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100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
숨이 막힌다.
“우극… 컥……! 크하악!!”
어둡고, 차갑다.
머리는 세차게 짓눌린 상태. 어딜 향해 눈알을 굴려도 시커먼 암흑뿐.
둔중하고 거친 물보라가, 얼굴 전체에 끈덕지고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끄… 부그르륵!!”
나는 지금.
물고문을 당하는 중이다.
“지독한 새끼구만. 너도.”
누군가 귓가에 속삭였고. 직후 내 머리칼을 힘껏 잡아당겼다.
첨벙! 얼음물에 깊숙이 잠겨 있던 얼굴이 공기와 맞닿는다. 깨닫자마자, 나는 본능에 따라 숨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크허억! 푸헉, 허어억!!”
후두둑.
흠뻑 젖은 머리칼과 눈, 코, 입에서 일제히 물이 쏟아졌고. 볼과 턱선을 따라 줄줄 흘러내렸다.
철퍽! 나는 바닥으로 힘없이 엎어졌다.
“허억… 허어. 쿨럭! 커헉!!”
폐에 온통 물이 찬 것 같다.
숨쉬기가 괴롭다. 들숨과 날숨마다, 코와 입에서 물이 한 움큼씩 쏟아진다.
머리는 멍했고, 흠뻑 젖은 눈알 너머는 흐릿하다.
“꼴이 말이 아닌데. 한정용 헌터.”
세차게 흔들리던 시야가 점차 선명해졌고. 멍한 정신은 서서히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신형을, 나는 빤히 올려다봤다.
“…장수혁.”
놈의 면상을 인지한 순간.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
이건 분명히 기억의 편린이었다.
내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시도 때도 없이 PTSD처럼 떠오르는… 전에 없이 X같은 순간 중의 하나다.
‘수아가… 인질로 잡혀 있었지.’
이것도 꽤나 초기의 회차였던 걸로 기억한다.
300회차를 가까스로 넘었을 무렵이었나? 아마 대충 그 정도일 거다.
‘아직, 헌터 협회를 신뢰하던 시절이었다.’
게이트 붕괴를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어떻게든 헌터 협회와 협력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겪는 영원회귀나, 앞으로의 게이트 붕괴 시기와 장소 등등. 알고 있던 모든 것을 협회에 전부 실토했었다.
최선을 다해 헌터 협회에 알랑방귀를 뀌어댔다.
‘그게 문제였지.’
그것을 계기로 슈레더에게 오해를 받았다.
놈들은 나를 연속 게이트 붕괴의 원인으로 의심하기 시작했고. 나를 족치면 뭐라도 단서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 듯하다.
지금 꿈꾸는 이 기억은, 그 족침 당하는 과정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 X같은 똥고집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겠구만. 한정용 헌터.”
장수혁이 질렸다는 듯이 넌더리를 냈다. 그 목소리에 나도 상념에서 벗어났다.
우지끈. 놈은 내 머리채를 붙잡고 으르렁거렸다.
“그래. 끝까지 한 마디도 안 하겠다?”
“…모른, 다고. 진짜로.”
“강수아가 어떻게 돼도 상관없냐니까? 응?”
“귀가 처먹었냐. X발… 나도. 모른다고, 했잖아…….”
장수혁이 내 얼굴을 번쩍 들어 올려, 시선을 강제로 맞붙어왔다.
그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네가 왜 여기서 빌빌대고 있는지 아냐? 약점 같은 걸 달고 있으니 그런 거다. 한정용 헌터.”
“…….”
“나보다 아득하게 강해도. 결국의 결국엔 네가, 내 앞에 개처럼 발발댈 수밖에 없는 이유. 강수아라는 약점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
“비밀도 그리 많은 양반이 이렇게 안일하게 살아서야. 먹잇감이 되는 거야, 새꺄.”
장수혁은 그 뒤로, 멍한 내 면상에 대고 일장 연설을 쏟아냈다.
협회 암부의 일원으로 살기 위한 노력과 희생. 약점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직접 끊어낸 자신의 비장함을 과시했다.
자기의 냉혹한 결단력을, 자랑스럽게 자화자찬했다.
“…….”
나는 멍한 정신으로, 장수혁의 말들을 한 마디씩 곱씹었다.
그러자 피식. 나도 모르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하. 뭔 소리 하나 했더니. 어이가 없네.”
“할 말이라도 있나. 한정용 헌터.”
“그 나이 먹고, 약점 하나 못 만든 인생인 게 네 자랑거리다. 이 소리였냐.”
“…….”
“그런 처량한 소리를. 뭐 그리 길게 나불대냐.”
