쓴 게 이거였는데. 연기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이런 연기 젬병인 내가 주인공이라 이거지. 아이러니함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니. 딱히 화난 건 없어.”
“그, 그럼……!”
“생각할 게 좀 많아서 그랬다. 너한테 집중을 못해줘서 미안하다.”
“아니, 오빠 지금요. 그런 단순한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정말로. 너한테 화가 난 게 아니야.”
“……!”
사실이다. 정말로 화나지 않았다.
화는 나지 않았고. 다만 한없이 그녀의 정체가 의심스럽고 의문스러울 뿐이다.
그것을 제대로 숨기지 못한 게 죄라면 죄다.
“피곤한데. 잠 좀 자야겠다.”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수아를 지나쳤다.
뭔가 연신 말하려던 수아였지만. 내 단호하고 싸늘한 행색에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녀의 고개가 시무룩하게 침몰하기 시작한다.
“…으, 우.”
버려진 개새끼처럼 처량한 행색.
내가 노골적으로 대화를 거부한 게 꽤나 충격적이었나 보다.
‘혹시 저건, 연기인가?’
왜 사람들이 의심 ‘암귀(暗鬼)’라는 표현을 하는지. 나는 지금 그것을 실감했다.
울기 직전인 수아를 보고도 그녀를 의심하기 바쁘다니. 얼마 전의 회차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다.
“수아야.”
나는 그런 강수아를 나직이 불렀다.
퍼뜩, 수아가 고개를 든다.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시선이 날 빤히 쳐다본다.
“네, 네.”
“내가 화날 만한 짓 했었냐?”
“아… 네?”
“네가 한 행동들 중에 내가 화날 만한 짓. 짐작 가는 게 있냐고.”
물어본 뒤엔 수아의 얼굴을 지그시 노려봤다.
뱉으면서도 떠올렸다. 이렇게 영양가가 없는 질문이 세상에 또 없다.
수아의 대답은 무조건 부정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나한테 영원회귀를 시킨 자각이 있다면. 사실대로 말해줄 리가 없고.’
반대로 자각이 없으면 당연히 짐작 가는 게 없다.
예상대로 수아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내 싸늘한 눈빛에 압도된 듯, 숨을 점차 가쁘게 머금었다.
“…아, 으……!”
이내 주르륵.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아가 황급히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울먹거렸다.
“거봐. 화, 화난 거 맞잖아요. 오빠……!”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냥 화난 걸로 하자.”
“읏……!”
“그래서 짐작 가는 게 있냐, 없냐.”
“호, 혹시요. 아까 오빠 몰래 냉장고 뒤져서, 딸기우유 빼먹은 것 때문에 그래요……?”
수아가 빨갛게 부은 눈으로 되물어온다.
본인도 내뱉으면서 ‘설마 이거겠냐’ 싶은 얼굴. 하지만 차라리 그거였으면 좋겠다는 듯한, 절박한 기색도 느껴진다.
그녀가 도리도리, 고개를 연신 가로로 저었다.
“모, 모르겠어요. 그거 말곤, 저… 흐흑. 도저히 짐작이 안 가요.”
“…….”
“오, 오빠. 미안해요. 뭔지는 몰라도, 제가 사과할게요. 잘 화내지 않는 오빠가 이렇게까지 화낼 일이니까. 분명 제가 뭔가 엄청 잘못했겠죠. 그쵸?”
“…….”
“사과할 테니까. 그, 제발. 화 좀 풀어봐요. 네……?”
수아가 울먹울먹 어렵사리 말을 끝냈다.
그녀의 어깨가 떨린다. 눈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평소의 나였다면 한껏 당황하면서 달래줬겠지.
“…….”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있었고. 그저 수아의 동태를 유심히 살필 뿐이다.
저 눈물은 거짓일까 진실일까. 그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타탓! 수아가 내게서 등 돌려 현관으로 달려간다.
“저… 오늘은, 돌아갈게요. 오빠.”
“…….”
“미안해요. 뭔진 몰라도… 내가 미안해요. 오빠.”
덜컹! 현관문이 빠르게 수아를 집어삼킨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현관을 한동안 멍하니 응시했다. 그녀가 남기고 간 사죄가 주박처럼 사지를 옥죄어왔다.
나는 홀린 듯이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고.
“이미 글렀네. 저건.”
푸지직!
꺼내든 블라이스의 단검을, 그대로 목에 쑤셔버렸다.
수아와의 관계가 방금 대화로 최악까지 치달았다. 다시 그녀의 신뢰를 얻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니, 그냥 자살해서 리셋하기로 했다.
“끅… 컥. 거헉!”
부정하지 않겠다.
그냥 귀찮아서. 자살하는 이유를 축약하면 그거다.
그런 하찮은 이유로도 칼같이 자살하는, 옛날의 나로 돌아와 버렸다.
“……흐.”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수아의 목숨에 집착했던 것도. 함부로 자살하지 않는다는 망령된 약속도. 내가 죽은 뒤의 세상을 쓸데없이 떠올리는 것까지.
결국 미친 듯이 목을 조르는 허탈감에서 도망치기 위해 자살을 택했다.
‘이번에는 정말. 최후의 죽음인 건 아닐까.’
이대로 눈뜨지 못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젠 그냥 그런 생각밖에 안 든다.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테즈몬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