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98화 (98/235)

98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19)>

어김없이 1002번째 천안 출장을 왔다.

어김없이 게이트 붕괴 일자는 12월 2일. 오전 11시.

어김없이 천안에 상주 중이던 헌터들은 구세계 백화점으로 초동 진압에 나섰다가, 진작에 전원 몰살당했다.

[D급 헌터 한정용: 준전시 긴급소집 / D급 헌터 제05부대, 일반병 소속]

어김없이 내게도 긴급 지원 요청이 들어왔고.

어김없이 서울 남부, 인천, 충북, 충남권 인근에 상주 중이던 헌터들이, 천안의 구세계 백화점으로 바글바글 모여들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급조된 부대에 소속된 내가, 급조된 부대장 인솔에 따라 현장에 도착한 건.

이번에도 어김없이 약 11시 30분 정도였다.

“으아아아악!!”

“주, 죽여! 개새끼들! X발 다 죽여버려!!”

어김없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늘상 있던 3차 붕괴의 정경이었다.

“끄아아아악!!”

“으아아아!!”

그나는 이번에도 스무스하게 구세계 백화점 내부에 진입한 상태.

털썩. 옆에 서있던 누군가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씨, X발.”

그가 망연자실하게 욕지거리를 중얼거린다.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을, 직접 보고도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뭐야. 대체, 갑자기 이게 뭐냐고……!”

사내의 정체는 D급 헌터 제05부대의 임시 중대장. 이번 회차에서 내가 임시로 소속된 부대의 중대장이다.

정말 놀랍게도, 이번에도 구면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중대장님.”

중대장… 박현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박현우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본다.

“어, 으어?”

하도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옹알이를 했다. 내가 옆에 있다는 것조차 순간적으로 잊어버렸던 듯하다.

그가 얼빠진 면상으로 날 쳐다보길 잠시. 이내 내가 내민 손을 퍼뜩 붙잡고 일어섰다.

“그, 그래. 고, 고맙다.”

“정신 줄 잘 잡으십쇼, 중대장님.”

박현우가 일어나자마자 나직이 속삭였고. 깜짝 놀라는 그의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따봉은 아니다. 광기의 현장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정신 안 차리시면, 중대장님도 저렇게 됩니다.”

박현우가 그 말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홀린 듯이 전방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무참한 살육전을, 잠깐 둘이서 나란히 관망했다.

“오, 오지 마! 흐아아아악!”

“뭐, 뭐야. 이게… 사, 살려줘! 그만해!!”

몬스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 헌터들과 민간인들이 뒤엉켜 벌이는, 인간끼리의 골육상쟁.

“끄하아악!!”

“커헉… 배, 배가……!”

백화점 어디를 둘러봐도 그런 광경만 가득했다.

이내 박현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아, 아니. 그, 그래. 주의하지. 고맙다.”

“아닙니다. 별걸.”

넋이 나가 있던 박현우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그는 고개를 한 차례 세차게 휘젓더니. 이내 짜악! 자기 양 뺨을 있는 힘껏 휘갈겼다.

“스으으, 후우.”

심호흡을 하고, 눈빛을 다잡고. 이내 다시 나를 쳐다봤다.

흐흠. 헛기침으로 내 주목을 모으는 박현우.

“너, 너. 헌터였던가? 내 부대 소속 맞지?”

“예. 맞습니다.”

“내가. 내, 내가 지금까지 본 게… 현실, 맞지?”

박현우가 본 현실이란 무엇인가.

우선 백화점 동, 서, 남, 북문을 지키던 D급 부대 일동이 일제히 백화점 1층에 진입했었지.

그리고 그 순간.

“으아아아악!!”

“뭐, 뭐야… X발! 얘들아! 다, 다 어디 갔어!”

“여기 어디야!! 왜, 왜 이리 어두워! 거기, 누구야! 거, 거기! 오지 마!!”

부대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비명과 고함을 미친 듯이 질렀고. 우왕좌왕 혼란과 패닉에 빠져버렸었지.