꿈틀.
시종일관 걸려있던 장수혁의 비웃음에 처음으로 동요가 비쳤다.
놈의 입꼬리도 목소리도.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말을 좀 가려서 하는 게 좋을 거다. 한정용 헌터.”
“웃어서 화났냐. 미안하네, 이거.”
“조용히 하라고 했어.”
“아니. 개소리를 워낙 자신만만하게 지껄이길래. 앞으론 웃음 참아본다.”
“지금, 자기 입장을 좀 망각한 것 같은데. 난 분명 닥치라고 했다.”
“걱정 마라. 조만간 알아서 닥칠 거니까.”
한마디도 지지 않고 아득바득 개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피식, 내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나갔다.
“하지만… 그래. 역시나.”
나는 실성한 듯이 히죽거렸고.
이내 나는 끈 풀린 인형처럼, 힘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뭐가 말이냐.”
“영원회귀는 내가 아니라. 네가 했어야 했다.”
“…영원, 회귀?”
아까부터 나만 아는 헛소리를 지껄여서 그런가. 장수혁이 많이 불쾌해 보였다.
놈이 치욕적인 표정으로 인상을 구겼다.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잖아. 내가.”
“제 손으로 약점이 될 만한 건 죄다 처죽이고. 그걸 오히려 자랑거리 삼을 수 있다니. 대단해. 진짜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장수혁.”
“무슨. 이제 와서… 비꼬는 거냐?”
“비꼬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기세등등한 살기를 담아 장수혁을 똑바로 노려봤다.
장수혁이 그 흉흉한 기세에 흠칫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나 직후 자기 행동을 자각하고,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더 이상 분노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이 새끼가. 갑자기 돌았나……!”
“난 X발, 도저히 그렇겐 못 해 먹겠더라. 벌써 백 번도 넘게 되풀이했는데… 아직도 그런 마인드가 잘 안 된단 말이야. 정말로 네가 부럽다고. 수혁아.”
“그러니까. 이 개새끼야! 아까부터 뭔 개소린지! 말을……!!”
장수혁의 얼굴에 가감 없는 분노가 표출되었다.
놈이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다. 직접 물고문을 재개하기 위함인가, 쩍 벌어진 손아귀가 내 면상을 향해 서슴없이 쇄도한다.
‘조금. 조금 더.’
그리고 나는 지금.
아까부터 내내 혓바닥 밑에 숨겨놨던, 작은 종이 뭉치를 혀 위로 올렸다.
‘아직. 조금만 더.’
비밀 조직 수장이 그렇게 다혈질이어서야 쓰나.
나는 실리도 없이, 너 같은 쓰레기와 길게 대화하지 않는다. 장수혁.
덥석! 마침내 놈이 내 턱을 힘껏 틀어쥔 순간.
‘지금.’
나는 입에 물고 있던 종이 쪼가리를, 그 손등 위에 뱉어냈다.
철퍽! 타액으로 질척해진 종이가 장수혁의 손에 들러붙었다.
“으욱……? X발, 뭐야!!”
장수혁이 깜짝 놀라 손을 슬쩍 뺐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아이템 발동: 반야의 식신]
쿠우웅!
흐물거리는 종잇조각이 새파랗게 빛나더니, 이내 공중에 붕 떠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인간의 형상으로 오려놓은 작고 얇은 종이.
거기에 붓으로 적은 듯한 술식과 문자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부적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촤르르륵!
이내 종이에 적혀있던 술식이 외부로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식신을 소환합니다.]
마치 문어가 먹물을 쏟아내듯이. 시커먼 문자열의 파도가, 허공에서 마구 뒤엉키고 휘몰아친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의 모양으로 꾸덕하게 뭉쳐졌다.
[복제 대상자 명칭―한정용]
그곳에 또 하나의 내가 생겨났다.
외관부터 옷차림, 그리고 특유의 권태에 찌든 표정까지.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나를 빼다 박은 사람이 눈앞에 소환된 것이다.
장수혁의 당황에 찬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 이런… 개새끼가, 수작질을!!”
장수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썩어도 암부의 수장.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은 그는, 허벅지에 꽂아놨던 손도끼를 뽑아 능숙하게 전투태세를 취했다.
“대체 어떻게. 그 구속구를 차고도, 아이템을 사용한 거냐……!”
장수혁은 맹수처럼 살기를 폭사하면서도. 일단 그것부터 물어왔다.
지금 내 양손에 채워진 구속구. 헌터 협회의 첨단 마력 공학 기술이 적용된 물건이다.
