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3)>
그로부터 약 10분간.
나는 온 정성을 다해 노스페라드를 ‘심문’했다.
―끄아아악! 아아아아악!!
“리스토레이션.”
수복 스킬을 이용한 실전 압축형 극한 고문.
죽기 직전까지 사지를 토막 내고. HP가 0이 되기 직전의 절묘한 타이밍에 신체를 수복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나중 가서는, 그 콧대 높던 노스페라드조차 울며불며 애원했다.
―으, 흐으… 그, 그만……. 제발, 이제 그만……! 차라리 죽여라!!
“족까. 리스토레이션.”
―꺄아아아아악!!
“리스토레이션. 리스토레이션.”
죽을 만큼 고통스럽겠지만. 절대로 죽여주지 않는다.
여기를 노스페라드의 인세 지옥으로 만든다. 그 일념으로 열심히 찌르고, 또 열심히 회복시켰다.
그러길 꼬박 10분.
―제발… 그, 그만. 마, 말한다. 말하겠노라… 아니! 말하겠, 습니다……!
마침내 쓸 만한 대답이 술술 흘러나왔다.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단검을 완전히 허리춤에 납도해 버렸다.
“묻는 말에 전부 사실대로 대답해라. 알겠냐.”
―그, 그래… 아니. 그, 그러겠습니다. 네!
“거짓말의 기색. 머뭇거리는 기색. 뭔가 꿍꿍이가 있는 기색. 셋 중 하나만 보여도 지금 과정을 되풀이할 거다. 알겠냐.”
―그, 그래. 알겠다. 알겠, 습니다……!
“그래, 좋아.”
한층 예의가 발라진 노스페라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코앞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길 잠시. 나는 담담히 묻기 시작했다.
“이브는 대체 뭐냐.”
빙빙 돌아가는 건 질색이다. 이제 곧 헌터들이 출동할 테니, 시간도 얼마 없다.
곧장 핵심부터 찌르고 들어갔다.
―누, 누구냐고 물으면…….
노스페라드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나와의 약속대로 곧장 대답을 만들어 냈다.
―그건, 애석하지만. 나도 모른다고밖에는 못 말한다.
그러나 영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었다.
스르릉.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단검을 꺼내 쥐었다.
―자, 잠깐! 이건 정말이다! 진실이란 말이다!
다시 그 지옥이 시작될 낌새를 느꼈는지. 노스페라드는 순식간에 핼쑥해진 얼굴로 변명했다.
그녀는 내 발 앞에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내 모든 것을 걸고!! 하늘에 맹세코 거짓은 없다!! 제발, 제발 믿어다오!!
그 말대로다.
확실히 지금 노스페라드의 필사적인 변명에선, 거짓말을 하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너도 모른다고? 그게 진짜로 사실이란 거냐?”
―그래. 정말로 모른다. 하, 하지만……!
“하지만.”
―모, 목소리. 나는…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목소리라니.
의미심장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발언. 나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갑자기 뭔 놈의 목소리.”
―그것도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다. 하지만… 내 추측컨대. 내 심장 한편에 그 위대한 존재의 알을 잉태시킨 자. 그자의 목소리다.
이상하다.
얘기는 분명 진전이 있긴 한데.
어째 진행될수록 뭔 소린지 더 모르겠다.
‘일단 단어 선택부터 그렇고.’
왜 이리 아가리가 중2병스럽냐. 이 새끼 왼손에 애완용 흑염룡이라도 키우나.
나는 미간을 바짝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좀 쉽게. 내가 단박에 알아듣도록 말을 바꿔라. 5초 준다.”
―어, 뭣……?
“5, 4, 3, 2, 1…….”
―그, 그러니까! 네가 말했던 하, 하트기어? 그걸 내게 떠맡긴 자가 했던 전언! 나는 그 자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소리다!!
“옳지.”
봐라. 하자면 할 수 있잖아.
