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63)>
“흐음.”
나는 침음을 낮게 흘렸다.
잠깐 진득하게 생각에 잠겼고,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놈들이 죽은 걸, 네가 어떻게 아냐.”
“그야, 들었으니까요.”
“들었다니, 누구한테.”
“뉴스로요.”
“…….”
“정용 씨는 못 보셨나요? 나름 방송국 여기저기서 보도해줬던 것 같은데요.”
다시 한번 멍하니 상념에 잠겼다.
이번 회차엔 나름 뉴스를 챙겨봤던 나다. 방송국 망하기 전까지의 기억을 열심히 쥐어짜 봤다.
그런 뉴스를, 내가 봤던가?
“…모르겠는데.”
본 기억이 안 난다.
그럴 수밖에, 나는 철저하게 관심 있는 것에만 파고드는 사람이니까.
딱히 집중력이 좋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그 분야만큼은 사람 구실을 한다는 소리다.
‘혹시나 봤어도 아마, 금방 잊었을 거야.’
당시 내 초유의 관심사는 레드 저거너트의 명성치.
그리고 게이트 붕괴 때마다의 피해자 현황 정도였나? 그 외에 필요 없다고 생각한 정보들은, 일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성능 안 좋은 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노력이다.
“하긴. 관심 없는 사람이면 뭐, 보고도 금방 지나칠 내용이긴 하죠.”
오히려 이세라가 먼저 내 실드를 쳐줬다.
그녀는 샐쭉 웃으며 내게 한 발짝씩 다가왔다. 그대로 박살 난 테이블 앞까지 천천히 걸어온다.
“한국의 게이트 붕괴 상황만 해도 어지러워 죽겠는데, 미국 웬 듣보잡 중소기업 연구진 둘이 죽었다더라. 이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래, 봤어도 내가 기억 못하는 걸 수도 있다.”
“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세라는 미미한 웃음을 띤 채 내 주위를 맴돌았다.
참고로 내 등 뒤에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수아의 눈초리가 지금도 존나게 따가웠다.
“…….”
수아의 표정이 많이 안 좋다. 최대한 빨리 이 대화를 마무리하자.
결심한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연구진들의 사인은? 역시 게이트 붕괴인가?”
“네, 공식적으로는요.”
이세라는 가차 없이 즉답했다.
그런데 정작 흘러나온 대답은,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다.
“공식적으로? 그게 무슨 의미냐.”
“비공식적인 뭔가가 더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음모론이 있었다는 소리겠죠?”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왜, 있잖아요. 정용 씨도 D급이지만 나름 헌터 생활 오래 하셨으니까. 겪어본 적 있죠?”
“뭘.”
“괴물밖에 없는 던전에서, 나이프에 찔린 시체가 발견되는 상황. 이런 거?”
“…….”
나는 입을 다물었다.
부릅뜬 눈으로 이세라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나도 단박에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인 거냐?”
“네, 카일 인더스트리의 연구진 숙소 근방에서 게이트가 붕괴한 건 맞아요. 실제로 몬스터들 손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뉴스에 보도됐던 거고요.”
“그런데, 왜 그런 음모론이?”
“로즈 휴스턴, 애덤 크로스. 그 두 사람의 시체만요. 너무 절단면이 깔끔하게 토막이 나있더래요.”
씨익.
이세라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진다.
“정말 딱 문자 그대로의 상황인 거죠. 그쪽에 붕괴했던 던전은 분명, ‘자이언트 예거’라는 마수형 괴물만 나오는 던전이었거든요.”
문자 그대로의 상황.
그렇군.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그렇다.
괴물밖에 없는 던전에서, 칼에 찔린 시체가 발견된 꼴 아닌가.
“놈들의 시체엔 열상(裂傷)이 아니라, 자상(刺傷)이 나있었다. 이거군.”
“네, 사람이 짐승한테 찢기면… 절대 그런 깔끔한 상처가 안 나잖아요?”
“안 나지, 아무렴.”