원래라면, S급 헌터라도 마력을 운용할 수 없는 게 정상이지.
‘모든 마력의 흐름을 차단하는 펄스가 흐른다던가.’
자신들의 기술력에 대한 자신이 있다. 그랬기에 장수혁이 그렇게나 안일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자신감의 원천이 눈앞에서 부정당했으니. 어지간히도 궁금해질 수밖에.
“알아서 뭐 하려고. 새꺄.”
하지만 내 대답은 그것이었다.
파지직! 직후 식신이 허공에 손을 쑤셔 넣었고. 익숙한 모양새의 단검이 들려 나왔다.
푸르고 얄쌍한 칼날. 블라이스의 단검이다.
“알려줘 봤자… 어차피 다 잊어버릴 텐데.”
식신을 직접 조작 모드로 변경. 사용할 스킬을 빠르게 입력했다.
나를 모방한 식신은 기본적으로, 내가 사용 가능한 모든 스킬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이건 아공간 인벤토리도 마찬가지고. 그 외 모든 공격이나 수비용 스킬도 마찬가지다.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투학!
식신의 손에 세찬 전류의 흐름이 맺혔고. 곧장 장수혁을 향해 쏟아졌다.
내가 쓰는 것에 비하면 위력이 턱없이 형편없다. 그러나 원판의 급이 있기에, 웬만한 B급 헌터의 스킬에는 버금가는 수준이다.
“고작 이 정도로……!”
장수혁은 가소롭다는 듯이 혀를 찼고. 이내 손도끼를 능숙하게 휘둘렀다.
쉬쉭! 두 번의 날카로운 파공음. 세찬 참격에 휘말린 번개가 속절없이 찢어발겨진다.
“충전은 고맙다. 한정용!”
파지지직!
거기서 끝나지 않고. 도끼는 허공에 잔류하던 번개들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이내 도끼날 전체에서 새파란 스파크가 튀었다. 번개 속성이 저절로 인챈트된 것이다.
쯧.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귀찮은 도끼구만. 진짜로.”
“…이 도끼를 알고 있나?”
“알지.”
전생에서 몇 번이나 본 적 있다.
장수혁이 다루는 수많은 무기 중에서도 시그니쳐로 꼽히는 한손 도끼. 라그나로크.
자연계 속성공격 일체를 무효화하며, 오히려 속성을 흡수할수록 강해지는 성질을 지녔다.
“날 너무 얕보는 거 아니냐? 한정용 헌터.”
그렇게 내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직후.
쉬리릭! 장수혁은 자연스럽게 손도끼를 회수했고. 등 뒤에서 두 자루의 한손검을 뽑아 양손에 꼬나쥐었다.
“그딴 장난감 인형으론, 나한테 어림도 없어.”
왼손엔 굵직한 외날이 달린 펄션(falchion).
오른손엔 칼날 상단부로 길쭉한 홈이 자글자글 파여 있는, 소드브레이커였다.
“웬만하면 좋게 좋게 넘어가려 했는데. 힘줄이랑 이빨 몇 개는 좀 뽑아놔야겠구만.”
회수했던 라그나로크도 놀고 있지 않는다.
스르륵. 손도끼가 푸른 마력의 빛무리에 휩싸여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장수혁을 호위하듯 주위를 맴맴 돌았다.
“이제부터라도 개수작… 개소리 찍찍 못 싸게.”
암부장 장수혁의 기본적인 공격 태세.
총 세 자루의 한손 무기를, 어검술 스킬까지 구사해서 자유자재로 다룬다. 그 특이한 전투 형태 때문인가. 그에겐 ‘나이프 저글러’라는 세간의 이명이 붙어 있다.
‘그리고 저 상태에 들어갔다는 건.’
장수혁이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돌입하려 한다.
그런 의미이기도 했다.
‘그건 곤란하지.’
그러게 두지 않는다.
본격적인 전력 싸움에 들어가면. 식신은 장수혁에게 채 30초를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 전에 내가, 직접. 이 싸움의 결착을 지어버릴 거다.
[스킬 발동: 비약]
내가 식신에게 스킬을 입력한 것과, 장수혁이 나를 향해 돌진한 것.
거의 동시였다.
“하아아아!!”
투학!
두 신형이 일제히 지면을 박찬다. 거센 풍압이 뺨을 할퀴었고, 서로의 신형은 같은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리고 장수혁은 두 눈을 번쩍 부릅떴다.
“…아니?!”
그렇다. 같은 방향.
식신은 장수혁이 아니라, 나를 향해 돌진하는 중이다.
장수혁은 적잖이 당황했고. 반대로 나는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끝이다.”