“X발! 오, 오지 말랬지, 내가!!”

“주, 죽어! 이 괴물아!! 으아아아!!!”

“이, 끈질긴 새끼!! 역시… 넌, 그때 죽여버렸어야 했어!!”

직후엔 서로를 죽일 기세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내 같은 증상을 보이던 민간인들과 마구잡이로 뒤섞였고. 피아 식별도 제대로 안 되는 살육전이 시작되었다.

이런 현실을 말하는 거라면… 그래.

“예. 현실입니다.”

나는 긍정해 줄 수밖에 없다.

박현우가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킨다. 이내 내 어깨를 힘껏 붙잡고 마구 뒤흔들었다.

“너, 너. 너는 괜찮냐? 저 새끼들처럼 갑자기 헤까닥 미치거나, 그러진 않고?!”

“저는 괜찮습니다. 멀쩡합니다.”

태연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칫. 박현우가 내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그, 그래. 그래 보이긴 한다…만.”

이런. 내가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이질적으로 다가온 듯하다.

쓸데없이 박현우한테 경계심을 줘서 좋을 건 없다. 나는 내가 멀쩡한 이유를 황급히 설명했다.

“저는 캐스터 계열 헌터입니다. 혹시나 해서 진입하기 전에, 몰래 저한테만 물리 방벽을 둘러놨습니다.”

“아, 아아. 그, 그렇군.”

“부대원 전부를 커버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제 한계치가 두 명까지라서. 저랑 중대장님만 급하게 발동했습니다.”

“그, 그랬구나. 그래서 나도 제정신인 거였나……?”

“그렇습니다.”

박현우가 그제야 이해한 듯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나는 그가 보지 못하도록 피식, 미약한 쓴웃음을 머금었다.

‘미안. 박현우 씨. 이건 반쯤 거짓말이야.’

박현우에게 건 스킬은 <안티 노멀 리플렉터>라는, C급의 저급 물리 배리어다.

한계치가 두 명이긴 개뿔. 지금 내 마력 수준이면, 이 백화점 전체를 둘러쳐 놔도 한 시간 정돈 떡을 친다.

‘하지만 내가 지킬 건, 딱 당신까지다. 박현우.’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은 안 했다.

내가 확실하게 지킬 생명의 한계치. 그게 두 명까지라는 소리였다.

‘여기서 더 많아지면… 내 머리가 너무 아파.’

그러니 빠르게 견적을 계산한다.

지킬 수 있을지 아닐지 애매한 생명. 그리고 지킬 가치가 없는 생명은 깔끔하게 배제한다.

나와 박현우. 딱 거기까지.

그 이상 지키는 건… 나 말고 진짜배기 히어로들한테 문의해라.

‘뭐,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지.’

박현우만 특별 취급인 이유는 아주 심플하다.

옛말에 한 번 만나면 우연이고. 두 번이면 필연이고. 세 번이면 기적이라고 했다.

‘3연속 같은 인물은 진짜 네가 처음이라고. 박현우.’

눈앞의 박현우는 기적의 산물.

신기하고 반가워서라도 살려주고 싶었다.

‘이번 생의 당신은 운이 좋았어.’

그럼에도 만약 박현우가 지킬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고생해서 살리지 않았을 거다.

박현우. 전생의 당신이 쌓아 놓은 공덕에 감사해라.

“그건 그렇고…….”

그쯤에서 잡생각을 물렸다.

그리고 박현우의 앞에서 꾸벅,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지휘관 허락도 없이 스킬을 써버려서.”

“아아, 됐어, 됐어! X발 다 죽게 생겼는데 군법이 뭔 소용이야? 네 덕에 무사했는데,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지!”

박현우가 시큼털털하게 대꾸했다.

그는 쓴웃음과 함께, 내 어깨를 몇 번 두들겨줬다.

“고맙다. 네 덕분에… 나랑 너라도 멀쩡할 수 있었으니까. 본의는 아니었다지만, 아주 잘 해줬어.”

