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9)>
그날은 귀가(?)한 뒤, 수아와 이세라의 상태만 점검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날, 꼭두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 나는 오늘 예정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외출 준비를 했다.
“흠냐, 아빠아.”
잠이 덜 깬 이브가 귀신같이 내 인기척을 눈치챘다.
그녀가 소파에서 강시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눈을 비비며 물어왔다.
“어디 가아? 나갈 거야아?”
말꼬리를 늘이며 칭얼대는 이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정수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줬다.
“잠깐 일이 있어서, 다녀온다.”
이브는 한동안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리며 내 손길을 음미했다.
그러다 덥석,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껏 엉기기 시작했다.
“으응, 아빠아. 같이 가!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애?”
“네가? 뭐 하러.”
“그냥! 아빠 가는 곳이면, 나도 가고 싶어. 응? 안 돼? 응?”
이브가 줄기차게 부탁해왔다.
새빨간 눈망울을 연신 끔벅거린다. 간절함이 담긴 시선이 따갑도록 쏟아졌다.
“흐음.”
나는 침음을 낮게 흘렸다.
몇 번이나 생각하지만, 정말이지 요망한 눈빛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지금 갈등하고 있는 것부터가 그 증거다.
“…안 될 건 딱히 없다.”
“와아! 그럼 같이 가자!”
“하지만 가봤자 재미도 없을 거야.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는 걸 추천한다.”
“으으응! 아냐! 나, 아빠랑 같이만 있어도 재밌어! 세계 최고로 재밌어! 응!”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딱히 거절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결국, 나는 이브와 목적지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이브는 내가 어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마냥 좋다고 뛸 듯이 기뻐했다.
“와아! 아빠랑 같이 간다! 와하아!”
나랑 외출하는 게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이세계 몬스터 소녀의 심리는 우주처럼 심원하구나.
“좋다, 그럼.”
나는 나가기 직전, 오늘 치 확인 작업부터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조용히 글라스를 닦던 이세라. 그녀에게 대뜸 손을 뻗었다.
그런데 나의 움직임을 미리 읽은 것인가.
“…하, 하지 마세요?”
이미 이세라는 만전의 경계 태세.
카운터의 쟁반을 번쩍 들어 나를 내려치기 직전이었다.
“저, 경고했어요? 시, 시, 신체검사, 안 받아요! 이제 좀 포기하세욧!”
그래서 나는 시무룩하게 손을 내리고 포기했을까?
그럴 리가,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지금 이세라의 목숨에, 이세라 본인보다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순순히 배를 까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으, 으윽……!”
나는 이세라의 완고한 저항을 물리치고, 기어이 신체검사를 자행했다.
이세라가 온몸을 배배 꼬며 하도 징징대서 좀 오래 걸렸다.
“아, 꺄읏! 거, 거기… 너, 너무 세게 하시면……!”
그리고 신체검사가 너무 오래 진행된 탓인가, 아니면 이세라가 내뱉는 야릇한 신음을 들은 것인가.
삐거덕, 휴게실 문이 열리며 졸린 눈의 수아가 나왔다.
“…….”
그녀가 신체검사의 현장을 빤히 주시한다.
이세라는 전에 없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수, 수아 씨. 이, 이건……!”
이세라는 황급히 나를 밀쳐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며, 화장실로 도망치듯 달려나갔다.
주점 로비에는 나와 수아,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브만이 남았다.
“…오빠.”
죽은 듯이 무표정을 유지하던 수아가, 어느 순간 나를 불렀다.
목소리가 얼음장 같다. 화가 난 기색이다. 자다 깨서 저기압인 건가, 그 외엔 화날 만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거 대답 잘 해야겠는데, 그런 직감이 들었다.
“어, 왜.”
“세라 언니랑 많이 친하신가 봐요?”
“…글쎄, 딱히.”
“친하지도 않은데, 아침부터 또 병원놀이 하고 있었어요?”
“…….”
“다행이네요? 경찰서가 죄다 망해서. 성희롱으로 신고할 수가 없네요, 참나.”
말문이 막힌다.
저번에 이세라가 수아한테 어떤 식으로 얼버무렸는지, 나는 모른다. 혹시나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할까 봐 이실직고도 못 하겠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난감해하던 그 순간.
“…요즘 저한테, 너무 소홀하지 않아요? 오빠.”
수아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내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내가 의문스럽게 빤히 쳐다보자, 수아가 화들짝 변명하듯이 말을 이었다.
“그, 그게! 요즘 제대로 대화해 본 것도 거의 없는 것 같고! 그래서, 그래서요!”
“음… 하긴.”