분신의 기습은 성공적이다.
장수혁. 난 네 목숨을 노린다고는 한 번도 안 했다.
“이, X발!!”
장수혁도 내 계획을 뒤늦게 깨달았다.
놈이 다급히 욕설을 내질렀고. 필사적으로 식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달려왔지만.
“반드시…….”
이번에도 놈은.
나보다 행동이 한발 늦었다.
“복수해 주지.”
퍼걱!!
식신이 휘두른 단검이 정확히, 그리고 사정없이. 내 미간에 쑤셔 박혔다.
뇌를 직접 파고드는 격통이 잠깐 느껴진다 싶더니.
“…컥.”
순식간에 모든 것이 암전되었다.
새카맣다.
* * *
망설임 없이 자살한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수아에게 웬만하면 항시 발동을 시켜놓는 추적 마법. 트레이스.
고문을 받던 사이에, 그 마법의 발동이 종료되었다.
‘수아는 이미 죽어버렸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트레이스 스킬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종료되는 경우. 단 하나밖에 없다.
추적할 대상이 죽어 없어져 버린 거다.
“반드시…….”
“복수해주지.”
그렇게 다음 회차가 되었고.
나는 전생의 내가 중얼거렸던 맹세를, 그대로 이행했다.
“죽어. 전부.”
콰앙! 콰콰쾅!!
다짜고짜 헌터 협회로 찾아가 풍비박산을 내버렸다.
혼란과 분노에 휩싸인 대중과 헌터들 앞에서. 헌터 협회 전원과 광기의 전면전을 벌였다.
“…흐. 흐흐.”
그리고 피 튀는 격전 끝에. 양호성과 장수혁의 목을 잘라 공개 처형을 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위에, 두 사람의 목을 보란 듯이 효수했다.
수많은 군중의 눈이 따갑다.
헬기와 카메라 플래시가 나를 둘러쌌다.
“…오빠?”
공포에 질린 군중들 속에서.
잔뜩 겁먹은 채 나를 쳐다보는 수아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오, 오빠. 오빠… 맞아요? 뭐야, 이거. 꿈이야……?”
그렇게나 날 에워싼 사람이 많았는데, 유독. 그녀의 얼굴만은 똑똑히 기억난다.
지금도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하다.
“미안하다. 수아야.”
흔히 복수의 끝은 허무하다고들 하지. 허무했을까?
천만에. 허무하지 않았다. 기분은 존나게 끝내줬고, 대가리에 온통 아드레날린이 펄펄 끓었다.
뿌리 깊게 박혀버린 낙담과 절망이 약간이나마 가셨고.
다시 한번, 다음 생에도 힘내볼 기운까지 얻었다.
“정말, 미안하지만…….”
복수가 허망하다고 주장하는 새끼는, 진짜 제대로 된 복수를 못해봤을 뿐이다. 그날 그렇게 확신했다.
그럴 정도로 후련해졌다.
“후회는 딱히 없어.”
그러니 목적을 달성한 그 시점에서. 그 회차엔, 더 이상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잊어버려라. 전부.”
뿌드득!
단검이 가차 없이 내 배를 가른다. 속에 있던 내용물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 공개 처형자는, 나 자신이다.
“오, 오빠아아아아!!”
11월 27일.
회귀 당일에 양껏 깽판을 치고. 수아의 찢어지는 비명 속에서 나는 사망했다.
1회차에서 1002회차까지 통틀어, 아직 깨지지 않은 가장 짧은 회차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 회차 이후.
헌터 협회가 나한테 도움이 되든 말든, 나는 헌터 협회를 무조건적으로 불신하게 되었고. 헌터 협회 방향으론 오줌도 안 싸는 중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 * *
눈을 떴다.
“…음.”
얕은 침음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났다.
찌뿌듯한 몸을 스트레칭하고, 무거운 머리를 뒤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후우.”
나직한 한숨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어김없이 악몽을 꿨다. 회귀 후 첫 수면은 언제나 이런 느낌이다.
슬쩍, 시선을 들어봤다.
“아빠, 일어났어?”
이브가 날 빤히 쳐다보며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장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잠깐 나가야겠다. 이브.”
“응……? 갑자기? 어딜?”
“급하게 좀 가야 할 데가 있어.”
“어, 그래! 대신 나도 같이 가!”
“당연하지. 애초에 네가 없으면 안 돼.”
“음……?”
이브는 내 말에 고개를 모로 꼬았지만.
나는 말없이 그녀를 재촉해 방을 나갈 뿐이다.
덜컹. 현관문이 닫혔고, 우리는 복도를 빠르게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