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100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
늦은 오후가 되었다.
나는 이브와 함께 외출했고. 남산 공원 인근에 도착했다.
“…….”
입을 꾹 닫고, 웅장하게 서 있는 건물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신의 발바닥을 찌를 듯이, 까마득하게 높고 넓은 마천루.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본관 건물이 온 시야에 가득 찬다.
정말 오랜만에, 나는 헌터 협회에 출두한 상태였다.
“쯧.”
그리고 아까부터 숨 쉬듯이 혀를 차고 있다.
시종일관 저기압. 우거지상이 좀처럼 펴지질 않는다.
이제부터 저 빌어먹을, 개X같은 헌터 협회에 내가 들어가야 해서 그렇다.
“…후우.”
정말 미치도록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번 생엔 강서윤의 도움은… 받지 않을 거니까.’
아니. 받을 수가 없다.
내가 얻으려는 정보에 헌터 협회 암부가 개입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러니 이번 회차엔, 서윤이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어폐가 좀 있군.’
요구는 고사하고. 애초에 영원회귀에 대해서도 일절 밝히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번 생의 서윤이는,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조차 몰라야 한다.
내가 그리 만들 거다.
‘전과 같은 수순을 밟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왜 헌터 협회에 찾아왔는가.
간단하다. 전생에선 강서윤이 해줬던 일들을, 이번 생엔 내가 직접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쓰으, 후우. 스읍.”
나는 고개를 비틀며 목을 연신 매만졌다.
아까부터 넥타이를 한 것도 아닌데. 자꾸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그렇게 궁상떨기를 한참.
“…드가자.”
나는 비로소 결심을 마치고 건물 입구로 접근했다.
거대한 유리문 앞에 이브와 나란히 섰다. 삐빅. 가벼운 전자음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겼다.
[환영합니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안전과 미래를 책임지는 헌터들의 총본산, 한국 헌터 협회입니다.]
유리문과 우리들의 사이.
허공에 홀로그램 패널이 떠올라 우리를 막아섰다.
[자격 증명 절차를 실시합니다.]
던전의 시스템 패널과 놀랍도록 유사한 디자인과 UI.
실제로 그것을 참고해서 헌터 협회의 개발부가 만들어낸, 최신예 던전 과학의 산물이다.
[생체 마력을 스캔합니다.]
[다소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스캔이 완료될 때까지 자리를 이탈하지 마세요.]
위이잉!
안내 음성과 함께, 출입구 위쪽의 시커먼 기계에서 붉은 광선이 내리쬔다.
순간 이브가 경계 어린 몸짓으로 흠칫했지만. 내가 어깨를 가만히 다독여 주자, 서서히 긴장을 풀고 광선을 받아들였다.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데이터 분석 및 신원 조회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내 삐빅, 하는 가벼운 신호음이 들렸고. 그런 패널이 등장했다.
나는 이브와 함께 진득하게 기다렸다.
“으우. 뭔가 기분 나빴어. 방금 그거.”
이브가 질색하며 몸서리를 쳤다.
가늘게 뜬 붉은 시선은 위쪽의 생체 마력 스캔기에 가 있다.
이내 그녀가 내게 따지듯이 물어왔다.
“아빠! 저건 또 뭐 하는 물건이야? 아빠는 알아?”
“생체 마력 스캔기다.”
“생체 마력? 그, 그게 뭔데?”
“뭐냐면…….”
기다리는 동안 할 일도 없으니, 대충 요약해서 설명해줬다.
모든 생물은 신체에 마력이 흐른다. 비단 헌터가 아니라 일반인이라도, 극소량의 마력이 반드시 혈류를 타고 흐르는데. 이것이 바로 생체 마력이다.
“생체 마력이 흐르는 패턴은 저마다 모두 다르다. 한국에 5천만 국민이 있으면. 5천만 명이 다 달라.”
“흐응. 그렇구나?”
무슨 수를 써도 속일 수 없는 개개인 고유의 패턴.