“…아닙니다. 제가 뭘 했다고.”

벌써부터 얘를 살려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숨 막히는 꼰대천국 헌터 협회에서 어떻게 이런 인물이 나왔지. 박현우와 엮이면 엮일수록 점점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잠깐.”

그리고 그 순간.

박현우가 흠칫, 무언가 깨달은 듯이 내 쪽으로 퍼뜩 눈을 돌렸다.

“무, 물리 방벽? 너 지금, 물리 방벽을 둘렀다고 했지? 스펠 방벽이 아니고?!”

“예, 맞습니다.”

“그, 그 말은! 지금 이 사람들이, 어떤 물리적인 요인 때문에 저 상태가 됐다는 소리잖아!!”

역시 박현우.

혹시나 했는데. 이걸 눈치채는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박현우의 면면을 주시했다.

‘전부터 느꼈지만 얘는…….’

은근히 전투에 관한 두뇌 회전이 비상하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초거대 그레이트 소드를 사용하는 점과, 다소 무식해 보이는 외관이 무색할 정도다.

어쨌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되겠군요.”

“그래. 그렇군. 스킬이 아니었어! 몬스터의 물리적인 공격 수단인 거야!”

“그렇겠네요.”

“이를테면… 그래. 환각제. 기체 상태의 환각제 비슷한 걸 공기 중에 뿌린다거나……!”

“오호.”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박현우를 쳐다보는 시선이 살짝 가늘어졌다.

진짜 제법이다. 그의 추측은 거의 8할쯤 사실에 근접해 있었다.

“병사! 혹시 배리어로 적의 공격 패턴까지 알아낼 수 있나?”

“아뇨. 미지의 물질이 백화점 전역에 걸쳐 퍼져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 종류까진 잘…….”

사실 알아낼 수 있다.

가능성은 고사하고. 나는 이미 내막을 전부 알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음, 그런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박현우는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이내 들뜬 어조로 연신 중얼거렸다.

“그래도. 물리적인 공격 수단이라는 걸 특정한 것만 해도 고무적이야. 지원을 요청할 때 참고할 수 있으니까……!”

그래. 좋은 거 알아내서 신난 건 알겠는데.

미안하지만 슬슬 여기서 나가줘야겠다. 나도 빨리 일 끝내고 퇴근하고 싶단 말이야.

“으윽……!”

나는 별안간 신음과 함께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대로 털썩, 무릎부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 어?!”

갑작스레 벌어진 돌발 상황.

박현우가 깜짝 놀라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뭐, 뭐야! 너 왜 그래!”

“마력을 너무 사용해서, 몸에 과부하가…….”

“이런… 미, 미안하다. 한가하게 떠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구나!”

“괜찮습니다.”

“괜찮긴! 자! 잡아라!”

박현우가 내게 선뜻 손을 뻗어왔다.

아까와는 상황이 완전히 반대됐다. 나는 멍하니 내뻗어진 손을 쳐다봤다.

그런 나를 재촉하듯, 박현우가 내 어깨를 뒤흔들었다.

“일단 제정신인 우리라도 여기서 탈출한다! 자, 내 손 잡고 일어나!”

“…아.”

나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오랜만에 생판 남의 순수한 호의를 받아서 좀 얼탔다. 일단 하던 연기나 계속하기로 했다.

“그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지에 힘이 안 들어갑니다.”

“이런. 마, 마력 고갈이냐?”

“예. 아마 곧, 배리어도 끊어질 겁니다.”

“X발… X됐네 이거!”

박현우가 초조감과 낭패감에 이를 잘근 깨물었다.

내가 오래 거짓말해 봐야 악수밖에 안 된다.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볼 차례다.

“전 괜찮습니다. 배리어가 사라지기 전에, 중대장님이라도 먼저 탈출하십쇼.”

“뭐, 뭐가 어째?!”

“배리어가 사라진 후엔… 늦습니다.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합니다.”

“…크윽!”

