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2)>
나는 렘마의 스킬 기믹을 아직까지도 모른다.
놈은 대체 어느 틈에. 그리고 언제부터. 무슨 수단으로 내게 환술을 걸었을까.
모르겠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백화점에 들어온 직후인가.’
렘마의 정원 영역에 들어온 그 순간. 이미 걸렸던 걸지도 모른다.
이미 환술에 걸린 나로선, 그 정확한 타이밍을 이번 회차에도 파악할 수 없었다.
―오빠! 또 제 앞에서 딴생각하는 거예요?
그 순간 익숙한 멘트가 들려온다.
수아에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은 말. 덕분에 상념이 여지없이 산산조각 났다.
뒤틀린 미소를 지은 수아가, 어느새 눈앞에서 쇄도하고 있었다.
―아하핫! 반응이 진짜 재밌네.
챙! 채챙! 채애앵!
좌 측방과 우 하단. 한 바퀴 돌아 정면 옆구리를 노리는 참격이 노도처럼 쏟아졌다.
―으흐흐! 아빠, 여기야 여기!
―나도 잊으면 안 되지! 정용아!!
후방에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시시각각 가까워진다.
이브와 서윤이었다. 두 사람이 좌우측 후방에서 가위 날을 내리쳐 온다.
눈으론 보이지 않지만, 선명하게 다가오는 파공음이 그것을 알게 해줬다.
‘현자의 눈.’
키이잉!
탐색의 마력 파동을 전방위로 쏘아 보냈다.
마치 박쥐가 그러하듯. 파동의 반향으로 사각지대의 움직임을 예측해 낸다.
‘지금.’
차르륵!
사복검을 풀어헤쳐 정확한 각도로 휘둘렀다.
붉은 칼날의 파도가 한순간에 나를 휘감았고. 채채챙! 급소를 노리던 세 쌍의 가윗날을 일제히 튕겨냈다.
―우, 와아……!
―이게 막혀버릴 줄이야……?
푸스스.
놀란 듯이 중얼거리던 서윤과 이브가 신기루처럼 허물어진다.
기습은 어렵지 않게 모두 막아냈지만. 내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무참히 썩어 있었다.
“…한 번만 더. 그 면상 달고. 그딴 소리 해봐라.”
물리적인 대미지는 전혀 없다.
하지만 아까부터 계속 이런 식이다. 심리적 의표를 찌르는 말과 표정들이 수시로 날아온다.
“그냥은… 안 죽일 줄 알아라, 던전 마스터.”
수아의 형상을 한 렘마가 내뱉었던 말.
충격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귓가에 이명처럼 그것이 맴돌고 있었다.
“오빠! 또 제 앞에서 딴생각하는 거예요?”
그 특유의 어조와 억양.
약간 심통이 난 듯한, 실감 나는 표정까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똑같을 수가 있는 거냐.’
진짜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사실은 진짜가 아닐까, 계속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이렇게까지 똑같냐.
진짜로 정신 나갈 것 같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괴로운 전투였다.
―흐흥, 그런 말…이라?
유령처럼 홀연히 거리를 벌리는 수아… 아니, 수아의 탈을 쓴 렘마.
그녀가 입가의 미소를 한층 짙게 머금는다.
―아잉, 그런 말을 해버리면 안 되죠. 오빠!
“…무슨.”
―그렇게 화를 내니까. 더 해주고 싶어졌잖아요?
파스스!
짝퉁 수아의 옆으로 세 개의 신형이 재구성된다.
서윤과 이세라, 그리고 이브였다.
―자살한다느니… 그런 말. 제발, 그렇게 쉽게 하지 마……!
먼저 강서윤의 형상이 괴로운 표정으로 울먹거렸다.
으드득. 이가 반사적으로 악물렸다.
―16차 게이트 붕괴는… 볼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다음엔 이세라가 씁쓸하게 웃으며 간청하듯 말한다.
뿌득. 이마에 피가 잔뜩 몰린다.
―아빠가 눈 감을 때. 아프고, 힘들고… 외로워 보였단 말이야!
마지막은 이브의 울먹이는 호소가 장식했다.
