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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03화 (103/235)

103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4)>

임시 막사 앞까지 도달했다.

나는 이브를 약간 멀찍이 피신시킨 다음. 막사 문 앞에서 잠깐 대기했다.

“아, 한정용 씨?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들어오세요.”

한 여성 안내원의 인도에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펄럭. 입구의 장막을 걷고 들어가자, 어둑한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오. 그래. 자네가 한정용 군인가?”

“들어와. 어서 들어와.”

막사는 살풍경했다.

스킬로 띄워 놓은 전구형 광원 아래. 장방형 각탁이 하나 덩그러니 세워져 있고, 막사 한쪽 면에는 빔 프로젝터에서 흘러나온 영상이 흐른다.

‘흐음.’

슬쩍 화면을 살펴보니, 구세계 백화점 인근의 위상 지도였다.

어지러운 세부 데이터와 함께 띄워져 있다.

“듣던 대로, 외모는 평범하군.”

“아까 그 B급 지휘관을 제외하면. 저게 유일한 생존자다 이거지?”

“그럴 만한 대단한 인물론 안 보이는데……?”

각탁에 둘러앉은 이들이 제들끼리 쑥덕댄다.

나름 소리를 죽인다고 죽인 것 같다만. 내 예민한 청각으로는 고함처럼 똑똑히, 한 글자씩 선명하게 쑤셔 박혔다.

‘좀 신선한데. 이건.’

3차 붕괴의 헌터 생존자가 극단적으로 적으면, 나 같은 말단도 이런 취급을 받는군.

지금껏 이런 상황은 닥쳐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름 흥미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흐음?’

그리고 모여든 면면들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헌터 협회의 나름대로 높으신 윗대가리들이다. 협회 소속 헌터도 물론 있고. 돈줄만 대는 이사진이나 정계 관련 인사도 있었다.

자리가 자리라 그런지, 평균 연령대가 상당하다.

‘저건… 장수혁?’

그리고 무려 헌터 협회 암부, 슈레더의 수장.

장수혁도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내가 곧 만나러 갈 건 어떻게 알고, 저쪽에서 찾아와 주다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의 등장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그러나 직후. 나는 아찔한 탄성을 흘렸다.

각탁의 말석에 앉아 눈치를 살살 보는, 익숙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강서윤?’

익숙한 이목구비와 단정한 단발, 그리고 익숙한 푸른색 점프 슈트까지.

눈 씻고 다시 봐도 강서윤이 분명했다.

‘누나는 거기서 왜 나와.’

당황한 나머지 걸음조차 완전히 멈춰버린 바로 그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귓전을 후려친다.

“일단 앉지 그러십니까? 한정용 헌터.”

음침하면서도 등줄기가 서늘한, 장중하게 실내를 압도하는 목소리.

치지직. 반사적으로 뇌리에 라디오 노이즈가 흐른다.

“우리도 알아. 다 아는데. 그냥 네가 그렇게 말하면 된다고. 개새꺄.”

노이즈가 세월의 토사에 침잠돼 있던 목소리를 들춰냈다.

그래. 그때도 이 임시 막사처럼, 미명이 어른거리는 어둑한 실내였지.

“네가 이 게이트 붕괴 사태의 주범이다. 그 말만 뱉으면 된다고. 이제 서로 좀, 편해지자니까?”

턱턱 막혀오는 숨.

약물로 인해 지진 난 것처럼 흔들거리는 시야.

스킬로 띄워 놓은 광원이, 유난히 눈부셨던 기억이 있다.

“나라고… 개새끼야. 뭐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아냐? 응?”

그쯤에서 고개를 들었다.

장수혁이 각탁의 상석에 앉아 있다. 살피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 뱀 같은 시선은 지나치게 익숙했다.

“그래. 강수아였나? 그년 손가락 하나씩 자르다 보면. 좀 협조해 줄라나?”

치지직.

이젠 영영 사라져버린 수많은 미래의 장수혁들.

추악하게 뒤틀린 미소들이, 놈의 얼굴 위에 마구잡이로 뒤범벅되었다.

“…죄송합니다.”

미쳐 날뛰던 상념을 그 한마디로 죽여버렸다.

나는 일단 고개를 꾸벅 숙였고. 천천히 각탁을 향해 걸어갔다.

대충 적당한 변명을 주워섬겼다.

“이렇게 유명한 분들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 해서요. 좀 얼을 탔습니다.”

“하핫. 아닙니다. 제가 D급 헌터였어도 똑같겠죠. 내가 TV 속에 들어왔나? 싶었을 거 같은데. 맞습니까?”

