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80화 (80/235)

80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

그 뒤로 이것저것 물어본 결과.

내가 영원회귀를 당할 시, 이브가 어떻게 되는지는 대충 알게 되었다.

“몰라흐… 모른, 다구흐… 나흐, 정신, 차려보니흐, 여기흐 였다구흐……!”

펑펑 우는 이브를 어떻게든 어르고 달랬는데.

그녀가 더듬더듬 말해준 걸 종합해서 결론을 도출했더니, 대충 이런 소리가 됐다.

‘이브는 회귀해도 전생의 기억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회귀하기 전에 어디에 있었든, 회귀한 후엔 나처럼 우리 집으로. 내 옆으로 되돌아온다.’

대충 이 정도.

그 뒤론 본격적으로 이브를 달래주느라 진땀을 뺐다.

“좀 진정됐냐.”

“…응. 크흥!”

한참 후에야 이브가 간신히 울음을 멈췄다.

이브의 눈두덩이 퉁퉁 부어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어 주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브, 우선… 내 목숨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 없어.”

한숨이 섞인 말을 고해 성사하듯 내뱉었다.

이브는 입을 꾹 닫은 채, 내 말을 가만히 경청했다.

“아무도 날 죽이지 못한다. 심지어 나 자신도.”

목소리에 점점 웃음기가 실렸다.

나 자신을 비웃는 조소였다.

“난 불사신이다. 죽지 않아, 그냥…….”

그냥 다시 돌아올 뿐이다.

거기까진 차마 말하지 못했다.

“…….”

목구멍에서 턱 걸려, 그대로 다시 삼켜버렸다.

그냥 사실을 말할 뿐인데. 내뱉기가 왜 이리 힘든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빠. 아프잖아.”

이브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고, 이내 뚱한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스윽. 그녀가 문득 손을 위로 뻗었다.

“아프잖아, 힘들잖아. 응?”

서늘하고 하얀, 앙증맞은 손가락들이 내 목을 스친다.

정확히 내가 단검을 찔렀던 장소. 전생에서 꿰뚫린 상처를 손가락이 쓰다듬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덜컥 삼켰다.

“아빠, 힘들어 보였어.”

“…….”

“아빠가 눈 감을 때. 아프고, 힘들고… 외로워 보였단 말이야.”

이브는 다시 울먹거렸다.

하지만 이번엔 울지 않았다. 다만 나를 위로해 주려는 듯이, 품으로 파고들어 나를 꽉 부둥켜안았다.

“난 싫어! 아빠가 아픈 건, 싫단 말이야.”

“…그러냐.”

“응. 그러니까, 아빠… 다시는 그런 짓 하면 안 돼. 응? 약속! 약속해!!”

이브는 울음을 꾹 참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모든 신경을 빼앗겼다.

“죽지 않을지는 몰라도, 안 아픈 건 아니잖아!”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껏 잊고 있던 목소리가, 내게 호통친다.

“네가 힘들어지잖아!! 이 병신아!!”

새빨간 눈부처에 누군가가 비친다.

아주 익숙한 외모다. 그녀는 분명, 지금 이브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살한다느니… 그런 말. 제발, 그렇게 쉽게 하지 마……!”

이브보다 우는 얼굴이 안 어울리는 여자였다.

저 특유의 서글서글한 눈매와 붉은 입술. 강수아인가? 아니, 아니다. 나는 저렇게 나이 먹은 수아를 본 적이 없다.

볼 수가 없지.

1002번이나 올해를 넘기지 못했으니까.

“한 번만 더 자살한다느니 어쩐다느니, 그러면… 내 손에 뒤질 줄 알아. 한정용!”

저렇게 말투가 걸걸하지도 않아.

애초에 수아는 단발머리도 아니야. 점프 수트를 즐겨 입지도 않아.

내 앞에서 좀 울었다고, 저렇게 얼굴 붉히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아.

강수아가 아니다.

저건 강서윤이었다.

“…맞아, 그랬었지. 그래, 맞는… 말이다.”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미친놈처럼 중얼거리다가, 이내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약속할게. 네 앞에서 자살 같은 거, 이젠 안 한다.”

