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103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3)>
박현우가 인상을 한껏 찌푸렸고. 이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으, 으음.”
그는 한동안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아마 우리 집 거실의 삭막한 풍경이 비치고 있을 테다.
“어! 다, 다, 당신!”
이내 박현우는 눈앞에 멀뚱히 서있는 나를 포착했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경악은 곧 격렬한 분노로 바뀌었다. 박현우의 얼굴은 순식간에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 개새끼가!!”
박현우가 내게 달려들기 위해 상체에 바짝 힘을 줬지만. 저항은 시작 단계에서 허망하게 저지당했다.
철그럭! 온몸을 구속한 새하얀 쇠사슬 때문이었다.
“뭐, 뭐야. 이건……!”
박현우는 의자 위에 단단히 속박된 자기 꼴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사슬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저항해 보지만, 철그럭! 상체를 칭칭 휘감은 순백의 사슬은 B급 헌터의 괴력으로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그쯤에서 슬쩍 언질을 줬다.
“용써도 소용없어. 괜히 힘 빼지 마라.”
“뭐, 뭐라고?”
“그거 아무리 지랄해도 안 풀린다고. 평범한 사슬이 아니라 던전 아이템이다.”
“이, 이런 X발……!”
기껏 생각해서 말해준 조언은 수포가 되었다.
철걱! 철커덕! 그 뒤로도 박현우의 격렬한 저항은 계속되었다. 제 풀에 지쳐 포기할 때까지.
어디 백날 그래봐라. 그게 풀리나.
[아이템 정보]
[명칭: 바실라스의 안개(B급)]
[타입: 설치형/보조]
[효과: 단일 대상을 속박한다.]
[효력 범위: 생명체의 속박에 한함.]
[상세: 제45던전의 던전 마스터 ‘로드 바실라스’의 클리어 보상. 안개의 마귀 ‘미스트 엘프’ 종족의 원념이 구체화된 사슬. 물리적 작용으로는 절대 파괴되지 않는다.]
아이템의 상세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저 허옇게 일렁거리는 사슬은 물리적인 저항으로는 절대 파괴되지 않는 아이템이다.
반대로 마법 저항은 지나치게 취약한 게 단점이라, 평소엔 잘 안 쓰지만…….
‘박현우 한해선 걱정할 필요 없겠지.’
나는 전생의 경험으로 박현우의 전투 스타일을 파악한 상태다.
박현우는 특대검을 사용하는 피지컬 몰빵형 전사. 마법계 스킬을 사용하는 건 보지도 못했고, 상태창을 봐도 지력이나 마력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이, 이거 풀어! 빨리 풀라고! 이 개새끼야!”
박현우는 곧 쇠사슬을 푸는 건 포기했다. 그 대신 바락바락 악을 쓰며 나를 맹렬히 쏘아보기 시작했다.
힘으로 안 되니 입을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긴 어디냐. 나를 어디로 끌고 온 거야!”
“우리 집이다.”
“지, 집이라고?!”
“그래. 이브가 자고 있으니 사운드 좀 낮춰줬으면 좋겠는데.”
“이브라니……?”
영문 모를 소리에 박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든 말든, 나는 침대 쪽으로 시선을 흘깃 옮겼다. 죽은 거 아닐까 싶을 만큼 숙면을 취하는 이브가 보였다.
“우음. 음냐아.”
짤막한 잠꼬대가 생존 신고를 한다.
바로 옆에서 박현우가 한창 지랄 블루스를 추는데도 요지부동. 이 악물고 별나라 꿈동산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저거 괜찮은 거 맞나?’
이브는 까마귀와의 일전 이후 계속 저 상태였다.
슬슬 걱정이 드는 한편.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엔 변신 시간이 길었긴 하지.’
왼손목은 한 번 갑옷째로 잘리기까지 했다.
딸기우유 받겠다고 꾀병 피우던 전과 달리, 진짜 피로가 누적됐어도 이상할 건 없다.
“나를… 어쩔 셈이냐! 원하는 게 뭐야!!”
그 와중에도 박현우는 줄기차게 의문을 토해냈다.
그리고 난, 딱히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미안하게 됐다. 박현우.”
“뭐, 뭐라고?!”
“아무튼 딱 좋을 때 깨줬어. 잠깐만 참아봐.”
“지금, 대체 무슨 소릴……!”
마침 잘됐다. 이쪽도 준비가 거의 다 끝나가는 모양이니.
나는 옆에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토식이를 쳐다봤다.
“준비됐냐, 토?”
“물론이지, 옥.”
