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40화 (140/235)

140화

<101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4)>

4차 시험이 무사히 끝나고. 큐브가 투박한 정방형 공간으로 돌아온 그때.

스스슷! 베르페아노의 환영은 이번에도 아득바득 내 앞에 기어 나왔다.

―축하하네. 이제 최종전만 남았군.

“그래.”

―자네가 너무 강해져서 어떤 스테이지든 후다닥 지나가 버리니……. 이거 참. 금세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구만. 아쉽기 그지없어 그래.

“마음대로 지껄여라.”

실컷 아쉬워하든가. 이쪽은 아쉬울 거 전혀 없다.

나는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베르페아노를 향해 닦달했다.

“빨리 마지막 스테이지나 내놔라. 베르페아노.”

―거 보채지 좀 말게. 아직 쉬는 시간 1분도 안 지났네. 큐브 재기동 대기 시간은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이 사람아.

불만스럽지만 어쩔 도리는 없다.

큐브의 설계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쓰읍.”

나는 혀를 낮게 차고는 팔짱을 단단히 끼웠다. 정서 불안 환자 마냥 다리를 달달 떨며, 문제의 1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 잠깐의 침묵도 가만히 내버려 둘 베르페아노가 아니다.

―도전자. 혹시 받고 싶은 보상이 구체적으로 있나?

놈은 기회다 싶었는지 툭 물어왔다.

어차피 내가 무시해도 일방적으로 지껄일 것을 알기에, 그냥 대꾸해 줬다.

“일단 눈 시리즈는, 솔직히 받고 싶지 않다.”

―오호?

“천칭의 눈도 여신의 눈도 별로 필요 없어. 차라리 널 한 대 팰 권리를 준다면, 그걸 선택하겠다.”

허심탄회하게 본심을 얘기했다.

그 대답이 꽤나 의외였던 걸까. 베르페아노의 허상이 눈썹을 조금 비틀어 올린다.

―그건 좀 예상외구먼? 왜지? 아까 현자의 눈은 엄청 잘 써먹고 있다고 했잖나?

“대가가 크니까.”

―…….

내 즉답에 베르페아노가 침묵했다.

놈의 지긋한 시선이 가만히 나를 마주하다, 스르륵. 눈꼬리가 슬며시 호선을 그렸다.

기분 나쁘게 일그러진 시선이 나를 빤히 응시한다.

―그렇군. 용케도 그건 기억하고 있었구먼?

“잊을 수 있을 리가.”

―그 말대로일세. 강력한 힘에 걸맞게, 무시할 수 없는 대가가 도사리고 있긴 하지.

히죽. 베르페아노가 수염 안에서 입매를 잔뜩 일그러뜨렸다. 나는 그 기분 나쁜 표정을 응시하며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냈다.

전생의 언젠가… 211회차 때, 놈에게 들었던 ‘눈’의 대가들. 그것들을 하나씩 열거하기 시작했다.

“천칭의 눈은 시력을 빼앗긴다.”

정확히는 양쪽 눈알을 물리적으로 도려내 버린다.

그렇게 도려내진 눈알은, 베르페아노가 주인 앞에서 맛있게 핥아먹다 삼켜버린다. 이건 놈이 말해주진 않았고 이세라가 말해줘서 알고 있다.

굳이 당사자 면전에서 그러고 싶을까. 언럭키 하후돈 새끼.

“여신의 눈은 진실을 입에 담을 권리를 빼앗긴다.”

여신의 눈은 모든 거짓과 환상을 간파해 주는 힘.

대신 평생 자신의 본심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내가 본 거짓을 거짓이라 남에게 얘기하지도 못한다. 평생을 거짓말만 하며 살아야 한다.

그 철칙을 어기고 진실을 입에 담는 순간, 온몸의 구멍에서 모든 피를 쏟아내고 즉사한다.

“그리고 현자의 눈은…….”

―기억을 빼앗기지.

베르페아노가 내 말을 가로챘다.

놈의 기분 나쁜 조소가 어느새, 귀밑까지 찢어져 있다.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억들. 그것을 송두리째 내가 가져간다.

“그래. 그리고…….”

―그리고 빼앗긴 본인은 당연히, 그 기억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지.

“…그래. 그거였지.”

―그래서 자네의 기억 역시 어딘가에 구멍이 나있을 것이야. 아주 공허하고, 거대한 구멍이 말이야.

