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101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7)>
내가 떠올린 것은 당연히 하트 기어였다.
999번째 회귀자였던 한정용이 얻은 S급 아이템. 혈천갑의 모체.
현재는 ‘이브’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백발 적안의 소녀.
“…하트 여왕의 눈물.”
그리고 베르페아노는 지금 그녀를 ‘하트 여왕의 눈물’이라 칭했다.
애덤 크로스 그리고 던전 마스터 에티가 말했던 여섯 문장. 이브도 그중 하나인 <하트 여왕의 눈물>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으음?”
내가 얼떨떨하게 중얼거리자, 베르페아노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놈은 미약한 탄성을 흘렸고. 이내 의문스럽게 물어온다.
“자네, 설마 그것도 눈치 못 채고 있었나?”
“…어렴풋이, 뭔가 중요한 애일 거라는 예상은 했다만.”
“에잉, 힌트가 그렇게 많은데 이 사람아. 그 정돈 눈치 좀 채게!”
베르페아노가 답답하다는 행색으로 잔소리를 먹였다.
짜증은 나지만 할 말은 없었다.
머쓱하게 머리만 긁적이는 내게 베르페아노가 계속 말했다.
“흡혈귀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보석이잖나. ‘하트 여왕의 눈물’이란 칭호에 그 계집만큼 적합한 존재가 어디 있나. 쯧쯔.”
“…그렇게 말하니, 그것도 그렇군.”
나는 떨떠름하게 수긍했다.
어쨌든 저게 사실이라면 나로선 기쁜 소식이다.
‘나랑 이브. 6개 문장의 주인공 중에서 벌써 2개는 보유 중인 셈이군.’
게다가 애덤 크로스에게 심어져 있는 주저앉은 광대. 그리고 던전 마스터 에티의 귀머거리 토끼까지. 2개의 위치를 추가로 파악하고 있는 셈이니까.
나는 혹시나 싶어서 슬쩍 떠봤다.
“그 하트 여왕의 어쩌구. 옥좌가 어쩌구. 그것들 있잖냐.”
“음? 뭐 말인가. 육사도 말인가?”
“그래. 명칭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거.”
육사도(六使徒).
풀어쓰면 대충… 여섯 명의 사도. 신의 여섯 종복.
베르페아노는 문장이 가리키는 의문의 여섯 존재를, 그렇게 칭했다.
‘육사도라고 부르는구나.’
일단 좋은 거 하나 알아간다.
나는 헛기침을 한 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육사도라는 놈들이 한곳에 모이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
“그건 말해줄 수 없네.”
베르페아노는 생각보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슬쩍, 눈썹을 틀어 올렸다.
“왜냐.”
“보상 영역 밖의 정보니까. 그것까지 은근슬쩍 알아가려는 건 욕심이지.”
“…….”
“그러니 미안하지만 함구함세, 도전자.”
전혀 미안할 것 없다. 내 의도는 이미 먹혀들었다.
베르페아노의 거절로 이것이 확실해졌다.
‘그 육사도라는 놈들은 영원회귀 절단이 아니라. 던전의 최종 붕괴 저지 쪽에 좀 더 관련 있을 확률이 높다.’
보상과 관련이 없어서 대답을 못 해?
그러면 최소한 영원회귀 절단의 열쇠는 아니라는 소리다.
‘모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으면 베스트긴 한데.’
아쉽지만 괜찮다. 베르페아노가 거부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정보로 이어졌으니.
놈이 어떻게 반응해도 무조건 이득이었던 것이다.
“허헛. 자네도 그사이 많이 능청스러워졌구만.”
베르페아노도 내 속내를 금세 꿰뚫은 듯하다.
놈이 대견하다는 듯이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참기 힘든 불쾌감이 쏟아졌지만, 짐짓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빨리 보상이나 내놔라. 또 당하기 싫으면.”
“정말로 그래야겠군. 그럼 어디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본격적으로 베르페아노가 서두를 뗐다.
나는 마른침을 간신히 삼키고 온 신경을 놈의 입에 집중했다.
“일단 이것들을 좀 물어보고 싶네만.”
베르페아노의 입술이 열리기 시작한다.
