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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02화 (102/235)
  • 102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3)>

    고위 헌터는 국가적으로 귀중한 자원이다.

    이 한 문장으론 심각성이 안 전해질 테니, 좀 더 강조하자면.

    존나, 매우, 개십, 어마어마하게 귀중한, 금이야 옥이야 자원이다.

    A급 헌터 한 명의 전술적 값어치는 흑표 전차 세 대를 상회한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을 정도다.

    서류상으론 군인조차 아닌 헌터가, 전차나 여고생보다도 전략 가치가 높다니.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술 더 떠서. 고위 헌터는 비단 전략 가치만 높은 게 아니고, 상업적 가치도 아주 높다.

    A급 헌터 한 명의 연간 채산성은 웬만한 소기업을 상회한다.

    D급 헌터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가 이세계 불똥개 몇 마리 뚜드려 패서 나온 전리품.

    그리고 A급 헌터 한 명이 순식간에 때려잡은 B급 몬스터 ‘자이언트 예거’의 전리품.

    둘 중 뭐가 더 값어치 있을까?

    후자가 최소 150배 이상의 잠재 가치가 있다. 그래서 더욱 희귀하고. 귀중한 자원인 것이다.

    “B급 상위 헌터만 돼도, 연봉으로 싯가 부른다 카던데?”

    이건 오피셜은 아니고. 나 같은 말단 헌터들 사이에서 돌던 조롱 겸 찌라시다.

    어쨌든 이런 말이 있을 정도니, A급 이상 헌터들의 위상이 대충이나마 짐작되는 바다.

    “한국에 남아있는 A급 이상들? 다 존나 애국자들이지. 솔직히.”

    이건 한 A급 헌터의 강연에서 들은 말이다.

    귀중한 자원인 만큼 타국에서 천문학적인 거금을 들여 빼가려는 시도가 많고. 실제로 돈에 넘어가 해외로 망명한 고위 헌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헌터 협회가 맨날 그것 때문에 아주 난리도 아니야. 인사과랑 감시과가 골머리를 썩어요.”

    돈과 시간 잔뜩 쏟아 키워 놓은 인재의 해외 유출. 그리고 던전 파훼나 던전 붕괴 수비 도중, 필연적으로 나오는 일부 사망자들.

    이런 돌발 요소들이 곧바로 협회의 전력 감소 및 국력 감소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헌터 협회는 어떻게든 고위 헌터의 손실을 줄이는데, 시뻘겋게 혈안이 돼 있을 수밖에 없다.

    “기동력도 무력도, 고위 헌터가 한참 더 우세할 텐데. 왜 항상 던전이 붕괴하면… D급 헌터가 제일 먼저 투입되겠냐, 얘들아?”

    그 A급 헌터 양반은 참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건 영원회귀 이전에 들은 건데도. 유난히 인상이 깊게 박혀있다.

    아직도 그 시니컬한 목소리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솔직히 너희들도 다 알고 있잖아. 그냥 협회에서 대놓고 쉬쉬하는 분위기니까 닥치고 있는 거 아니냐?”

    그래. D급 헌터인 우리도 다 안다.

    대표적으로 나만 해도. 그쯤이야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값싸고 양 많은 니들이 먼저 처맞아 봐라. 목숨으로 정보나 최대한 긁어와라 이거지.”

    다 아는데. 뭐 어쩌겠냐.

    위에서 까라면, 우린 그냥 까는 거지.

    “약해빠진 D급인 것도 서러운데, 총알받이 취급이라고. X발. 인생 족같다, 그지?”

    D급 헌터.

    돈은 절실한데 할 일은 없는 새끼들이, 미래랑 생명 팔아 도달하는 곳.

    여긴 애초에…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놈들만 모인 동네다.

    * * *

    3차 붕괴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직후. 나는 백화점 앞에 쭈그려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피곤하다.”

    “우응. 나도.”

    내 옆엔 이브가 나란히 앉아 있다.

    각자 딸기우유 팩에 빨대 하나씩 꽂고, 얌전히 빨아 마시는 중이다.

    “…쪼오옥.”

    “쭈웁. 쭈웁.”

    대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박현우와 함께 살아남은, 단 두 명의 헌터 생존자. 헌터 협회 상층부에 전투 경과를 브리핑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백화점 앞에 차려진 임시 막사에, 박현우가 먼저 들어가 있다.

    ‘차라리 나 혼자였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만약 이번 붕괴에 나 혼자 살아남았다면. 그냥 그대로 종적을 감춰서, 한정용 헌터를 서류상 사망 처리 해버렸을 거다.

