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49화 (149/235)

149화

<101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거대 장난감의 군세가 속속들이 테마파크로 밀려들어온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사방을 뛰어다녔다.

“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수백 번이나 봐온 학살과 유린의 현장.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으로 되풀이되었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만 가득하다.

“…가자. 이브.”

“으응.”

치지직!

이브에게 미리 입혀놓은 광학미채 슈트를 작동시켰다.

내 품에 안겨있던 그녀의 모습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곧장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츠츠츠. 내 신형도 공기 중에 녹아들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기, 아빠.”

에티가 기거하는 장소까지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와중, 문득 이브가 날 불러왔다.

슬쩍 시선을 내렸다. 보이지 않는 그녀의 형상을 가늠하며 대답했다.

“왜 그러냐.”

“그 언니는 있잖아. 나를 보고 나면 머리가 이상해지는 거야?”

“그런 거 같던데.”

“으음, 대체 왜? 왜 하필 나야?”

“…왜냐고?”

그러게. 왜 그러지.

왜 하필 이브의 면상을 보면 에티가 이상해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깊게 생각을 안 해봤는데.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건 상당히 의문스러운 점이긴 했다.

“혹시, 내가 그렇게 괴상하게 생겼어? 그러면 좀 슬플 것 같은데.”

“아니. 그건 절대 아니고.”

이브가 엉뚱한 오해를 하길래 바로 정정해 줬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도 에티가 발작하는 원인은 모르기에 명확한 해답은 내줄 수 없었다.

그저 무거운 침음을 흘린 뒤.

“…이번에 기회 되면, 내가 한번 물어볼게.”

그렇게 애매한 약속만 해줬다.

꾸욱, 문득 내 팔뚝을 붙잡던 아귀심이 약간 강해졌다.

“으응. 꼭 좀 물어봐 줘, 아빠.”

기분 탓인가. 마지막 한마디에선 약간의 절박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광학미채로 얼굴이 가려져 확실하진 않다.

* * *

“어라? 얼라리?”

이젠 저 탄성도 슬슬 지겨워지려 한다.

에티는 허공에서 갑자기 등장한 나를 보고, 이번에도 똑같은 반응을 해왔다.

“뭐야? 내가 눈이 잘못됐나? 아닌데?”

“그래. 네 눈 잘못된 거 아니다.”

“…아저씨, 대체 누구?”

“누군진 알 거 없고. 여기나 봐라.”

나는 이미 자살런 빡숙. 쓸데없는 대화는 최대한 건너뛰었다.

치지직! 곧바로 이브의 광학미채 슈트를 벗겨버렸다.

“…아?”

에티의 시야에 이브가 포착되었다.

그녀는 곧장 얼빠진 탄성을 흘렸고. 진녹빛 시선에서 생기가 빠르게 죽어갔다.

직후 예정된 종말을 향해 철마가 달려간다.

“귀머거리 토끼. 길을 잃은 까마귀. 목이 잘린 붉은 용…….”

에티가 천천히 육사도의 이름들을 읊기 시작했다.

여섯 사도를 하나씩 전부 나열한 뒤. 그녀가 기괴하게 목을 꺾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전에 없이 날카롭고 공허한 시선이 쏟아진다.

“아저씨. 전에도… 나 본 적 있지? 엄청 많이.”

그리고 그녀는 틀에 박힌 질문을 내뱉었다.

여기서 나는 이제 고민에 빠졌다.

‘무슨 말을 해야 원하는 반응을 할까.’

‘육사도’를 언급하면 당장의 자살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에티가 대화 불능의 심신미약 상태로 진입한다. 혼자 뜻 모를 소리를 한참 중얼거리다가. 어느 순간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자기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지.

‘왜 이브를 보면 이상해지는지…라.’

그냥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그것부터 물어볼까?

그래. 어차피 이어질 에티의 반응이 완전히 미지수인 상황이다. 정면 돌파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고.

“있잖아, 초록 머리 언니.”

터벅.

이브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오더니, 별안간 나보다 먼저 입을 열어버렸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아?”

그런데 놀랍게도 에티가 반응했다.

디룩. 에티의 눈알이 천천히 굴러갔다. 그녀의 흐리멍텅한 시선에 이브가 똑바로 포착되었다.

그 초점 없는 눈과 마주치자 흠칫, 이브가 어깨를 움츠렸다.

“으, 으으.”

이브는 겁먹은 기색으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잘근 깨물고, 결의에 찬 눈을 똑바로 치켜떴다.

