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2)>
노스페라드의 신형이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흡사, 모기약 맞고 빌빌거리는 모기 같았다.
―끄하악… 허억, 허억……!
이내 바닥에 엎드려 숨을 고르는 노스페라드.
상당히 지쳐 보인다. 숨을 몰아쉬는 게 고작인 듯하다.
“흐.”
피식.
놈의 참담한 몰골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힘들어 뵈는군. 던전 마스터.”
아무렴. 힘들긴 할 테다.
방금 그 혈탄의 폭우. 그건 노스페라드의 비장의 한 수였다.
단숨에 상대와 내 힘의 차이를 판가름하고. 한계 이상의 힘을 쥐어짜 발동한 필살기 비슷한 것이었다.
“이제, 밑천도 다 깠겠다.”
나는 유유자적하게 중얼거렸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가볍게 허공을 차올렸다.
“잠깐 대화나 해보자.”
콰아앙!
공기가 폭발하며 나를 밀어냈다. 노스페라드의 정면 방향. 일직선이었다.
노스페라드가 사력을 다해 벌렸던 거리가 순식간에 다시 좁혀졌다.
―…아.
진이 빠져 흐느적거리던 노스페라드가 아찔한 탄성을 흘렸다.
노스페라드의 시선이 천천히 위로 올라온다. 이내 그녀의 눈앞에서 이죽거리는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 아… 아아……!
공포.
오만하고 고고했던 하얀 눈동자에, 공포와 경외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본 뒤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 좋고.”
이제야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정돈 돼야 몬스터랑 대화를 하지. 그럼.
* * *
노스페라드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그래서 나도 가만히 응시해줬다.
한동안 그 침묵이 유지됐다.
“…….”
―…….
얼마나 서로 시선을 교환했을까.
피식, 문득 노스페라드가 힘없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주, 죽여라. 인간.
체념 어린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본인이 졌다. 이젠 꼼짝없이 죽을 일만 남았다. 그것을 실감한 듯하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개소리 마라.”
―…뭐?”
“개소리하지 말라고. 어딜 죽을 생각부터 하냐.”
“그, 그 말은……?!”
“넌 지금부터. 나랑 이래저래 좀 어울려 줘야겠어.”
―네, 네 이놈… 설마!
노스페라드는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녀가 이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고, 치욕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 그런가. 나를, 이 몸을 욕보일 셈이로군?! 춘화의 한 장면처럼!!
“…….”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다시 입을 닫았다.
이 X발년이, 개소리 말라니까 말 소리, 닭 소리를 처하고 있네. 정신이 살짝 멍해진다.
서둘러 그녀의 착각을 정정해 줬다.
“뭔 개 같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몇 가지 질문을 하려는 거다.”
―…아.
“별 X발. 김칫국 처먹지 마라.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단도직입이다.
바로 내 본론부터 들이밀 생각이었다.
‘시간이 마냥 많지 않아.’
게이트 붕괴가 헌터 협회에게 감지되고, 대책반 정예부대가 출동하기까지. 경험상 약 30분 남짓이 걸린다.
그중에 서큐버스와 노스페라드를 처리하는데 10분 정도 소모했으니…….
‘남은 시간은 약 20분.’
그 20분 안에 최대한 뽕을 뽑아내야 한다.
나는 내 의문의 가장 깊은 곳. 근본부터 곧장 파헤쳤다.
“던전 마스터. 하트기어가 뭔지 알고 있냐.”
퍼뜩, 노스페라드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얼굴 위로 의중을 알기 힘든 표정이 떠올랐다.
―하트, 기어?
내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노스페라드.
그녀가 이내 갸웃, 고개를 꺾어 의문을 표했다.
―그게… 무엇이냐?
“모르는 거냐, 분명히 네가 가지고 있던 물건인데.”
―모, 모른다! 이 몸은 그런 괴상한 이름의 물건 따위, 알지 못하노라!!