장수혁은 능란하게 너스레를 떤다.

하하하. 허허허. 둘러앉은 틀딱 노친네들이 일제히 너털웃음. 조롱과 유쾌함이 반씩 섞인 분위기가 흐른다.

나는 고개를 조아릴 뿐이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어서 앉아요. 자.”

“그럼, 염치 불고하고.”

장수혁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자리를 권한다.

나는 그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떠서 고개를 들었다.

정면. 장수혁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렇군.’

그리고 난 깨달았다.

강서윤이 대체 왜. 똥 마려운 개새끼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지.

‘장수혁이 암부 소속이라는 건, 여기서 나와 강서윤만 알지.’

그래서다.

나와 장수혁이 맞닥뜨리는 이 순간이 아찔했던 거다.

앞으로의 전개가 걱정돼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거다.

‘내 목숨을? 아니면… 장수혁의 목숨을?’

아마 후자겠지.

이번 회차의 강서윤은 내 무력을 지척에서 목격했으니까.

혹시나 내가 대화를 하다 말고, 천둥벌거숭이마냥 밥상 뒤엎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종류의 걱정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날 뭘로 보고.’

난 네가 알던 머저리 한정용이 아니다, 강서윤.

1000번의 회귀는 한정용도 철들게 한다. 똥오줌 못 가리고 주먹부터 나간 시절은, 진작에 지나갔지.

“그럼. 각설하고.”

문득 장수혁이 목소리를 조금 내리깔았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는 무언의 압박. 나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사실 현장 정황에 관한 얘기는 박현우 헌터한테 대충 들었습니다. 한정용 헌터.”

“그렇군요. 그러면 뭘 더 말하면 되겠습니까.”

“던전 폐쇄자 고지는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레드 저거너트. 던전을 폐쇄했다고 고지된 당사자를… 목격했습니까?”

움찔.

강서윤이 어깨를 크게 떨었다.

드디어 올 게 왔다는 표정. 강서윤이 한층 더 심하게 내게 눈짓하기 시작한다.

“……!!”

무슨 의미를 열심히 전하고자 하는 거 같은데.

솔직히 뭘 말하고 싶은 시선인지, 전혀 갈피도 안 잡힌다. 나한테 뭘 바라는 거냐.

‘뭐… 일단은 순순히 대답한다.’

딱히 아직까진 켕길 게 없다. 변명거리도 아까 대기하면서 열심히 생각해 뒀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죄송하지만, 제대로는 못 봤습니다.”

거짓말은 안 했다.

그래서 내 행색은 사뭇 당당했다.

레드 저거너트. 던전을 폐쇄한 자. 모두 내가 당사자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목격하냐.

“…흐음. 그렇습니까.”

장수혁을 비롯한 여기저기서 침음이 흘러나온다.

곤란한 기색. 그리고 적지 않은 의심이 흐른다. 여기저기서 시선이 따갑다.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좀 유감이군요. 저희가 애타게 바란 정보는 바로 그 부분이었는데.”

“도움이 안 돼서 죄송합니다.”

“아뇨. 죄송할 건 없고요.”

장수혁은 재차 넉살 좋게 미소를 머금으며, 날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순간. 놈의 날카롭게 벼려진 시선이 좌측으로 향한다.

‘방금.’

실로 찰나의 움직임이었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은 피할 수 없다.

장수혁의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개를 돌렸다.

‘저건…….’

시선 끝엔 눈에 익은 여인이 있다.

오윤나. S급 헌터. 서열 7위 오버 랭커 박철민의 파트너로, S급 헌터 부대 ‘화이트팽’의 멤버.

나는 곧 장수혁의 의도를 깨달았다.

‘내 말을 안 믿었군, 장수혁.’

내 머릿속을 직접 뒤져볼 심산이다.

오윤나는 서포터계 특화 헌터. 내가 가진 <사이코메트리> 스킬처럼, 정보를 읽어 들이는 색적 스킬을 하나 정돈 가지고 있을 터다.

‘온다.’

마음의 준비를 마치는 순간, 파지지직!

오윤나에게서 새파란 마력의 섬광이 치달렸다.

‘컨트롤이 제법인데, 오윤나.’

극도로 은밀한 비가시 마력 파장. 강서윤을 비롯한 초고위 헌터들 몇 명만이 눈치채고 흠칫거렸다.

그리고 그것을 정면에서 맞이하던 나는…….

‘꺼져.’