씨이익. 세 여인의 절박했던 표정이, 이내 장난스럽게 뒤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이내 수아와 함께 내 쪽으로 얼굴을 한껏 내뻗었다.
―하지 말라는 건.
―이런 말 같은 걸.
―말하는.
―거겠지?
네 사람의 입술이 쉼 없이 말을 이어받는다.
나는 어깨를 한 번 크게 떨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서 한 발짝 뒷걸음질 친 상태였다.
“아.”
뒤늦게 깨닫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15차의 던전 마스터에게도, 언제나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던 나였다.
그런데 그런 내가. 한발 물러섰다.
“…X발.”
참기 힘든 불쾌감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
불쾌감, 분노? 아니. 아니다.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얼버무리고 있었다.
‘솔직히. 좀 많이, 무섭네. 저건.’
이건 공포였다.
심장 밑바닥을 박박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공포.
―으후후후후.
그런 내 상태를 렘마도 인지한 것인가.
꿈결처럼 일렁거리던 수아의 얼굴이, 소리 소문 없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너. 되게 뒤틀린 놈이구나?
접근해오던 렘마가 중얼거린다.
전생에선 들어본 적이 없는 대화의 첫머리다. 급박한 와중에도, 일말의 호기심이 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공포의 기전이 되게 특이하네. 그래서 진짜 재밌어. 반응이 엄청 기대된달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소중한 사람이 너한테 호의를 보이는 거. 친절을 베푸는 걸 무서워하는구나. 그것도 엄청.
“…….”
―허세 같은 게 전혀 없이, 진심으로 엄청나게 무서워하네? 이런 사람은 진짜, 난생처음 봤어.
“…….”
―정말이지. 어지간히도 뒤틀렸구나, 너?
어느새 수아의 신형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스르릉! 수아의 양손에 들린 날붙이의 싸늘한 청색광이 눈가를 간질인다.
그때까지 난 한 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다.
―너. 왜 그렇게 얘네의 친절을 무서워해? 이유가 대체 뭐야?
수아가 뒤틀린 미소를 머금은 채 되물어온다.
남을 희롱하기 위해 이죽거리는 표정. 수아에겐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표정도… 좀 보고 싶네.’
어느새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있다.
안 되지. 저건 진짜 수아가 아니잖아. 표정 수집의 마구니에 사로잡히려는 자신을 억지로 가다듬었다.
“노코멘트 한다.”
그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가 왜 이세라나 수아, 서윤이의 호의와 친절을 무서워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어차피 잊힐 것들이니까.’
정답은 아마 그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친절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다.
그 진심 어린 친절조차 없던 일이 되고. 내 기억에만 남게 되는 상황이 싫은 거다.
“알아서 뭐 하게, 개새끼야.”
근데 그걸 내가 왜 말해주겠냐.
내 약점을 적에게 스스로 불어줄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흐응. 뭐야, 재미없게.
수아의 얼굴이 불만으로 빠방하게 부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한층 사악하게 이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됐어. 말하지 않겠다면… 내가 알아내면 그만이지롱!
번득!
렘마의 시선이 한층 날카롭게 빛났다.
샛노란 안광이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거부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압도적인 감각이 한 차례 전신을 핥아 내렸다.
―보여줘. 네 머릿속. 좀 더… 깊숙한 곳.
그녀가 내 심층 의식까지 침투를 시도한다.
나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깊은 곳까지. 내 기억을 읽어 들이고 과거를 빨아들여, 나라는 인간을 파악해 나간다.
그곳에 도사린, 내가 근원적으로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자, 보자아… 흐음, 으흥?
그렇게 렘마가 연신 탄성을 흘리며 내 머릿속을 뒤지는 동안.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않은 채, 그녀의 작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
저항을 못한 게 아니다.
시도하자면 뭔가는 시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의지로 안 했다.
“…….”
자고로 기믹 보스란, 기믹만 알아내면 손쉽게 처치할 수 있는 보스다.
하지만 반대로 기믹을 모르면. 절대로 무력만으론 처치할 수 없게 설계된 보스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고전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것은 자명하다.
‘나는 여전히, 렘마의 환술 파훼법을 모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던전 마스터 렘마를 쓰러뜨려 본 적이 있다.
