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7)>
―크륵, 그르르……!
―키이이이!
방금의 교전으로 드래곤들의 공세가 잠깐 주춤했다.
나는 그 틈을 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솔직히 말한다, 서윤아.”
“어, 아?! 으…응.”
강서윤은 반쯤 넋이 나가 있다가, 자기 이름이 나오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아직도 드래곤의 시체를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너랑 같이 싸울 수도 있지. 근데 그게 더 비효율적이야.”
“어…? 그게 무슨…….”
“솔직히 나 혼자 하는 게 훨씬 빠르다. 오히려 네 목숨도 지켜줘야 해서, 짐짝만 하나 늘어나는 격이야.”
“내, 내가… 내가, 짐짝…이라고?!”
강서윤이 충격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 서열 8위 오버 랭커께선, 짐짝 취급을 당한 게 어지간히 신선했나 보다.
“크…윽……!”
분한 듯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바짝 찌푸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나 싶더니.
“…하아.”
이내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직후 그녀의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너 혼자 하면, 얼마나 걸리는데.”
체념, 그리고 납득.
자기 눈으로 내 힘을 똑똑히 봤다. 그러니 자존심은 상하지만, 수긍하고 따르는 거다. 전형적인 베테랑 헌터다운 반응이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손가락 세 개를 펴들었다.
“3분.”
“3분? 3분에 한 마리?”
“아니, 3분이면 몰살시킨다.”
“그… 그게 가능하다고?”
“쌉가능.”
“허, 참나.”
서윤은 기가 막혔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웃음기가 가신다. 그리고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알겠어. 3분… 그동안, 최대한 사람들 대피시켜 볼게.”
내가 방금 보여준 압도적인 힘, 드래곤을 원펀치로 조져버리는 무력.
3분 선언이 진담처럼 들리기 충분한 수준이었으리라.
사실 강서윤을 금방 따르게 하려고 일부러 주먹으로 줘팬 것도 있다.
완판치 죽빵 갈기기만큼 임팩트가 강한 것도 없지.
“믿는다, 한정용! 3분 안에 후딱! 전부 죽여버려!!”
강서윤이 마지막으로 내게 소리쳤다.
그리고 파팟! 직후에 신형이 사라졌다. 멀리 지상에서 그녀의 마력 잔향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나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컵라면 물이라도 올려놓든가, 게이트 닫고 먹으면 되겠네.”
실없는 농담을 혼자 주워섬겼다.
일부러 강서윤이 떠난 다음에 했다. 쟤는 사람 목숨 갖고 하는 농담 들으면, 등짝부터 후려갈긴다.
“그럼…….”
푸화악!
곧장 전방으로 쇄도했다.
찢어진 입에서 붉은 선혈과 불꽃을 질질 흘리는 검은 용, 칼라마이트의 면상이 속속들이 가까워진다.
―키르륵?!
두려움이 느껴지는 시뻘건 시선이, 찰나의 순간 교차한다.
나는 사납게 웃었고. 손을 뻗어 올렸다.
“글레이프니르.”
스킬을 육성으로 영창한다.
처음 사용해보는 스킬, 전번 생에서 계승해온 바로 그 스킬이다.
“윽……!”
파지직!
순간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각이 뒷목을 덮쳤고, 무수한 정보의 덩어리가 머릿속에 강제로 쑤셔 박힌다.
직후,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스킬 발동: 글레이프니르]
이 스킬은 타기팅 스킬이었다.
한 번 대상을 정하고 일단 발동을 시키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반드시 적중한다.
그러려면 우선… 대상을 정해야겠지.
‘하나, 둘, 셋…….’
빠르게 주변을 스캔한다.
칼라마이트를 포함한 총 열 마리의 드래곤, 1회에 속박할 수 있는 최대 수치까지 타기팅했다.
그리고 나는, 뻗은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속박해라.”
쿠르르륵!
내 의지를 읽은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스킬을 구현한다.
허공에서 시커먼 어둠이 뭉쳐 고리의 연쇄를 만들어 간다. 이내 열 가닥의 검은 사슬이 허공에서 흐느적거렸다.
