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61)>
“…어, 어떻게.”
던전교 교주는 퍽이나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교주의 투실한 몸이 전에 없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숨이 점점 거칠어진다.
“대체. 무, 무슨 일이……!”
이내 갈 길을 잃고 방황하던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놈의 시선엔 공포가 가득했다.
“너, 너냐?”
“아마 그럴 거다.”
뭘 말하는 건지 몰라서 추측성으로 대답해줬다.
뭐 당연히 문맥상, ‘던전교 장로들을 저 꼴로 만든 게 너냐?’라는 의미겠지. 그래서 나도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준 거다.
놈은 반쯤 얼빠진 행색으로 계속 물어봤다.
“어, 언제. 대체 어느 틈에… 전부……!”
“어느 틈이겠냐, 네가 여신도들이랑 새벽까지 떡 치는 사이.”
“……!!”
“아주 엄선해서 들여놨더만, 걔네도 다 죽였다.”
놈은 그제야 멍한 눈빛으로 상념에 잠겼다.
이내 교주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공포에 젖은 목소리를 흘렸다.
“그, 그래. 목소리. 한창 하던 중에…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나다.”
살은 뒤룩뒤룩 쪄갖고 힘도 좋으시네, 던전교 교주. 아마 이런 목소리가 들렸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놈들을 덮쳤으니까.
“그리고. 눈앞이, 갑자기 번쩍이더니. 깨어났더니… 여기.”
“그래, 그렇게 만든 것도 나다.”
계집질에 놀아나느라 정신없는 교주에게 순식간에 다가갔고, 뒤통수를 적당히 후려갈겨 기절시켰다.
그리고 침대에 널브러졌던 여신도들은, 비명을 지르기 전에 모두 목을 따 죽였다.
“너, 이 새끼.”
그제야 모든 전말을 기억해 낸 던전교 교주.
놈은 투실한 턱살을 바들바들 떨며 내게 물어왔다.
“나, 나한테… 원하는 게 뭐냐.”
이제야 협조적으로 변했군. 얘기가 좀 통하겠다.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교주의 앞에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잠깐 대화를 좀 하자.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
“…대, 대화?”
“그래, 대화. 몇 가지 질문을 할 거다. 거기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면 된다.”
“…….”
“어렵진 않을 거다. 전부, 너라면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야.”
교주는 입을 콱 다물고 침묵했다.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뒤룩거린다. 수많은 계산과 모략, 잔대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이내 놈은, 결심한 듯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대, 대답만 잘 해주면. 나는, 살 수 있나?”
“대답 여하에 따라서.”
“…….”
“어차피 대답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 지금 당장.”
차칵. 주머니칼을 빼 들어 놈의 목에 가져갔다.
칼날이 살집을 얕게 파고든다. 핏줄기가 칼날을 따라 한 줄기 떨어졌다.
그 섬뜩한 따끔함이 교주의 정신을 깨운 듯하다.
“으아아아! 아, 알았어! 하, 한다! 대답하면 되잖아!!”
“잘 생각했어.”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머니칼을 접어 다시 후드 집업의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후, 후아.”
날붙이가 시야에 없어지자 교주는 눈에 띄게 안도했고. 나는 한숨을 내쉬는 교주의 턱주가리를 붙잡았다.
휘릭! 놈의 목을 강제로 돌려, 나와 시선을 똑바로 맞췄다.
“이름.”
“어… 뭐, 뭐라고?”
쫘아악!!
교주의 아가리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는 순간, 득달같이 내 손이 뺨을 후려갈겼다.
찰진 싸대기 소리가 골방을 울리는 한편.
“어헉, 헉……!”
교주는 갑작스러운 격통에 숨이 막히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놈의 입술께가 성대하게 터져, 턱주가리가 피범벅이 됐다. 나는 그것을 손끝으로 슬쩍 닦아줬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이름.”
“…기, 김덕문! 김덕문이다! 아니, 입니다!!”
“나이.”
“오, 올해 53. 쉰셋입니다.”
“던전 경험.”
“어, 없습니다. 미, 미, 민간인입니다. 정말입니다!”
“던전교 교주 맞냐.”
“예. 마, 맞습니다. 제, 제가, 지금 던전교의 교주를 맡고 있습니다. 예!”
가벼운 호구 조사부터 시작했다.
기본적인 정보도 모을 겸, 일종의 거짓말 테스트였다.
‘현자의 눈.’
지이잉.
시야가 새파랗게 물들었고, 곧 눈앞의 돼지 새끼 정보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인물 정보]
[명칭: 김덕문]
[별칭: TVS홀딩스 상무이사, 던전교 교주]
[체력: 2 마력: 2 신체 상태: 정상]
[힘: 1 민첩: 1 지능: 1 포텐셜: 4]
[최종 전투력: 2]
‘일단 지금까진 거짓말을 안 했다.’
이름도 직접 말한 것과 일치.
스테이터스 또한, 포텐셜을 제외한 모든 파라미터가 2를 넘지 않는다.
‘전형적인 일반인의 수치야.’