잠시 수염을 긁적이며 뜸을 들이나 싶더니. 놈이 눈알을 살살 굴렸다.
“자네가 잃어버린 기억. 뭐일 것 같은가? 조금이라도 짐작이 가나?”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그래. 자네는 그걸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지. 그게 문제란 말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베르페아노.”
“그러면 내가 잃어버린 기억을 사실대로 말해준들, 자네는 그게 사실이라고 믿을 수나 있겠나? 이거 분명, 지금의 자네에겐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들릴 텐데.”
“안 믿으면. 내 까짓 게 뭘 어쩔 건데.”
자포자기와 자학이 담긴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것인가.
“음. 나쁘지 않은 마음가짐일세. 그 정도면 충분해.”
베르페아노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놈의 시선과 어조가 한층 낮게 내리깔렸다.
“가장 중요한 소실된 기억의 정체부터 말해두고 가겠네. 빙빙 돌아가기도 귀찮으니.”
더 이상의 서론은 없다. 본론부터 들어가겠다고 선언하는 베르페아노.
마침내, 놈이 ‘소실된 기억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강수아는 이미 죽었네, 도전자.”
무슨 말이 나와도 놀라지 않을 생각이었다.
전에 없이 오픈 마인드였다고 자부한다. 내가 사실 사람이 아니라 던전의 몬스터였다 해도, 무지성으로 믿을 생각이었다.
“…지금, 뭐라고.”
하지만 나는 결국 들었으면서도 되물었다.
그리고 베르페아노는 이번에도, 친절하게 재방송을 해줬다.
“자네가 구하려고 발악하는 그 계집 말일세. 자네의 영원회귀가 시작되기도 이전에, 이미 한 번 죽었다는 말일세.”
아까보다도 훨씬, 잔인할 정도로 상세하게.
그가 태연한 어조로 떠벌거렸다.
“강수아가 진작에 사망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잊어버렸을 때, 앞뒤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한 기억들 전반. 자네가 빼앗긴 것은 그런 기억일세.”
놈의 말이 끝난 직후.
잠시 골방에 압도적인 침묵이 깔렸다.
철컥철컥. 드르륵드르륵. 벽면을 가득 메운 도르래가 돌아가는 소리. 톱니바퀴 맞물리는 소리만이 멍한 머리를 두들긴다.
“…….”
“…….”
그렇게 한참의 침묵이 휩쓸고 난 뒤,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강수아. 수아는… 살아있다.”
“그렇겠지.”
“지금도 내 옆집에서, 멀쩡하게 잘만 살아있다고. 방금도 만나고 왔단 말이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나도 자네의 기억을 먹어봐서 대충은 알고 있네.”
내 목소리는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떨렸지만. 베르페아노는 여전히 느긋한 어조다.
나는 슬슬 그 태연함에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안다는 새끼가. 무슨 개 같지도 않은 소리를……!”
“죽었다가 되살아났다니까.”
“…뭐?”
“지금 버젓이 살아있는 강수아. 그녀는 자네의 영원회귀 이전에 이미 한 번 사망한 뒤, 부활한 강수아라는 소리지.”
“…….”
“이제 못 알아들은 척은 자제하게. 같은 말 되풀이하는 것도 슬슬 지치는구만.”
강수아 개같이 부활설.
베르페아노는 그런 믿기 힘든 사실을 토해냈고. 모르쇠를 일관하는 내게 정중히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문득, 놈이 특유의 악동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반대로 내가 좀 묻고 싶네, 도전자.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나?”
“뭘 말이냐.”
“왜 자네가 회귀하는 순간은 11월 27일, 오후 2시로 고정되었을까.”
“…왜, 냐고?”
“정작 던전 붕괴는 하루도 아니고, 무려 이틀 뒤인 11월 29일쯤부터 일어나지. 무슨 기준으로 그 날짜가 설정된 것일까? 마음의 준비나 단단히 하라고, 이틀 정도는 보너스를 준 건가?”
“…….”
“자네도 1010번이나 반복했으면. 무조건 한 번쯤은 떠올려봤을 테지? 왜 하필이면 그런 애매한 순간에 회귀점이 고정되었을까.”
저건 분명 사실이다.
