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8)>
당장 스킬 세례로 난장판이 돼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
장수혁은 비명처럼 내게 외쳤다.
“거래! 나와 거래를 하죠, 한정용 헌터!”
장수혁은 내 무력의 편린을 직접 목격했다.
목격했다 뿐인가. 고작 B급의 염동력 스킬에 온몸이 속박돼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래서 그는 즉시 슈레더 인원들의 전력과 승산을 계산했을 거고. 단박에 견적을 내린 듯하다.
‘상대가 안 된다. 이거 진짜로 몰살당하겠다.’
그래서 즉시 꼬리를 말았다.
실로 헌터다운, 그리고 암부의 실력자다운 즉각적 상황 판단. 냉철하고 현명한 점은 높게 산다.
나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들어나 보자. 무슨 거래.”
“우선. 지,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 강서윤 헌터 건은 정말 안타깝게 됐어요.”
장수혁이 별안간 비굴하게 사과해 온다.
덕분에 내 미간의 골은 한층 깊어졌지만. 장수혁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지껄여 댔다.
“물론 압니다. 이런다고 딱히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강서윤 양의 집으로 거액의 위로금을 드리고, 유족들에게 향후 전폭적인 금전적 지원을…….”
“거래.”
꾸드득!
마력의 손아귀를 힘껏 조였다.
장수혁의 얼굴에 피가 새빨갛게 몰렸고, 눈알이 뽑혀 나올 듯 두 눈을 부릅뜬다. 이내 폐를 쥐어짜는 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끄아… 아아악!!”
“아가리 일체 싸물고. 거래 내용이나 말해라.”
“오, 오늘 있었던 모든 일! 전부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한정용 헌터!!”
다급하게 내뱉는 장수혁.
나는 마력의 손아귀에서 조금 힘을 풀었다.
“끄허어억! 허억, 커헉……! 쿨럭!!”
탐욕적으로 숨을 몰아쉬는 장수혁.
나는 고개를 갸웃, 꺾었다.
“없었던 일로 하자니. 무슨 의미냐.”
“마, 말 그대롭니다.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은 전부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정식으로! 슈레더와 한정용 헌터님의 관계를… 시작해 보자는 거죠!”
“…오호.”
나는 고개를 들어 슬쩍 턱짓했다.
계속해보라는 제스처. 장수혁은 내 반응에서 희망을 봤는지, 더욱 신나서 지껄였다.
“지금 이 시간부로. 한정용 헌터님에 대한 모든 의심과 조사, 감시를 거두겠습니다. 어떤 자잘한 사항도 일절 캐묻지 않고. 절대, 절대로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그 대가로 너희는 뭘 바라냐.”
“저희와… 협력해 주십시오, 한정용 헌터님.”
그래. 이럴 줄 알았다.
결국 이런 전개가 되겠지. 하도 반복해서 이젠 뭐 놀랍지도 않다.
나는 순간적으로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고. 장수혁이 보지 못하게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슈레더 소속이 되라는 거냐.”
“예, 예. 맞습니다.”
“내가 뭐 하러.”
“암부 소속이 되면 저희도 한정용 헌터님을 믿을 수 있고. 감시를 그만둘 명분도 생깁니다. 지금 이 불필요한 분쟁도, 계속할 필요가 없어지겠지요!”
저 X같은 설득 레퍼토리는 몇 번을 반복해도 변하는 법이 없냐. 쟤도 나처럼 임기응변에 약한 과인가.
하지만 나는 짐짓 감탄했다는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그야 그렇긴 하지.”
“또 헌터님께서 원하시던… 강서윤 헌터가 조사하던 그 건에 대한 정보도, 적법한 절차로 열람하실 수 있게 됩니다.”
“…….”
“열람하다 뿐이겠습니까. 제가, 직접 도와드리겠습니다. 오히려 한정용 헌터님께서 그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와 손만 잡아주신다면!”
