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100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9)>
생명력을 깃털 하나하나에 불어넣는다. 그러면 깃털이 내 피와 공명하며 제어권을 갖게 된다.
그렇게 100개, 300개, 500개……. 그리고 마침내 약 1천 개에 달하는, 거의 모든 날개깃과 공명을 마친 순간.
“가라.”
짧게 명령했다.
피피피핑!!
레드 리뎀션의 모든 깃털들이 일제히 솟구쳐, 광대를 향해 발사되었다.
속도는 총알 그 이상. 붉은 섬광의 폭우가 까마득하게 창공을 역류했다.
―으히히힉?!
푸확! 퍼버버벅!
붉은 깃털의 잔상들이 어지럽게 허공을 수놓고. 쉴 새 없이 광대의 전신을 유린했다.
광대의 온몸에서 새빨간 불꽃놀이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아직. 아직이다.’
깃털의 폭우로 한차례 몰아붙였지만.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키잉! 모든 깃털들이 허공에서 일제히 정지했다.
나는 들어 올린 손을 우드득, 움켜쥐었다.
“한 번 더.”
쿠우웅! 피와 생명력을 일거에 발산했다.
광대를 감싸고 흐느적거리던 깃털들이 다시금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파파파팍! 광대의 온몸을 전방위에서 찔러 들어갔다.
―크햐하하하핫!!
푸화아악!
광대의 온몸이 무참히 도륙당하고, 으스러졌다.
이내 형체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나는 스킬 ‘팬텀 베인’의 지속 시간 내내, 놈의 전신을 구석구석 끈질기게 괴롭혔다.
―끼햐아! 캬하하하핫!!
찢어지는 광소와 함께 피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반경 수백 미터가 온통 새빨간 피투성이의 수라도로 변해버렸고. 터져 나온 피가 강처럼 흘렀다.
나는 그 끔찍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장난 아니네, 진짜.’
‘피가 강처럼 흘렀다’라는 표현이 비유가 1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 거대한 몸에서 막대한 혈액이 일거에 쏟아지자, 정말로 피의 폭포가 발생해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사, 살려줘!”
“푸합! 커헉……. 누, 누가……! 좀!!”
시뻘건 선혈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일반인들이 부지기수다.
그야말로 지옥도. 여기는 인세지옥의 한복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우…….”
스킬의 지속 시간이 끝난 직후. 나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방으로 퍼졌던 날개깃들이 다시금 뼈대로 모여들었고. 나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전처럼 날개 자체를 소멸시켜 버렸다.
‘방해돼. 꺼져.’
파스스!
내 손짓에 따라 날개… 레드 리뎀션이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췄다.
그래서, 기껏 신무기까지 꺼내서 일점 폭격을 가한 효과는 있었을까?
나는 기대를 담아 광대의 행색을 주시했고.
―끼… 히히. 이히히히히!!
온몸이 잘 다진 편육 꼴이 되어서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 광대를 목격했다.
다른 곳보다 저놈의 주둥아리부터 좀 썰었어야 했나. 후회가 밀려든다.
“…일단 효과는 없어 보이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여기선 그냥, ‘팬텀 베인’의 성능 테스트를 한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신무기 자체는 상당히 괜찮은 느낌이었다. 상대가 좀 안 좋았을 뿐이지.
“이제 어쩌냐.”
나는 침중하게 중얼거렸고. 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광대의 상공을 맴맴 돌았다.
광대는 잘게 토막 난 사지를 바닥에 늘어뜨린 채, 연신 버러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히히! 키히… 히히히!!
저 X같은 웃음 전도사 새끼는 아직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듣기 싫어서 아가리와 목구멍도 몇 갈래로 찢어발겨 놨건만. 대체 어디서 웃음소리가 나오는 건지.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혹시 저게 트리거인가?’
저 웃음을 완전히 틀어막으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웃음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 그런가. 급기야 그런 발상까지 들었다.
‘시험해 봐서 나쁠 건 없지.’
파지지직!
광대의 머리통을 분쇄육처럼 폭발시켜 버리기 위해, 양손에 번개를 그러모았다.
하지만 내가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보다… 놈이 약간 더 빨랐다.
[‘주저앉은 광대’가 원상 복구 됩니다.]
뿌드득, 우드드득!
놈의 온몸에서 기괴한 파육음이 터져 나오길 잠시.
