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99화 (99/235)

99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0)>

옆에서 이브의 기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아빠. 쟤네 왜 저러는지 알아?”

슬쩍 고개를 돌려봤다. 광학미채 슈트를 벗어서, 모습이 완전히 드러난 이브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이브의 시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자기들끼리 막 죽이던데? 좀 소름 끼친다!”

“…그래.”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아빠, 혹시 알아?”

“그야. 알지.”

수십 번을 넘게 봐왔던 현상이다. 알 수밖에.

부대원들과 함께 백화점에 진입한 순간. 단박에 이번 던전 마스터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놈들은 꿈을 꾸고 있는 거다. 이브.”

“…응? 꿈? 잘 때 꾸는 꿈 말이야?”

“그래. 그거.”

“흐응?”

이브가 의문 섞인 탄성을 흘린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뒤. 이브는 유난히 이것저것 질문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호기심이 어렸을 때보다도 왕성해진 느낌이다.

사실 태어난 지 1개월 남짓이니, 아직 어린 게 맞긴 하다만.

“그러면. 다들 지금 자고 있다는 소리인가?”

“자고 있다고 해야 하나. 정확히는 홀려 있다고 해야지.”

“홀려? 뭐에?”

바로 대답하는 대신, 현자의 눈을 발동했다.

키이잉! 눈가에 짙푸른 마력이 깃들며 시계(視界)가 격변한다.

그제야 뒤늦게 대답했다.

“…사향 나비한테.”

육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신기루처럼 흐물거리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미쳐 날뛰는 사람들의 위. 오색으로 일렁거리는 빛의 나비들이 빽빽하게 바글거리고 있었다.

놈들을 향해 재차 현자의 눈을 발동했다.

[몬스터 정보]

[명칭: 사향(死香) 나비]

[체력: 8 마력: 58]

[힘: 1 민첩: 2 지능: 34]

[상세: 제51던전 ‘미명 정원’의 레귤러 몬스터. 지성체의 뇌에 침투해 반수면 상태로 만들어, 공포에 절여진 두개골과 뇌수를 서서히 갉아먹는다.]

사향의 나비.

맨눈으론 보이지 않는 저 빛의 나비가 지금 이 집단광기 사태의 주범들이었다.

“끄… 으, 흐아아아!!”

“히이이이익!!”

헌터들이 일반인들을 학살한다.

일반인들도 겁대가리 없이 헌터들에게 달려든다. 그야말로 부나방처럼.

“아아아악!”

“끄하아아앗!!”

푸확! 퍼거걱!

백화점이 피로 흥건해지며 토막 난 신체가 여기저기 솟구친다.

여기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미, 미안하다고. 내가 그때, 분명 미안하다고 했잖아!!”

“너, 너는 죽었어. 이건, 그래! 이건 꿈이야……! 깨라! 빨리 깨라고오오!!”

“죽어……! 이 X같은 괴물 새끼야… 죽어어어!!”

서로를 향해 증오스러운 시선을 흩뿌리며. 서로가 한 마디도 못 알아먹을 혼잣말을 미친놈처럼 중얼거린다.

아마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지금 내가 보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테다.

“…헤에. 좀 알 것 같아.”

이브도 사람들의 상태를 어렴풋이 짐작한 듯하다.

그녀는 약간 신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꿈을 꾸고 있다는 소리구나? 깨어있는 채로?”

“비슷하다.”

사실 비슷한 정도가 아니고. 정확한 비유였다.

예부터 생각했지만, 이브는 나름 머리가 비상한 외계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 설명을 해줬다.

“가장 잊고 싶은 기억. 아니면 가장 공포스러운 기억. 그런 것들이 부풀어지고 재현돼서 눈앞에 펼쳐지고 있을 거다.”

“흐응. 그렇구나.”

그렇다. 공포다.

지금 백화점 내부를 짓누르는 것은 압도적인 공포.

죽이는 쪽이나 죽는 쪽이나. 모두 엄청난 공포에 질려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공포들이 공명을 일으켜서 증폭되고. 더욱 큰 공포를 만들어 내지.”

도처에서 뿜어내는 공포심이 본인의 공포에 투영된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이내, 본인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형상으로 왜곡되어 나타난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 공포를 없애기 위해 발악할 거고.”

환영들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해 공포에 잔뜩 질려서. 닥치는 대로 마구 죽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공포로 벌벌 떨던 나도… 어느샌가 누군가의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서서히 미치게 만들고. 서로 죽이게 만드는 거야.”

그런 작용이 모두에게 연쇄적으로 작용한 결과. 눈앞의 현실이 완성되었다.

이브는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으음. 그렇구나.”

“그런 거지.”

“근데 아빠. 그런 짓을 하면 누가 이득이 있는데?”

“사향 나비들.”

“걔네가? 왜?”