왜 괜히 어려운 말로 개폼 잡고 지랄이야, 지랄은.
“…잠깐.”
불현듯 손을 번쩍 들어 노스페라드를 불렀다.
알아듣고 보니… 이건. 꽤나 충격적인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 말은. 하트기어는, 원래부터 네가 갖고 있던 물건이 아니라는 소리냐? 누군가한테 받은 거라고?”
바로 이런 말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충격을 받든 말든. 노스페라드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 처음부터 말했잖느냐. 내 심장에 잉태되었다고!
“그러고 보니 그건 무슨 소리냐. 자세히.”
―그 위대한 존재의 알… 칼라브란테. 그건 나도 모르는 사이, 정신 차려 보니 내 심장에 기생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샌가 위대한 존재에게 모체로 간택됐던 거지.
칼라브란테.
노스페라드는 하트기어를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이브 역시 명칭이 달랐다. 이브는 ‘위대한 존재’라는, 듣기만 해도 어질어질한 명칭으로 불렸다.
“기생이라고.”
―그렇다. 떼려야 뗄 수도 없었고. 영과 육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지.
담담하게 회고하는 노스페라드.
그러나 무표정했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 순간부터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지. 좀 다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런 느낌이 아니야.
“그러면. 뭐냐.”
―떼어낼 수 있다 해도. 떼고 싶지가 않았다. 이게 좀 더 맞겠구나.
이내 공포조차 서서히 가시기 시작하고.
그녀의 어조와 시선은 아득한 황홀경에 젖어 들어갔다.
―영광스러웠다. 위대한 그녀를 내 안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영혼 깊숙한 곳부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 존재가 정확히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
―네 말대로… 지금은 칼라브란테가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지금에 와선, 내가 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건지 스스로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노스페라드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흙과 피로 더러워진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어지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그래. 그 잡것이 내 안에 있었을 땐… 항상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직접. 내게… 끊임없이 속삭였지. 마치 날, 세뇌하듯이……!
그렇게 다시 이야기가 처음으로 귀결되었다.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나는 눈도 감지 못하고, 노스페라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가까스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 목소리가, 너한테 뭐라 말하든.”
―명령이었다. 단 하나의… 아주 강렬한 명령.
“무슨 명령.”
―무슨 명령이었냐면…….
그리고 거기까지.
거기서 별안간, 노스페라드는 입을 콱 다물었다.
―…….
“…….”
―…….
“……?”
그리고 다시는 열 생각이 없어 보인다.
X발. 또 이러네. 여기서 갑자기 입을 닫아? 다음은 60초 후에 공개하냐? 아니면 결제해야 들려주냐?
차킹! 나는 재차 단검을 위협적으로 들어 올렸다.
“왜 갑자기 묵비권이냐. 대답을 해.”
―…….
“그사이 고문이 그리워졌냐?”
그래도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침묵이 좀 이상할 정도로 길어진다. 새삼 그녀의 안색을 한 번 살폈다.
흠칫, 눈을 부릅떴다.
‘뭐야. 이거.’
노스페라드는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어느새 하얀 눈동자엔 초점이 사라졌다. 탁하게 풀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미동도 없이 한참을 침묵했고.
―…크흐흐.
헤죽, 기분 나쁜 비웃음을 머금었다.
기분 탓인가. 아니, 아마도 절대 아닐 것이다.
노스페라드의 분위기가… 잠깐 사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뭐 그리 궁금한 것이 많나. 초인.
순간 온몸이 바싹 얼어붙었다.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익숙한 호칭 때문이었다.
“방금. 뭐라고…….”
놀라서 아무 행동도 못 하고 있던 그때.
오히려 노스페라드가 선수 쳐서 말했다.
―일정 경계선을 넘으니 눈부신 속도로 진상에 도달하는구나. 초인. 이건 예상외의 빠르기다.
“…….”
―이 지겨운 촌극이 끝나는 것도, 그리 먼 미래는 아닐지 모르겠군. 흐흐.