‘왜 하필이면 나냐?’, ‘대체 내가 뭘 해주길 바라는 거냐?’와 함께…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이냐’.
영원회귀에 대한 궁금증 TOP3 안에 언제나 당당히 자리매김했었지.
“그야. 궁금한 적은… 물론 있지만.”
“있지만?”
“솔직히,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호오.”
나는 그 호기심을 눌러 죽였었다.
의식적으로 억눌렀다기보다는, 알아서 그렇게 됐다. 저건 회귀를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퇴색할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다.
왜냐고?
“내가 백날 고민해 봐야…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니까.”
그래서 고민하길 포기한 거다.
회귀 초창기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정신도 없고 여유도 없었다. 의미도 없는 의문으로 깊게 고민할 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테지. 그건 현명한 판단일세. 나라도 그랬을 걸세.”
베르페아노는 이번에도 다 알고 있었다는 양 맞장구친다.
이젠 일일이 화내거나 짜증내기도 지친다. 나는 그저 피곤한 눈으로 놈의 면상을 묵묵히 노려보기만 했다.
“그럼 도전자. 내가 왜 지금 이런 쓸데없는 걸 물어봤겠나?”
베르페아노는 내 반응이 시들하자, 곧바로 해답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대답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의도가 워낙 뻔했으니까.
“회귀점이 고정된 시점이… 수아랑 관련이 있는 거냐.”
“그 정도 눈치는 있군. 정답일세.”
“아까 네가 한 말. 수아가 부활했다는 소리를 생각해 보면…….”
“강수아가 한 번 확실하게 사망하고, 죽은 지 약 30분 만에 자네의 면전에서 되살아난 시점. 그게 11월 27일 오후 두 시였네.”
“…….”
“그 시점이 그대로 영원회귀 시작점이 된 거다.”
그래. 그런 소리겠지. 대충 예상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그리고 터무니없는 정보가 들어왔다
아까부터 머리가 심하게 어지럽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덜컹거리는 심장이 좀체 진정되질 않았다.
극심한 현기증이 일어난다. 수많은 상념과 목소리가 뒤죽박죽 머리를 들쑤셨다.
“과거의 나는 답을 분명 알고 있었다.”
그래. 분명히 답을 알고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전부 잊어버렸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려서. 토할 정도로 반복된 회귀 때문에 지쳐서 잊어버렸다.
분명 그럴 거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나한테 남은 게… 이것밖에 없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빼앗긴 거였다. 과거에는 확실히 갖고 있던 목적성을… 베르페아노에게 빼앗겼던 거다.
정확히는, 내 손으로 직접 넙죽 갖다 바쳤다.
“나는, 부활한 수아의 정체를… 비밀을, 알고 싶었던 거였구나.”
내가 수아의 목숨에 유난히 집착하는 이유.
한 번 죽어버린 그녀를 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집념도 물론 있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거대하고 근본적인 이유. 그녀가 뭔가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다는 걸, 당시의 나는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걸세, 도전자.”
베르페아노도 그제야 고개를 흔쾌히 끄덕였다.
그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다시 살아났다고 순진하게 좋아하기엔… 아무리 단순한 자네라도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는 게지. 일단 영원회귀의 시작과도 시기적으로 너무 절묘하잖나.”
“그건, 분명 그렇지.”
나는 힘없이 고개를 푹 떨궜다.
시야가 뒤흔들린다. 발밑의 지지대가 아득하게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안에 박혀있던 가장 뿌리 깊은 상식이 박살났다. 그로 인한 반동은… 상상 이상의 공허함과 허탈함을 가져왔다.
“그리고 자네의 의심은 진실을 꿰뚫고 있었네.”
베르페아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놈이 베푸는 보상이,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진 것이다.
나는 가까스로 대꾸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실제로 그 계집… 강수아는 말일세. 자네의 영원회귀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소리지.”
“…….”
“이건 자네가 잃어버린 기억은 아닌데. 내 특별히 덤으로 그냥 가르쳐 주는 걸세.”
생색 부리듯 유독 거만한 말투로 말하는 베르페아노.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덤.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뭘. 사실 대단한 건 아닐세. 어차피 지금의 자네… 하트 여왕의 눈물을 손에 넣은 자네라면. 어차피 슬슬 그 계집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테니까.”
