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62)>
주점에 돌아온 직후였다.
“카일 인더스트리라는 기업, 알고 있냐.”
나는 이세라에게 물었다.
돌아왔을 땐 이미 늦은 오후가 돼 있었고, 슬슬 내가 제공한 식료품으로 저녁거리를 준비하던 이세라였는데.
덜컥. 그녀는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어?”
당혹스러운 탄성을 흘리는 이세라.
이내 그녀는 갸웃,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정용 씨가 거기를, 어떻게 아세요?”
‘잘 모르겠는데요’도 아니고, ‘들어는 봤네요’처럼 긴가민가한 반응도 아니다.
나는 알긴 한다. 근데 너는 그걸 알 리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알고 있냐?
그런 뉘앙스다.
“…그래, 역시나.”
바닥의 나무 무늬를 멍하니 훑어 내려갔다.
대단한 충격을 받진 않았다. 애초에 받을 만한 충격은 던전교 교주와의 대화로 죄다 받았다.
그래, 나는 지금 분명히 멀쩡한 상태다.
“저… 정용 씨? 괜찮으세요?”
“괜찮아, 멀쩡해.”
“안 괜찮아 보이시는데? 계속 죽상이잖아요.”
“그건 내가 원래 죽상이라 그렇고.”
“어,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다만, 약간의 혼란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사실의 일부가 송두리째 뒤집혔다. 수많은 반복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던 상식들이 재정립됐다.
그 여파로 살짝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뿐이다.
“카일 인더스트리에 대해 아는 바를 말해봐, 전부.”
어쨌든 알고 있다니 잘됐다.
던전교의 김덕문과는 다른 관점. 공백을 메워줄 새로운 정보가 필요하다. 이세라에게 그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이세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안다고는 해도, 자세하게 아는 바는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괜찮아. 관련만 됐으면 뭐든 좋다.”
“원래는 미국 텍사스쯤에 위치한 작은 도매 회사였죠. 정확한 설립은 기억 안 나고… 아무튼 던전이 발생하기 시작한 이후엔, 마석(魔石)이나 몬스터 전리품 운송 업무로 완전히 전환했고요. 그럭저럭 적당히 실적 올리던 기업인 걸로 알고 있어요.”
“…….”
“규모나 매출액만 보면 중견…? 아니, 중소기업에 가깝죠. 미국 기준으로요.”
한동안 침묵했다.
머릿속으론 김덕문이 말한 정보와 이세라의 말을 대조해보고 있었다.
이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표면적인 정보는 완전히 일치한다.’
저건 표면적으로 알려진 카일 인더스트리의 정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는 이 기업을 생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는 게 이상한 거지, 저건.’
던전 사업에 뛰어든 회사가 일단 한둘이 아니다.
카일 인더스트리는 그 수많은 회사 중 하나에 불과하고, 심지어 규모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런 기업이 수백 개는 될 텐데.’
하물며 외국계 기업, 지구 반대편의 중소회사다.
이건 업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알고 있으면 이상한 수준이 맞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점차 가늘어졌다.
“그런 듣보잡 회사를, 너는 잘도 알고 있군.”
행여나 숨기지 마라.
알 만한 거 다 알고 확인차 묻는 거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었다.
이세라를 쳐다보는 시선이 살짝 가늘어졌다.
“네. 그래서 알고 있는 이유를 지금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이세라가 의심받아 곤란하다는 기색으로 웃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아마 갑자기 물어보신 이유도… 이 소문을 듣고 싶으신 걸 테죠. 어디서 그 정보를 듣고 오신 건진 모르겠지만.”
소문.
그 단어에 귀가 번쩍 뜨인다.
“이건… 세간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요.”
이세라는 잠깐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민하다가, 천천히 말문을 텄다.
목소리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그 카일 인더스트리는, 미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회사 중 하나였어요.”
“미국 정부의… 보조금?”
“네, 혹시 왜 받는지 짐작 가시나요?”
“그야 뭐.”
당연히 간다.
이건 김덕문한테 들어서 아는 게 아니다.
애초에 던전 관련 회사들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딱 한 가지 이유로만 정부 보조금을 타 먹을 수 있게 돼 있다.
“던전과 게이트의 발생 원인 조사겠지.”
던전의 발생 원인과 메커니즘 규명 사업.
카일 인더스트리는… 아무래도 거기에 발을 담갔던 기업인 듯하다.
이세라는 내 추측을 쌈박하게 긍정했다.
“네, 맞아요. 카일 인더스트리는 운송업과 동시에 조사 사업도 하고 있었던 거죠.”
“드문 일은 아닐 텐데, 우리나라에서도 흔하지 않나?”
“그것도 맞죠. 많은 대기업들이 조사 사업 명목으로 지원금 빨아다가, 자회사 헌터 육성에 때려 박곤 했죠.”
이세라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게 조사 업무를 안일하게 미루고 미룬 결과가, 지금의 세상 꼬라지니까.
‘방학 숙제 좀 미룬 결과치곤… 참담하긴 하지.’
