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100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8)>
대한민국 남동쪽 끝자락. 부산.
그 부산에서도 한층 더 끝자락인 해운대 언저리.
여기서 갑자기, 서울에 있어야 할 이세라의 마력이 포착되었다.
“착각인가?”
아니.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세라와 강서윤, 그리고 강수아만큼은 절대 착각이 불가능하다.
1천 번의 영원회귀는 녹록한 것이 아니니까.
‘그럼… 오류인가?’
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번이고 현자의 눈을 재가동해 봤다.
하지만 이 역시 아니다. 몇 번을 돌려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이세라는, 분명히 최근에 이곳을 지나쳤다.
‘좀 더 자세히.’
잔향의 서칭 조건을 이세라로 확정. 그 잔향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더 세세한 정보를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세 몇 가지 정보를 추가로 얻어냈다.
‘잔향이 짙다. 그것도 엄청나게.’
이세라가 지나친 건 비교적 최근.
‘최근’조차 어폐다. 잔향의 농도로 봤을 때, 거의 몇 시간 전에 불과하다.
‘바로 오늘?’
고작 수 시간 전에, 그녀는 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아니. 근데, 그럴 리가?”
깜짝 놀란 나머지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영원회귀가 시작된 이후. 나는 이세라가 자기 주점에서 이렇게까지 멀리 벗어나는 상황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아무 때나 이세라의 칵테일 바에 찾아가면. 무조건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그 여자는… 자기 무덤을 그곳으로 정했으니까.’
이세라는 피할 수 없는 종말에 얌전히 순응하길 선택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는 절대 주점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 자기가 정한 무덤에 최후의 순간까지 칩거한다.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고집이고, 뒤틀린 신념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다?”
루프의 궤도가 바뀌었다.
이번에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멋대로 바뀌어 있었다.
중대 사건이 발생했다. 이건 내막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세라부터 수색해 보자.’
우선순위를 급하게 바꾸기로 했다.
나의 신조는 ‘하나씩 차근차근’이지만. 그 앞에 붙는 대전제는 ‘확실한 것부터’다.
“…확실한 것부터.”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연구원들보단.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낼 수 있는 이세라의 이변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었다.
[스킬 발동: 현자의 눈]
[발동 조건을 변경합니다. 광역 탐색 모드로 전환합니다.]
키이잉!
나를 중심으로 새파란 파동이 퍼져나갔고, 이내 다시 내 눈 주위로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순수한 정보의 집합체들이 가시화되어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도처에 발자국처럼 무수하게 찍힌 마력 잔향을 취합하고. 선별하고. 증폭했다.
수많은 작업 끝에 단 하나의 잔향만이 시야에 남았다. 그 잔향이 흐르는 일련의 동선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부 이세라가 남긴 개성적인 잔향들이다.
“나 몰래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녔나. 구경이나 해보자고.”
탐색 작업을 마치고, 잔향을 빠르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아니. 추격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저, 아빠?”
갑자기 이브가 날 불렀다.
작업에 집중하느라 옆에 있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나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냐. 이브.”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이브가 약간, 미친놈 쳐다보듯 나를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이브가 머뭇머뭇 주저하며 물어왔다.
“그… 있잖아.”
“어. 왜.”
“아까부터 말이야. 호, 혼자 자꾸 뭐라고 궁시렁대는 거야? 주변에 누구 있어?”
“…아.”
“설마 전부 혼잣말이야? 그건 솔직히 좀… 소름 돋는데?”
이브는 대가리가 굵어진 뒤. 아빠의 추태를 지적할 줄도 알게 되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져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음.”
혼잣말은 영원회귀의 반복으로 생긴 습관이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없어진 지 오래기도 하고.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무슨 짓을 하든,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이브가 옆에 있었다는 것도 금방 까먹었지.’
그 정도다.
그만큼 누군가와 계속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익숙하지 않았다.
근데 그 혼잣말 습관을, 막상 면전에서 지적받으니… 솔직히 좀 쪽팔리긴 했다.
“…자중할게. 놀랐다면 미안하다.”