특유의 여유만만한 눈웃음. 늙수그레한 말투.
전혀 다른 외견임에도, 본능적으로 이런 직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다.
지금. 노스페라드의 입을 빌려서. 다른 사람이 내게 말을 걸고 있다.
“…무르무르?”
마치 무르무르 같았다.
아니. 노스페라드의 가죽을 뒤집어쓴 무르무르, 그 자체였다.
문득 노스페라드… 아니. 노스페라드의 뒤에 숨은 누군가가, 뒤틀린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르무르라. 분명히, 그 허여멀건 대형 고양이 놈이었지. 기억에 있다.
클클클. 흐흐흐.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연신 귓전을 때린다.
역시나, 이건 아무리 들어도 노스페라드의 웃음소린 아니다.
―던전에 속박된 미천한 껍데기 따위와 비교될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그것은 쓴웃음에 가까웠다.
놈은 지금 불쾌해하고 있다. 무르무르와… 무르무르 ‘따위’와 비교를 당한 게 불쾌한 것이다.
‘무르무르가, 아니야?’
그렇다면… 대체 저놈은 누구냐.
나는 천천히 심호흡했고. 안드로메다 언저리까지 날아갔던 정신 줄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너는 무르무르 따위와는 궤를 달리하는 누군가다, 이건가.”
―뭘. 그렇게까지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야, 초인.
“그러면. 대체…….”
―다만. 자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누군가는 맞지.
그렇군. 좀 대화해 보니 알겠다.
일단 무르무르는 저렇게 빙빙 돌아가는 언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입에 담지도 않는다.
‘말투도 좀 달라.’
지금 대화하는 이 새끼가, 훨씬 싸가지 없고 오만한 느낌이 강했다.
그제야 확신했다. 저건 무르무르가 아니다.
‘이건… 오히려 기회인가?’
영원회귀에 대해 나보다 많이 아는 무르무르.
그런 무르무르보다 더욱 뒤편. 무대 위가 아니라, 지금껏 무대 뒤의 장막에 숨어있던 누군가가 등장했다.
“후우.”
짧고 깊게 심호흡을 한다. 온몸에 긴장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대답하지 않겠다.
즉답이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부정당했다. 약간 정신이 얼얼해진다. 당황한 나머지 반응이 좀 늦었다.
“왜지.”
―그 또한 침묵하겠다.
“그러면. 네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뭐냐.”
―아무것도 없다, 초인.
잠깐 벙찐 상태로 노스페라드를 내려다봤다.
뿌드득. 어금니가 절로 갈렸다.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그럼 뭐 하러 기어 나왔어.”
―흐흐흐. 대체 뭘 기대한 건지 모르겠군. 내가 등장한 목적은 오히려 반대다.
“…반대?”
―난 이 계집의 주둥아리를 막으러 나온 게다. 초인.
아.
아아.
뒤늦은 깨달음에 잠깐 다리를 휘청거렸다.
‘그, 그렇군.’
지금까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 타이밍에 갑자기 등장한 수상한 누군가. 정체도, 이름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존재.
왜 나는… 저놈이 우호적으로 내 질문에 답변해 줄 거라고. 그런 안일한 단정을 하고 있었지?
‘이런, 망할……!’
위기감이 등줄기를 후려친다.
뭔가 실마리가 잡힐 듯했는데. 저놈은 내 조력자가 아니었다. 방해자였다.
조바심이 난 나머지, 한층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대답을 막다니. 무슨 소리냐.”
―이 흡혈귀 계집은 위대한 존재의 모체였지. 그로 인한 약간의 변수는 예상했지만, 설마 내 통제를 이렇게까지 벗어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뭐……?”
―쉽게 말해주지. 네놈이 이 계집에게 듣고자 한 정보. 본래 지금 단계에선 들려줄 계획이 전혀 없었단 소리다. 초인.
