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14화 (114/235)

114화

<100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

연구동을 찾아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심심함도 타파할 겸, 뇌리에 떠도는 생각들을 정리했다.

‘전생에서 내가 얻은 유용한 정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슈레더의 기밀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카일 인더스트리 연구원들의 예상 소재지.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이브의 신체를 조사해 줄 만한 연구원의 소재지.

“던전 생태 연구부의 오원태, 였던가.”

지금 그를 만나서 담판을 짓는다.

그것 때문에 싫은 거 참아가며, 헌터 협회까지 직접 찾아온 거다.

“우선은 이것부터. 확실히 처리하고 가야지.”

더 중요한 쪽은 ‘카일 인더스트리’ 건이긴 하다.

애덤 크로스와 로즈 휴스턴은, 3일 전까지만 해도 부산의 해운대 어딘가에 있었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지금도 한국에 있을 거다.

높은 확률로, 여전히 부산의 해운대구 어딘가에서 체류하겠지.

‘하지만. 수색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야.’

CCTV 영상 속 장소야 금세 확정한다 치자.

그래봤자 일대를 샅샅이 뒤져 연구원들을 찾아내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애초에 다른 건 다 차치해도. 가장 큰 난관이 하나 남았는데.

‘두 사람이 진작에 그 근방에서 이탈했을 가능성.’

아니면 해운대 쪽 CCTV엔 우연히 들러서 찍힌 것뿐이고. 애초에 그 주변에 체류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이건 애로 사항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보가 적으니, 변수가 너무 많아.’

그렇다고 수색을 안 해보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원태의 용건만 끝나면, 당장 오늘 저녁부터라도 부산으로 날아가 볼 예정이다.

‘…솔직히 희망적이진 않다만.’

역시 단서가 너무 적은 게 문제다.

그래서 나는 이 건을 좀 더 길게 보고 있다. 최악의 경우, 이번 생에도 그 연구원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도 각오하고 있다.

…제발 그럴 일은 없길 바라긴 한다만.

“우선은 확실한 것. 가까운 것부터.”

이건 영원회귀를 반복하며 얻은 생활의 지혜 겸.

뇌간에 뿌리 깊게 박힌 신념이자 신조였다.

‘하나씩. 차근차근 가야 한다.’

나는 이른바 시간 빌게이츠. 시간 워렌버핏.

회귀자가 돼서 자랑할 거리라곤, 화수분처럼 무한정으로 솟아나는 시간뿐이다.

‘이게 나한텐… 오히려 지름길이야.’

조급해하지 말고.

효율적이진 않더라도. 가까운 것부터 확실하게,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

그걸 반복하다 보면 언젠간 반드시 길이 열리곤 했다.

이게 내가 믿는 방식이다.

“…여기군.”

이내 나는 멈춰 섰다.

헌터 협회 32층. 복도의 후미진 끝자락에 처박혀 있던, 한 후줄근한 문 앞이었다.

시선을 슬쩍 들었다. 문 위로 달린 작은 팻말이 보인다.

[연구동 3―F / 생물과]

바로 여기다.

전 회차의 오원태가 스스로 밝혔던, 자신의 직장.

던전 생태 연구부의 연구동. 생물과. 3―F 연구실이었다.

“실례합니다.”

똑똑.

우선 예의상 노크부터 갈긴다. 그리고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문 너머의 반응은, 딱히 오지 않는다.

“……?”

나는 이브를 슬쩍 쳐다봤고.

이브도 멀뚱히 나를 올려다본다.

“아무도 없나 본데?”

“…그러게 말이다.”

이브만 쳐다본다고 딱히 없던 답이 솟아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이 나올 때까지, 뭔가 더 액션을 취할 수밖에.

철그럭. 문고리를 잡고 돌려봤다.

“계십니까.”

끼이익.

문은 심하게 삐걱대긴 했지만, 일단 잠겨있지 않았다.

문틈을 비집고 이브와 나란히 들어갔다.

[스킬 발동: 침묵의 장막]

쉬리릭!

가장 먼저 방음 스킬을 연구실 전체에 깔았다. 이로써 웬만한 소음은 바깥까지 절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밑 작업을 마친 직후. 나는 연구실 내부 정경을 한눈에 담았다.

“…오호.”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수십 년에 달하는 회귀 짬이 있다지만. 헌터 협회의 연구동엔 찾아올 이유가 전혀 없어서, 당연히 와본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눈앞의 광경은 꽤나 생소한 경험이었다.

‘개인 연구실치곤, 상당히 넓구나.’

실내는 굉장히 널찍했다.

연구실보다는 거대한 강의실. 혹은 대강당에 책상과 살림살이를 늘어놓은 느낌이다.

‘연구동은 다들 이런 식인가.’

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던전 생물의 표본이 널렸고. 형형색색의 시약이 담긴 플라스크가 줄을 지어 서 있다.

좀 후줄근하고 난잡하며, 진열된 던전 생물 표본들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이건… 뭐랄까.’

내가 상상하던 미래적이고 깔끔한 느낌은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연구소. 아니면 차라리 마녀의 집 같다.

이색적인 풍경에 넋을 놓고 있던 그 순간.