우선 대답은 모른다는 쪽이다.
저게 사실이든 거짓말이든. 내 입장에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니야.’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고개를 세차게 저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래, 맞아. 던전 시스템에 표기된 명칭과 실제 던전의 주민들이 사용하는 명칭이 다른 경우가 꽤 많다.
‘서큐버스만 해도 그렇잖아.’
던전 시스템에나 ‘서큐버스’라고 알기 쉽게 쓰여 있지.
정작 노스페라드나 서큐버스 본인들은, 자기들을 다른 종족명으로 부른다. 제들만의 고유 명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이 하트기어도 그런 케이스일 게 분명하다.
‘그래야만 해.’
이게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정작 노스페라드가 하트기어의 존재 자체도 몰라?
웃기지 마라. 그런 현실은 받아들일 수 없다.
‘안 되지. 안 되고말고.’
절대 인정 못 한다.
어떻게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저 여자 입에서 유효한 대답을 끌어내고야 말겠다.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생김새를 설명해 주지, 붉은 보석 같은 거다.”
―…붉은, 보석?
“그래, 마름모꼴의 붉은 보석. 양쪽 끝이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다. 사람의 살점은 가볍게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
실제로 한정용의 살점조차 가볍게 찢겨나갔다.
애초에 그러지 않고선, 아이템을 발동시킬 수도 없었을 테지. 그 보석에 소유자의 피를 먹여야 발동하는 메커니즘이니까.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소유자의 피를 일정 수준 이상 빨아들이면. 갑옷으로 변신을 한다.”
―…잠깐, 뭐라? 지금 뭐라 했느냐?
“보석이 변신을 한다고. 피처럼 새빨간 갑옷으로 말이야.”
―흐, 흐음……! 그건 참, 흥미로운 물건이로고!
노스페라드는 여전히 아리까리한 표정이다.
아리송하다 뿐일까.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고 있다.
내 설명에 흥미를 느끼고. 하트기어라는 아이템의 정체을 절찬리에 궁금해하는 것이다.
‘아니. X발. 네가 궁금해하면 안 되잖아, 전 주인 년아.’
순진하게 끔벅이는 하얀 눈동자를 마주하자, 심장이 점점 세차게 뛴다.
도저히 거짓으로 짓는 표정 같지가 않다. 긴장 때문인가. 목이 바싹바싹 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그래. 하트기어의 놀라운 점은 변신 따위가 아니다.
변신은 가면라이더도 하고 파워레인저도 하지. 요즘 같은 세상에 새삼 놀라울 게 뭐가 있다고.
치미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한 채, 설명을 계속하기로 했다.
“변신은 어디까지나 부가 기능에 불과하지. 이건 사실, 알이었다.”
―…알? 무엇의?
“이브. 종말의 이브라는, 미지의 생물의 알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내 말이 잠깐 덜컥 멈췄다.
노스페라드의 안색을 유심히 살폈다.
―…이브.
노스페라드가 눈을 부릅뜬 채 내 말을 따라했다.
그러다 제 말에 제가 놀라는 것처럼, 흠칫 어깨를 떨었다.
―종말의… 이브?
그녀가 허공을 빤히 주시한다.
이내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알. 보석인가……. 그래, 피처럼 붉은 보석. 보석 같은, 알이라……!
흠칫!
노스페라드가 발작하듯 고개를 쳐올렸다.
이내 그녀는 자기 온몸을 더듬거리기 시작했고 일련의 행동이 끝나자, 적잖이 당황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 그러고 보니 어느새 그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설마. 설마 진짜로… 그것이?
무언가를 마침내 깨달은 표정.
아니지. 그보다는 차라리… 잊고 있던 무언가를 뒤늦게 떠올린 듯한, 그런 표정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옳거니.’
이거다.
내가 원한 것. 내가 원한 리액션.
바로 저 반응을 기다렸다고.
“뭘 기억해 냈냐. 던전 마스터.”