본 적도 많고, 직접 당해본 적도 많다.
몬스터까지 갈 것도 없다. 맹수의 이빨만 해도 사람의 뼈와 내장을 간단히 분쇄하고 짓이긴다. 날카로운 손톱은 연약한 살갗을 갈기갈기 찢는다.
하물며 던전 몬스터급의 거대한 짐승?
사실 인간의 형체조차 거의 안 남아야 정상이다.
“이건… 이건, 정말……!”
귀중한 정보.
1급… 아니, 특급 정보였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나는 피가 몰려 어지러운 머리를 힘껏 부여잡았다.
‘달라. 지금까지와는, 뭔가 느낌이 달라!’
제대로 형언할 순 없다.
하지만 뭔가, 뭔가가 드디어 잡히려 한다. 제대로 파고들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온몸에 더운 피가 감돌았다.
“후, 후우……!”
흥분의 도가니가 팔팔 끓는다. 숨이 다 가빠진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벅찬 마음에 말도 제대로 안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뭐다?”
그런 나를 대신하려는 듯이, 이세라가 태클을 치고 들어왔다.
그녀는 여전히 기분 나쁘게 이죽거리는 중이다.
“지금까지 제가 한 말. 전~부, 인터넷에 나돌던 찌라시에, 카더라일 뿐이라는 거죠!”
이세라가 검지손가락을 까딱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좋은 꿈 꿨냐? 잠 깼으면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라.
네 할 일이나 충실히 해라, 한정용. 그렇게 타이르는 듯했다.
“…….”
나는 침묵했다.
한참 동안이나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가 보면 선 채로 죽은 줄 알 정도로, 나는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오, 오빠?”
그런 내 모습에서 모종의 불안을 느낀 것인가.
수아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아.”
퍼뜩. 그 목소리에는 정신을 차렸다.
안 그래도 지금 한창 상념 속에서 수아를 떠올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수아를 빤히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러지 마요, 정용 씨.”
덥석.
어느새 다가온 이세라의 손에 저지당했다.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세라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져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내 앞을 막아섰다.
“무슨 짓 하려는지 이미 다 알아요.”
“…….”
“네, 알아요. 제가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아요.”
“…….”
“이래서예요. 이래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요. 내가 고작, 테이블 좀 부수는 것 때문에 뜸 들이는 줄 알았어요?”
그렇군. 여기까지도 미리 봤던 거였냐.
이세라의 예지 스킬을 좀 우습게봤던 걸지도 모르겠다.
역시 내 사고방식을 발가벗긴 듯이 미리 읽힌다는 건,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
나는 이세라의 제지에 딱히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세라를 빤히 쳐다본다.
“…윽.”
오히려 이세라가 흠칫 물러선다.
그녀가 분한 듯이 두 주먹을 꽉 쥐었고, 이내 고개를 푹 떨궈버렸다.
“하다못해, 최소한. 수아 씨가 안 보는 곳에서 해요.”
그리고 체념한 어조로 부탁했다.
아무리 급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라 이건가.
아무래도 그게 맞긴 하겠지. 그 정도 부탁을 들어줄 이성은 남아있다.
“…오래 살아남아라.”
이세라에게 건조하게 한마디 남겼다. 그리고 주점 출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주르륵. 이세라의 안대 밑으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오빠……?!”
수아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 자리에 정지했다. 수아를 흘깃 쳐다보니, 그녀는 불안에 찬 시선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방금 그 얘기, 뭐예요? 네?”
“…….”
“뭘 해요? 제가 없는 곳에서 뭘 한다는 건데요?”
“…….”
“네? 왜 말이 없어요! 마, 말 좀… 말이라도 좀 해봐요! 제가 이해할 수 있게!!”
수아는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빽 소리 질렀다.
그리고 우렁찬 자기 목소리에 놀란 것 마냥, 흠칫 어깨를 떨었다.
“오빠.”
그녀가 재차 나를 쳐다봤다.
절박한 간절함이 깃든 시선이 쏟아진다.