이세라도 이런 생각에 웃었을 거다.
내가 덩달아 조소를 머금는 순간, 이세라가 고개를 슬며시 저었다.
“하지만 카일 인더스트리는 좀 달랐다고 해요.”
“…달랐다?”
“네, 지원금을 써야 할 데에 썼다는 거죠.”
써야 할 데 썼다. 진짜로 던전 발생기전을 조사하던 회사였다는 뜻이다.
이세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말했다.
“오히려 운송업으로 번 돈을 연구에 때려 박을 정도였대요. 내로라하는 수많은 박사들을 거금을 들여서 초빙하고, 본격적으로 던전 생태와 발생기전을 연구했다고 해요.”
“나름 양심 기업이었군, 뭔 속셈이 있는지는 몰라도.”
“네. 그리고, 아마 여기부터 정용 씨가 진짜 듣고 싶은 부분일 텐데…….”
거기서 이세라가 입을 꾹 닫고, 꽤 오랫동안 주저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무겁게 흐른다.
“…….”
“…….”
침묵이 좀처럼 깨질 생각을 안 한다.
진득하게 잘 듣던 나는, 당연히 쌍심지를 치켜세웠다.
“……?”
아니. 왜 멈추는데.
여기가 진짜 중요한 부분인데, 뭐 어쨌다고. 끊어도 하필 여기서 끊냐?
절단 신공 멈춰.
“그래서 뭐.”
나는 계속하라는 의미로 언짢은 시선을 팍팍 뿌렸다.
하지만 이세라는 기어코 끝까지 주저했고, 밑밥까지 깔며 빙빙 돌아갔다.
“그… 저도 어디까지나, 고위 헌터들 사이에 나돈 소문을 상아한테 전해들은 거니까요. 너무 심각하게 듣지는 마세요, 꼭이요. 아시겠죠?”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려고.
그리고 들었는데 별거 아니면 어쩌려고 저렇게까지 밑밥을 짙게 까냐.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려 해서 손사래를 휘저었다.
“됐으니까 말이나 해봐라. 뭐길래 그러는데.”
“알아냈다고 해요.”
“알아내다니, 뭘.”
“던전의 발생원인. 게이트의 발생기전이요.”
“…….”
“그걸, 카일 인더스트리의 연구진이 진짜로 알아냈다. 그런… 소문이 고위 헌터들 사이에 돌았어요. 아주 잠깐요.”
듣고 나니 이해가 간다.
인정할 수밖에, 이건 뜸 들일 만한 화제긴 했다.
그만큼 듣는 입장에선 터무니없는 소리다. 말하는 이세라 입장에서도 황당무계했으리라.
“…….”
하지만 그것을 듣는 나.
바로 몇 시간 전, 던전교의 전말을 들은 나는.
저게 마냥 헛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카일. 카, 카일, 인더스트리입니다……!”
김덕문의 공포에 찬 목소리가 반복재생 된다.
나의 추궁에 못 이긴 그놈은, 분명히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더, 던전교는, 카일 인더스트리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예!”
“모,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표면상 그리 큰 기업이 아니니까요. 외국의, 미국의 작은 던전 운송 기업입니다……!”
놈도 그렇게 밑밥을 줄줄 깔았었다.
그리고 한참을 침묵한 끝에, 뺨아리 몇 대 더 처맞고 핵심을 읊었다.
“서, 서, 선지자들!”
“던전의 모든 것을 깨우친 선각자께서… 다가올 필연적인 종말에, 사람들에게 복음과 구원을 전파하라고! 저희를 사역하셨습니다……!”
“그, 그래서, 저희가 발 벗고 나선 겁니다! 예! 이 멸망해 가는 세계의,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요!!”
골방의 축축한 공기.
음침하고 뿌연 시야, 땟국의 지린내와 물비린내. 찐빵처럼 부푼 얼굴로, 피눈물 흘리는 김덕문의 목소리.
수 시간 전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나는 상념에서 퍼뜩 벗어나 이세라를 쳐다봤다.
그래, 놈은 분명히 말했다.
“…선지자들.”
선지자(先知者).
모든 것을 미리 아는 사람.
던전의 모든 것을, 미리 알고, 밝혀낸… 사람?
‘그게, 정말로… 진짜로 있었다. 라고?’
아니. 최소한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정황이 내게 그렇게 외치고 있다.
내 표정에도 목소리에도 더 이상, 한 줌의 장난기도 남아있지 못했다.
“누구냐.”
이글거리는 시선이 이세라에게 쏟아졌다.
그것을 피부로 느꼈는지, 그녀는 흠칫 상체를 물리며 당혹스러워했다.
“저, 정용 씨?”
“누구냐, 그 모든 것을 밝혀냈다는 사람.”
“저기, 정용 씨. 일단 좀 진정해 보세요. 지금 표정이 너무 살벌해요.”
“연구진의 정체, 이름. 하나라도 들은 거 있으면 당장 말해봐.”