겉으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다만 눈을 부릅뜨고, 마력을 최대한 섬세하게 조절해서.

[스킬 발동: 디스펠]

키이잉!

가소로운 오윤나의 마력 파동을 정면에서 으깨버렸다.

“꺄윽!!”

덜컹!

오윤나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고. 상체를 의자 뒤로 확 꺾었다.

그대로 나자빠지기 직전. 가까스로 강수혁이 그녀를 붙잡는다.

“……!”

오윤나의 꼴을 보고 강수혁은 입을 콱 닫았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떴다.

“으, 아. 허윽?”

오윤나는 쌍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누구한테 한 대 얻어맞은 양 멍한 표정에, 두 눈은 초점이 안 맞는 상태다.

“어… 왜,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나는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최대한 어리버리하고 어리둥절한 티를 냈다.

“괘, 괜찮으세요? 피… 피, 피가 엄청 나시는데.”

내가 다른 연기는 자신 없어도, 병신 연기는 자신 있다.

연기랄 것도 없지. 평소 모습만 보여주면 되니까.

“…아, 아니. 아닙니다.”

장수혁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나를 쳐다보다, 이내 다급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그가 오윤나의 코피를 닦아주는 한편. 내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요, 요즘 연속된 게이트 붕괴로 많이 바빠서요. 오윤나 헌터가… 좀 피곤이 쌓였나 봅니다.”

“…….”

“그렇죠, 윤나 씨?”

“어? 아… 아, 아. 네, 네에…….”

오윤나는 한참을 더듬거린 끝에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녀와 순간적으로 허공에서 시선이 얽혔다. 나를 향한 의문과 혼란, 약간의 분노가 느껴진다.

‘왜……? 정보를 읽을 수가 없지?!’

마빡에는 대문짝만하게 저리 써놓고 있었다.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평정심을 유지할 여유조차 없는 듯하다.

‘입구컷 당해본 건 처음이지, 새꺄.’

아무렴. 혼란스러울 테다.

나는 방금 오윤나 이상으로 마력을 은밀하게 꼬아서 운용했다. 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의, 아득하게 참신하고 초월적인 방법으로.

‘분명히 간섭 파장은 느꼈는데. 어디서 어떻게 온 건지를 도저히 모를 거다.’

오윤나가 왜 실패했는지. 당사자인 오윤나조차 그 이유를 모른다.

나는 그쯤에서 오윤나를 가만히 노려봤다.

‘자꾸 뭘 야려. 썅년아.’

흠칫, 오윤나가 먼저 시선을 돌려버린다.

내가 뭘 추가로 한 게 아니다. 저쪽에서 지레 겁먹고 도망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그쯤에서 다시 입을 열기로 했다.

화제를 좀 돌려야 한다. 나를 향한 의심이 이 이상 불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저는 저번 용산 붕괴 때도, 공교롭게 현장 주변에 있었는데요. 그때… 드래곤을 때려잡던 붉은 갑옷의 괴인을 목격했습니다.”

외국의 도시 괴담에서 그러더라.

살인자들이 사람의 시체를 묻어야 할 때. 그 위쪽에 개의 시체를 같이 묻어서 경찰들의 수사망을 피하곤 한다고.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어렴풋이 봤습니다만. 틀림없었습니다.”

“…틀림없다니. 뭐가 말이죠?”

“그 1차 붕괴 때의 붉은 갑옷 말입니다. 이번에 저를 구해준 사람도 그 사람이 확실했어요.”

“……!!”

“얼핏 본 갑옷 모양이 완전히 똑같았습니다.”

관심 보일 만한 화제를 적절한 타이밍에 던졌다.

레드 저거너트의 추가 정보를 얻은 것으로 놈들을 만족시킨다. 이로써 내가 진짜 숨기고 싶은 시체, ‘한정용의 정체’에 대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역시. 그놈이 그놈이었군!”

“이 수상쩍은 이름부터 그럴 거 같다고 했잖나, 내가!”

“가만있자. 장 선생, 이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응?!”

장내는 전에 없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계획대로 돌아갔다. 나에 관한 관심이 눈에 띄게 옅어졌다.

여전히 의구심에 차 쏘아보는 오윤나,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무표정을 고수하는 장수혁만 빼고.

“일단… 좋습니다. 좀 다들 진정하시고.”

짝짝.

장수혁은 박수를 쳐서 주목을 모았고. 흥분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종식되었다.

놈의 지긋한 시선이 내게 향한다. 나는 딱히 피하지 않았다.