“으응. 약속!”

이브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고.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었다.

다시는 함부로 자살하지 않겠다는 약속.

이걸로, 두 번째였다.

* * *

이브는 한바탕 울고 나서 지쳤는지, 곧장 곯아떨어졌다.

나는 그사이 복도로 나왔다. 담배를 꼬나물고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복잡한 상념이 머릿속을 맴돈다.

“…….”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분명 뭔가 계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거였구나. 내가 자살런을 꺼리게 된 이유.’

부질없고 비효율적인 걸 알면서도, 회차마다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하는 이유가 분명 있었다.

정작 정확한 계기를 잊고 있었는데, 이브 덕분에 다시 떠올랐다.

“지금까지 왜 잊고 있었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다.

나름 내 영원회귀의 방향성을 정할 정도로 대사건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중요한 에피소드를 왜 깡그리 잊고 있었을까.

의외로 답은 금방 나왔다.

“…도망쳤군, 심리적으로.”

무서웠으니까.

툭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강서윤이 무섭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 통틀어서 강서윤이 거의 제일 무섭다. 그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십년지기 친구. 세상에서 날 가장 잘 아는 사람.’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은 강수아조차 믿지 못할 때가 많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얘기긴 하다.

‘하지만 강서윤은 말만 하면, 항상 믿었어.’

설득에 대단한 증거조차 필요치 않았다.

그녀는 이십년지기 친구인 내 말을 몇 번째 회차든, 한 번도 빠짐없이 항상 믿어줬다. 이 악물고 믿으려고 노력해줬다.

‘그런 강서윤이, 회귀할 때마다 나를 잊어버리는 게… 무서웠다.’

회귀하고 시간이 되돌아간다.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강서윤에게 또다시 설명한다.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몇천 번이고, 계속 설명을 되풀이한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강서윤은 나를 잊어버린다.

그 압도적인 공허감과 허탈감.

지치다 못해 무서워졌다.

‘강서윤이 죽는 것도 무서워.’

강서윤은 여섯 번째 붕괴에서 확정적으로 죽는다.

거스를 수 없다. 그건 운명이고 필연이다. 아무리 정을 쏟고 애를 쏟아도, 온 세상이 결탁하여 반드시 강서윤을 교수대에 올린다.

서윤이의 처형을 지켜보는 건 이골이 났다.

진저리가 난다.

‘나의 무력함과 직면하기가… 무섭다.’

그 절망감과 무력감 역시, 지치다 못해 무서워졌다.

그래서 나는 눈을 돌렸다. 강서윤에게 관심을 강제로 끊어버리기로 한 거다.

‘이젠 강서윤 정돈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다 뿐일까.

이젠 내 손으로 죽여버릴 수도 있게 됐다. 나는 그래도 괜찮다, 정말이다. 진짜라고.

그런 식으로 나는, 역겨운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햄스터, 놔주러 가야지.”

지지리 궁상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수없이 반복해 왔던 루틴을 떠올렸고, 어김없이 이번에도 햄스터를 놔주기 위해 다시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아빠아!”

들어가자마자 이브가 나를 반갑게 불렀다.

후다닥! 튕겨 나오듯 침대를 박찬 이브, 단숨에 내 품으로 뛰어들어 왔다.

그녀가 내 후드 티에 얼굴을 마구 부비며 칭얼댄다.

“어디 갔었어! 말없이 없어지지 마아! 아빠 없으면, 싫어!”

“그래, 알겠다. 알겠으니, 그… 좀 놔보자.”

어떻게든 이브를 떼어놓으려 어르고 달랬다.

그런데 웬걸, 힘이 장사다.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서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전부터 나랑 붙어있고 싶어 하긴 했다만…….’

오늘따라 좀 상태가 심각하다.

괜히 자살쇼 같은 걸 보여줘서 그런가. 정서 함양에 독이 됐나 보다.

“후우.”

곤란한 상황에 한숨을 나직이 내쉬었다.

나는 곧 힘 빠진 미소를 지었고, 천천히 이브의 머리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뭐, 어쨌든 고맙다. 이브.”