놈의 목소리를 머릿속에 필사적으로 입력한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건질 정보가 없을까.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리플레이 해봤다.
“…지금.”
그리고 실제로 있었다. 걸리는 사항들.
그것들을 입 밖에 내뱉었다.
“단계. 계획이라고?”
뇌리에 벼락이 친다.
정신이 어느 때보다도 또렷해진다.
“지금 분명, 계획이라고 했겠다.”
노스페라드의 하얀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안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살기등등한 시선을 쏘아 보냈다.
“그 계획이란 건. 영원회귀와 관련이 있냐?”
노스페라드의 입술이 슬쩍 다물렸다. 흐리멍텅한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한다.
이내 씨익, 눈꼬리가 기괴한 호선을 그렸다.
―약간 실언을 해버렸군. 자네의 예리함에 경의를 표하는바, 부정하진 않아 주겠다.
“부정하지 않는다면. 일단 사실에 가깝다는 소리겠지.”
―마음대로 해석해라. 실제로 그 추측은 대체적으로는 틀리지 않아.
또 이 느낌이다.
바닥없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느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미궁 속으로 점점 깊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대체. 이게, 무슨…….’
새삼 깨달았다.
나를 둘러싼 사건들과 음모가,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
머리는 몰라도, 감으로 체감된다.
‘나는 대체. 무슨 일에 휘말린 거냐고.’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내 전에 없이 조심스럽게, 스스로도 반쯤 믿지 못하며 물어봤다.
“너는… 신이냐?”
물어본 직후 후회했다.
난 병신인가. 저게 진짜 신이든 아니든.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다.
영양가가 전혀 없는 질문인 것이다.
―큭. 푸흐흐흐.
상대도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노스페라드의 얼굴에 너털웃음이 떠올랐다.
―아니. 아까도 말했지만. 난 신처럼 대단한 뭔가가 아니다. 초인.
“…….”
―내가 신이었으면. 그렇게 전지전능한 뭔가였다면, 자네는 이런 개고생을 안 했어. 초인.
놈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나를 향해 가볍게 타박한다.
―난 어떤 의미에선 위대한 존재… 아니. 자네에겐 종말의 이브가 더 친숙하겠군? 종말의 이브보다도 하등하고, 열등하지. 초인, 어쩌면 자네보다 저열할지도 모른다. 다만.
다만.
거기까지 말한 뒤, 잠깐 노스페라드의 입이 멈췄다.
그리고 히죽. 특유의 기분 나쁜 미소가 만면에 번져갔다.
―사실 자네가 한 질문의 의도는 이미 안다. 초인. 모른 척해서 미안하군.
“…무슨.”
―그래서 나는, 자네가 말하는 ‘영원회귀’를 일으킨 당사자인가, 아닌가. 그게 궁금한 거잖나.
“…….”
정곡이었다.
속내를 완전히 간파당해 버렸다.
불쾌감과 굴욕감. 그 외 수많은 감정이 들끓어 침음을 흘렸다.
―그래. 이 정돈 알려줘도 괜찮겠지.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이대로면 곧 밝혀질 사실이었으니.
그 순간. 놈이 제 혼자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납득했다.
이내 노스페라드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이 세계의 시간을 동결시켜 더 이상 흐르지 못하게 하고. 구간 반복이 되풀이되는 시간선에 자네를 처넣은 것. 자네의 말을 빌리면, 영원회귀.
노스페라드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천천히 올라왔고.
이내 나를 똑바로 가리킨다.
-그건 분명히, 내가 한 짓이 맞다. 초인.
“…….”
―…….
…그래.
뭔가 그럴 것 같았다. 아까부터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방금 놈이 자기 입으로, 확신을 시켜줬다.
“…네가.”
노스페라드의 눈동자 너머에 있는 저놈.
지금 나와 대화하는, 저 정체불명의, X발 새끼.
“네가……!!”
저놈이다.
저놈이. 내게 영원회귀의 저주를 건, 당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