    그랬다면 이런 사후 진술에 휘말릴 일도 없었겠지.

    ‘박현우가 있어서 그것도 안 되네.’

    그런데 이번엔 박현우라는 다른 생존자가 같이 살아남았다. 게다가 놈이 내 얼굴도 확실히 안다.

    이러면 빼도 박도 못한다.

    ‘박현우가 나에 대해서 뭐라 떠들지 모르니까.’

    괜히 숨어 다니다 들켜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보단, 현장 진술에 참여해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게 차라리 낫다.

    ‘뭐, 어쩌겠냐.’

    박현우를 살리기로 한 건 내 선택이다. 달리 원망할 이도 없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어, 아빠!”

    멍하니 생각하며 허공을 응시하던 와중. 이브가 내 어깨를 급히 잡아당겼다.

    그녀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기! 봐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내 탄성을 터뜨렸다.

    박현우가 침중한 표정으로 막사에서 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나왔네. 오래도 걸렸다.”

    박현우의 취조가 끝났다. 이제 말단 병사인 내 차례다.

    이브도 죽어가던 눈가에 희망이 깃들었다.

    “우리 이제… 집 갈 수 있는 거지?”

    “아마도. 조금만 더 참아라.”

    “후아. 길었다.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어. 아빠아.”

    “그래… 음?”

    나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멈칫, 행동을 정지했다.

    박현우가 똑바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목적지는… 시선이나 방향을 봐선, 아무리 봐도 우리가 분명했다.

    이브도 나를 따라 몸을 바짝 굳혔다.

    “아빠. 이쪽으로 오는데?”

    “그러네.”

    “아빠. 뭐 잘못한 거 있어?”

    “없어. 왜 내가 잘못한 게 전제냐.”

    “그야 당연히… 아.”

    거기까지.

    이브가 재잘대던 입을 덜컥 멈췄다.

    성큼성큼 걸어온 박현우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생 많으셨슴다, 중대장님.”

    예의상 내가 먼저 묵례를 꾸벅, 박았다.

    박현우는 내 인사를 보고는 오히려 흠칫 놀랐다. 그가 둥그렇게 뜬 눈으로, 잠깐 나와 이브를 번갈아 쳐다본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별안간 꾸벅, 내게 고개를 숙였다.

    참담하게 표정을 구긴 박현우. 진심 어린 행색으로 내게 사과를 해왔다.

    “……?”

    박현우를 빤히 쳐다봤고. 이내 고개를 모로 꺾었다.

    도저히 내 머리론 이해가 안 돼서 그랬다.

    “뭐가 그리 미안하십니까. 중대장님.”

    “이젠 중대장 아닙니다. 그냥 박현우라고 부르세요.”

    박현우는 쓴웃음과 함께 정정했다.

    하긴. 게이트 사태는 이미 진작에 끝났다.

    임시 부대도, 부대장 직급도 진작에 해체된 지 오래. 박현우를 더 이상 대장 취급 해줄 필요도 없다.

    ‘말투도 벌써 존대로 변했군.’

    외관상 나이도, 헌터 등급도 저쪽이 높은데. 박현우는 서슴없이 나에게 존댓말을 해왔다.

    역시 이놈은 B급씩이나 되는 헌터치곤… 상당히 별종이었다.

    ‘생긴 건 존나게 우락부락 무식하게 생겨갖고.’

    웬만한 헌터들보다 상식이 옹골차게 탑재된 놈이다.

    그래서 별종이라는 거다. 헌터는 100중 98명은 상종 못할 쓰레기 새끼들이니까. 나머지 두 명 중 하나가 바로 얘인 듯하다.

    “알겠습니다. 현우 씨.”

    어쨌든 지금은 박현우가 원하는 대로 대접해 주기로 했다.

    나는 헛기침을 가볍게 한 후,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뭐가 미안하다는 겁니까.”

    “댁을 살려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무책임하게 중간에 기절해 버렸잖습니까.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하. 난 또 뭐라고.”

    박현우는 구출작전 도중에 기절한 것에 책임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전혀 미안할 필요 없다, 박현우. 너 내가 재웠어.

    ‘미안하려면… 오히려 내가 미안해야지.’

    곯아떨어진 박현우를 꽤 오래 방치했다.

    1층의 사향 나비를 완전히 전멸시켰던 게 아니라서, 까딱하면 박현우도 나비한테 뇌수 먹방 당할 뻔했다.