홍채나 지문 이상의 절대성과 보안성. 그리고 개별성까지.
덕분에 비단 헌터 협회뿐만이 아니고. 보안이 중요한 수많은 업계에서 차세대 본인 인증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무튼 뭔가… 나쁜 짓을 당한 건 아니라는 거지?”
“그래. 그러니까 인상 좀 펴라. 이브.”
“으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라구. 칫…….”
이브가 혀를 차며 고개를 팩 숙여버렸다.
2회차 전의 이세라 사건 때도 느꼈다만. 이브는 자기를 향한 마력의 흐름에 굉장히 민감하다.
또 그것에서,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스캔 완료.]
이내 삐빅.
새로운 패널이 등장해, 나의 상념을 틀어막았다.
[D급 헌터 한.정.용 님. 환영합니다.]
위이잉.
굳게 닫혀있던 유리문이 좌우로 스르륵 갈라진다.
나 혼자의 출입이었다면 여기서 출입 절차가 끝이었겠지만. 이번엔 옆에 이브가 딸려있다.
[신원 미상의 개체와 동행이 확인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삐빅. 곧바로 추가 패널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외부인을 동행할 경우, 데스크에서 반드시 민간인 출입증을 발급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비인가 구역을 임의로 출입할 시. 민/형사상의…….]
“닥쳐 좀. 내 알아 할게요.”
쉼 없이 조잘대는 패널을 파리 쫓듯이 물렸고. 성큼 출입구를 지나쳤다.
이브가 내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협회 로비를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헤에.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걸?”
그 대사는 좀 위험하지 않나.
유명 호러 게임의 사망 플래그인데. 시퍼런 괴물한테 쫓기면 어쩌려고.
그런 실없는 생각이나 떠올리며, 로비의 안내 데스크까지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아. 정용 씨!”
그러자 로비의 저편.
안내 데스크에 앉아있던 안내원 여성이, 대뜸 아는 척을 해왔다.
“진짜 오랜만에 오시네요? 엄청 반갑다!”
“…아. 네…….”
얼떨떨하게 반응했다.
우선 여자의 얼굴을 한 번 유심히 보고, 빠르게 명찰부터 훑었다.
‘그래서 누군데. 네가.’
분명 기억엔 있는 얼굴이긴 했다.
전생에 몇 번 마주친 기억은 있는데. 너무 오래전인 건지 이름을 까먹어서 그랬다.
나는 이내 고개를 까딱이며 맞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네요. 진희 씨.”
김진희. 명찰을 보니 기억이 좀 복원된다.
나와 같은 D급 헌터이면서, 동시에 협회의 안내 데스크 직원을 겸하고 있는 여자다.
‘어쩐지. 유난히 눈에 익다 싶더라니.’
밝고 활기차고. 누구한테나 친절한 사람.
협회의 마스코트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업계에 전체적인 평판이 좋았던 거로 기억한다.
영원회귀 전까진 나도 굉장히 인상이 좋게 남아있었다.
‘암부 소속 암살자기도 했지. 아마.’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저렇다는 거고. 실제론 하위 A급 헌터 정도의 무력을 가진 슈레더의 암살 대원이다.
D급 헌터. 협회 안내원. 거기다 암부의 A급 암살자까지.
‘투잡도 아니고. 쓰리 잡이냐.’
공사가 다망하시군. 김진희.
비웃음 비슷한 무언가가 입가에 맴돌았다.
직전 회차에 슈레더와 거하게 소요 사태를 벌인 나다. 당연히 김진희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껏 고까워졌다.
“그래서, 왜 불렀습니까. 진희 씨.”
“네? 아, 그냥요.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서요! 대단한 이유는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실망하셨어요? 사심이라도 있길 바라셨나? 푸흣!”
“실망은요.”
“아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헤실거리며 태평하게 대답하는 김진희.
그야말로 순진무구. 그 낱말 자체를 사람 모양으로 빚어놓은 면상이다.