토식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었다.
치직!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튕겨 불을 붙이고, 그것을 박현우의 면상 방향으로 천천히 가져가기 시작했다.
“자자, 확인 들어갑니다잉?”
흡사 타짜의 한 장면.
토식이의 음험한 웃음이 한 걸음, 한 걸음. 박현우를 향해 다가간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꽤 호기심이 인다.
“뭐, 뭐야. 이 새꺄! 지금 뭐, 뭘 하려는……! 오, 오지 마!! 다가오지 말라고!!”
박현우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가 전에 없이 온몸을 비틀어 대며 연신 당혹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결국 토식이와 박현우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쪼끔, 따끔하다?”
토식이는 불붙은 담배 끝을, 박현우의 미간 정중앙에 그대로 꽂았다.
치지직! 살타는 매캐한 내음이 순간 코를 찔렀다.
“윽!!”
박현우의 짤막한 신음성.
나는 의아한 나머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담배빵?’
의아함은 둘째 치고 당혹스러움이 더 컸다.
뭐 대단한 짓 하려고 저러나 했는데. 고작 한다는 게 담배로 얼굴 지지기냐?
‘뭐 하자는 거지.’
확인 작업 전에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추궁의 의미로 토식이의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는 그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이변이 시작되었다.
“끄으, 크으으윽……!!”
박현우가 눈을 부릅뜨고 신음을 흘렸다.
처음엔 온몸을 바싹 굳힌 채 경련하듯이 떨던 그였지만. 이내 온몸의 떨림이 점차 격렬해지더니, 부릅뜬 눈이 핑글 돌아간다.
허옇게 흰자위만 남은 두 눈이 징그럽게 뒤룩뒤룩 돌아갔다.
“끄아, 아아……. 아아아아악!!”
쩍 벌어진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마구 쏟아졌다.
예상치 못한 소음에 나는 황급히 침묵 스킬부터 방에 둘렀다. 행여나 소리를 듣고 옆집에서 수아라도 찾아오면 큰일이니까.
[스킬 발동: 침묵의 장막]
스르륵. 묵직한 마력 역장이 방에 깔린다.
그제야 나는 안심하고 다시 박현우의 동태를 살폈다.
“그… 흐으. 그, 그만. 그만해……. 사, 살려줘. 미안해. 내,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뭐야. 뭐, 뭐냐고!! 이, 이게. 그흑… 그만, 그마아아안!!”
박현우는 엄청난 공포에 질려 있었다.
무언가를 향해서 연신 사죄한다. 그리고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던 전생의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 생소한 풍경에 나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으음. 이건 텄구만?”
그리고 그 순간. 박현우를 유심히 뜯어보던 토식이가 입을 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옥좌야. 꽝이었나 보다.”
“…꽝?”
“얘는 육사도의 모체가 아니야. 평범한 인간이다.”
토식이가 벌써 최종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아까 그 담배빵이 나름의 선별 의식이었나 보다. 평범한 담배빵이 아니라 비범한 담배빵(?)이었군.
얼떨떨한 내게 토식이가 첨언해 왔다.
“육사도가 깃들어 있다면, 이미 진작에 내 부름에 응해야 했거든? 근데 이 꼴을 봐.”
토식이가 연신 혀를 차며 박현우를 가리켰다.
새삼 박현우의 처량한 몰골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온다.
온몸을 공포로 벌벌 떨면서. 두 눈이 허옇게 뒤집힌 채 눈물과 콧물, 그리고 침을 줄줄 쏟고 있었다.
“미, 미안해.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미안해. 살려줘.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리고 방언 터진 것 마냥 자비를 구하고 있다. 끊임없이, 필사적으로.
누구를 향한 사죄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저건 거부반응이야.”
토식이가 상념을 꿰뚫고 한마디 내뱉었다.
나는 홀린 듯이 그 말을 되뇌었다.
“…거부반응.”
“그래. 육사도가 아닌 일반인의 반응이지.”
“그렇다는 건…….”
“4번 연속으로 3차 붕괴에서 만난 거. 진짜 그냥 기막힌 우연이었나 본데?”
“허.”
그야말로 운명 같은 우연의 연속이었군. 그 정도면 어이가 없는 걸 넘어서 경탄스럽다.
나는 한숨을 흘리며, 박현우를 슬쩍 가리켰다.
“결국 박현우는 육사도와는 하등 관련 없는 일반인이었다. 그게 최종 결론이냐.”
“그래. 그런 거지.”
“나중에 딴소리 나오면 곤란한데, 확실한 거겠지.”