    그 전에 내가 정신 차리고, 헐레벌떡 내려와서 소탕했으니 망정이지. 솔직히 타이밍이 좀 아슬아슬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줄 수도 없고.’

    나는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좋은 게 좋은 거’의 흐름으로 밀어붙인다.

    “딱히 신경 안 쓰니까, 현우 씨도 신경 쓰지 마세요.”

    “하, 하지만.”

    “이렇게 둘 다 살아 돌아왔지 않습니까. 살았으면 됐어요.”

    “…아. 그래. 그, 그거 말인데요. 대체 제가 기절하고, 그 뒤로 어떻게 된 겁니까?”

    박현우가 마침 잘됐다는 양 물어온다.

    이번엔 단순한 걱정이 아니었다. 날 쳐다보는 시선에 의구심과 더불어, 약간의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윗대가리 새끼들도 저한테 계속 물어보던데……. 아시다시피 전, 중간에 기절했잖습니까.”

    “예, 뭐. 그랬죠.”

    “대체 거기서 어떻게 살아서 빠져나온 겁니까? 게다가 어떻게,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저까지 살려내신 거고.”

    “…….”

    “그리고 가장 궁금한 건. 대체 게이트는… 누가 닫은 겁니까?”

    질문보단 일종의 추궁.

    이건 사실 내 부덕의 소치다.

    당시 내 연기력이 너무 발 연기인 탓에, 박현우를 진작에 백화점에서 탈출시키지 못한 게 컸지.

    ‘뭐… 어쩔 수 있나.’

    이번 붕괴에 살아남은 게 나와 박현우 둘뿐이고. 내 맨얼굴은 이미 박현우에게 확실히 도장이 찍혀버렸다.

    뭐 괜찮다. 박현우를 살려내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 정도 곤란은 각오한 바다.

    “저도 잘 모릅니다. 현우 씨.”

    이 악물고 모르쇠 작전으로 간다.

    내 단호한 부정에, 박현우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모른다고요?”

    “네. 죄송하지만 진짜 모릅니다. 저도 그 뒤로 바로 기절했거든요.”

    “아니, 하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겁니다. 지휘부에도 이대로 말할 겁니다. 진짜 모르니까요.”

    어쨌든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히려 박현우를 지그시 쳐다본다. 내 직선적인 시선에 박현우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근데 누가 게이트를 닫았는지는, 현우 씨도 대충 알고 있을 텐데요?”

    “그, 그야.”

    박현우는 시선을 슬쩍 피하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끝내 부정하진 못했다.

    “…본인이 대서특필하고 다녔으니까요. 모를 수가 있나요.”

    이내 박현우는 삐빅, 눈앞에 패널 하나를 띄웠다.

    던전 시스템 패널이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제51던전의 폐쇄자: 레드 저거너트]

    던전 폐쇄자 고지 시스템.

    나는 이번에도 그걸 이용했다.

    ‘이번 생엔 좀 바빠서 소홀하긴 했다만.’

    나를 우상화하는 계획 자체는 아직 폐기되지 않았다.

    실제로 전번 회차. 내가 레드 저거너트를 연기한 여파로, 전개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었다.

    해둬서 나쁠 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 안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레드 저거너트…….”

    박현우가 그 이름을 가만히 읊조렸다.

    역시 익숙한 사람 입에서 저 이름이 나오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가슴께가 간질거리는 듯한 미묘한 쪽팔림이랄까.

    기왕 회차도 바뀐 거. 이번 생엔 좀 더 고심해서 작명할걸. X발.

    “이거 저번 용산 사태 때, 그 붉은 갑옷 놈이겠죠?”

    박현우는 미간을 좁히며 추측했고.

    추측은 단박에 정답을 꿰뚫었다.

    “뭐,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는 애매하게 긍정해 줬다.

    기특한 박현우는, 내가 의도한 대로 훌륭하게 앞뒤를 맞춰나갔다.

    “이번에도 그 정체불명의 빨갱이 놈이… 전처럼 던전을 폐쇄하고 사라진 걸까요?”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않을까 싶다……? 그 빨간 갑옷 놈을 직접 보지 못하셨습니까?”

    “실루엣만 얼핏 봤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마력 고갈로 정신이 간당간당하던 차라.”

    “아아.”

    나름 조리 있게 둘러대서 그런가. 나에 대한 박현우의 의심은 거의 걷힌 듯해 보였다.

    “흐음… 그렇단 말이죠.”

    박현우는 지금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아마 레드 저거너트에 대해 고민하는 거겠지. 이미 이번 게이트 폐쇄자를, 1차 붕괴와 동일 인물로 확정한 모양새였다.