저 미소를 보고 누가 협회의 비밀 조직 킬러라고 생각할까. 반전 매력도 이 정도면 너무 심한 수준이지.
‘아니. 오히려 그래서인가.’
이건 인과 관계가 좀 뒤집힌 생각 같다.
저렇게 역겹도록 연기를 잘하니까. 장수혁은 그녀를 눈여겨보고 암부에 가입시킨 것이리라.
이내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팩 돌려버렸다.
‘꼬라봐야 내 눈만 아프지.’
잊어라. 한정용.
이미 지나간 회차. 없어진 일이다.
괜히 살기를 피우고 적개심을 비쳐서, 암부의 암살자에게 의심을 살 이유가 없다.
“진희 씨. 민간인 출입증 하나만 발급 가능할까요.”
지금부턴 용건만 간단히.
빠르게 실리만 챙기기로 했다.
“네? 출입증요? 그야 가능하긴 한데… 아.”
김진희가 의아해하다가, 이내 내 뒤로 찰딱 달라붙은 이브에게 시선이 닿았다.
그녀의 시커먼 눈동자 안. 흥미의 불길이 들불처럼 확 치솟았다.
“어머?! 얘 뭐예요? 엄청 귀엽게 생겼다!”
“아. 그게.”
“와, 피부 새하얀 것 좀 봐! 머리랑 눈 색은 또 왜 이렇지? 한국인이 아닌가 봐요?”
“예. 그게 설명하자면 좀 긴데…….”
“까짓거 한국인 아니면 어때요! 이렇게 귀여운데!”
“……?”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인형처럼 생겼지? 아니지, 인형이 아니라 여신이네요, 여신! 순간 제 눈을 의심했을 정도라니까요?”
“…….”
물론 이브는 귀엽고 예쁘다.
그게 명실상부 객관적인 팩트긴 하다.
‘…얘 왜 이러는데. 갑자기.’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지랄발광을 할 정도로 파괴적인 외모인가 하면. 그건 확실히 아니다.
저 유난쩍은 반응은 김진희가 이상한 게 맞다.
‘저것도 연기?’
아니면 진짜 단순히,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 쓰는 성격인 건가?
잘 모르겠다. 판단이 잘 안 선다.
“안녕하세요? 학생. 이름이 뭐예요?”
김진희가 특유의 넉살을 부리며 이브에게 손을 뻗었다.
후다닥! 이브는 득달같이 손길을 피해 달아났다.
“우으!”
거부감이 잔뜩 들어간 신음성.
이브는 내 등 뒤에 바짝 숨어, 경계 어린 눈으로 김진희를 노려볼 뿐이다.
“…으으.”
격렬하고 노골적인 거부 반응. 꼬리 밟힌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김진희는 무안하게 웃으며 손을 물렸다.
“애가, 낯가림이 좀 심한가 보네요?”
“…예. 좀.”
“추, 출입증. 저 애 걸로 하나 드리면 되죠?”
뭔가 얘기가 상상 이상으로 스무스하게 흘러간다.
이상하다. 이런 건 내 인생답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물었다.
“어, 외부인 인적 확인 절차는……?”
“에이. 정용 씨랑 나 사이인데요! 이번만 특별히 그냥 드릴게요.”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긴 한데.”
너랑 내 사이가 무슨 사이인데.
아무튼, 이건 서로 다행이다. 정신 조작으로 남의 뇌 어루만질 일은 없게 됐으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흘렀다.
그러자 김진희가 은근한 시선으로 날 빤히 올려다봤다.
“왜요. 뭐 설마, 걔랑 큰일 날 짓 하려고 온 거예요?”
“그건 아니죠. 당연히.”
“그럼 문제없잖아요! 그쵸?”
“…예. 그럼 부탁합니다.”
김진희의 넉살 덕에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연신 컴퓨터를 두들겼고. 이내 출입증 목걸이를 하나 건넸다.
나는 그것을 이브의 목에 걸어주는 한편. 다시 김진희를 흘끔 쳐다봤다.