“…그건 또 무슨.”
“하트 여왕의 눈물. 강수아에게 지나치게 살갑지 않던가?”
“…….”
“거 보게. 내가 그랬잖나. 그래서 999번째 이후의 자네에게만, 이 잃어버린 기억이 의미가 있는 걸세.”
수아를 무려 ‘엄마’라고 확신하는 이브.
던전의 비밀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브가 수아와도 뭔가 깊은 관련이 있다.
지금의 나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안다.
“그래. 확실히…….”
이제는 베르페아노가 했던 말들이 이해됐다.
이브의 존재를 아는 지금의 나는, 베르페아노가 못을 박아주지 않았더라도. 무조건 수아를 엄청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나는, 대체 왜.”
나는 푹 숙인 머리를 양손으로 마구 쥐어뜯었다.
베르페아노는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젠 나 자신이 잘 이해가 안 됐다.
“왜 나는… 현자의 눈을 거래한 거냐.”
결국 나는 그 기억을 포기하고, 현자의 눈을 선택했다.
그런 나 자신의 선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떠올려보고 싶어도, 관련 기억이 깡그리 말살돼서 떠올릴 수조차 없다.
“과거의 나는. 왜 수아의 비밀을… 포기한 거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난 지금도 ‘수아가 한 번 죽었다’라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그냥 이해 자체가 잘 안 된다. 헛소리고 농담 같고 개소리 같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사실을, 왜. 어떻게 포기해 버릴 수가 있냐고. 대체… 나는……!”
딱히 베르페아노에게 추심한 건 아니다. 그냥 자괴감 어린 혼잣말에 불과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르페아노의 ‘대출혈 서비스’가 이어졌다.
“뭘. 이백 번쯤 헛수고를 반복하고 나면. 슬슬 지칠 때도 됐지.”
딱 한마디.
놈이 내게 흔쾌히 답변해 준 것이다.
내가 납득하는 데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런 건가.”
“그런 거다. 오히려 한낱 범부주제에, 그 지독한 허망함과 권태감을 오래도 버텼다고 칭찬해 주고 싶군, 도전자.”
베르페아노는 한동안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옅은 미소와 함께 첨언했다.
“자네는 수백 번이나 회귀하고서야 드디어 깨달은 게지. 고작 자네 따위의 피나는 노력만으론, 강수아에게 얽힌 비밀을 절대 풀 수 없다는 것. 그걸 211회차에 이르러서야 서서히 인정하기 시작했네.”
“…그런 거군.”
“그래서 자네는 강수아의 비밀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 것을 직감했지만, 망설임 없이 현자의 눈을 거래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그 선택이 또 다른 돌파구가 되어주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나는 히어로가 아니다.
무력하다. 무언가 얻으려면, 무언가 희생해야 한다.
그것을 슬슬 깨달아가던 시점. 그게 바로 저때쯤이긴 했다.
“…그런, 거군.”
“그런 것이다.”
대답하는 내 고개는 한없이 추락했고. 책상에 그대로 처박혔다.
이마로 서늘한 금속의 감촉을 느끼길 잠시. 뚫린 귀로 목소리가 계속 흘러들어온다.
“그래서 자네의 영원회귀는 현자의 눈을 얻은 후 완전히 다른 양상이 되었네.”
“…….”
“자네에게 가장 중요했던 목적성을 깡그리 잊어버린 자네는, 이유도 모른 채 던전 붕괴를 막아내는 데만 혈안이 되어버렸다.”
“…….”
“어떻게든 강수아를 지켜야 한다. 이제 자네에게 남아있는 목적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뭐,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시작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게지.”
베르페아노가 내 머리 위로 조용히 뇌까렸다.
남은 게 그것밖에 없다. 그 익숙한 말에 나는 지친 눈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지금. 하트 여왕의 눈물을 얻은 999번째 회차를 기준으로…….”
베르페아노의 면상이 보인다.
놈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한층 말려 올라갔다.
“자네의 영원회귀는 다시 한번 대격변을 하고.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일세.”
어조는, 역시나 무미건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