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5)>
그 뒤로 한동안 시가전이 이어졌다.
폭발과 굉음이 끊이지 않는, 무식할 정도로 화려한 시가전이었다.
―으하하학! 죽어! 죽어죽어! 죽어어어!!
콰앙! 콰콰쾅!
놈이 연신 후퇴하며 폭탄을 던지고 설치하고, 기폭 시킨다.
일대가 어마어마한 폭발의 여파에 말려든다.
―아하하하하핫!!
놈의 광소가 휩쓸고 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건물이 씻은 듯이 증발하며 잔해를 토해냈고, 사람들은 비명 한 번 못 지른 채 살점 쪼가리가 되어 날아다닌다.
‘지금.’
그 순간, 투학!
사냥꾼의 빈틈을 향해 내 사복검이 쇄도한다.
―오오, 이런!
폭발 사냥꾼은 짐짓 깜짝 놀란 시늉을 한다.
물론 시늉뿐이다. 놈은 기다렸다는 듯이 벨트를 뒤져, 둥근 무언가를 바닥에 힘껏 던졌다.
“……!”
나는 본능적으로 제동을 걸었고, 내게 날아온 구체를 피해 거리를 벌렸다.
퍼퍼펑! 구체가 폭발한다. 자욱한 연기가 사위를 순식간에 메웠다.
‘연막탄.’
하지만 소용없다.
키잉! 현자의 눈으로 일대의 생체 마력을 스캔한다. 일렁이는 시퍼런 신형이 내게서 빠르게 멀어진다.
저기다. 나는 다시 한번, 놈을 향해 사복검을 길게 휘둘렀다.
―그건 너무 뻔하지. 아니 그렇소?
그리고 연막이 천천히 사그라지는 순간, 폭발 사냥꾼의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직! 생체 마력의 형체를 사복검이 꿰뚫었다.
“아… 윽… 끄, 하악……!”
다른 사람, 민간인이었다.
죽어가는 민간인을 눈에 담은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함정이다.’
어느새 나는 상가의 비좁은 골목길로 유도되었다.
그리고 사냥꾼은, 한 상가의 옥상에서 유유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폭발은 예술이다.
나는 사냥꾼의 목소리를 멍하니 들었다.
히죽, 놈의 입꼬리가 한껏 뒤틀려 올라간다.
―예술은, 정교해야 하는 법이지.
놈이 꾸욱, 손에 든 스위치를 눌렀다.
삐비비빅―! 일대 상가 전체에서 새빨간 빛이 점멸한다.
빠르게 훑어보니, 주변 상가 안에 반합(飯盒)처럼 생긴 폭발물이 쫙 깔려 있었다.
“크레모어……!”
당했다. 이건 못 피한다.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리고 측방을 향해 왼팔의 바이탈 버클러를 내밀었다.
[스킬 발동: 종언의 함성]
콰콰쾅!
수십 대의 크레모어가 일제히 내게 마력 폭풍을 쏟아냈다.
엄청난 열기. 가공할 압력이 사방에서 갑옷을 두들긴다. 압력은 견딜 만했지만, 열기 쪽은 내성 스킬을 사용해야 했다.
“…후우.”
크레모어로 산산이 조각 난 상가. 나는 자욱한 폭연을 꿰뚫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우선 빠르게 몸 상태를 체크해 봤다.
‘아직은 뭐, 괜찮군.’
혈천갑은 멀쩡한 편이었다.
크레모어 파편에 긁혀 약간 흠집이 나고, 폭발의 압력 때문에 얕게 우그러진 부분이 있긴 했다만. 일단 나한테까지 온 데미지는 거의 없다.
“개깝치네 이 새끼, 짜증나게.”
나는 폭발 사냥꾼의 생체 마력을 곧장 추격했고, 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덜미를 잡혔다.
사냥꾼은 뒤쫓아 온 나를 보더니, 허.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하, 이거 참. 아직 살아있다고? 그만한 포화를 직격당했는데?
폭발 사냥꾼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놈은 잔인하게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그래. 넌 괴물이군?
“누가 누구한테.”
―이거, 나로선 너를 도저히 못 이기겠어.
사냥꾼답게 빠른 상황판단.
깔끔하게 힘의 차이를 승복한다.
―도망쳐야겠다. 최대한 빨리.
이내 차칵, 놈이 양손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우르르르. 소매에 숨어있던 폭탄들이 우수수 들려 나왔다.
―자, 선물.
그리고 놈의 진짜 노림수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놈이 허공에 손을 휘젓자, 부우우우! 주변에서 원반 모양 드론이 놈에게 모여들었다.
―이래도 계속 쫓을 수 있겠냐?
육중한 프로펠러음과 함께 결집한 수십 대의 드론.
몸통 아래로 새카만 밧줄이 늘어졌고, 하나 같이 무언가를 매달고 있다.