“그 붉은 갑옷… 아니, 레드 저거너트의 인상착의부터 알아볼까요. 한정용 헌터.”

그렇게 한동안 심문에 가까운 취조가 이어졌다.

대부분은 레드 저거너트의 목격담을 집중적으로 캐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MSG를 적절히 섞어, 내 형편에 좋게. 하지만 최대한 사실대로 대답했다.

“…고생했습니다.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한정용 헌터.”

십수 분이나 더 추궁당한 뒤. 드디어 취조가 끝났다.

나는 장수혁의 말에 진득한 한숨을 흘렸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저벅저벅. 뒤도 안 보고 빠르게 자리를 이탈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잠깐. 한정용 헌터.”

장수혁이 별안간 나를 불러 세웠다.

걸음을 우뚝 멈추고, 등 뒤로 시선만 흘깃 돌렸다.

“예. 왜 그러십니까.”

그는 미미한 웃음을 두르고 있었다.

뭐랄까. 나로선, 불길한 예감 밖에 안 드는… 지나치게 여유로운 미소였다.

아무튼 장수혁은 입을 열었다.

“이번 붕괴로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혹시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헌터 병력만 따져도 사망자 300 이상. 민간인 사상자까지 합치면, 피해자가 4천 명은 거뜬히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존나 덜 죽었네.

레드 저거너트가 일 하난 기깔나게 했군요.

그런 말들이 목젖까지 튀어나왔다 간신히 삼켜졌다.

“…그렇습니까. 정말 안타깝네요.”

대신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진심이 요만큼도 안 담긴 인사치레였다.

‘슬픈 생각 오지게 해라, 한정용. 슬픈 생각.’

다만 슬픈 표정 짓느라 얼굴에 쥐가 날 것 같았다.

한창 감정선을 잡고 있던 그때.

“그래요. 그 태연한 반응.”

장수혁이 기습적으로 내게 삿대질하며, 불쑥 치고 들어왔다.

“그건 좀 D급 헌터답지 않군요. 한정용 헌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사상자 수를 들었을 때 반응이 좀 일반적이진 않아서요. 굉장히 비범하시군요.”

“사람이 많이 죽어서 안타깝다. 이상할 건 없지 않습니까.”

“안타깝기 이전에 4000명이면요. 일단 놀라기 마련입니다. 크게든 작게든요.”

“…….”

그건 확실히, 할 말이 없어지는 주장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고. 장수혁의 입가에 핀 미소는 짙어졌다.

놈이 잘난 듯이 떠벌거린다.

“그런데 한정용 헌터는 진술하는 내내. 무슨 끔찍한 내용을 말할 때도. 눈썹 하나 까딱 않았지요.”

“…….”

“꼭… 그래요. 이보다 더한 참상도 이골 난, 베테랑 S급 헌터처럼 말입니다.”

“…제가 그랬습니까.”

“그랬습니다.”

“…….”

“전 레드 저거너트 만큼이나 당신에게도 흥미가 생겼습니다, 한정용 헌터.”

X발. 그렇다고 한다.

사내새끼 관심 받아서 무에 좋다고. 게다가 하필이면 그 대상이 장수혁이라니.

내 표정은 자연스레 잔뜩 일그러졌다.

“…가보겠습니다.”

괜히 말 더 섞어봤자 밑천만 드러나지.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끝까지 장수혁이 엉겨 붙는다.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하시죠, 한정용 헌터!”

“…….”

“그쪽이랑은 진득하게, 개인적으로 얘기를 좀 나눠보고 싶습니다. 진심으로요.”

인기 폭발하네. 남자한테만.

나랑 밥 한 끼 하고 싶은 사내새끼가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아까부터 입가에 쓴웃음이 떠날 생각을 안 한다.

‘개인적인 얘기라.’

어디서 하려고.

헌터 협회 지하 7층. 슈레더 관련자밖에 모르는 지하 고문실에서?

정중하고 단호하게 사절하는 바이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는 에둘러 거절을 표현했고.

펄럭! 입구의 장막을 거칠게 젖혀, 막사를 빠져나왔다.

‘이건 좀 안 좋은데.’

계산 밖이다.

장수혁의 눈썰미와 눈치를 너무 얕봤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장수혁의 관심을 사다니. 이건 진짜로 좋지 않다.

‘한동안은… 최대한 조용히 지내자.’

슈레더와의 접촉 건도 좀 미루기로 했다.

이거 어째, 박현우를 살린 스노우 볼이 생각보다 크게 굴러가는군.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고. 귀가의 발길을 최대한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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