나는 노스페라드에게 한껏 접근했다.
아니. 단순히 접근으론 모자랐다. 놈의 멱살을 단단히 쥐어 챘다.
―으극?!
노스페라드가 깜짝 놀라 탄성을 흘렸다.
덥석, 그녀의 축 늘어진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안달하듯 마구 뒤흔들기 시작했다.
―뭐, 뭐냐……. 놔, 놔라! 이, 무례한 것!
“말해. 뭘 떠올렸냐. 말하면 놔주지.”
―마, 말을 하고 싶어도… 케헥! 모, 목이 졸려서……!
노스페라드가 더듬더듬 말하다 말고, 팔다리를 애처롭게 휘젓는다.
그제야 나도 너무 흥분했음을 자각했다.
“…그래. 대답은 해야지.”
스르륵.
납득하고 노스페라드를 내려줬다. 다만 살기등등한 시선은 절대 거두지 않았다.
그녀의 혼란에 찌든 눈이 나를 향한다.
―혹시나 해서 묻겠노라. 그, 이브라는 자의 생김새는… 어떻지?
노스페라드가 조심스레 묻는다.
그래. 이거지. 이게 내가 원하던 대화의 방향이다.
나는 황급히 입을 열어 묘사하기 시작한다.
“너와 비슷한 인간 여자의 외관이다. 하얀 머리와 붉은 눈동자를 가졌고. 음, 그리고 너보단 좀 더 어린 느낌인데…….”
나는 설명하다 말고 미간을 팍 찌푸렸다.
이런 망할. 생각해 보니 이것도 이브만 옆에 있었으면. 직접 보여주고 끝날 문제 아니냐.
여기서 또 이브가 옆에 없는 게 발목을 잡네.
―아아, 그만. 대충 알 것 같다.
그런데 직후.
노스페라드가 손사래를 치며 알아서 납득해 버렸다.
―더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생각한 그 존재가 확실한 것 같으니……. 다만.
그녀가 내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한다.
지긋한 침묵 끝에, 한층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지, 인간.
“뭐냐.”
―그분… 아니, 그, 그녀에 대해서, 왜 궁금해하는 거지?
“…….”
―아니, 그 이전의 문제군. 어떻게 그 존재에 대해, 한낱 인간인 네가 알고 있는 게냐?
그분.
급하게 호칭을 바꿨지만. 분명 이브를 ‘그분’이라고 칭했다.
내 눈초리는 자연스럽게 더욱 가늘어졌다.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내가 왜 궁금해하는지를 네가 왜 궁금해하냐.”
―…뭐라?
“이유를 알면. 네 대답이 달라지기라도 하는 거냐.”
―그, 그건.
쉬리릭!
허리춤에서 놀고 있던 블라이스의 단검을 뽑아 올린다.
“가변적인 대답은 필요 없어.”
손가락을 놀려 단검을 능숙하게 회전시켰다.
키잉! 역수로 단단히 틀어쥐고, 그것을 노스페라드의 앞에 들이밀었다.
“난 변하지 않는 진실을 원하고 있다. 던전 마스터.”
당장 사실만을 뱉어라.
거짓말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넌 이걸로 목이 썰려 죽는다.
내 행동은 그런 의미를 대놓고 내포했다.
―…흥. 웃기는 인간 놈이군. 지금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그러나 노스페라드는 잠깐 움찔했을 뿐, 이내 평정을 가장하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녀가 위태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응시해 온다.
―네놈에게 순순히 사실대로 말한들. 내게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이냐. 정성이 갸륵하여 살려주기라도 할 것이냐?!
“…….”
―아니겠지, 그래! 네놈의 눈빛이 이미 그리 말하고 있느니라……!
노스페라드가 정론으로 밀고 들어온다.
나는 잠시 고민했고. 이내 옅은 탄성을 흘렸다.
“그래서, 말을 안 하겠다는 거냐?”