그리고 나는 그쯤 돼서야 깨달았다.
헌터님. 나는 어느샌가 장수혁에게 한정용 헌터‘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
무의식적이었다.
한층 차갑게 굳은 말이 흘러나왔다.
“지나간 일은 전부 잊고 말이냐?”
“예. 그, 그렇습니다!”
“내가 잊어버려도. 그리고 너희들이 전부 잊어버려도. 그게 없었던 일이 되진 않지.”
“…예, 예?”
“이번 생의 서윤이는 너희들한테 죽었어.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되돌아가지 않는 한.”
“……!”
장수혁은 드디어 내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인지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표정이 떠오른다. 나는 그런 놈의 면상에 대고, 서릿발처럼 한기를 뚝뚝 흘리며 말했다.
“가령 세상이 한 달 뒤에 개같이 멸망해도. 그리고 혹여나 시간이 되돌아간다고 해도. 오늘 서윤이가 너희들한테 목이 잘렸다는 사실만은, 절대 변하지 않지.”
“그, 그게 대체. 헌터님. 지금 무슨 말을……!”
“다음 생. 다음의 다음의 다다다음 생까지. 나는 오늘 일어난 일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다. 장수혁.”
멘트 자체는 일견 유치했지만.
거기에 담긴 내 증오는,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었다.
장수혁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다급히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한정용 헌터! 우, 우리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강서윤 헌터는 한 번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뒤를 계속 캤어요……! 암부의 수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니. 대체 뭘 어쩔 수가 없다는 거냐.”
“뭐, 뭐냐 물으시면……!”
장수혁이 잠시 말을 주저했다.
그러나 이내 입술을 질근 깨물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한정용 헌터. 당신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슈레더는 이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사명감 하나로 소속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임무 도중 사망해도 기록 하나 못 남긴 채, 머리카락 한 올까지 즉시 소각당하는 게 우리들이란 말입니다……!”
“근데. 어쩌라고.”
되지도 않는 감성 팔이를 하길래 곧장 다그쳤다.
전에 없이 차가운 반응에 장수혁이 입을 다물었다. 놈은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호소하기 시작했다.
“암부는, 슈레더는……! 헌터 협회가 대놓고 수습하지 못할 수많은 일들을 뒤에서 처리합니다.”
“알아.”
“그중엔 당연히, 세간에 알려지면 대혼란이 일어날 만한 사안들도 많습니다!”
뭔 얘기하나 했더니.
어느새 국면이 다음 레퍼토리로 넘어간 거였군.
나는 한껏 가늘게 뜬 눈으로 장수혁이 열변을 토해내는 것을 관망했다.
“우리가 나서서 숨기지 않았으면, 처리하지 않았으면! 이 사회의 질서가 단숨에 붕괴할 만한 사건과 정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12월 8일. 6차 게이트 붕괴쯤. 헌터 협회는 괴멸적 타격을 입고 와해한다는 이세라의 예언. 뭐 그런 것들 말이냐?”
“……!!”
순간 장내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장수혁뿐만이 아니었다. 말단부터 간부들까지, 나를 둘러싼 슈레더의 모든 면면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장수혁을 쳐다봤다.
“부, 부장님?”
“저게. 대, 대체 무슨……?”
“6…차? 여, 연속 게이트 붕괴가, 앞으로 더 일어난다는 겁니까?”
“그, 그것도, 6차까지나?!”
부릅뜬 눈은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이세라의 예언에 관한 정보는, 암부의 단원들조차 모르는 극비 중의 극비.
세상 전체에서 오직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양호성. 그리고 암부장 장수혁만이 아는 사실이다.
“당신. 한정용…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장수혁은 부하들에게 긍정도 부정도 안 했다.
아니, 못했다는 게 맞다.
놈은 일견 공포까지 느껴지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기 바빴다.
“…흐.”
그러나 나 역시. 장수혁의 의문에 긍정도 부정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휘저으며 일축했다.