―키이… 키이이이!!
―키아아아악!!
드래곤들이 적대적인 포효를 쏟아냈다.
내가 생성해낸 사슬. 거기서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어떤 위압적인 의지를 느낀 것이다.
피식, 놈들을 향해 차가운 비웃음을 날렸다.
“얌전히 오라나 받아라, 개새끼들아.”
콰르르륵!
열 개의 사슬이 동시에 전방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크륵! 키이익!!
스킬의 대상이 된 드래곤들은, 허공을 능수능란하게 활보하며 이리저리 피했다.
하지만 칠흑의 사슬은 집요했고 또한, 예리했다.
―크레레레레렉!!
결국의 결국엔 열 마리 드래곤이 사슬에 단단히 속박되었다.
입력된 정보에 따르면, 최대 속박 시간은 개체당 5초. 놈들이 저항하면 더 짧아질 수도 있으니, 여유 부릴 시간은 없다.
스르릉. 곧장 사복검을 치켜들었다.
“다음에 보자, 얘들아.”
작별 인사를 끝으로, 푸화악!
가장 먼저 칼라마이트의 목이 하늘로 솟구쳤다.
‘다음.’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푸직, 우득, 빠드득! 도처에서 대량의 선혈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다음.’
죽이고. 죽이고.
그리고 또 드래곤들을 처죽여 나갔다.
―키에에에에엑!!
―크라라라라락!!
안 그래도 쉬운 상대인데, 게다가 이번엔 표적이 멈춰있기까지 하다.
사슬로 속박, 그리고 참살. 그저 그것의 반복이었다.
“…끝.”
강서윤과의 약속은 지켰다.
드래곤의 완전 몰살까지, 2분 안팎이 걸렸다.
또 신기록이다.
* * *
클리어 보상은 볼 것도 없다.
X박았다. 언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 장비템이 한 무더기였다.
전생에서도 나왔던 ‘드래곤 스킨’ 물약이 그나마 제일 건질 만한 템이었다.
‘그래, 괜찮아. 첫 번째 붕괴에 큰 걸 바라겠냐.’
기대 컨트롤을 잘해 놔서 실망은 적다.
…아니, 사실 거짓말이다. 실은 지금까지도 속이 존나게 쓰리다.
“…X발…….”
보상 가챠도 1002번째 하면 좀 달관할 법도 하건만, 아직도 가끔 일희일비하는 내 소인배다움이 좀 한탄스럽다.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그렇게나 강한데, 그래도 수아가 안 믿는단 말이야?”
갑자기 강서윤이 그런 걸 물어왔다.
앞뒤가 많이 잘라 먹힌 질문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 소리냐.”
“너, 진짜 존나 말도 안 되게 세네. 이건 뭐, 탈인간급을 넘어서 탈지구급이던데?”
“그건 그렇지.”
“아무리 수아가 생판 민간인이라도 그렇지! 그렇게 차원이 다른 무력을 보여주면, 수아도 네가 회귀자라는 걸 믿을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
갑자기 뭔 소린가 했네.
강서윤은 지금, 내가 어제 들려줬던 얘기에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수아는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잘 믿지 못한다. 그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듯하다.
“왜 수아가 항상 못 믿었을까. 이상하잖아? 수아도 그렇게 바보는 아닐 텐데?”
왜일까, 왜냐하면.
그건 단순히 지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
수아가 내 회귀를 못 믿는 건 환경적, 심리적인 요인이 더 크고. 그 외에도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겹쳐 있다.
하지만… 그래. 뭐, 질문하는 게 이해는 된다.
‘제삼자 입장에선, 답답하기도 하겠지.’
이 악물고 나를 안 믿는 수아도, 그리고 신뢰받길 진작에 체념해버린 나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할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 얘기다.”
그래서 난 이번에도, 지겹게 반복해 봤던 비유를 꺼내 들었다.
이거면 강서윤한테 설명하는 데는 직빵이다.
“유치원 때, 나는 내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센 사람인 줄 알았다.”
“뭐?”