“으음? 누구십니까?”

불현듯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이브는 화들짝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이상하다. 찾아오기로 한 사람은 없었는데……?”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책상 하나.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철 너머에서, 빼꼼. 중년 남자의 얼굴이 튀어나와 있었다.

사내의 생김새를 눈에 담은 그 순간.

“아.”

나는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의외로 쉽게 찾았다. 말을 걸어온 사내는 내가 찾던 그 남자. 오원태였다.

나는 우선 꾸벅, 대가리부터 정중히 박았다.

“처음 뵙습니다. 오원태 박사님. 협회 소속 D급 헌터, 한정용이라고 합니다.”

“…헌터? 헌터가, 연구동엔 뭣 하러…….”

오원태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천천히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잔뜩 찌푸린 미간에서 나를 향한 의심과 의문, 그리고 약간의 적대감이 느껴진다.

‘익숙한 표정이군.’

쓴웃음을 머금으며 생각했다.

아까 연구동의 위치를 물어봤을 때. 김진희가 내게 짓던 표정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나는 오원태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고개를 슬쩍 저었다.

‘뭐… 옛날부터 이런 느낌이긴 했어.’

현장직인 헌터.

그리고 사무직인 협회 소속 연구원.

가장 말단인 나조차, 두 세력 간의 알력 다툼이 암암리에 존재한다는 건. 옛날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원래 현장직과 사무직이 다 그렇지.’

딱히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건설 현장만 가봐도 현장직과 사무직은 원래부터 물과 기름. 서로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 없고. 이해할 생각도 없으며. 애초에 이해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업계가 원래 그렇듯. 헌터 업계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지금 오원태는, 헌터인 나한테 기본적으로 적대감을 갖고 있다.’

다만 참고할 사항은 그것이겠다.

그를 내게 협조하도록 구워삶아야 하는 입장이니, 호재는 아니긴 하다.

‘어쩔 수 없군.’

나는 스탠스를 살짝 더 비굴하게 낮추기로 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어깨를 위축시킨 다음. 허리를 슬쩍 숙였다.

“문을 계속 두드렸는데… 반응이 없어서요. 좀 실례했습니다.”

사실 한 번 두드리고 곧바로 쳐들어왔지만. 억울함을 피력하기 위해 MSG를 좀 섞었다.

그리고 내 말에 오원태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아아. 노크하셨습니까?”

“예.”

“죄송합니다. 지금 원체 바빠서. 소리에 신경을 못 썼네요.”

“저야말로 멋대로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고. 그래서 무슨 용건이십니까? 헌터님.”

오원태는 나름 정중하게 날 대접했다.

하지만 눈짓과 어조, 그리고 표정까지. 어떻게든 빨리 나를 축출해 내려는 의지가 다분하게 느껴졌다.

‘빨리 용건 해결하고 냉큼 꺼졌으면 좋겠다.’

‘더러운 헌터 놈들과 길게 말 섞고 싶지 않네?’

온 면상에 저 두 마디를 도배해 놓고 있는 수준.

아무리 서로 싫어한다지만 보통은 좀 숨길 노력이라도 하는데. 이 양반은 노골적으로 적대하는군.

이건 좀 감탄이 나올 수준이다.

‘어지간히도 헌터들이 싫은가 보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봤다.

그가 내 앞에서 토해냈던 불같은 일장 연설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헌터 측의 부당한 견제로, 정당한 연구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던가.

‘그렇군. 알겠다.’

이 데면데면한 상황이 마냥 악재라고만 생각했는데. 사고방식을 조금 달리했더니, 머리맡에 돌파구가 번득였다.

‘파고들려면… 바로 여기다.’

설득의 방향성을 금방 결정지었다.

내가 장고해 봐야 악수만 둘 뿐이지. 방향이 정해졌으면 남은 건 직진뿐이다.

비굴하게 굽혔던 등을 다시 당당하게 폈다.

“다름이 아니라요.”

아까 본인 허락도 있었겠다. 곧바로 용건부터 들이밀기로 했다.

“여기. 이 애를 좀 봐 주십쇼. 박사님.”

이브의 어깨를 양손으로 부여잡았고.

문자 그대로, 오원태의 앞에 들이민 것이다.

‘우선은 스텝 원.’

관심이 있을 만한 것을 제시해 오원태의 관심을 산다.

지금부터 내가 할 것은, 바로 그런 작업이었다.

“…으음?”

오원태가 뿔테 안경을 슬쩍 고쳐 썼다. 그리고 내 말에 따라 이브를 유심히 쳐다봤다.

이내 그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한정용 헌터님. 얘가 뭐 어쨌다는 겁니까?”

“어때 보이십니까.”

“그… 뭐, 애가 참 곱상하네요? 이목구비 뚜렷하고. 피부도 새하얗고. 머리랑 눈 색도 되게 특이하고요.”

“한국인 같습니까.”

“무슨. 설마요!”

“그럼 어디 출생 같습니까.”

“…음……?”

오원태의 시선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질문의 대답 때문에 고민하는 게 아니다. 난데없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도 자체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내 그는 조심스럽게 추측을 내놓았다.