“그냥 소문이라니까요? 헌터 생활이 워낙 고단하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가십거리는 협회에서 하루에 몇 개라도…….”
콰앙!!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에 테이블을 후려쳤다. 테이블은 쪼개지다 못해, 수십 조각으로 산산이 조각났다.
우당탕. 깜짝 놀란 이브와 수아가 휴게실에서 부리나케 달려온다.
“뭐, 뭐예요?! 깜짝이야! 무, 무슨 소리에요, 방금!”
“아빠아! 포, 폭탄? 폭탄 터지는 소리 났어! 꽈앙!!”
두 사람은 이내 조각난 카운터의 입식 테이블을 눈에 담았다.
흠칫, 두 사람이 동시에 굳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이 나한테 고정됐다.
“오, 오빠. 왜… 그랬어요?”
“아빠아. 화났어? 아줌마랑, 싸워?”
두 여인네가 불안한 어조로 물어온다.
당연하다. 현장 정황상 누가 테이블을 박살냈는지는 불 보듯 뻔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구원의 이름. 들었냐, 못 들었냐.”
정확히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뭐라 쫑알대는지도 제대로 못 들었다.
“개소리인지 아닌지 판단은 내가 한다. 질문에나 대답해, 이세라.”
관심사는 오직 이세라. 그녀의 대답에 쏠려 있었다.
이세라가 하아, 하고 낮은 한숨을 쉬었다. 망가진 테이블을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이럴 줄 알았어요. 진짜…….”
“네가 대답만 빨리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아뇨, 제가 순순히 말해도 당신은 똑같이 했을 거예요, 무조건이요.”
“그렇다고 안 말하면, 이제 네가 나한테 부서질지도 모른다.”
“제가요? 아마 그렇진 않을걸요? 시험해 볼까요?”
나는 인상을 사정없이 구겼다.
뇌 속을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한 불쾌함에 치를 떨었다.
“…쯧.”
예언자와 하는 대화는 원래 이런 느낌이었지.
요즘 이세라가 많이 배려해줘서 이 감각을 잊고 있었다. 미간을 바짝 모은 채 이세라를 쳐다봤다.
“그래서. 끝까지 말 안 하겠다?”
“아뇨, 말해줄 거예요.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이미 저는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수가 없으니까요.”
“좋아, 잘 생각했다.”
“하아. 대체 그놈의 소문이 뭐라고, 진짜.”
결국 말해줄 거면서 튕기긴 왜 튕기냐고.
내 인내심도 이제 한계에 달했다. 나는 보채듯이 그녀에게 손짓했다.
“연구원 이름, 기억나는 게 있냐.”
“네, 분명 들어봤어요.”
눈을 번쩍 떴다.
긍정. 설마 하던 긍정이 나왔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호흡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불규칙해진다.
“누구냐, 무슨 이름이냐.”
“보자, 분명 두 명이었는데. 로즈 휴스턴, 그리고… 애덤 크로스?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 하나에 남자 하나요.”
“그 이름은 확실한 정보냐? 기억이 잘못됐을 가능성은.”
“당연히 확실하다곤 못 하죠. 그 소문 들은 지도 벌써 1년이 더 됐는데요……?”
이세라가 투정 부리듯 말꼬리를 늘였다.
그래. 기억은 완전성과 안정성이 낮은 기록 매체긴 하다.
그 불안전성 때문에 숱하게 데어 본 게 바로 나다. 그러니 이세라가 기억을 제대로 못한다고 불만은 없다.
‘불만이 없긴, 이미 대만족이야.’
나는 미친놈처럼 히죽거리고 있었다.
이세라 입장에선, 이게 뭔 자다가 귀신 불알 긁는 짓거린가 싶을 거다.
하지만 내게 있어선 천금 같은 귀중한 증언. 가뭄의 단비 같은 정보였다.
‘지금은 좀 불확실해도 괜찮아.’
다음 페이즈로 조사를 이어갈 단서가 생겼다.
일단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애덤 크로스, 로즈 휴스턴…….”
두 인물의 이름을 뇌간 깊숙이, 척수 안쪽까지 새겼다.
그러자니 문득 한 가지, 당연한 의문이 생겼다.
나는 퍼뜩 이세라를 쳐다봤다.
“이세라.”
“네.”
“그 두 연구원. 지금 시점에 살아있냐?”
만약 아직 살아있다면.
나는 모든 걸 제쳐두고라도 만나러 가볼 용의가 있다.
‘그래, 던전 붕괴를 방치하고서라도.’
최우선으로 미국에 날아가 놈들을 만나야 한다. 이건 그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여기서 처음으로 이세라의 표정이 흐려졌다.
“아뇨, 둘 다 분명히 죽었어요. 한 열흘쯤 전에요.”
이번엔 아까 같은 추측성 발언도 아니었다.
나는 반쯤 얼이 빠져서 중얼거렸다.
“…열흘 전?”
이번 생의 두 연구원은 이미 죽었다. 열흘 전이라는 비교적 가까운 시일에.
이세라는 그것을, 아주 단호하게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