“그… 어, 언니.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

그러나 에티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끈 떨어진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이브를 관망할 뿐이다.

반응은 한없이 시원찮았지만, 이브는 아랑곳 않고 꿋꿋이 할 말을 한다.

“언니는, 혹시 내가 누구인지 알아?”

“…….”

“혹시 나에 대해 알면, 뭐라도 좋으니까. 아빠한테 좀 가르쳐 줘. 부탁이야.”

“…….”

“아빠가… 나를 잘 몰라서 무서워해. 나는 그게 너무 싫어. 그러니까… 응? 제발. 언니가 나에 대해서 뭐라도 알면. 아빠한테, 나에 대해서 알려줘.”

이어지는 이브의 푸념까지 전부 들은 뒤, 나는 벌어졌던 입을 퍼뜩 닫았다.

내 시야가 미약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브.”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겁 많은 그녀가 선뜻 에티에게 말을 건 것. 그리고 자기에 대해 알려달라는 것까지.

내가 이브에게 갖는 거리감을 없애고 싶어서였나?

‘그게 그렇게까지 싫었던 거냐.’

내가 자길 무서워하고, 꺼려한다는 상황이?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나는 대체… 이브한테서 어떤 존재인 거지.’

머릿속이 좀 복잡해진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시간이 꽤 흘러갔다.

“…….”

에티는 그 순간까지도 딱히 반응이 없었다. 다만 게슴츠레하게 뜬 눈이 이브의 면면을 찬찬히 살핀다.

핥는 것처럼 집요하고 꼼꼼하게 쳐다보다가, 이윽고.

“푸핫!”

입매를 잔뜩 일그러뜨렸다.

빵 터지는 웃음. 그녀의 입에서 별안간 폭소가 터져 나온 것이다.

“파하하! 개웃겨!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진짜 웃긴다고, 너! 아하하하핫!”

에티가 이브의 면상을 삿대질하며 미친년처럼 웃었다. 그녀의 광소가 널찍한 성내로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좀 닥쳐보라는 의미로 중얼거렸다.

“뭐가 그리 웃기냐, 던전 마스터.”

이브는 어느새 내 등 뒤로 숨어버렸다.

에티가 본격적인 미친년 모드로 돌입하니, 치솟는 산치(san値)를 버틸 수가 없어진 듯하다.

“뭐가 웃기냐고? 장난하냐? 이게 안 웃긴다고?!”

에티는 일그러진 얼굴로 비명처럼 외쳤다.

펄럭! 그녀가 어깨에 걸쳤던 외투를 망토처럼 펄럭였다. 커다란 빵모자 아래의 시선이 희번덕하게 빛났다.

“봐봐. 쟤가 자기에 대해 알려 달라잖아, 아저씨!”

“나도 들었다.”

“저 계집애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저씨한테 말이야! 자기 정체를 알려달래!!”

“들었다고. 그래서 뭐.”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데??”

“…뭐?”

“진짜 개병신 같아! 육사도가 초인한테 그딴 짓은 왜 하는데? 대체 얼마나 스토리가 꼬였길래! 아하하핫!!”

육사도.

그리고 초인.

에티가 횡설수설 내뱉은 몇 가지 단어들. 이번에도 확실히 들었다.

‘역시.’

저번 만남 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브가 육사도 중 하나인 <하트 여왕의 눈물>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지난 전생에서 베르페아노가 이미 말해줬던 부분이니까.

‘그리고 내가, 초인이다?’

이건 베르페아노가 아니라 무르무르에게 들었지.

무르무르 새끼. 나를 곧 죽어도 ‘초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베르페아노가 나를 이 악물고 ‘도전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단순히 내가 강한 인간이라서가… 아니었나?’

눈앞의 에티도 나를 ‘초인’이라 칭했다.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어였나. 그런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다.

초인. 초월한 인간이라니… 내가 정확히 무엇을 초월했다는 거지?

“으흐흐, 후우. 좋겠어? 초인 아저씨. 육사도가 신경도 써주고. 크크큭.”

퍼뜩.

심해까지 잠겨가던 상념이 순식간에 뭍으로 끌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에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뭐, 덕분에 심심하진 않았네. 고마워 아저씨.”

에티의 자살 트리거 대사가 들린다 싶은 순간.

타아앙! 이미 에티의 손가락 총은 발사되어 있었다.

그녀의 조롱 섞인 유언만이 환청처럼 귀에 맴돌았다.