“그… 듣기론 아일랜드 사람들이 피부가 저렇게 하얗다던데. 아일랜드입니까?”

“틀렸습니다.”

“거 참. 세상에 나라가 뭐 한둘이어야 말이지요. 뭐 힌트 같은 거 있습니까?”

“박사님 직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허어. 제 직업과 연관…….”

태평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골똘히 생각하던 오원태.

어느 순간 우뚝, 그의 행동이 정지했다.

“…제, 직업과… 밀접한?”

나직한 탄성.

직후 오원태는 부릅뜬 눈으로 이브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구석구석 샅샅이.

“으. 뭐, 뭐야!”

이브는 당연히 질색팔색을 했다.

오원태의 끈덕진 시선을 피해 몸을 움츠렸고. 내게 도움의 시선을 열렬히 보내왔다.

그리고 내게 열렬히 날아오는 시선이, 금세 하나 더 늘어났다.

“…한정용 헌터님?”

오원태가 나를 빤히 노려보며 호명한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왜.”

어느새 반말을 하는 내가 있다.

하지만 오원태는 그걸 눈치채지도 못했다. 모든 신경이 오직 이브에게 집중돼 있었다.

“설마. 뭐… 얘가 던전의 생물이다. 이런 얘기하고 계신 건 아니지요?”

“그 설마다. 오원태.”

“……!!”

쿠당탕!

오원태가 식겁해서는 숨을 삼켰고. 온갖 오두방정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미, 미친……!”

놈의 부릅뜬 시선이 나와 이브를 번갈아 쳐다보길 잠시.

이내 피식. 허탈한 웃음이 오원태의 입가에 걸렸다.

“하… 참나. 허, 헌터님. 갑자기 제 연구실까지 찾아와서 이런 장난질을 하시는 이유는, 미천한 일개 연구자 새끼인 제가 도저히 모르겠는데요. 근데……!”

“근데.”

“그, 해도 되는 장난이란 게 있고. 아닌 장난이 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이건 하면 안 되는 장난이냐?”

“그야 당연히……! 누가, 던전 생물 가지고 장난을 칩니까! 요즘 세상에 그런 장난 치다간 잡혀갑니다!!”

오원태의 부드러운 눈매가 잔뜩 일그러졌다.

명백한 적의. 인자해 보이는 얼굴이 화난 표정을 지으니, 기세가 제법 살벌하다.

하지만 나는 코웃음을 칠 뿐이다.

“네 말이 맞아. 오원태.”

“…네?”

“멀쩡한 사람한테 던전 생물이라 매도하다니. 하면 안 되는 짓이지. 소문이 잘못 나서 마녀사냥이라도 당하면 큰일이니까.”

여기서 ‘마녀사냥’은 비유 같은 게 아니다.

던전 생물에 대한 일반인들의 잠재적 공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절대적. 때문에 ‘사냥’의 수위 역시 사이버불링 따위완 차원이 다르다.

한때 애꿎은 사람 여럿 죽어 나갔고. 덕분에 ‘헌터 엑소더스’니 어쩌니 해서. 사회 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됐었다.

“예, 예에. 알아주신다니, 그나마 다행…….”

“그러니까 지금부터 보여줄게. 네가 직접 선택해 봐라.”

“…예?”

파지지직!

별안간 라이트닝 헬릭스를 발동. 오른손 위로 시퍼런 번개의 나선을 응집했다.

오원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다 못해, 완전히 넋이 나갔다.

“허, 허, 헌터님?”

“지금부터 둘 중 하나에게 이걸 던진다. 너, 아니면 얘한테.”

“으억?!”

“맞으면 꽤 아플 것 같지? 맞아. 좀 아프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즉사 확정이야.”

“그, 그야 당연히……!”

“특별히 너한테 선택권을 주지. 너한테 쏠까, 아니면 얘한테 쏠까.”

나는 위협하듯 번개의 손아귀를 내뻗었고. 그제야 오원태는 약간 정신을 차렸다.

오원태가 히잇, 새된 숨소리를 삼킨다.

“야. 이 X발, 당신!! 지, 지금, 대체 무슨, 허, 헌터 협회 한복판에서! 대,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릴……!”

오원태는 완전히 패닉에 빠져 횡설수설했다.

허튼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 이대로 밀어붙인다.

“이 애가 정말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희생정신 발휘해서 대신 맞아 보던가.”

“…으, 으윽……!”

오원태가 신음과 함께 물러섰다.

아무렴. 생판 초면인 여자애를 위해 목숨을 던져줄 미치광이가 세상에 몇이나 되려고.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번개를 이브에게 조준했다.

“그럴 거 아니면. 거기서 닥치고 구경하고 있어 봐.”

내가 지금부터 증명해 줄 거니까.

이 애가. 종말의 이브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투학!

나선의 번개가 쏜살같이 쇄도한다. 방향은 이브의 미간, 정중앙.

오원태가 아찔한 얼굴로 손을 뻗어왔다.

“아, 안 돼……!”

“돼.”

콰지직!

번갯불이 이브의 몸뚱이를 세차게 휘몰아쳤다.

번득이는 섬광으로 시야가 명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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