“혹시 지금 뭔가…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죠?”
“딱히.”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래.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이건 이상한 생각이 아니야.”
내 입장에선,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땐 수아의 입장에서도.
지금 내가 하려는 선택이 당연하다.
‘수아야, 너라도…….’
아마 이런 상황에 처하면 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그렇게 말해주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정용 씨,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
귀신같이 눈치챈 이세라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비릿하게 웃었고, 내 의아한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그럴수록 서로… 더 괴로워질 뿐이잖아요.”
그것도 맞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나는 그쯤에서 슬쩍, 영문을 몰라서 멀뚱히 서있던 이브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브.”
“응! 아빠. 아줌마랑 화해했어……?”
이브가 내 부름에 방긋 웃는 한편, 조심스레 물어왔다.
여전히 내가 이세라랑 싸운 줄 아는군. 테이블을 박살 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줬다.
“화해했다. 이젠 안 싸워.”
“그래애? 응! 다행이야, 히히. 싸움은 나쁜 거라구. 아빠!”
“잠깐 같이 좀 나가자, 산책이다.”
나는 문을 가리키며 제안했다.
타이밍이 너무 뜬금없었나 싶기도 했다만, 다행히 이브는 산책 소리에 화색을 띠울 뿐이다.
“와! 산책? 좋아! 아빠랑 같이 있으면 뭐든 재밌어!”
“…그래, 다행이구나.”
나는 쓴웃음으로 응수하며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이브가 그런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주점의 입구까지 이제 코앞이다.
“잠깐만요! 오빠!!”
덥석! 단숨에 달려온 수아가, 내 외투의 후드를 힘껏 잡아당겼다.
목이 졸려오며 순간적으로 숨이 막힌다.
“켁.”
본의 아니게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강제로 뿌리치자면 할 수는 있다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고개만 슬쩍 돌려 수아를 쳐다봤다.
“제, 제 감이… 이상한 거면 좋겠어요. 근데, 근데요. 지금 이대로 오빠가 나가버리면… 뭔가, 왠지, 영영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그, 그래서……!!”
수아는 울고 있었다.
눈물 줄기를 펑펑 쏟아낸다. 그것을 보이기 싫은지 양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있다.
그녀의 어깨가 잘게 떨린다. 멈춰주고 싶다.
“수아야.”
나는 수아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려놨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는 그녀를 그대로 껴안았다.
“아.”
품 안에서 얼빠진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내 그녀가 허둥지둥 꼼지락거렸고, 당혹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 오빠! 갑자기, 무슨!”
“미안하다.”
“…네?”
나는 수아의 의문을 해소해 주는 대신, 내 할 말을 했다.
사과였다. 진심을 담은 사과.
“이번 생의 너까진, 구할 수 없을 것 같다.”
꽈악.
수아의 몸을 힘껏, 부술 것처럼 안았다.
온기가 느껴진다. 버젓이 살아있는 수아의 체온과 체향이, 내게 섬짓한 실감을 가지고 온다.
“…미안, 미안해. 미안하다.”
수아는 이제 꼼짝없이 죽는다. 이제부터 내가 그렇게 만드는 거다.
나는, 이번 생의 수아를 죽여버리는 셈이다.
“… 또 보자.”
공허한 작별 인사를 남겼다.
얼이 완전히 빠진 수아를 그쯤에서 놔줬다. 수아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나는 출입구를 열고 주점을 나가버렸다.
콰당. 문이 닫힌다.
“오빠. 오, 오빠!!”
문 너머에서 뒤늦게 수아의 비명이 들려온다.
그새 정신을 차린 듯하다.
“미, 미안해요!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그러니까……!”
타타탁!
그녀의 다급한 발소리와 사과. 빠르게 문 쪽으로 가까워졌다.
나는 이브를 번쩍 들어 올렸고, 동시에 나직이 중얼거렸다.
“비약.”
투학!
스킬 발동.
나와 이브는 계단을 빛살처럼 거슬러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