[제41던전 ‘장난감 왕국’의 던전 마스터, ‘심심한 에티’가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철퍼덕.

에티의 목 없는 시신이 쓰레기처럼 널브러졌다.

철철철. 내 발치로 시뻘건 선혈이 빠르게 번져나갔다.

[게이트가 힘을 잃고 소멸합니다. 던전의 붕괴가 종식됩니다.]

사위의 모든 장난감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춘다.

동시에 쿠구구구! 에티의 장난감 성이, 천장부터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실시간으로 쩍쩍 갈라지는 천장을 멍하니 주시했다.

“그럼 이제… 뭐가 나오냐.”

탈출할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 그래서 태평하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기다리는 것은 다름 아닌 보상 패널. 에티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자살시켰을 때 받는… ‘두 번째 보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삐빅. 마침내 내 귓가로 고대하던 알림음이 울렸다.

[아이템 ‘토끼 몸통’을 획득하셨습니다.]

쉬리릭!

전과 비슷한 수순으로, 내 손엔 작고 하얀 털 뭉치 같은 것이 쥐어졌다.

우선 처음으로 느꼈던 감상은…….

‘존나 묵직하네. 기분 나쁘게.’

그것이었다.

이번에 얻은 아이템 이름은 <토끼 몸통>. 다리와 머리통이 전부 뜯겨나간 토끼의 몸통 같은 살덩어리가 등장했다.

전의 ‘토끼발’에 이어, 솔직담백하기 그지없는 네이밍 센스다.

‘상태창은?’

당연히 가장 먼저 상태창부터 살펴봤다.

그리고 그 결과, 토끼발과 마찬가지로 물음표로 점철된 것을 확인했다.

역시 세 개의 파츠가 다 모여야 뭐라도 시작되겠군. 그런 사실만이 좀 더 확실해졌다.

‘이 순서면 아마…….’

다음에 얻을 아이템은 대충 예상됐다.

다리 나왔고. 몸통 나왔으면. 이제 남은 건 뭐겠냐. 머리뿐이지.

쿠구구궁! 그 순간 장난감 성이 다시 한번 굉음을 토해냈고, 붕괴가 한층 가속되기 시작했다.

“아아, 이게 뭐야.”

미친 듯이 뒤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문득 탄식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브였다. 그녀가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에티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대답도 안 해주고. 혼자 무섭게 웃어대기나 하고. 이 언니 짜증나, 진짜…….”

이브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차며 툴툴거렸다.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급박한 배경과 지극히 안 어울리는, 지나치게 태연한 행색이다.

옆에서 잡생각이나 하던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후우.”

스르릉!

나는 미리 준비해 놨던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목에 틀어박았다.

“……!!”

푸화악!

단검을 뽑아낸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진통스킬 <페인 킬러>로도 억누를 수 없는, 압도적인 고통이 일순 들이닥쳤고. 고통을 훌쩍 상회하는 죽음의 공포가 순간적으로 등줄기를 엄습하길 잠시.

“…잘 자, 아빠.”

이브의 슬픈 듯한 인사가 들려왔다.

‘너도.’라고 말해주기도 전에, 후욱. 의식이 삼켜졌다.

* * *

[1019번째 도전은 실패했습니다.]

[기억과 유물을 계승하고, 1020번째 도전을 실행합니다.]

기어코 10의 자리가 2를 돌파해 버렸다.

분명 에티의 ‘장난감 왕국’은 2차 붕괴에서 출현율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 내가 자살런을 선뜻 결심한 거기도 하다.

‘평소엔 싫어도 아득바득 기어나오던 년이.’

필요할 때는 야속할 정도로 두문불출하고 있다.

하다 하다 물욕 센서가 던전 출현율까지 적용이 되는군. 통탄에 겹다.

[다음 회차로 계승할 유물을 선택하십시오.]

당연히 키 아이템인 ‘토끼 몸통’을 선택.

[유물의 계승이 완료되었습니다.]

[초인 ‘한정용’의 선택에 의해, 시간선이 역변합니다.]

[현재 시간선: 2031년 11월 27일. 오후 2시.]

눈을 떴다.

지겨운 내 방의 풍경이 등장한다.

이젠 거의 본능적으로 이브부터 탐색하는 내가 있다.

“잘 잤어, 아빠?”

그리고 이브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목격한 순간. 나는 1020번째 영원회귀의 시작을 실감했다.

가슴 깊이 안심한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