“응? 뭐가아?”

여러 의미를 담아 이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브는 어리둥절하게 올려다봤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번 생은… 많이 바빠지겠어.”

그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머릿속으론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정리했고,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차근차근 짚어 나갔다.

대략적으로 정리가 끝나가려는 그 순간.

띵동, 띵동―!

현관의 차임벨이 기세 좋게 울렸다.

적당한 템포로 두 번,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리듬과 타이밍이다.

보지 않아도 찾아온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수아다.’

다만 여기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방문객의 정체를 알아챈 게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 엄마다!”

퍼뜩!

이브가 드디어 내 상의에서 얼굴을 뗐다.

그녀가 반가운 얼굴로 현관문을 쳐다봤고, 이내 아장아장 달려가기 시작했다.

“엄마아아~!”

그 흐뭇한 광경에 절로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태평하게 관망하던 나는, 어느 순간 표정을 바짝 굳혔다.

“…수아?”

이내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번 생의 수아, 그리고 수아를 ‘엄마’라고 부르는 이브.

이 조합이 지금 갑자기 만날 때 벌어질, 어질어질한 화학 작용.

“어, 저기.”

무방비한 두 사람이 이번 생에 최초로 상봉하기까지.

앞으로 3초. 아니, 2초.

이제 1초 남짓.

“이브, 잠깐……!”

나는 뒤늦게 후회하며 이브를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철컹!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온다.

“아, 오빠! 안녕하세…….”

익숙하게 현관을 지나치던 수아가 멈칫, 걸음을 멈추고 몸을 굳혔다.

그녀가 겁먹은 듯이 뒷걸음질 치며 말을 더듬었다.

“오, 오, 오빠. 얘… 누, 누구?”

수아의 동그랗게 뜨인 눈앞엔 이브가 있었다.

이브는 새하얀 머리칼을 찰랑이며, 고혹적인 붉은 눈매를 구부러뜨린다.

“엄마아아!”

요염하고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이브는 폭탄 발언을 투하했다.

“보고 싶었어, 엄마! 히히!”

* * *

이번 생엔 햄스터가 자유를 누리지 못할 듯싶다.

이유는 뭐, 당연히 이브 때문이었다. 이브의 존재부터가 이미 상당한 논란거리인데, 거기다 하필 시작부터 논란의 ‘엄마’ 발언을 해버렸으니까.

“…….”

“…….”

“…….”

현재 이브와 나, 그리고 수아가 침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로를 향해 바쁜 시선이 오간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삼자대면 중이다.

“…오빠. 제 말 듣고 있어요?”

수아가 날 부른다.

잡생각을 뇌 구석에 죄다 처박았다. 그리고 재빨리 의식을 현실로 되돌렸다.

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들었지, 진짜 다 들었다.”

딴생각하다 수아에게 타박을 들어본 적은 많다.

그런데 지금처럼 서슬 퍼런 타박은 처음이지 싶다. 하는 말 자체는 비슷한데, 어조가 전에 없이 냉랭했다.

‘그만큼 진지하시다는 거지.’

이건 괜히 평소처럼 장난질 쳤다간 뼈도 못 추린다.

곧장 비위를 맞춰주기 시작했다.

“이 백발 꼬맹이는 대체 뭐냐, 왜 네가 얘의 엄마인 거냐. 그걸 설명해달라고 했지.”

“네, 맞아요. 진짜로 듣고는 계셨네요?”

“진짜 들었다니까.”

“치, 말은.”

수아가 투덜거리며 힐책의 시선을 지긋이 뿌린다.

저러다 눈에서 광선 나가겠다. 나는 해명을 위해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생각하자, 생각.’

이브가 수아와 만나는 상황은 이번 생이 최초다.

당연하다. 이브가 저번 회차의 4차 붕괴쯤에 튀어나왔으니까.

이런 상황이 전에 있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일단 이브를 어떻게든 얼버무린다.’

덕분에 지금 맞닥뜨린 상황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전혀 없다.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완전한 미지의 영역.

순전히, 나의 임기응변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