“혹시…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진희 씨.”
“아, 네? 어떤 거요?”
“연구동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난 협회와 연이 별로 없다.
그렇다 보니 협회 건물 구조를 잘 모른다.
세간엔 공개되지도 않은 지하 7층의 슈레더 본부가, 헌터 협회 본관보단 익숙할 정도다.
‘하지만 이 여자는, 표면상 안내 데스크 직원.’
협회 건물의 구조를 빠삭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보단 많이 알겠지.
기회가 온 김에, 얘한테 뽑아 먹을 건 뽑아 먹겠다.
“연구동? 헌터인 정용 씨가, 연구동엔 왜……?”
김진희가 묘하게 인상을 찌푸렸고. 강렬한 의문을 담아 물어왔다.
나는 미리 준비해 놨던 대답을 앵무새처럼 읊조렸다.
“좀 찾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협회 건물 구조를 잘 몰라서, 어디로 오라는 건지를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변명을 주절주절 늘어놓자, 김진희가 뒤늦게 반색해 왔다.
그녀는 은근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분이 연구동으로 오라 그랬나요? 몇 층의 어디인지 설명도 안 해주고?”
“그렇게 됐네요.”
“그런 거라면야. 당연히 말씀드려야죠!”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협회 건물이 워낙 넓어야 말이죠. 정용 씨처럼 올 때마다 길 헤매는 사람 많아요!”
“…그렇습니까.”
“네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안내 데스크잖아요?”
김진희가 살갑게 맞장구치며 책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손에 작은 마름모꼴 수정이 들려 나왔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메모리 크리스탈.’
익숙한 생김새 때문이다.
이 건물 지하 7층의 어딘가. 슈레더 기밀 아카이브에, 저기서 크기만 한참 키워놓은 놈이 하나 도사리고 있지.
“자, 여기 잠깐 보세요?”
내가 새삼 감상에 젖든 말든.
김진희는 휴대용 메모리 크리스탈을 기동시켜, 내 눈앞에 바짝 가져왔다.
“가는 길이 좀 복잡하니까. 이걸로 직접 설명해 드릴게요.”
우우웅.
메모리 크리스탈이 낮게 공명하며 마력의 빛무리가 쏟아졌고. 이내 허공에 홀로그램 형상을 만들어냈다.
헌터 협회 건물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듯한 미니어처였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여기예요. 1층 로비!”
“…음. 네.”
“여기서 제 정면 방향. 동쪽으로 쭉 가셔서 여기, 중간통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으세요. 그럼 엘리베이터 나오거든요? 그래서…….”
김진희는 홀로그램을 만지작거리며, 한참 동안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모든 설명이 끝난 뒤. 나는 침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네. 그럼 고생하세요. 진희 씨.”
“네네! 정용 씨도, 다음에 또 봐요!”
손을 붕붕 휘저으며 작별 인사를 하는 김진희.
나도 고개를 슬쩍 숙여 대꾸해 줬지만. 입가엔 미약한 조소가 어려 있었다.
‘넌 다시는 나 볼 일 없길 빌어. 김진희.’
내가 이 개 같은 건물에 다시 찾아올 용건이라 해봐야, 앞으로 뭐가 남았냐.
백이면 백. 슈레더 몰살뿐이다.
‘행여 다음에 만나면…….’
그땐 A급 암살자 헌터로서 조우하겠군.
전생의 해프닝에 더해, 방금의 해프닝이 있고 난 다음이니까. 똑같이 죽여버려도 나름 신선하게 느껴지는 맛은 있겠다.
“가자. 이브.”
“으응.”
저벅저벅.
이브와 함께, 김진희가 안내해 준 대로 복도를 걸었다.
둘 중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자연스레 우리 사이엔 침묵이 감돌며, 발소리만 이어졌다.
“…….”
“…….”
헌터 협회 던전 연구동이 가까워진다.
내가 용건이 있는 ‘그 사람’도, 점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