사실이었다.

나는 베르페아노와 거래를 해 현자의 눈을 얻었고. 그 대가로 내 기억을 바쳤다.

놈의 말대로 내 기억에는 구멍이 여럿 있다.

‘그런데 어떤 기억을 바쳤는지. 정작 지금의 나는 모른다.’

과거를 애써 반추해 보려 해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뭘 잊어버렸는지도 모르니까. 기억해 내려 해도 기억할 수가 없는 거다.

‘게다가 이제 와서는…….’

회귀자라 발생하는 기억의 풍화 문제까지 겹쳤다.

내 기억에 구멍이 많은 건 나도 안다. 근데 이게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아니면 놈에게 빼앗겼기에 기억이 안 나는 것인지. 그것조차 모호해졌을 정도로… 회차가 너무 반복돼 버린 것이다.

―미래는 볼 수 있으나 한 치 앞은 못 본다. 모든 거짓을 꿰뚫지만 진실을 말할 수 없다. 삼라만상을 소상히 알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모른다.

문득 베르페아노가 장광설을 중얼거렸다.

마력으로 재구성된 놈의 형상이, 전에 없이 음험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실로 적절하고 적당하며, 합당하고 합리적인 대가가 아닌가?

“…….”

―음. 반추해 봐도 역시 훌륭한 안배가 따로 없군. 역시 이 몸이야.

그래서 뭔 말이 하고 싶은가 했더니. 결국 X발, 지 자랑이 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피곤해진 나머지 냉큼 축객령을 내렸다.

“1분 진작에 지났다. 최종 시험이나 내놔.”

―음, 그래. 서론이 길어졌구만. 미안하네. 허헛.

“미안이고 나발이고. 빨리 달라고.”

―거 사람 성미 참. 알겠네. 남은 이야기는, 직접 만나고 마저 하지.

놈은 나와 대면하는 걸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사실 나도 그렇긴 하다. 현 시점에서 아무리 난이도 있는 보스가 튀어나온들, 지금의 나를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니까.

―아무튼 자네가 그런 마인드라면, 더더욱 이번 보상을 기대해도 좋아. 도전자.

베르페아노의 허상이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놈의 웃음기 어린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보나마나 또 개소리나 질질 싸겠지. 그리 예상한 나는 일절 무시하려고 했지만…….

―자네가 전에 바친 그 대가… 잃어버린 기억에 관한 보상도 준비해 뒀으니까 말일세.

퍼뜩!

사라져 가는 베르페아노에게 고개를 쳐들었다.

놈의 웃는 얼굴이 속절없이 무너져 간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잠깐……!”

하지만 스르륵. 놈은 용서 없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손끝을 까딱이며, 멍하니 놈이 사라진 곳을 부릅뜬 눈으로 주시했다.

얼마나 망부석처럼 있었을까.

[제5시험의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쿠르르륵!

큐브가 전후좌우로 요동치며 상념을 마구 뒤흔들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다잡았고. 다가올 보스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큐브 내부의 정경이,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간다.

[최종 시험 구역―고룡의 평원]

등장한 것은 메마른 바람이 불어오는 황량한 평야.

그리고 압도적인 덩치와 고고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한 마리의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최종 시험―고룡 격파]

[도전자의 수준에 걸맞은 최종 시련은 ‘고룡’입니다. 유폐된 땅에 은거한 고룡을 격파하여,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증명하십시오.]

[완료 보상: 현자 베르페아노의 독대]

“…뭐, 평범하구만.”

나는 약간 안심하며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스테이지를 지나쳐 와서 처음 보는 보스가 나왔고. 그 알맹이는 무려 드래곤이다.

혹시 대단한 기믹이라도 숨어있나 긴장했는데, 의외로 패널엔 별 내용이 없었다.

‘그냥 잡아 죽이면 된다, 이거잖아.’

특수한 기믹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보스전이 귀찮아진다. 하지만 퀘스트 창에 ‘어떻게 죽여라’라는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았다.

그 말인 즉슨, 단순한 완력으로 때려죽일 수 있는 상대란 뜻이다.

이렇게 된다면 중요해지는 건…….

‘현자의 눈.’

저 드래곤의 파라미터다.

놈의 죽음은 확정이지만, 이제부터 얼마나 빨리 죽는지. 그것이 결정될 것이다.