던전 시스템 중에 ‘최초 클리어 보상’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 최초로 던전에 발을 들이고 무사히 빠져나오면. 그 사람에게 딱 한 번, 5포인트의 자유 스테이터스 포인트가 주어진다.
그래서 던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최소 하나의 수치가 2를 초과해야 정상이다.
‘던전교 교주인 것도 진짜였고.’
사실 지금까지 긴가민가한 상태로 추궁하고 있었다.
이 새끼는 전생과 똑같은 놈도 아니었고. 상태창은 방금 처음으로 열어봤다.
그래서 던전교 교주인 걸 100% 확신한 건, 바로 지금이다.
‘급하게 보쌈하느라 확인도 못 하고 있었네.’
완벽한 확신도 없으면서 납치 감금은 왜 해왔느냐?
비정상적으로 몰려있는 경비 병력과 이 시국에 밤새가며 수많은 여인네와 질펀하게 놀아날 수 있다는 점. 추측할 건덕지는 많았다.
사실상 100%만 아니었지, 99%는 확신했긴 하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가 본론인데.”
꾸드득. 놈의 턱을 쥔 손에 한껏 힘을 줬다.
히이익! 교주 김덕문이 비명처럼 숨을 내뱉는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긴장과 공포로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용설그룹의 우장선, 알고 있냐.”
퍼뜩.
사시나무처럼 떨던 김덕문이 순식간에 경기를 멎었다.
“바, 바, 방금. 누, 누구라고……?”
“우장선. 용설그룹 우장선 말이다.”
“……!!”
김덕문은 입을 콱 다물었고, 그대로 안절부절 시선을 피했다.
놈이 어쩔 줄을 몰라한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아찔한 표정으로 얼빠진 탄성을 흘린다.
“…어, 그… 저, 저.”
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아주 오랜만에, 온몸에 더운 피가 맹렬히 치솟는다.
“…드디어.”
그래, 바로 이 반응이다.
이 반응을 원하고 놈을 추궁했던 거다.
‘드디어……!’
지금까지 수많은 전생을 반복했고, 우장선을 수십 번은 죽여봤다.
그럴 때마다 2대 던전교 교주들은 수없이 바뀌어 왔고. 역시나 나는 지금처럼 항상 고문하고, 추궁해 봤다.
‘이거야, 바로 이 반응.’
그리고 드디어 나왔다.
네가 그 새낄 어떻게 아냐. 그렇게 물어보는 듯한, 저 경악의 시선.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놈, 드디어 찾아냈다.
‘이놈은 우장선을 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역병처럼 퍼지는 던전교.
그 비정상적인 속도의 세력 확장과, 터무니없을 정도의 끈질김.
그로 인한 한 가지, 몇 번의 전생에 걸쳐 뿌리 깊게 내려 박힌 의문.
‘던전교는,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던전교의 탄생, 그리고 끊임없고 끈질긴 재생.
이게 과연 정말, 시대의 요구만으로 가능한 산물인가?
‘의도가 있어, 분명히.’
나는 그렇게 믿었다. 믿고 싶었다.
던전교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 던전교를 지원하는 모종의 작전 세력, 지원 세력이 분명히 있다.
정확한 의도는 몰라도,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마리가… 드디어 잡혔다.’
이건 내 가설을 뒷받침하는 실마리였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던전교 교주 우장선. 놈이 내 손에 죽어버려서, 이번 생에 그 대타로서 새롭게 세워진 2대 교주. 김덕문.
‘이 둘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다.’
이름을 듣자마자 당황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적어도 둘은 면식이 있는 게 확실하다. 함부로 말 못 할 비밀스러운 커넥션이 있다.
‘지원 세력을 알아낼 기회다……!’
자연스럽게 내 말투에는 깊은 흥미가 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초조함과 기대에 쫓겨, 어조가 한층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넌 알고 있구나. 던전교 초대 교주일 예정이었던 우장선을.”
“어, 아니. 그, 그, 그게……!”
“우장선과의 정확한 관계, 던전교 창설과 관련된 모든 사항. 그 외 기타 자잘한 것까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건 전부 불어라.”
“서, 선생님. 그, 그에 대해선, 제가 말씀드릴 만한 게……!”
쫘악, 쫘아악!!
곧장 싸대기 2연타가 작렬했다.
“크학! 켈룩, 커헉!!”
놈의 눈이 허옇게 뒤집혔다가, 5초 뒤에 다시 깜빡인다.
연신 토해내는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온다.
“서, 선생님. 사, 살려… 제발, 살려주십……!”
“우장선과의 정확한 관계, 던전교 창설과 관련된 모든 사항. 그 외 기타 자잘한 것.”
“…….”
“우장선과의 정확한 관계, 던전교 창설과 관련된 모든 사항. 그 외 기타 자잘한 것.”
나는 고장 난 기계처럼 그 말만 계속 되풀이했다.
김덕문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흐르기 시작한다. 놈이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 이내 꺼이꺼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흐, 으흐으… 서, 선생님. 모, 모릅니다. 정말로, 정말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그래, 알겠다.”