결국 나는 뻘쭘하게 이브를 향해 사과했다.
이브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날 향해 약간 측은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없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시선이었다.
“으응. 아빠, 앞으론 대화가 필요하면 나랑 하자. 알겠지?”
“…그래. 고맙다.”
“히히. 아빠는 싸울 때도 평상시에도, 내가 없으면 안 되는구나! 그치?”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부정해봤자 득 볼 게 없으니, 그냥 흔쾌히 긍정해 줬다.
그러자 이브의 어깨와 콧대가 순식간에 남산만치 부풀어 올랐다.
“으응. 인정할 줄 아는 건 좋은 자세야, 아빠!”
“…그래. 이브. 너밖에 없다.”
“으, 으응! 힘들면 언제든지 말만 해, 아빠. 앞으로도 내가 많이 도와줄 거니까!”
“고맙다. 믿음직하구나.”
약간의 립서비스는 굉장한 효율을 보여줬다.
칭찬이 고래만 춤추게 하는 줄 알았더니. 이세계 하얀 머리 외계인도 춤추게 하네.
“…빨리 가자. 이브.”
그런 실없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이세라의 추격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 * *
이세라 수색도 의외로 금방이었다.
그녀는 약 1킬로미터 떨어진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 익는 걸 얌전히 기다리는 중이었다.
똑똑. 나는 테이블 귀퉁이를 가볍게 두들겼다.
“…아!”
그제야 이세라도 내 인기척을 눈치챘다.
라면 뚜껑만 주시하던 이세라가 스르륵, 얼굴을 똑바로 들어 올렸다.
테이블 정면에 마주 앉아있던 내 눈과 그녀의 시커먼 안대가 똑바로 마주했다.
“…….”
“…….”
잠깐 침묵이 흘렀다.
상대가 먼저 입을 열 기색이 없기에, 내가 먼저 열었다.
“여기서 뭐 하냐. 이세라.”
“어어, 라면 익는 거 기다렸는데요?”
“…….”
이 여자가 지금 장난하나.
아니. 아니지.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하네.
‘진짜 컵라면 먹으려던 건, 맞는 거 같긴 한데.’
이세라도 사람이다, 사람. 배고프면 컵라면 좀 먹을 수도 있지.
이건 애매하게 물어본 내가 잘못했다.
“나도 눈깔 달렸다. 그건 보면 알아.”
“아, 그래요? 부러워요. 저는 눈깔이 안 달려서.”
“…….”
“사실 그래서 라면이 잘 익었는지 가늠이 안 되네요. 혹시 확인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정신이 혼미해지는 대화의 프레이즈다. 이거 시각 장애인 전용 비장의 유머 같은 건가.
삼천포로 빠지는 흐름에 헛숨을 들이켜는 한편.
“…잠시만.”
어려운 건 아니니, 일단 부탁을 들어줬다.
쩌적. 라면 위에 올려져 있던 나무젓가락을 둘로 쪼갰다.
“어디.”
컵라면 뚜껑을 조심스레 들춰낸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면발을 휘휘 저어봤다.
이내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익었네. 야무지게.”
푸욱.
면발 사이에 젓가락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라면 용기를 이세라의 앞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금 빤히, 이세라의 얼굴을 주시했다.
“풉, 푸흐흣……!”
그러자 별안간, 이세라가 입을 가리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폭소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는 기색이었다.
“왜 갑자기 웃냐.”
당연히 나는 의문과 억울함을 담아 물었다.
시킨 거 기껏 다 해줬더니 돌아오는 게 비웃음이다. 누구라도 억울하지 않을까.
이세라도 그제야 손사래를 치며 웃음을 멈췄다.
“아, 흐흐. 죄송해요. 너무 웃겨서.”
“뭐가.”
“정용 씨, 바보예요? 뭐 이런 얼빠진 소리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어요! 푸흐흐!”
“…….”
몇 마디 가까스로 주워섬기더니. 이내 다시 웃음 삼매경에 빠지는 이세라.