별안간 튀어나온 뜬금없는 소리. 강서윤은 당연하게도 눈썹을 한껏 뒤틀었다.
따갑게 꽂히는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계속 말했다.
“어린 내 눈으로 보기에 아버지는 뭐든 할 줄 알았어. 힘도 나랑은 차원이 다르게 셌으니까, 신처럼 위대하게 보일 때도 있었어.”
“…아니, 병신 정용아. 혹시 내가 뭐 물어봤는지, 이해를 못 했니?”
“근데 커보니까 아니었지. 아버지는 그냥 발에 채는, 평범한 한국인 남자1이었다. 키도 덩치도 그냥 평균이고, 사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아 쫌! 아까부터 갑자기 뭔 소리냐고, 병신아!”
계속되는 선문답에 강서윤이 윽박질렀다.
그쯤에서 서윤의 얼굴을 가만히 주시했다. 내 직선적인 시선에 움찔, 강서윤의 사나운 기세가 한풀 꺾인다.
그 틈을 타서 중얼거렸다.
“그런 느낌이다.”
“뭐?”
“일반인이 보는 고위 헌터들은 다 그런 느낌이라고.”
“…으으응?”
“B급 헌터만 돼도 그냥 완전히 나랑은 다른 생물이지. 차원이 다른 괴물처럼 보여. 난 일반인에 한없이 가까운 D급 헌터였으니, 그 아득한 느낌을 아주 잘 안다.”
“아, 아아.”
그제야 강서윤이 깨달음의 탄성을 흘렸다. 내 말의 의도가 대충 파악된 듯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그러니 대충 B급 상위권부턴 그냥 이놈이나 저놈이나, 오버 랭커 강서윤이나 회귀자 한정용이나. 똑같은 살인 병기고 괴물일 뿐이다.”
강서윤은 나를 보고 ‘와 X발, 저건 진짜 차원이 다르게 세다’라고 느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강서윤이 그 ‘차원의 차이’를 알 정도로는 강하기 때문이다.
“수아는 이쪽 업계에 완전히 무지하지. 일정 수준 이상까지 올라가면, 정확한 무력의 차이가 전혀 가늠이 안 되는 거야.”
차원이 다른 마력과 힘의 출력.
그 출력을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뽑아내는 디테일, 숨 쉬는 것처럼 능수능란한 완급 조절.
미세한 만큼 대단하고 경이로운 차이를, 수아는 알지 못한다.
“거기에 수아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선입견도 한몫하지.”
아버지 돌아가신 이래, 난 고딩 때부터 10년 가까이 D급의 쓰레기 헌터로 살아왔다.
수아도 내 볼품없는 모습을 옆에서 똑똑히 보고 자랐다.
“수아는 회귀자 이전의 날, 너무 잘 알아.”
최하급 던전에서 복날 개새끼마냥 처맞고, 털레털레 간신히 살아 돌아온 다음. 수아한테 냉찜질 받아가며 골골댄 적도 숱하게 많다.
너무 잘 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내 전력을 아낌없이 보여줘도 말이다. 그래도 수아는, 한정용보다 강서윤이 훨씬 강할 거라고… 끝까지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아.”
선입견이란 이다지도 무서운 것.
눈앞에 뚜렷이 보이는 증거조차도 간과하고, 이 악물고 무시하게 되는 법이지.
“아마 최후의 최후에 가면, 알아서 정신을 차릴 거다.”
“최, 최후라니.”
“정신적 막다른 곳…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면, 그때는 강제로 믿게 돼.”
그 선입견은 결국 깨지긴 한다.
나는 끝까지 수아의 옆에 살아남고, 강서윤은 6차 붕괴 때 처참하게 죽어버리니까.
‘선입견의 종말은 네 죽음이다, 서윤아.’
그 말은 내뱉지 않고 다시 삼켰다.
어쨌든 강서윤이 죽고 나면 비로소 살아남은 내가 더 강했다는 걸, 수아는 믿을 수 있게 된다. 회귀자라는 것도 쉽게 믿을 수 있게 된다.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
한참 침묵하던 강서윤이 어느 순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동생 때문에 고생이 많네, 미안.”