차킹!
다시 주머니에서 칼을 뽑아 들었고, 그대로 놈의 목에 밀어 넣었다.
“그냥 말하지 마.”
쇄애액! 망설임 없는 손속.
목을 따다 못해 경추를 분쇄해 버릴 속도다.
“죽어.”
말 안 하면, 정말로 찔러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진짜 죽여도 안 말해? 그런 놈은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안 말할 놈인 거니까, 추궁하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
내 의도를 김덕문도 느낀 듯하다.
“흐아아아악! 마, 말합니다! 말하겠습니다! 그만!!”
김덕문은 세상 떠나가라 절규했다.
즉시 칼을 멈췄다.
“옳지.”
목의 살점을 살짝 파고든 칼끝.
1초… 아니, 0.1초만 늦었어도 김덕문은 죽었다.
“흐어, 흐어어… 그흐윽……!”
김덕문도 그 서늘한 죽음을 분명히 느꼈다.
줄줄줄. 놈의 사타구니가 누렇게 젖어간다. 의자를 적시고, 바닥에 웅덩이를 만든다.
놈의 추한 몰골에 눈살을 찌푸리는 한편.
“이제 말해봐라.”
콰득. 김덕문의 반쯤 벗겨진 머리채를 틀어쥐었다.
질질 짜는 놈의 면상을 한껏 쳐들었다.
“던전교는, 네놈들은… 대체 정체가 뭐야.”
모든 것을 함축한 포괄적인 질문을 던졌다.
면상을 한껏 들이대, 김덕문과 강제로 시선을 맞췄다.
“저, 저, 저희는……!”
김덕문은 체념했는지, 정말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불기 시작했다.
우장선과의 정확한 관계, 던전교 창설과 관련된 모든 사항. 그 외 기타 자잘한 것.
그야말로 내가 원했던 모든 것들이다.
“그래서. 저, 저를 비롯한 던전교 간부들은 결국…….”
무수한 정보들이, 놈의 오열하는 목소리와 함께 뇌에 쑤셔 박힌다.
나는 한동안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손가락 하나, 입술 한 번 뻥긋을 못했다.
그 무거운 침묵이 두려워진 것인가. 김덕문이 퍼뜩, 말을 마무리했다.
“이, 이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선생님…….”
“…….”
“서, 선생님?”
푸확!
놈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골방의 천장까지 치솟았다.
털퍽. 잘린 머리가 바닥을 나뒹군다. 나는 휘둘렀던 오른손을 멍하니 쳐다봤다.
“하, 후우.”
멈췄던 호흡을 재개했다.
다시 전방을 주시한다. 목이 잘려 축 늘어진 김덕문의 몸뚱이가 보였다.
흠칫, 숨을 삼켰다.
“…이런.”
낭패감 어린 탄성을 흘렸다.
아니, 어차피 다 듣고 나면 죽일 생각이긴 했다. 누구한테 조종당하거나 한 건 아니다.
분명 내 의지로 죽인 건 맞긴 한데.
‘조금 감정적이었다.’
진실을 듣고 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래서 더 물어볼 여지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충동적으로 죽여버렸다.
이 점은 내 실수가 틀림없다.
“…쯧.”
망연히 시체만 쳐다보다, 이내 혀를 찼다.
털컹! 화풀이하듯이 의자를 발로 차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리고 주머니칼을 대충 털어내 상의 안주머니로 회수했다.
골방의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
예배당 회랑은 여전히 시체와 피투성이다.
경비병들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신도와 열심 신도들까지 죄다 죽어있었다.
시산혈해, 그 자체다.
“피 냄새 오지네.”
당연히 저건 전부 내가 죽인 것들이다.
교주를 추궁하기 전, 이미 회랑 전역의 ‘암살’작업은 깔끔하게 끝내 놨었다.
[해당 건물 내에 생존한 개체: 2개체]
두 개체 중 하나는 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브.
이 폐교회에 살아있는 던전교도는 더 이상, 한 명도 없다.
“…이브, 나 왔다.”
나는 곧 이브가 숨어있을 예배당 구석까지 다가갔다.
이브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아하. 나는 뒤늦게 깨닫고 첨언했다.
“숨바꼭질 끝났다. 이제 말해도 돼.”
“으응? 끝났어? 아빠! 나 이겼어? 응?”
치지직!
이브가 광학미채 슈트를 냉큼 벗어재끼며 물어왔다. 이제 보니 불만만 안 말했지, 쫄쫄이 슈트가 꽤 많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천진난만한 이브를 향해 힘 빠진 미소를 흘렸다.
“그래.”
분명 나도 얻은 것이 있었다.
얻었다 뿐일까, 엄청나다면 엄청난 성과였다.
무수한 전생 동안 한 가닥도 잡지 못한 던전교의 뒷배를, 드디어 낱낱이 밝혀냈으니까.
“네가… 이겼다. 이브.”
그런데 내가 이긴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 오늘 승리한 건, 끝까지 안 들키고 잘 숨어준 이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