삐빅. 고룡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몬스터 정보]

[명칭: 은룡(隱龍) 칼라바트]

[체력: 165 마력: 101]

[힘: 71 민첩: 68 지능: 73]

[상세: 고룡의 권능으로 분리된 공간에 칩거하여, 자신이 속했던 세계의 종말을 피해낸 드래곤. 현재는 베르페아노에게 사로잡혀 그의 수족이 되었다.]

‘아니. 좀 친다?’

내 생각보다 강해서 좀 당황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더 읽어본 뒤에야 상태창을 닫았다.

이 정도면 거의 10차 붕괴… 아니, 좀 널널하게 보면 11~12차 붕괴 수준의 무력이었다.

“고작 2차 붕괴인데. 뭔 괴물이……?”

순간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지만. 사실 전부 내 업보이긴 했다.

‘연옥의 지평선’ 최종 보스의 수준은 전 시험들의 클리어 타임이 영향을 미친다. 그것을 전생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다만.’

어렴풋이 각오는 했는데. 설마 진짜로 저런 무지막지한 수준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런 느낌의 경악이었다.

‘뭐… 그래도.’

생각보다 전투가 길어질 각은 보인다.

그렇다고 내가 패배할 정도는, 당연히 아니다.

“후딱 끝내자, 용가리.”

키잉!

번개를 머금은 단검을 어깨 뒤로 장전했다.

딱히 반응을 바란 말은 아니었다. 그냥 끈질긴 습관이 이번에도 나왔을 뿐.

―오랜만이군. 나를 등장시킨 도전자라니.

그런데 상대에게서 반응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전투태세를 약간 풀었다.

“…방금 그건.”

영혼을 직접 두들기는 듯한 웅혼한 울림.

목소리의 주인은 눈앞의 고룡… 칼라바트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놈을 빤히 올려다봤고, 이내 단검을 치켜들었다.

“너. 말도 할 줄 아냐?”

―네놈 같은 미물도 하는 것이 말이다. 못할 이유가 있느냐.

“할 줄은 아는데 족같이 하는구나. 애미가 그리 가르치냐.”

―인간은 말 몇 마디 내뱉는 것조차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가. 처량한 미물이로고.

“…….”

우량 도마뱀 새끼가 셋바닥이 좀 맵다. 말빨 좀 치네.

더 이상 아가리 놀리지 않기로 했다. 절대로 개빡치거나 말싸움에서 진 건 아니고. 하등 의미가 없다고 느껴서 한 발 빼는 거다.

진짜다. 아무튼 그렇다면 그런 거다.

―내게 덤빌 셈이냐, 처량한 인간.

문득 칼라바트가 물어왔다.

약간 의기소침해졌던 나는, 음험한 미소를 띄웠다.

“처량한 나한테 뒤져보자. 오늘.”

내 나름 유쾌하게 받아친 거다.

절대 도마뱀한테 말싸움 졌다고 뒤끝을 부리는 게 아니다.

나 화 안 났다. 아니. 진짜로.

―유쾌하군.

내 뜻을 놈도 알아줬음인가. 칼라바트가 중얼거렸다.

나를 내려다보는 시뻘건 시선에서, 뜻 모를 아련함이 느껴진다.

―그 건방진 늙은이에게서 벗어날 날이… 기어코 오는가.

그것으로 목가적인 대화는 끝났다.

놈은 일언반구도 없이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렸고. 그것을 내 위로 들이밀었다.

푸화악! 이글거리는 불꽃의 격류가 나를 향해 밀려들었다.

“부모도 없는 게 상도덕도 없네. 미친 용가리 새끼.”

나는 진작에 칼라바트의 등에 올라타 있었고. 코웃음 치며 중얼거렸다.

내 뒤론 지그재그를 그리는 다섯 줄기의 섬광이 어른거리고 있다.

5연속 비약. 혈천갑이 없을 때의 내 주력기였다.

“뒤져.”

뿌드득!

놈의 등가죽에 단검을 깊숙이 쑤셔 박은 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놈의 머리. 하늘 방향으로 신형이 빠르게 역류하기 시작했다.

“좀 따끔하다.”

우드득, 푸바바박!

질척한 파육음과 폭포처럼 쏟아지는 선혈.

놈의 거대한 비늘이 사정없이 뜯겨나간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새빨간 피에 뒤섞여 사방으로 무참하게 비산했다.

―크오오오오오!!