“으… 아, 아파… 흐윽!”
“살려줘. 제발… 누, 누가, 제발 좀……!”
사람. 드론이 매단 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사람들. 하나 같이 절망에 빠진 얼굴로 울거나, 기절해 축 늘어져 있다.
―이놈들과 나의 신변. 교환하자고?
폭발 사냥꾼이 협상에 들어갔다.
희번덕한 시선이 인질들을 훑어 내려간다. 가까이 있던 여자 하나를 스윽, 손끝으로 건드렸다.
히익! 여자가 자지러지는 신음을 내뱉었다.
“…….”
나는 한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내, 파지지직! 사복검 표면에 세찬 전류가 흘렀다.
[스킬 발동: 인챈트 / 번개의 분노]
“개수작을.”
쉬리리릭!
사복검이 채찍 형태로 늘어나 쇄도한다.
순간적인 기습, 게다가 속공이다. 재빨랐던 폭발 사냥꾼조차 제 때에 반응하지 못했다.
―이런!
퍼버벅!
폭발 사냥꾼이 뒤늦게 피신했지만, 파육음이 그 뒤를 따랐다.
내 공격은 적중했다. 다만 그 대상은… 애초에 폭발 사냥꾼이 아니었다.
―…뭐야?
사냥꾼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사복검의 칼날 채찍은 사냥꾼의 볼을 스쳤고, 놈이 어루만지던 여성 인질의 뱃가죽을 깔끔하게 관통했다.
“아, 으… 끄, 하악……!”
여자가 숨넘어가는 신음을 흘렸다.
복부를 꿰뚫은 사복검을 부릅뜬 눈으로 내려다본다. 지금 이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파지지직! 칼날에 인챈트됐던 번개가, 뒤늦게 여자를 지졌다.
“꺄아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이 쩌렁쩌렁 울렸다.
번쩍번쩍 번갯불로 어지러운 시야, 나는 완전히 벙찐 사냥꾼을 똑바로 노려봤다.
“어떻게 눈치챘지? 그런 표정이군.”
내가 갑자기 인질을 죽여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저게 둔갑한 몬스터라서? 물론 아니다. 저 여자는 명실상부한 일반인, 평범한 인간 여자다.
다만. 애초에 폭발 사냥꾼은, 이 인질들을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해 못 하겠지만, 당해본 적이 있어서 그렇다.”
저 인질들의 뱃속엔 폭탄이 심겨 있다.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양의 어마어마한 작약. 인질 하나만 터져도, 최소 살상반경 300미터에 육박하는 폭탄이 말이다.
“자충수라는 말. 아냐?”
내가 굳이 칼날에 번개를 인챈트해서, 사냥꾼과 가장 가까운 인질을 꿰뚫은 이유.
놈과 가장 가까운 폭탄의 트리거를 건들기 위해서다.
“지금 너 같은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삐이이익!
숯덩이가 된 인질의 몸이 붉게 점멸한다.
이내 그녀의 배가, 팔다리가, 그리고 머리까지. 미친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 으, 으어!!
사냥꾼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쉬이익! 나는 넋 나간 사냥꾼을 뒤로한 채, 하늘로 솟구쳤다.
“일단 하나.”
콰아앙! 콰과과광!!
가장 먼저 터진 여자 인질을 시작으로, 다른 인질들도 연쇄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공기가 전율하고, 지축이 격렬하게 춤춘다.
폭심지가 초토화되는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근 건물들도 가공할 충격파에 갈대처럼 우수수 쓰러져 간다.
“…….”
서초구 서쪽 일대 시가지.
직경 2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현장을 무심하게 내려보길 잠시, 나는 곧장 다음 타깃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다음 사냥꾼은 분명…….’
가면 사냥꾼.
놈은 여기서 북동 방향, 약 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아파트 단지 일대에 자리 잡는다.
‘머뭇거릴 틈은 없다.’
지금도 놈은 사람들을 사냥할 거고 사냥한 인간들을 이용해, 자신의 영역을 더욱 견고하게 방비할 거다.
5킬로미터 주파에는 15초 정도면 충분했다.
“…여기다.”
텔레포트는 쓰지 않았다.
이번 생의 사냥꾼들 거점이, 전생의 기억과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정밀한 수색도 겸하기 위해 직접 날았다.
역시 완전히 똑같은 장소는 아니었다. 전번과 수백 미터 정도 오차가 있었다. 다만…….
‘저놈의 악취미는 변하지를 않네.’
주위를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시체들이 즐비했고, 시신들은 하나같이 얼굴 가죽이 벗겨져 근육이 드러나 있었다.
“…쯧.”
이것이 가면 사냥꾼이 가면 사냥꾼인 이유.
놈은 인간의 얼굴 가죽을 전리품으로 수집한다.