마치 내가 도살한 순간을 역재생하듯 놈의 살과 피가 허공에 꾸덕꾸덕 뭉쳐들더니, 뭉개졌던 살덩이가 거짓말같이 접합되기 시작했다.
―끄… 으하! 아하하하하!!
이내 원상 복구가 되어버린 주저앉은 광대.
거짓말같이 말끔히. 나와의 교전은 있지도 않았다는 양, 처음과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이었다.
X같은 웃음만은 한층 더 활기차진 것 같기도 하다.
“미치겠네.”
나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놈의 공략법이, 털끝만치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험해 볼 만한 건 전부 해본 것 같은데.’
지속적인 딜링. 먹히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약점이 될 만한 부분도 전부 쑤셔봤다. 아예 전신을 잘게 토막 내봤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팬텀 베인을 통한 폭발적인 순간 대미지 누킹. 이것마저 실패했다.
“죽이기 위한 조건이… 대체 뭐지?”
고민을 입 밖으로 멍하니 내뱉는 순간.
삐빅. 시기적절하게, 패널 하나가 눈앞에 튀어 올랐다.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왕의 하수인은 옥좌 앞에 복속을 거부합니다.]
적법한 절차를 따르라고.
그러지 않으면 왕의 하수인… 주저앉은 광대는 복속을 거부한다.
즉, 쓰러뜨릴 수 없다는 통보였다.
[잃어버린 왕의 위엄을 증명하면, 하수인은 저절로 옥좌에 목을 바칠 것입니다.]
삐빅. 이어 등장한 패널은 그런 말이 적혀 있었다.
잃어버린 왕의 위엄을 증명하라. 그것이 시스템이 말하는, ‘적법한 절차’의 정체인 듯했다.
“대답했어?”
일단 나는 그 사실 자체에 놀랐다.
던전의 시스템이 내 개인적인 의문에 반응하다니.
이런 경우는 내가 살면서, 1천 번의 영원회귀를 반복하면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건…….’
그만큼 지금 이 상황이, 던전의 시스템에게도 중요한 국면이라는 소리인가?
아니. 애초에 던전의 시스템이라는 게, 누군가의 의지가 내포된 것이었나? 평범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고?
“잃어버린 왕의, 위엄을 증명해?”
나는 패널에 적힌 문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머리가 잠깐 멍해진다. 그러자 귓가로 새삼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캬하! 키하하하하!!
잠깐 눈앞의 패널과, 광대의 추악한 모습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이내 시선을 내리깔았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던전 시스템이 불친절한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근데 이번 건 선을 넘었다. 일본의 모 국회의원도 아니고 말이야.
“그 적법한 절차가 뭐냐고 묻잖아. X발아.”
‘어떤 절차를 따라야 죽일 수 있지?’라는 질문에, ‘어떤 절차를 따른다는 건,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위의 대답이 나왔다.
지금 이 새끼 나 놀리는 걸까? 놀리는 거 맞는 것 같은데?
[준비를 마친 왕의 옥좌는, 이미 절차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삐빅, 이번에도 대답의 패널이 튀어나왔다.
역시나. 아까 것도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우연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 패널은 내 의문에 반응해서. 그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미 알고 있다고, 내가……?”
그리고 나는 패널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멍하니 내 손바닥을 쳐다봤다. 가만히 쥐락펴락 해봤다가, 이내 블러드 스트림을 분사해 하늘로 솟구쳤다.
―키야하하하하!!
카가가각!
방금까지 내가 떠있던 자리로 거대한 손바닥이 휩쓸고 지나간다. 멍하니 있는 사이, 광대가 기습적으로 공격을 재개한 것이다.
‘진득하게 생각할 시간도 안 주는군.’
나는 얄궂은 타이밍에 혀를 차는 한편. 놈의 공격을 피하는데 신경을 집중하기로 했다.
얼마나 지리멸렬한 공방을 주고받았을까.
[긴급 재난 상황 안내]
[한.정.용. 헌터님. 재난 문자를 확인해 주세요.]
삐빅― 삐이익―!
혈천갑 내부. 손목의 스마트워치가 미친 듯이 발광하며, 건조한 안내 음성을 쏟아냈다.
보나마나 준전시 긴급 헌터소집령이겠지. 이것조차 영 타이밍이 안 좋다.
“일찍도 보낸다, 호성아.”
나는 조소를 가득 담아 중얼거렸고.
쇄애액, 콰콰쾅! 그 순간에도 광대의 손은 가로로. 세로로. 그리고 대각선으로. 마구잡이로 주변을 초토화해 나갔다.