이제 칼라바트의 입에서, 화염의 브레스 대신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 나는 놈의 목덜미까지 도달했고. 곧장 놈의 급소 방향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스킬 발동: 안티 매직 리플렉터]

콰콰콰쾅!

등 뒤로 날아온 수백 발의 화염탄. 그것이 내 외통수를 틀어막았다.

화염탄 세례의 기세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나는 결국 배리어로 버티다 못해,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 폭격지대를 이탈했다.

―고, 공교롭게도… 이 몸은 지금, 내 것이 아니니라.

괴로움에 찬 전음이 다시 한번 들려온다.

푸화악! 놈이 거대한 날개를 펼쳐 날갯짓했고, 광풍과 함께 그 거체가 둥실 떠올랐다.

―하여 순순히 죽어줄 수가 없겠군. 나는 최후까지… 전력을 다해 네놈에게 저항할 것이다.

쿠구구구!

놈이 까마득한 상공에서 천천히 활공하기 시작했다.

등가죽의 기나긴 상처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놈은 특유의 오만한 붉은 눈으로 나를 빤히 내려다봤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 나를 죽여다오, 인간이여.

푸화아악!

놈의 입에서 압도적인 홍염이 쏟아졌고. 그렇게 잠깐 멈췄던 전투가 재개되었다.

그 뒤로는 뭐, 놈이 선언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크오오오오오!!

“……!!”

칼라바트는 전력을 다해 저항했다.

그리고 나는, 전력을 다해 놈을 죽이려 들었다.

[스킬 발동: 비약]

[스킬 발동: 리버스 그래비티]

[스킬 발동: 만천화우]

………

……

드넓은 큐브의 하늘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허공을 박차고. 중력을 거스르고. 수많은 칼날비와 나선의 뇌전을 쏟아부어 급소를 노렸다.

칼라바트도 무수한 화염탄과 마법의 광탄. 그리고 작렬하는 브레스로 그에 맞서 응수했다.

―유쾌하군……. 유쾌하구나! 처량한 인간!!

지리멸렬한, 하지만 숨 막힐 듯이 격렬한 공중전의 연속.

5합, 10합. 그리고 50합. 마침내 100합을 넘어가고 150합을 바라보는 그 순간.

키이잉! 기습적으로 휘둘린 내 단검이, 마침내 결정타를 먹였다.

―키오오오오오!!

잘려나간 칼라바트의 뿔 한쪽이 지면으로 추락한다.

던전 종류를 막론하고, 뿔은 모든 드래곤들의 마법의 원천. 이제 놈이 사용하던 화염 마법도 브레스도. 전보다 대폭 약화될 것이다.

나는 다시금 양손을 어깨 뒤로 깊숙이 장전했다.

“끝났어.”

쇄애액!

예상대로 한결 약해진 브레스와 화염 마법의 포화를, 정면으로 뚫고 날아갔다.

나는 양손을 정면으로 그러모았다.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파지지직!

양손에 빠르게 모여드는 나선의 뇌전. 두 가닥의 나선이 서로 상호 작용 하며, 세찬 번개의 소용돌이를 자아낸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라이트닝 헬릭스, 더블.’

파지지지직!

빠르게 회전하던 벼락 줄기 틈새로, 새로운 두 가닥의 벼락이 추가되었다.

총 네 가닥의 굵직한 번개가 손아귀 안에서 흉포하게 날뛰었다.

“번개… 잘랐다고.”

손아귀를 칼라바트의 면상을 향해 정조준했다.

내 신형이 유성처럼 대각선으로 추락해, 마침내 푸화악! 놈의 오른쪽 눈알에 뇌전의 쐐기를 깊숙이 박아 넣었다.

―키이이이이이!!

퍼걱, 퍼어억!

매섭게 치달리는 황금빛 스파크.

가공할 충격파가 놈의 두개골을 뒤흔들고, 머릿속을 헤집는다. 파육음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푸지직! 놈의 반대편 눈알이 부글부글 끓다가 폭발해 버렸다.

―…고…맙…….

쿠우우웅!

칼라바트는 유언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그 거체를 속절없이 지면에 추락시켰다.

평야 전체가 신음하는 거대한 땅울림이 일었다.

내 승리를 알리는 북소리였다.

“후우…….”

칼라바트의 끈적한 피로 온몸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나는 놈의 시신 위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승리를 실감하는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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