어째선지 서윤이 미안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특유의 옆머리를 긁적이는 제스처를 보자, 반사적으로 쓴웃음이 걸렸다.
“왜 네가 미안해하냐.”
“그냥, 동생 똥고집 때문에 고생했다는 거잖아.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래서…….”
“미안할 일이 아니야. 너도 그렇고, 수아도 마찬가지고.”
“그, 그런가?”
“그래. 그냥… 수아 입장에선, 어쩔 수가 없는 거지.”
어쩔 수 없는 것.
그냥 운명적인 전개.
필연적으로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흐름.
‘이런 언행은 싫어하는데.’
자위하는 것 같고, 현실에 굴복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내뱉어 놓고도 바로 후회했다.
결국, 난 고개를 저으며 긴급 정정했다.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야지.”
“응? 왜 네가 미안해?”
“더 노력하지 않았으니까.”
“…뭐?”
“그 당연한 결과들을 바꾸려고, 내가 더 열심히 이것저것 시도해 봤으면 뭔가… 진작에 더 좋은 해결책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더는 그럴 수 없었다.
난 잊히는 것에 너무 지쳐있었다.
반쯤 흑화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정도로.
“세상에서 나밖에 못하는 일인데, 내가 더 노력했어야 맞는 거겠지.”
벌써 그것도 몇백 회차 전의 얘기가 됐군.
그때 왔던 심각한 탈진은 아직도 후유증이 흉터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반쯤 체념하고, 이해받기를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세상에서, 나밖에… 기억을 못 하는데.”
전에도 강서윤에게 회귀를 밝힌 적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내 감정을 두서없이 주절거린 건, 내 기억상 거의 처음이다.
그것을 깨닫고 그쯤에서 말을 억지로 멈췄다.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다. 심각하게 생각하진 마라.”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오글거리게 감상적인 말을 해버렸다. 또 뭔 X같은 개소리 지껄이냐고, 등짝 스매싱이나 안 맞았으면 좋겠네.
그런 실없는 걱정을 하고 있자니.
“야, 네가 하고 싶어서 회귀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의외로 강서윤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퍼뜩 고개를 돌려봤다. 이쪽을 주시하는 그녀의 시선엔… 답지 않게 걱정이 가득 차있었다.
“그래. 네 말대로, 너밖에 기억 못 하잖아. 그렇지?”
“그렇지.”
“실패해도 아무도 너한테 뭐라고 안 해! 아니, 못하지! 그렇잖아?”
“…그야.”
“그럼 좀 대충대충, 쉬엄쉬엄해. 뭘 그렇게 열심히 못 해서 안달이냐? 누가 알아준다고! 잘못돼도 네 탓 아니라고, 새꺄!”
둔기로 뒷목을 처맞은 듯 얼얼하다.
한동안 벙찐 얼굴로 강서윤을 빤히 쳐다봤다.
그 심각한 눈빛과 분위기가 부담스러워진 것일까, 그녀는 멋쩍게 시선을 피했다.
“아 그래! 조또 모르는데 씨불여서 미안하다, 그래! 알겠으니까 그만 꼬라봐!”
차악!
강서윤이 결국 내 등짝을 한 대 힘껏 후려쳤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녀가 해준 말도 말이지만, 방금의 등짝 스매싱이 결정타였다.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하.”
응어리져 있던 울혈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하다.
짧다란 웃음 한 번 내뱉었을 뿐인데, 속이 다 후련해졌다.
신기할 정도였다.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야.”
“…으, 어? 뭐, 뭐?!”
“고맙다, 서윤아.”
모처럼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해줬다.
근데 돌아오는 건 어째선지, 토하기 직전까지 이어진 등짝 스매싱이었다.
“좀! 새꺄! 말을 쫌!! X발! 생각 좀 하고 씨불여! 좀!!”
시뻘건 면상을 봐선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내가 진심으로 감사하는 게 오글거릴 수야 있겠다만, 그렇게까지 낯 뜨거울 일인가?
이 새낀 근 20년을 친구 했는데, 여전히 알다가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