나는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 다 알고서 장난치는 거 맞았잖아. 완전히 놀아났다.
내가 이세라에게 항의하기 위해 입을 여는 찰나.
“제가 봤던 그대로군요. 실제로 보니 더 이상한 사람이네요. 당신.”
이세라가 선수를 쳤다.
제가 봤던 그대로.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
수많은 의미를 내포한 한마디였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내 눈은 한없이 가늘어졌다.
“미래의 내가 말한 걸 들은 거냐. 내가 누구인지나, 왜 찾아왔는지.”
“네. 이미 전부 들었어요.”
“가만히 앉아서 뭐 하나 했더니… 내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군.”
“네. 맞아요.”
“그 CCTV 앞의 마력 잔향은, 일부러 뿌려놓은 거였나?”
“그것도 맞아요. 되게 잘 아시네요?”
계속되는 긍정의 향연.
그런데 거기서 잠깐, 이세라가 퍼뜩 라면 쪽에 손을 가져갔다.
“아. 근데 진짜로 라면 먹으려고 기다린 것도 맞긴 해요!”
“…그러냐.”
“네네. 어디, 맛 좀 볼까요?”
후르륵.
라면을 한 젓가락 크게 빨아들이는 이세라.
그녀가 한참을 오물거리다, 꿀꺽 삼키더니. 이내 배시시 웃었다.
“으음! 컵라면 진짜 오랜만에 먹는데, 출출해서 그런가 엄청 맛있네요!”
“원래 시장이 반찬이지.”
“정말 그런가 봐요.”
“…이세라. 날 오래 기다렸냐.”
“아, 그게. 보이는 미래마다 정용 씨가 도착하는 시간이 제각각이라서… 꽤 한참 전부터 기다렸거든요. 그래서 배가 좀 고팠어요.”
“그렇군.”
뭐라 할까.
항상 보던 칵테일 바가 배경이 아니라서 그런가.
내가 잘 아는 외출복 차림의 그녀가, 편의점 테라스에서 소탈하게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유난히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뭐. 아무튼.”
나는 멍한 정신을 바로잡았고. 이세라의 주목을 모았다.
이세라는 내 분위기가 바뀐 것을 감지했는지, 젓가락을 놓고 미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네. 말씀하세요.”
저쪽은 이미 내 의도를 다 안다.
수많은 ‘미래의 나’들이 웬만한 건 다 밝혀줬을 터. 그러니 가타부타 서론을 질질 끌 이유도 없겠지.
이세라와 하는 대화는, 바로 이런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대체 어떻게 알아챈 거냐. 내가 부산에 올 거라는 걸.”
어느새 내 눈에는 의심의 그림자가 끼어 있었다.
정황으로 봐서, 이세라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바로 날 만나기 위해서다.
“대답을 잘하는 게 좋을 거다.”
그것까진 나도 알겠다.
루프가 멋대로 바뀐 이유는 확실히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네 스킬을 꽤 잘 안다.”
하지만 그 근본이 되는 부분이 문제다.
나는 이세라가 가진 예지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네 스킬로는, 지금 이 광경이 보였을 리가 없어. 이세라”
이세라가 보는 미래는 어디까지나, 신변잡기적 미래들.
‘그녀의 주변’에서 일어날 수억, 수조 개의 가능성들 중. ‘가능성이 가장 큰 미래’ 몇 개만을 추려서 보여주는 스킬이다.
“이 미래가 보였으니 부산에 왔다니. 그건 모순이지.”
이세라는 스스로 가게를 나올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면 그녀가 부산에 있는 미래는 안 보여야 정상이다. 그녀의 의지가 쇠심줄처럼 확고하기에, 그럴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네 말은 앞뒤가 안 맞아.”
그런데 이세라는 부산에서 나와 만나는 미래를 봤기에, 부산에 올 결심을 했다고 한다. 스킬의 매커니즘상 그런 미래가 보였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원인과 결과가 뒤죽박죽이다.
“…설명해 주실까.”
의문점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을 마쳤고.
마지막엔 처음과 똑같이. 진득한 추궁의 시선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