    ‘당연한가?’

    1차 붕괴를 제압한 의문의 붉은 갑옷. 레드 저거너트는 이번 회차에도 어김없이 화제가 됐었다.

    오버 랭커 강서윤을 압도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고. 드래곤 수십 마리를 맨손으로 때려죽이는 장면을 대놓고 보여줬으니까.

    ‘저번 회차의 양호성만 해도 그랬지.’

    단서가 이번 회차보다도 적은 상황에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었다.

    그러니 저렇게 추측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번엔… 뭐라더라. 빨갱이 원펀맨이던가.’

    인터넷상에선 벌써 괴상한 별명도 붙었다.

    물론 아무리 괴상해도 ‘관대하’보단 낫겠지. 빨갱이 원펀맨도 선녀 같다.

    “그나저나. 옆에 그 애는 누구인가요?”

    문득 박현우의 시선이 내 옆, 이브 쪽으로 향했다.

    이브는 관심이 집중되자 어깨를 슬쩍 떨었고. 반쯤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내 뒤에 몸을 숨겼다.

    나는 그녀 대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카 비슷한 겁니다. 예.”

    “조, 조카……? 그런 것치곤 머리랑 눈 색이 좀, 특이하네요?”

    “애 아빠가 외국인인지라. 마케도니아.”

    “아~ 아. 마케도니아. 그렇군요.”

    박현우는 과장스러운 탄성을 질렀고.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반응 보니 너도 마케도니아 어딘지 모르는구나.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글로벌 시대니까요.”

    “아 예. 글로벌, 그렇죠. 예……!”

    박현우가 연신 끄덕였지만. 아무리 봐도 똥 싸다 끊긴 표정이다.

    마케도니아는 X발. 역시 납득 못한 기색이다.

    ‘…빨리 도망치자.’

    더 이상 이브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위험하다.

    앞선 변명들은 사전에 준비한 거니까 청산유수처럼 내뱉었지. 임기응변 거짓말은 역시 잘할 자신이 없다.

    “그럼. 저도 이만 진술하러 가보겠습니다.”

    대충 대화를 후딱 마무리하고. 임시 막사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덥석, 박현우가 그런 내 어깨를 붙들어 맸다.

    “잠깐.”

    “…아, 예.”

    더 추궁하려 그러나 식겁했는데.

    웬걸. 그는 빠릿하게 명함 하나를 내밀어, 반강제로 내 손에 쥐여 줬다.

    “이거. 제 명함입니다.”

    나는 얼떨떨하게 그것을 받아들었고. 박현우는 손에 핸드폰을 까딱이며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저까지 살아남았잖습니까. 나중에라도 보답하고 싶어서요.”

    “…아아. 난 또.”

    “제가 그래도 꼴에 B급 헌터입니다. 인맥으로 뚫어놔서 나쁠 건 없을 겁니다.”

    “아… 예. 뭐, 그야 그렇죠.”

    그렇게 그 자리에서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름을 물어보기에 이름도 알려줬다.

    “흐음. 한정용 씨…군요.”

    박현우는 자기 핸드폰에 찍힌 내 번호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내 내 이름을 박아 넣어 연락처에 저장한다.

    “오케이. 접수했습니다.”

    이내 박현우는 넉살 좋은 미소를 피워 올렸다.

    “아무튼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용 씨.”

    “아뇨. 저야말로.”

    “언제 한 번 밥 한 끼나 합시다. 제가 거하게 한 번 사죠.”

    “…예. 기대하겠습니다.”

    “하핫.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턱턱.

    그의 굵직한 손가락이 내 어깨를 힘 있게 두들긴다. 나는 미미한 미소를 머금어 화답했다.

    그렇게 박현우는 터덜터덜 멀어졌고. 나는 한동안 망부석처럼, 핸드폰에 박힌 연락처를 멍하니 주시했다.

    “흐응, 아빠. 저 삼촌이랑 밥 먹는 거야?”

    찍소리도 못하던 이브가 그제야 재잘거린다.

    ‘언제 봤다고 박현우가 삼촌이 됐냐.’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

    “…먹긴 뭘 먹어.”

    신랄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박현우가 사라진 방향을 가만히 주시했다.

    “쟤 내일이면 내 이름 잊어버릴걸.”

    언제 밥 한 끼 하자.

    상투적인 한국인의 작별 멘트지.

    저런 말 하고, 나중에 진짜 밥 한 끼 사는 사람?

    내 살면서 한 번을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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