“그 극한까지 정제된 공포를 빨아먹고 사니까.”

“아하.”

그리고 때마침, 그 포식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사사삭. 스산한 소리와 함께 나비들이 일제히 날갯짓했고. 절규를 질러대던 사람들의 머리 위로 하나씩 내려앉았다.

머리에 나비를 얹은 사람들은, 잠깐 몸을 움찔거렸다.

“으. 어어……?”

“아.”

잠시 후. 나비의 주둥이에서 날카로운 촉수가 불쑥 튀어나왔다.

뿌드드득! 일제히 사람들의 정수리를 파고든다.

“컥… 끄헉!”

“끄르륵!”

부릅뜬 눈을 허옇게 뒤집고, 벼락에 맞은 것처럼 격렬하게 경련하는 사람들.

이내 추욱. 모두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엎어져 갔다.

“아, 으, 아.”

널브러진 사람들이 간헐적인 신음과 경련을 쏟아낸다.

주르륵, 주륵. 나비들의 촉수가 상하 운동하며, 징그럽게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끄, 어… 어억……!”

사람들의 머리가 시시각각 쪼그라든다. 순식간에 미라처럼 야위고 바싹 말라간다.

뇌수와 혈액을 엄청난 기세로 빨리는 것이다.

“…….”

나는 그저 지켜만 봤다.

아무것도 안 한 채. 놈들의 포식이 최고조에 이를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지금쯤이던가.’

어느 순간 번쩍. 기습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대량의 마력을 손아귀로 집중시킨다. 마력은 곧 세찬 전격의 흐름이 되어 응집되었다.

회오리치는 번개의 구체가 완성되었다.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투콰앙!

나선 번개를 곧장 나비들의 군집을 향해 방출시켰다.

파지지직! 날카로운 전류가 나비들을 지져 떨구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푸스스스!

나비는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저 오색으로 알록달록한 빛을 뿜어내다가, 벼락에 맞으면 무참히 산산조각 났다.

나는 묵묵히 불꽃놀이를 계속 터뜨렸다.

“…….”

파지직! 빠자작!

영롱한 빛 덩이들이 번갯불과 함께 무더기로 으스러진다. 어둠에 잠겨있던 백화점 내부가 아름다운 빛의 파편들로 물든다.

마치 형형색색의 벚꽃이 흩날리는 듯하다. 퍽이나 장관이다.

“와아. 예쁘다……!”

이브도 그것을 보고 입을 닫지 못했다.

순수한 감탄과 황홀함이 한가득이다. 불꽃놀이를 처음 본 어린이가 저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싶다.

이내 그녀의 신난 얼굴이 내게 향했다.

“아빠, 아빠! 방금 뭐야? 뭘 한 거야?!”

“뭐가.”

“아빠가 번개를 쏘니까! 허공에서 막, 번쩍이는 가루가 생겨났어! 지금도 빛나는 가루가 막 폭발하잖아! 엄청 예쁘다!”

“……?”

나는 들떠서 방방 뛰는 이브를 가만히 쳐다봤다.

이내 갸웃, 의문에 차서 고개를 꺾었다.

“이브. 사향 나비가 안 보이냐?”

“나비? 아니? 나비가 어디 있는데? 어디?”

“…흐음.”

양손을 연신 뻗어 나비들을 죽여 나가는 한편.

나는 침음과 함께 깊은 상념에 잠겼다.

‘이세라의 스킬은 귀신같이 느꼈는데. 사향 나비는 여전히 안 보이나 보군.’

이브의 육안 스펙은 인간에 가까운 듯하다.

‘천칭의 눈’ 스킬을 감지하는 건… 굳이 따지자면 인간의 영역 밖. ‘육감’이라고 불러야 할 미지의 영역이지.

그런 특출한 육감 쪽을 제외하면. 이브는 생각보다 일반인스러운(?) 부분이 많은 외계 소녀였다.

“아까부터 우리 위에 떠다니던 나비들이 있었다. 그놈들을 죽이고 있는 거야.”

“어엉? 그, 그런 게 있었어?”

어쨌든 나는 이브의 의문에 꼬박꼬박 대답해 줬다.

이브는 사방에서 흩날리는 나비의 날개 쪼가리를 하나 붙잡았다. 그녀가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신기한 듯이 탄성을 흘렸다.

“이게 그럼, 부서진 나비 쪼가리란 말이야?”

“그렇지.”

“이게 사람들을 홀리게 만든 거고? 머릿속을 쪽쪽 빨아먹어서 죽였어?”

“그렇지.”

이브는 내 말과 정황을 조합해서 전말을 예측했다.

역시 성장한 이브. 어린 시절보다 사고력이나 이해력이 일취월장했다.

꼴에 애비라고 감개무량함이 느껴질 정도.