―캬하하하하하!!
광대의 일소 끝에는 어김없이 손톱이 쇄도한다.
거대한 충격파와 피 보라가 일어났고. 파괴된 교량과 건물, 으깨진 민간인의 시신들이 갈수록 멀리까지 번져간다.
나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해내고 있지만, 주위의 피해가 너무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런.”
어느새 주변이 살색과 붉은색만 가득한 폐허가 됐다. 나는 무심결에 탄성을 흘렸다.
아직 1차 붕괴조차 일어나기 전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피해 상황은… 최소 9차, 10차 붕괴의 피해량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다리가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인가.’
저 방정맞음에, 저 엄청난 덩치로. 다리까지 멀쩡했다?
솔직히 상상도 하기 싫네.
농담 안 섞고 10분 안에, 10차 붕괴 이후의 무르무르와 비슷한 수준의 피해를 각오해야 했을 거다.
해운대구 일대 초토화? 받고.
부산이란 도시 자체가, 몇 시간 만에 지도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알 바는 아니긴 한데.’
선량한 부산 시민들 아무리 뒤져나가도 나는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갈려 나갈 수아의 멘탈은 알 바가 맞다.
내 생각에 슬슬 마지노선이다.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멈춰야 한다.
‘생각을 해보자. 생각…….’
나는 광대의 집요한 공격들을 피하면서 짬짬이,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성능 안 좋은 대가리를 삐걱삐걱 굴려나갔다.
‘결국 내가 열쇠란 건 분명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나다. 이 세상에서 나뿐일 것이다.
이건 단순한 영웅 심리 같은 게 아니다.
‘준비된 옥좌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했지.’
준비된 옥좌.
왕이 죽어서 비어버린, ‘죽어버린 왕의 옥좌’.
이 문장이 지칭하는 대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밖에 없다.
‘그러니 분명히 알고 있을 거다. 내가.’
부정하고 싶어도 내가 확실했다.
애초에 부정할 구실도 없고. 이유도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저 거대한 광대.
놈의 숙주였던 애덤 크로스 박사.
급기야 던전의 시스템 패널까지 한마디씩 거들며 그것을 보증해 줬다.
내가 아무리 부정한들, 눈앞에 닥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각해 내라. 한정용…!’
나는 닥쳐온 현 상황에서 최대한 발악할 뿐이다.
준비된 옥좌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 옥좌가 나라는 걸 알았으니, 내 안의 어딘가에 숨어있을 해답을 찾아내야 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한참을 궁구한 결과.
“…아.”
나는 짤막한 탄성을 흘렸고.
콰아앙! 때마침 정수리로 쏟아져 오는 광대의 손톱을, 정면에서 맞받아쳤다.
―히힉?
광대가 웃는 와중에도 의문에 찬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푸화아악! 놈의 거대한 손바닥이 두 갈래로 무참히 쪼개져 버렸다.
광대는 화들짝, 반 토막 나버린 자기 손을 들어올렸다.
―키하하하하학!!
디룩. 흰자뿐인 섬뜩한 시선이 내 쪽으로 내리꽂혔다.
나는 허공의 한 점에서 요지부동이었고. 다만 오른손을 들어, 사복검의 칼날을 올가미처럼 위협적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광대의 손바닥도 이것 때문에 두 동강 난 것이다.
“알았다.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나는 중얼거렸다.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간신히 찾아낸 ‘해답’을 입에 담는 것치곤, 히마리도 매가리도 없었다.
“나는 답을 몰라.”
그렇다.
내 안에 해답은 없었다.
한참을 궁구한 끝에 깨달은 건, 그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저 광대를 죽일 방법을 내가 알고 있다고?
지랄 마. 진짜로 몰라.
‘그래서 발상을 좀 바꿔봤는데…….’
그랬더니 바로 이해가 됐다.
현 시점의 나는 패 죽여도 광대를 죽일 수 없다.
그게 분명한 현실이었다.
“…준비된 옥좌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이건 내가 무조건 답을 안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준비가 된 놈은 답을 알고 있어야 정상이다. 이런 소리였다.
좀 쉽게 말하면.
“답을 모르는 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내가 저 거대한 하수인을 옥좌 앞에 굴복시킬, 모종의 ‘준비’가 안 된 상태인 거다.
결론이 난 뒤에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 X발.”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만년 동안 증오가 응어리진, 누군가가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