있다 뿐일까. 1천 번이나 이 짓을 반복했다. 정말 숱하게 저년을 죽여본 경험이 있다.
‘렘마는 곧 죽는다.’
그러나 내 힘으로 죽인 건 아니다.
렘마는 본인의 힘에 의해,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약간의 변수는 있었지만.’
아직 상황은 모두 내 예측 범위 안. 통제를 벗어나지 않았다.
게이트는 이제 곧 폐쇄된다.
…그럴 운명이다.
―…….
그리고 때마침.
그 시발점을 알리는 침묵이 시작되었다.
―…….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렘마의 여유만만한 탄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네 명의 렘마가 모두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곧 수아의 탈을 뒤집어쓴 렘마가, 몸을 잘게 경련했다.
―…허. 하. 아하……?
간질 환자마냥. 의문에 찬 숨결을 발작적으로 내뱉기 시작하는 렘마.
표정이 전에 없이 일그러지고, 공포로 창백하게 질리더니, 급기야.
―꺄아아아아아아악!!
백화점 플로어를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을 내질렀다.
철철철. 일그러진 수아의 얼굴 위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아아, 아, 아아아……!
렘마는 다리가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허공 어딘가를 바라봤고. 한없이 공포에 찬 신음을 흘렸다.
―아아아아아아!!
빠지직. 뿌득!
문득 그녀의 절규에 맞춰, 허공에 새하얀 실금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아아! 안 돼… 그, 그런, 안 돼애애!!
챙강! 채채챙!
허공에 생긴 균열을 중심으로 공간 자체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부서진 허공 너머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와, 백화점 전역을 감쌌다.
내가 질끈 감았던 눈을 다시 뜬 순간.
―그, 그럴, 그럴 수가. 그놈… 그, 그놈이. 어떻게. 어떻게, 네 기억에… 아아아!!
바뀐 것은 많지 않았다.
다만 렘마는 어느새 수아의 탈을 벗은 상태였다.
그리고 사방에서 우글거렸던 사향 나비와 인간을 양분 삼아 피었던 오색의 꽃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풀렸다.’
모두 렘마의 환술이 풀렸다는 증거였다.
지금까지 나는 렘마가 만든 악몽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 내가 목격하고 있는 것들이 진짜 현실이다.
저벅저벅. 나는 주저앉은 렘마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존나게 무서운 꿈이라도 꿨나 보지. 던전 마스터.”
상황은 단숨에 역전되었다.
뒤틀린 미소가 내 입가에 걸려 있다.
렘마는 내 말에 어깨를 한껏 움츠릴 뿐.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아, 아니야. 잘못 본 거야. 그럴 수가. 그럴 리가 없어. 맞아. 그럼. 뭔가, 뭔가… 분명히 내가, 착각한 거야……!
그저 혼자 더듬더듬 중얼거린다.
병자처럼 히죽거리면서, 자기 자신을 속이려는 듯이. 필사적인 어조로 뭔가를 항변한다.
전형적인 정신 승리의 현장이다.
“잘못 본 거 아니다.”
물론. 나는 렘마가 도망가도록 놔두지 않았다.
내 말에 온몸을 바싹 굳힌 그녀. 나는 그 앞에서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15번째 붕괴의 던전 마스터. 나는 그놈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히, 히이익……!
“네가 본 건 전부 사실이다.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이고. 또 앞으로 일어날 일이야.”
―아냐, 아니야아아! 으아앙! 흐어어엉!!
렘마가 양어깨를 부여잡고 몸을 최대한 말았다. 그리고 바닥에 납작 엎어져, 어린애처럼 목 놓아 엉엉 울었다.
나는 한숨을 흘리며 승리를 직감하는 한편.
‘…대체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다만… 역시, 이번에도 먹히는군.’
어김없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정원사 렘마를 이길 수 있게 된 건. 그 직전 회차에 15차 붕괴의 던전 마스터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다음부터였다.
다시 말하면.
‘저년이 읽어 들인 기억에… 15차 붕괴의 던전 마스터가 나온 순간부터, 알아서 자멸하기 시작했다.’
항상 이런 수순의 반복이었다.