“아빠! 근데 왜 진작에 안 죽이고, 방금까지 구경만 했어?!”

“…음.”

직후 이브가 쌍심지를 치켜세우며 눈을 부라렸다.

역시 성장한 이브. 어린 시절처럼 얼렁뚱땅 넘어가 주는 귀여운 맛이 없다.

이건 애비로서 야속함이 느껴질 정도.

“지금 하는 거 보니까. 나비를 죽일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잖아! 근데 왜 사람들이 다 죽어 나갈 때까지 방치했냐구!”

허리에 양손을 얹고 나를 추궁해 오는 이브.

던전 생물인 네가 그런 말을 하냐. 대단한 인권 운동가 외계인 납셨군.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인과 관계가 잘못됐다. 이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브가 눈을 끔벅인다.

난 뭘 설명하는 걸 잘 못 한다. 그래서 엄청나게 싫어하는 편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깐 진지하게 고민했다.

‘대충 얼버무리자니… 그것도 문제고.’

지금의 호기심 천국 이브는 대체로 얼버무리기가 통하지 않는다. 섵불리 두루뭉술하게 둘러댔다간, 나를 더욱 귀찮게 할 게 뻔했다.

나는 결국 나비들의 생태를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방금까진 진짜로 죽일 능력이 없었어.”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구, 아빠!”

“사향 나비들은 포식의 순간 외에는 실체가 없다. 스킬도, 어떤 무기도. 전혀 통하지 않아.”

“아… 아?”

놈들은 빛으로 이루어진 나비. 심지어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무정형의 무언가다.

빛은 만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이건 세 살짜리 애새끼도 경험으로 아는 사실이고. 사향 나비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 자연의 현상이었다.

“나비가 사람들의 뇌수를 빨아 먹은 다음에야. 나한테 죽일 능력이 생겼다.”

다만 딱 한순간. 놈들이 자발적으로 실체를 가지게 되는 타이밍이 있다.

바로 포식의 순간이다.

“실체가 계속 없으면… 나비들도 인간의 뇌수를 빨아먹을 수 없으니까.”

여전히 육안에 안 보이는 건 매한가지지만.

적어도 스킬이든 물리 공격이든, 피격 판정이 들어가는 몬스터로 변한다.

“그래서 그 뒤부터 나비를 죽이기 시작한 거야.”

“…아, 하. 그, 그렇구나.”

“난 절대 게이트 제압을 대충 하지 않아, 이브. 잠자코 기다렸으면, 기다린 이유가 있다.”

파지직, 파사사삭!

심지어 이브에게 설명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쉴 새 없이 나비들을 향해 벼락의 폭격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노력이 결실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이 정도 줄였으면… 한동안 나비가 밖으로 나갈 걱정은 없겠지.”

백화점 1층에 바글거리던 나비들의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줄었다 뿐일까. 거의 궤멸에 가까운 타격이었다.

“게이트부터 닫으러 가자, 이브.”

게이트가 열려 있는 이상 나비들은 계속해서 쏟아진다.

하지만 둥지 끝자락에서 숫자를 이만큼 줄여놨으면, 계속 충원되는 나비들의 백화점 외부 진출 타이밍이 그만큼 늦어질 것이다.

그걸 노리고 일단 1층부터 정리한 것이다.

“으. 아빠… 미안해.”

문득 이브가 시무룩하게 사과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시선을 피한다. 나와 눈을 마주치기 겸연쩍은 듯하다.

“내, 내가 잘못했어. 아무것도 모르고 화내서…….”

이브는 저번 가출사태 이후, 먼저 사과할 줄 아는 숙녀가 되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나는 대수롭잖게 어깨를 으쓱였다.

“됐다. 미안할 건 없고.”

지금부턴 속도전을 벌여야 한다.

화낼 시간도 촉박하고, 이브와 느긋하게 화해를 나눌 시간도 아까웠다.

애초에 사실, 딱히 화도 안 났다.

“바로 던전 마스터부터 죽인다.”

나는 시선을 천장 위쪽으로 들어 올리는 한편.

척, 이브를 향해 냉큼 손을 뻗었다.

“이브. 합체하자.”

“…그,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그러면 이브. 퓨전이다.”

“푸핫. 뭐가 다른 거야!”

이브는 실실 웃으며 딴죽을 걸면서도, 이내 내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녀가 내 품으로 와락 안겨 왔다. 나는 셔츠의 앞섶을 가슴팍까지 단숨에 끌러 내렸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거 쫌… 그림이 쑥스럽네. 히히.”

이브가 내 품에서 잠깐 꼼지락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의 입이 한껏 벌어지고, 송곳니가 날카롭게 벼려졌다.

“아웅.”

여전히 앙증맞은 탄성.

그리고 콰자작! 여전히 살벌한 살 씹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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