“나름 유익한 대화였어. 덕분에 이건 확실해졌다.”
“…뭐, 뭐가 말입니까.”
“네가 강서윤을 죽여버린 이유.”
“…….”
“강서윤이 캐려는 정보가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사회가 붕괴할 만한 정보’였기 때문이라는 거잖아. 맞지?”
장수혁은 입을 콱 다물었다. 그리고 내 이글거리는 시선을 슬쩍 회피했다.
내 기준으로 그건, 한없이 긍정에 가까운 반응이다.
“그럼. 슬슬…….”
파지직!
나는 중얼거리며, 허공에 양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스파크로 일렁거리는 손아귀에 곧 두 자루 단검이 쥐어졌다.
블라이스의 단검. 그리고 하나는, 크로노스 대거였다.
“엑스트라들은 퇴장하자.”
파지지직!
번개의 분노 인챈트. 양손에 꼬나쥔 두 자루 단검에 새파란 번개가 도사렸다.
양팔을 교차하고, 어깨 위로 겨누어 전투태세를 가다듬는다.
“하, 한정용 헌터, 헌터님. 잠깐……!”
장수혁이 포기를 모르고 대화를 시도해 온다.
물론 나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장수혁은 뒤통수에 대고 계속 말했다.
“그,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왜 나무만 보고, 숲을 보려 하지 않으십니까!”
“…….”
“저희와 함께하시죠! 같이 대한민국을, 사람들의 일상과 평화를 지킵시다! 당신의 그 말도 안 되는 무력이라면! 저희가 감히 손대지 못했던 사안까지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겁니다! 당신과 저희들이 힘을 합치면, 분명히……!”
“족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를 악물고. 두 눈은 부릅뜬 채. 욕설과 함께 살기를 퍼부었다.
그리고 놈들을 하나씩, 꿰뚫어 죽여버릴 듯이 노려본다.
“너는 지금. 본인의 추잡함을 얕보는 거야.”
대한민국이 멸망을 향해 시시각각 달려가는 그때.
초조해지고 궁지에 몰린 헌터 협회가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진 순간. 얼마나 추악하고 더럽게 변모하는지.
너희들 본인도 정확히 모르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알아.”
알지. 알다마다.
미래의 너희들을 너희들 본인보다 잘 안다고.
“너희들이… 얼마나 더러운 새끼들인지.”
얼마나 네 손에 수아가 죽어 나갔는지. 고통의 절규를 쩌렁쩌렁 질러댔는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할 행동도, 변하지 않는다.
“전부. 죽여버린다.”
조용히 선언했다.
그리고 즉시 공약을 실천해 나갔다.
“끄… 커헉!”
“크아아아악!!”
전투가 시작되었다.
실로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육이었다.
* * *
푸쉬이익!
공기압 빠지는 소리게 크게 울렸고. 복도를 틀어막던 격벽들이 일제히 올라갔다.
길게 이어진 복도 중의 한 구간.
“…후우.”
살점과 피가 흐르는 수라도 한복판에, 나는 서있다.
수많은 인간 토막들 사이에서 나와 장수혁. 단 두 사람만이 아직 살아서 숨 쉬고 있다.
털썩. 이내 장수혁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이럴… 수가.”
죽어있는 시체들을 멍하니 한 번씩 훑어보고, 최종적으로는 내 얼굴에 시선이 닿았다.
공포와 의문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하, 한… 정용, 헌터. 너, 는… 뭐냐.”
“…….”
“사, 사, 사람? 사람은… 맞나?”
“…….”
“아니야. 아니, 그럴 수가 없어. 몬스터. 너. 던전의… 몬스터. 더, 더, 던전 마스터구나… 그, 그렇지, 응?”
아무 짝에 쓸모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을 묻는 장수혁.
대답할 가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좀 멀리 던졌다.
주위의 참상이 곧장 눈에 들어온다.
“…….”
긁히고 부서지고, 시커멓게 그을린 벽과 바닥.