그 뒤로 나는 렘마의 스킬 기믹을 알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알아낼 필요가 전혀 없지. 내가 애써 파훼하지 않아도, 기억을 읽어 들인 렘마가 알아서 자멸하니까.
―드디어, 이제야 벗어났다고. 분명히 그럴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렘마가 바닥에 엎어진 채 허우적거렸다.
절망과 실의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끈적한 넋두리를 이어 나간다.
―아니었어? 아직, 아직도야? 지금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던 거야?
쌓인 시체들 사이를 네 발로 발발 기다, 어느 순간 흠칫. 어딘가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연녹빛 시선 끝자락. 둘로 갈라진 거대한 가위가 있다.
―아아… 악몽. 아직 악몽인 거야. 깨지 못한 것뿐이야. 그럴 거야……!
덜그럭.
렘마는 미친년처럼 중얼거리며 가위 칼날을 들었다.
차킹! 둘로 쪼갰던 가위가 다시 합쳐진다. 그녀는 날을 한껏 벌려, 그 사이로 자기 목을 들이밀었다.
―그만. 부탁이야. 제발 그만해. 나… 이제, 그만하고 싶단 말야.
렘마가 미친년처럼 실실거리며 눈물을 쏟길 잠시.
서걱! 가위가 단숨에 닫힌다.
[제51던전 ‘미명 정원’의 던전 마스터, ‘미명 정원사 렘마’가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털썩.
렘마의 몸과 머리가 각기 바닥을 뒹굴었다.
―푸스스스.
―스스스스.
휑해진 목 위론 핏줄기 대신 사향 나비가 우글우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머리는 즉시 시커멓게 썩어, 이목구비를 뚫고 빛의 꽃다발이 피어났다.
―스스스스스스…….
나비들은 죽은 렘마의 육신을 게걸스럽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흐드러지게 핀 사혈화에도 우글우글 몰려들어 탐욕적으로 주둥이를 꿀렁거렸다.
실로 추악했고. 그만큼 형형색색 아름다웠다.
[게이트가 힘을 잃고 소멸합니다. 던전의 붕괴가 종식됩니다.]
파지지직!
정신없이 포식하는 사향 나비를 즉시 나선 번개로 지져버렸고. 잿가루로 화해가는 렘마의 시신을 멍하니 쳐다봤다.
“…….”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내 기억에서 15차 붕괴의 던전 마스터를 목격한 렘마는, 언제나 저런 반응이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광인의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갔지.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이제야 벗어났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질감.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위화감.
나는 이제, 저 존재들에게서 거대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으응. 그렇구나. 그런 거였어. 그래. 그랬으면… 이해가 가지.”
이건 에티가 중얼거렸던 말이다.
그녀는 이브를 보자마자 행동이 격변했었다.
마치… 그래. 뭔가 잊혔던 기억을, 이브 덕분에 간신히 떠올린 것처럼.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나도 사냥꾼의 덫 안이었다.”
저번 생의 마지막, 10차 붕괴 때.
갈고리 사냥꾼의 지겨운 유언이 뇌리를 후려친다.
최대한 발악해 보라고. 그 뼛속까지 지친 사냥꾼은 내게 그런 조언을 남겼었다.
“…대체.”
그 모든 전생과 경험을 아득한 반복 속에 새긴 후. 지금의 1002번째 내가 됐다.
지금에서야 겨우, 나는 이런 의문을 떠올렸다.
“던전은, 뭐지?”
공략법에 대한 의문이 아니다.
1002번째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아주 순수하고, 근원적인 호기심이 든 것이다.
“던전 마스터는, 뭐 하는 놈들이냐?”
제한되고 협소한 이세계. 던전.
그 단절된 세계를 필사적으로 지키고, 지구의 인간들에게 무분별한 악의를 쏟아내는 존재. 던전 마스터.
놈들의 진정한 정체가 궁금해졌다.
‘계획. 연극.’
노스페라드의 뒤편에 숨어있던 존재가 떠오른다.
계획. 그리고 연극이라고 했었다. 놈과 나눴던 대화 중 등장했던 기분 나쁜 키워드들.
“…….”
왜일까.
그 단어들이, 아까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