“나를 뭘로 보고.”
뭘로 보긴. 중요할 때만 귀신같이 못 미더워지는 이세계 토끼지.
본인의 지난 행적이나 반추해 보길 바랄 뿐이다.
“후우.”
나는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고. 지금도 끊임없이 염불 외는 박현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덥석!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틀어쥐었다.
“미안하게 됐다. 박현우.”
“으, 아아. 죄, 죄송. 미안합니다……. 살려줘요, 미안합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대체 뭘 봤길래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만. 다 잊어버려.”
“아, 윽!”
파지직!
슬립 스킬이 제로 거리에서 스며들었다.
직후 ‘괴뢰의 실’을 발동했다. 질척하고 끈적한 감각이 등줄기를 핥으며, 박현우의 이마로 붉은 마력의 실이 파고든다.
“꺼흑.”
박현우는 단말마처럼 숨을 토해냈고.
이내 추욱, 온몸에 힘이 빠지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박현우가 잠에서 깨면, 직전의 1시간 정도의 기억이 완전히 소거되어 있을 것이다.
“뭐, 그럼.”
스르륵.
나는 박현우에게서 순백의 사슬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푹 늘어진 박현우에게 광학미채 슈트를 대충 입혀놓은 뒤. 자연스럽게 어깨에 들쳐 업었다.
“…얘 좀 원위치에 버려두고 온다.”
“어, 그래.”
“볼일이 좀 있어서 늦을지도 몰라.”
“그러시든가.”
“문단속 잘해라. 아무한테도 함부로 문 열어주지 말고.”
“내가 애새끼냐? 걱정 말고 갔다 와라.”
차라리 애새끼였으면 내가 하는 말이라도 잘 듣겠지. 옛날의 이브처럼.
한마디 할까 하다 관뒀다.
“쯧.”
그렇게 영 못 미더운 당부를 남긴 뒤, 덜컹.
나는 현관문을 열고 복도에 나왔고. 이번 3차 붕괴 현장이었던 예술의 전당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여기는 천안의 한 병원. 고요한 개인 병동.
나는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여인을 말없이 주시하고 있었다.
“…….”
아까부터 이 여자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박현우가 혼절해 있을 때와 꽤나 비슷한 상황이었다. 내 기약 없는 기다림은 벌써 2시간을 돌파해 가고 있다.
그리고 내 2시간의 결실이, 드디어 맺히기 시작했다.
“으, 으음.”
눈앞의 여인이 인상을 한껏 찌푸렸고. 이내 천천히 눈을 뜬 것이다.
“여, 여기는?”
그녀는 한동안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정신이 드냐. 이세라.”
“아아?”
여인… 이세라는 한동안 얼빠진 탄성을 흘렸다.
그녀는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습관처럼 눈가를 매만졌다. 그리고 흠칫, 손끝을 떨었다.
당연히 느껴져야 할 안대의 감촉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보, 보지 마요……!”
이세라가 황급히 손을 올려 두 눈을 가렸다.
양 뺨이 전에 없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보여서는 안 될 치부라도 보인 것 마냥, 수치심과 굴욕감으로 점철된 표정이다.
나는 그 익숙한 거부반응에 손사래를 쳤다.
“네 맨눈은 전생에서도 실컷 봤어. 가릴 필요 없다.”
“그, 그래도 싫어요! 누, 눈! 눈 감아요! 얼른요!”
“굳이 그럴 것까지는…….”
“빨리!!”
“쓰읍.”
이세라치곤 유난히 앙칼진 반응이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였고. 잠시 후 눈을 말똥말똥 뜬 채,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됐어. 감았다.”
“…진짜요?”
“진짜로.”
“진짜 정말이죠?”
“진짜 정말이다.”
어차피 맹인인 이세라는 진위를 판단할 수단이 없다.
그녀가 일상생활이 가능한 건 마력 파장을 박쥐의 초음파처럼 활용하기 때문인데. 우리는 진짜 박쥐가 아닌지라, 파장을 읽어내는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
눈앞의 사람이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진 파악할 수 없다.
“그, 그러면.”
이세라가 한참을 쭈뼛거리다 조심스럽게 손을 치웠다.
그리고 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건… 보여주기 싫을 만도 하지.’
텅 비어 움푹 파인 눈두덩.
그 주위로 자글자글한 흉터.
눈가를 중심으로 시퍼렇게 불거져 나온 힘줄들과, 송골송골 맺힌 찐득한 진물까지.
몬스터의 그것처럼 흉측한 몰골이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