그 위로 찐득하게 눌어붙은 누군가의 팔과 다리, 눈알과 뼛조각. 현대 미술처럼 어지럽게 흩뿌려진 핏방울의 향연.
최후의 순간까지 격렬하게 저항했던, 슈레더 대원들의 용맹의 흔적들이다.
“장수혁.”
나는 그쯤에서 장수혁을 불렀다.
갑자기 호명당하자 흠칫, 놈은 온몸을 바싹 얼어 붙였다.
“뭐, 뭐, 뭐냐.”
“살고 싶냐.”
“…뭐가 어째?”
“너는 조직이 먼저인 사람이냐, 아니면 목숨이 먼저인 사람이냐.”
“…….”
“조직이 먼저라면 함구하고 있으면 된다. 목숨이 먼저라면, 지금부터 내 질문에 대답해.”
꿀꺽. 장수혁은 마른침을 어렵사리 삼켰다.
놈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질문에 자기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것을.
잠깐의 침묵 끝에, 놈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아, 암부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인간 장수혁은 애초에 없던 사람이다.”
말을 어렵게 돌리긴 했다만.
무슨 의미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단호한 부정이다. 그는 전생에서도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제 목숨보다 슈레더라는 조직을 택했다.
본인 말마따나. 그는 나무보단 숲을 보는 남자였다.
“…그러냐. 역시.”
나는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가늘게 뜬 눈으로 장수혁을 가만히 노려봤다.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야.”
“크, 흐. 죽이려면 죽여라. 하지만 나를 죽이면… 네가 원하는 정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다. 한정용.”
“그래. 그렇겠지.”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번쩍, 곧장 손바닥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렇겠지. 아무렴.”
언제부터였을까.
키이잉! 내 손아귀에선 붉은 마력의 응어리가 잔뜩 응축돼 있었다.
[스킬 발동: 괴뢰의 실]
쿠르르륵!
붉게 일렁거리던 마력이 실처럼 길게 늘어났고,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장수혁의 입가에서 아찔한 탄성이 흘러나온다.
“서, 설마……!”
“그 설마다.”
역시 헌터 협회 암부의 수장. 이 불길한 마력의 흐름과 형태만 보고도, 곧바로 스킬의 특성을 간파한 듯하다.
나는 비릿한 미소를 보란 듯이 머금었다.
“널 죽이다니. 내가 그럴 리가 있냐.”
“이, 이 새끼가!!”
“만능열쇠를 자기 손으로 부수는 병신이 어디 있겠냐, 장수혁.”
쉬리릭!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붉은 마력의 실이 돌진한다.
목표는 장수혁의 정수리. 일직선이었다.
“이… X발……! 개X발!!”
장수혁이 욕을 연신 주워섬기며, 자기 주위로 배리어를 두른다. 온몸을 버둥거려 피직스 그랩의 손아귀를 탈출하려 한다.
필사적으로 격렬하게 저항해 보지만.
“으아아악!!”
푸지직!
붉은 마력의 실은 결국 장수혁의 머리를 관통했다.
배리어는 진작에 내 디스펠 스킬에 와해됐고. 놈의 스탯으론 내 피직스 그랩을 끝까지 파훼할 수 없었으니까.
“…그, 학.”
장수혁의 시선에서 초점이 빠르게 사라진다.
귀신같이 그의 발악이 정지했다. 순식간에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인형이 되었다.
나는 그쯤에서, 슈르륵. 피직스 그랩의 발동을 해제했다.
“걸어, 장수혁.”
“…….”
육신을 옭아매던 마력의 손이 없어졌음에도. 장수혁은 전혀 도망가지 않는다.
다만 명령을 내린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예.”
짧게 대답할 뿐이다.
장수혁이 피로 물든 복도를 앞장서 걸어간다.
“…….”
나도 입을 닫고,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저벅저벅. 피에 젖은 발자국 두 쌍이 질척하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