“게, 게이트가 붕괴하면… 오빠는, 항상 훌쩍 나가버리는데. 돌아오면 맨날 세라 언니랑만 대화하고! 아니면, 피곤하다고 자버리잖아요……!”
“…….”
“알아요. 오빠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세라 언니가 대충 설명해줘서 아는데요. 근데… 그래도. 저도, 서운할 수는 있잖아요?”
그건 분명 전부 사실이었다.
그렇구나. 수아가 지금 이렇게 투정 부리는 건, 단순한 질투심 같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아차 싶어서 이마를 짚었다.
‘불안한 거구나.’
무엇이?
그건 나도 모른다.
‘아마 수아 본인도 모르겠지.’
내가 어느 날 돌연 죽어버릴까 봐, 아니면 본인이 죽을까 봐.
이세라한테 나를 뺏길까 봐, 이대로 세상이 정말로 망해버릴까 봐.
‘그리고 이 단란과 평화가, 오늘로 갑자기 마지막일까 봐.’
이들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전부 다일 수도 있다.
“…미안하다, 수아야.”
결국 나는 수아에게 고개를 꺾어 사과했다.
세상이 변함없이 요지경인 이상, 수아의 내면은 항상 수많은 불안과 공포에 맞서는 상태다.
그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세라가 살아있다고 너무 안심하고 있었어.’
이세라는 만능 정신과 처방전이 아니다.
결국, 수아가 이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건. 좋든 싫든 이세라가 아니라, 바로 나다.
“나는 항상 네가 최우선이야, 그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면상을 최대한 펴봤다.
어떻게든 믿음직한 미소를 띠우고 싶었는데,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급똥이 마려워진 애매모호한 표정이 나왔다.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좀 힘들 거 같고, 내일이나 모레… 밀렸던 얘기들이나 하자.”
결국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서 중얼거렸다.
근 수백 개월을 비웃음만 지어봐서 그런가, 푸근한 미소 짓기가 생각보다 빡세다.
“…제, 제가 최우선, 이라니.”
수아는 그 말을 연신 중얼거렸다.
순간 헤벌쭉 풀어지나 싶더니, 이내 다시 쌍심지를 세우며 토라진 목소리를 냈다.
“그, 그럼 왜 자꾸 세라 언니를 더듬거리는데요?!”
“아, 그건…….”
“거 봐요! 말만 번드르르하지, 사실… 세라 언니가 더 신경 쓰이잖아요!”
안 되겠다.
이세라의 신체검사에서 오해가 풀리질 않으니, 얘기가 진척이 없다.
‘이렇게 되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보인다. 맞불 작전으로 간다.
나는 목소리를 깔고 수아를 불렀다.
“수아야.”
“아, 네?”
수아는 급변한 내 분위기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나는 한껏 진지하게,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슬쩍 뻗었다.
“너도 한 번 해보자, 신체검사.”
직후 수아의 솜방망이 주먹질이 무수히 날아왔다.
이제 보니 우주처럼 심원한 건, 딱히 이세계 소녀의 심리뿐만이 아니었다.
인생 어렵다.
* * *
“헤에. 아빠아, 여기 어디야?”
“교회라는 곳이다.”
“흐응―? 교오회애?”
“신을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야.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큰 수준의 교회지.”
정확히는 교회였지.
과거형인 이유는, 이미 무너지고 박살나서 건물이 반파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선 교회라는 흔적조차 거의 사라진 상태다.
“으음… 아빠아. 신이 뭐야?”
이브가 반파된 건물을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이브의 붉은 눈동자에는 건물의 아치 끝자락, 부러진 십자가가 들어차 있었다.
나는 신랄하게 조소를 머금었다.
“나도 몰라.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기는 여의도 모 교회의 주차장 터.
4차 붕괴 때 대폭발의 여파로 초토화된, 거대한 종교건물 부근이다.
“들어가자, 이브.”
나는 이브에게 짧게 통보하고 먼저 폐교회로 들어갔다.
이브는 퍼뜩 건물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내 뒤를 쫓아왔다.
“아빠아! 같이 가!”
이브가 내 옆에 착 달라붙어서 소매를 꽉 쥐었다.
정문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나는 방해되는 잔해를 치우고, 음울한 어둠에 잠겨있는 예배당 쪽으로 걸어갔다.
모험하는 기분이라도 났는지, 이브는 얼굴이 꽤 신나 보인다.
“헤헤, 아빠! 여기 왜 들어가? 뭐 있는데? 응?”
“던전교의 중추 놈들이 숨어있다.”
“우응. 던전교? 그게 뭔데?”
“만들어진 신의 노예들.”
“신의… 노예? 아빠아, 노예가 뭐…….”
“아아, 모른다. 나도 잘 몰라.”
지치지 않는 호기심에 결국 입구컷을 시전했다.