“대피하셔서, 한시라도 빨리. 헌터 협회에 지원 요청을 부탁드립니다. 그게 저까지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나 진짜 괜찮다고.

그러니까 빨리 나가버려. 박현우.

내 배리어가 사라지면 너도 저렇게 미쳐버린다. 자기 생명 소중한 줄은 당연히 알겠지?

“어서, 현명한 판단을.”

생전 처음 보는 부하가 목숨 걸고 만들어 준 목숨이다.

이성적이든 감성적인 판단이든. 이걸 거절하는 건 미련한 병신일 뿐이다.

내가 판단한 박현우는, 그 정도 똥오줌은 가릴 줄 아는 남자다.

“X발. 개소리 집어치워!”

그런데 웬걸.

박현우의 생각지도 못한 행동이 이어졌다.

“으라차!”

박현우는 단숨에 내 몸을 들어 올려 자기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빠르게 출입구 방향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걱정 마라! 내가 책임지고 너까지 탈출시킬 거니까!!”

“어… 음.”

“너도 포기하지 마! 날 믿어! 나 X발, 헌터 협회 미친개 박현우라고!!”

탱그랑!

박현우는 등에 동여맸던 그레이트 소드도 팽개쳤다.

어떻게든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든 뒤. 사력을 다해 출구 방향으로 전력 질주를 했다.

“으오오오오!!”

과연 B급 헌터다운 굉장한 속력.

하지만 몸무게 72kg의 짐 없이 달리는 것보단, 당연히 현저하게 느린 속도였다.

‘아니. 좀. 멈춰보라고. 박현우.’

무엇보다도 X발. 나 본인이 나가기 싫다.

나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개새꺄.

“…중대장님. 이 속도론 늦습니다.”

“닥쳐봐! 지금 집중 중이잖아!”

“저를 버리십쇼. 이러다 중대장님까지 같이 죽을 수도…….”

“그러면 X발, 까짓거 같이 뒤지고 마는 거지! 네 덕에 살았는데 나 혼자만 도망치는 게 말이 되냐?!”

“아니, 그게.”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냐! 이 새꺄!!”

현우야. 그건 보통 손절 멘트로 쓰는 게 국룰 아니냐?

한참을 생각한 뒤에야, 그의 사고방식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렇군.’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아직 살아있는 나를 반드시 살려야겠다. 이거냐.

그래. 이건 내 계산 밖이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어리석을 줄은 미처 몰랐네.

“하. 하핫.”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쁜 기분은 절대 아니었다.

“넌 살리는 보람이 있어서 좋구나. 몇 번째 생이든.”

“엉?! 뭐라고?!”

“혼잣말이다.”

나는 오른손을 슬쩍 들어 올렸고.

푸쉬익! 손아귀에서 일렁거리는 푸른 마력을, 박현우의 뒤통수에 슬쩍 주입했다.

[스킬 발동: 슬립]

“윽?!”

퍼뜩. 박현우의 온몸이 일순간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그의 신형이 격렬하게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박현우의 두 눈에서 힘이 점점 풀린다.

털썩. 그는 약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다, 결국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사뿐히 박현우의 어깨에서 내려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라. 부탁이다.”

그런 공허한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양쪽 어깨를 잠깐 털고, 흐트러진 매무새를 한번 정돈했다.

“이제 나와도 돼, 이브.”

그리고 중얼거렸다.

파지지직! 지척에서 공간이 일렁거렸고. 이내 이브가 광학미채 슈트의 후드를 벗으며, 뽀얀 얼굴을 드러냈다.

“푸하! 진짜,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아빠.”

“그래. 고생했다.”

이브가 쫄쫄이 슈트를 단숨에 훌훌 벗어던졌다.

나는 그걸 마력으로 잡아내 인벤토리에 구겨 넣었고.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섰다.

“일하자. 이브.”

“응.”

저벅.

백화점 안쪽. 광란의 살육장을 향해 한 걸음.

한없이 가늘어진 시선이, 득실거리는 인간의 숲을 훑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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