―보아하니 네놈에게 이 정보는 상당히 귀중한 듯한데. 그렇다면 나도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할 순 있겠지.
“…오호.”
―크큭. 자, 네놈은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어디, 내게 흥정을 해보거라! 재미있구나!
“…….”
실제로 살려줄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당장 대꾸할 말이 요원했다.
나는 한동안 노스페라드를 빤히 쳐다봤고.
“흐.”
비릿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비웃음이었다.
물론, 노스페라드를 향한 것이다.
“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꽤 상냥해 보이나 보군, 던전 마스터.”
―…뭣이?
“아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 줄 알길래.”
뿌드득!
파육음이 한 차례 울렸다.
직후엔 철퍽.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며 질척한 소음을 냈다. 우리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먼저 노스페라드가 얼빠진 탄성을 흘렸다.
―…아?
떨어진 것은 팔뚝.
드레스의 붉은 천과 새빨간 혈액이, 토막 난 팔뚝에 마구잡이로 뒤엉켜 나뒹굴고 있었다.
당연히 그건, 노스페라드의 팔이었다.
―아아, 아아아아악!!
노스페라드는 뒤늦게 어깨를 부여잡는다.
그리고 얼굴을 고통으로 잔뜩 구긴 채.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끄, 으흐윽……! 이, 이놈, 이……!
노스페라드가 내 앞으로 벌벌 기기 시작했다. 아찔한 신음을 내지르며, 팔이 잘려나간 고통에 어쩔 줄 몰라 몸부림친다.
그러든 말든, 나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너는 방금 네 발언을,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다.”
퍼걱!
노스페라드의 뒤통수를 밟아 짓이겼다.
―끄욱… 컥!
그녀의 머리통이 더욱 바닥에 밀착한다.
꺽꺽거리는 숨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죽을지 살지가 아니겠지.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를 고르는 거다.”
나는 싸늘하게 통보했고.
푸직! 뿌드득! 훤히 드러난 노스페라드의 등에, 단검을 몇 번이고 쑤셔 박았다.
그녀의 필사적인 발버둥이 더욱 심해진다.
―아아아아악! 그, 그만……!
“리스토레이션.”
그러나 저항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노스페라드에게 곧바로 수복 스킬을 영창했다.
병 주고 약 주기.
근데 아마 내가 주는 약은, 좀 심하게 씁쓸할 거다. 노스페라드.
―끄아아아아아악!!
노스페라드가 갓 잡은 망둥어처럼 펄떡거렸다.
곱상한 얼굴이 한껏 추하게 일그러졌고. 잘린 팔과 등의 상처에서 새빨간 선혈이 분수처럼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크아악! 아가아아악!!
단검으로 등을 난자당할 때보다 열 배는 격렬한 반응.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네가 선택한 길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봐라.”
꾸르륵, 쿠륵.
순식간에 노스페라드의 모든 상처가 아물었고. 그녀의 어깻죽지에서도 새로운 팔이 돋아났다.
어느새 상처 없이 말끔한 몸으로 돌아온 노스페라드.
“이제 네 맘대로 뒤질 생각은 버려.”
원래 떡도 먹어본 새끼가 잘 먹는다고. 전생에 몇 번 당해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나는, 고문과 심문에 꽤 일가견이 있는 편이다.
“결국의 결국엔. 넌 사실대로 전부 말하게 될 거야.”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아니, 그나마 곱게 죽여주려고 했을 때. 전부 순순히 불었어야지.
하여간 몬스터 새끼들이 괜히 몬스터인가. 사람 말을 못 알아 처먹으니. 괴물이라 부르는 것일 테다.
“그럼…….”
피가 잔뜩 튄 후드 티를 대충 털어냈다.
그리고 꾸드득, 단검 손잡이를 부술 듯이 힘껏 쥐었다.
“잠깐만 장르 바꾸자고.”
액션 판타지에서.
하드 고어 스릴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