삐죽. 이브가 입을 댓 발 내밀었다. 그녀는 바닥의 돌가루를 툭툭 차며 툴툴거렸다.
“치. 자기도 모르는 말을 어떻게 해! 거짓말쟁이야, 아빠는!”
“…하,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만들어진 신의 노예는 무슨, 이건 수아가 좋아하던 니체나 할법한 말이다.
이런 오글거리는 말은 니체 같은 유명한 새끼가 해야 명언이 된다. 지나가던 한정용 뱉으면?
‘개똥철학 중2병 환자지.’
그야말로 뭔 소린지도 잘 모르면서 나온 말.
이브의 말은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그냥 나쁜 놈들이란 뜻이다.”
그래, 이런 방식은 잘못됐다. 나답지가 않다고 할까.
내 방식대로 다시 설명해주기로 했다.
“아주아주, 못돼 처먹은 놈들. 그 나쁜 놈의 색기들 혼내주러 왔다.”
“으응, 그렇구나! 여기는 나쁜 놈들 소굴이었구나!”
“그래.”
이브도 그제야 후련해진 기색이다.
서로 문답에 만족했다. 그냥 나쁜 놈들로 퉁치면 됐지 싶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여기는 이미 던전교의 터전이 된 상태라는 거다.
‘이 시기쯤, 항상 여기에 교주가 기거했지.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어.’
하여 내 걸음에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시야가 좀처럼 확보되지 않는 어둠 속이었지만, 나이트비전 스킬은 일부러 켜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감지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 시기의 던전교는 레드스컬을 제외하면 고위 헌터가 가장 많이 소속된 조직. 함부로 스킬을 쓰면 내 존재를 들킬 수가 있다.
놈들의 정확한 인원 구성은 전생 때마다 달라진다. 이번 생엔 재수 없게, 내 스킬 발동을 감지할 만한 S급 헌터가 고용돼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그건 좀 곤란하지.’
나는 오늘, 이곳의 던전교도들을 몰살하러 왔다.
여기 말고도 던전교 잔당이 아직 많긴 하겠지만. 어쨌든 최소한 여기에 있는 놈들만큼은, 단 한 놈도 남기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서 정문으로 대놓고 쳐들어갔던 레드스컬 때와는… 작전의 결이 약간 다르다.
‘대충 학살할 거였으면, 수면 마법으로 재우고 칼부림하면 그만인데.’
하지만 이놈들은 무척 교활하다.
그 정도 대비는 무조건 되어 있을 거다.
‘그랬다가 경보라도 울리면 몰살은 끝장이야.’
얘네는 위기를 맞닥뜨리면 망설임 없이 도망간다.
농담 안 하고, 간부진들의 도주력과 생존력은 레드스컬보다 한 수 위다. 강력한 사마귀보단 끈질긴 바퀴벌레가 박멸하기 힘든 법.
‘확실하게 몰살하려면 우선은 암살부터.’
놈들의 헤드, 교단의 교주와 고위 간부.
이 예배당 최심부에 자리한 간부실부터 잠입해 싹 죽여버릴 것이다.
먼저 갈비뼈를 파고들어 심장을 도려낸다.
그리고 힘아리를 잃은 팔다리, 그리고 머리까지. 사지를 천천히 잘라낼 예정이다.
“이브, 슬슬 이거 입어줘야겠다.”
“응? 아. 이거?”
그쯤에서 이브에게 광학미채 슈트를 입히려 했다.
전에 입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브는 흔쾌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자, 만세.”
“만세에!”
“옳지, 장하다.”
“히히. 아빠, 나 장해?”
“그래, 장해.”
“으히히히!”
이브는 내 칭찬 한 방에 헤벌쭉하게 표정이 녹아 버렸다.
치지징! 광학미채 슈트를 발동시켰다. 이브의 해맑은 미소가 표백제로 지운 것처럼 홀연히 흩어져 간다.
덥석. 나는 보이지 않게 된 이브의 머리를 쓸어줬다.
“가자, 이브.”
“응! 가자 아빠! 나쁜 놈들 혼쭐을 내주자!”
“쉿. 지금부턴 숨바꼭질 시작이다.”
“응? 수, 숨바꼭질?”
“큰 소리는 내면 안 돼. 술래한테 들킬 거야. 그러면 우리가 지는 거야.”
“앗… 응. 미안해 아빠. 쉿!”
헙, 하고 입을 틀어막는 소리가 난다.
안 보여도 무슨 꼴일지 예상이 되는군. 슬쩍 웃으며 예배당 깊은 곳까지 들어가기 시작했다.
“…….”
사박사박.
눌러 죽인 내 발소리가, 무너진 예배당의 어둠을 조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