사실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지. 문제인 점은 그게 아니고…….
―그, 어어…….
―으극, 꾸그극……!
뜯어낸 면상을 다른 시신에 기워 붙이는 것으로, 그 개체를 조종하는 스킬을 갖고 있다.
지금 내 주변에 우글우글 모여든 수많은 인간. 아니, 시체 인형들처럼.
―크에에엑!!
―캬아아아악!!
모여든 시체 인형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뿜었다.
모두 뜯겨나간 원래 얼굴 대신, 다른 사람의 면상이 꿰매져 있고 눈두덩은 텅 비어 흉흉한 붉은 안광을 쏟아 낸다.
―크에아아악!!
―키이이이이이!!
어느 순간. 놈들이 내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접근속도가 어마어마하다. 10차 붕괴쯤 오니 인형 하나하나가 S급 헌터에 필적한다.
물론 S급 헌터 100 트럭 있어 봐야, 나한테 기스 하나 못 내긴 한다.
“옳지. 한 놈씩, 줄 서서 와라.”
빠지직, 우드득!
내가 가볍게 사복검을 휘둘렀고, 그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인형들이 갈려 나간다.
―쿠에아아아악!
―끄에에에엑!
주변을 가득 메운 인형들을 차례차례 베어 넘겼다.
그렇게 한 걸음씩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
―그워어어어어!!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포효가 들려온다.
콰아아앙! 내가 서있던 장소로 거대한 주먹이 내리꽂혔다. 직전에 블러드 스트림으로 피해 냈지만, 주먹의 풍압만으로도 상당한 압력이 쏟아졌다.
―그르르르……!
공중에 날아올라 눈높이가 훌쩍 올라간다.
내게 주먹을 갈긴 놈과 겨우 눈높이가 같아졌다.
―그오오오오오!!
그것은 거인이었다.
코스모의 거신병이나 무르무르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거대한 시체 인형.
덩치에 비례해 거대해진 얼굴엔, 사람의 얼굴 가죽 수십 개가 조각보처럼 덕지덕지 기워져 있었다.
―그그그그……!
―고오오오!
게다가 하나가 아니다.
그런 괴기스러운 거대 시체 인형들이 여기저기,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내게로 진군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열 마리에 달하는 거인들이 나를 둘러쌌다.
―…….
거인 중 하나의 어깨에 누군가 올라타 있었다.
창백한 가면을 쓴 말총머리의 사내. 훤히 드러난 근육질 상체엔 붉은 문신이 가득했고, 늑대로 보이는 털옷을 하의에 둘렀다.
‘나왔다.’
놈이 바로 가면 사냥꾼.
이 사태를 만들어 낸 주범이었다.
―…….
사냥꾼은 침묵을 유지한 채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키이잉!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린다. 놈의 손아귀에서 일렁거리는 붉은빛이 수천 가닥의 실처럼 늘어져, 모든 시체 인형들에게 동시에 파고들었다.
―그… 끄르륵……!
―크오오오오오!!
시체 인형들의 안광이 한층 진하게 폭사 되었다.
놈들이 하늘을 향해 포효를 쏟아냈다. 만전 상태의 늑대 무리가 그러하듯이.
―…….
가면 사냥꾼이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말아 쥔다.
스르륵, 시체 인형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쏟아진다.
공격 명령이다.
―퀘아아아아악!
두두두두!
거인 시체들이 좀비 떼처럼 나를 향해 달려든다.
작은놈들은 거인의 육체를 발발거리며 기어올랐고, 어깨쯤에 도달했을 때 펄쩍 뛰어, 내게 공중 강습을 감행해왔다.
―키이이이이!!
놈들의 거슬리는 비명이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사방팔방, 어디로 눈을 돌려도 시체 인형이 가득하다. 거인 놈들이 내게 동시에 주먹을 내뻗는다.
나는 그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라이트닝 헬릭스.”
마침내 타이밍을 맞춰, 스킬을 영창했다.
파지지지직! 양손에 모여든 뇌전 다발을 사방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쿠에에에엑!
―키약! 캬아아악!!
빠직, 파지직!
불꽃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 전기 포충기에 달려드는 하루살이가 떠오른다.
놈들은 끊임없이 내게 달려들었고, 예외 없이 새카맣게 지져져 바닥으로 추락해갔다.
“숨지 마라, 사냥꾼.”
어느 순간, 번개를 머금은 사복검을 득달같이 내뻗었다.
콰르륵! 가면 사냥꾼이 올라탔던 거인의 목에 칼끝이 명중한다.
―끄… 그오오옥……!
거인은 움직임을 멈춘 채 온몸을 잘게 경련했다.
뿌드득! 칼날 채찍을 거칠게 뽑았다. 대량의 핏줄기가 솟구친다.
“다음은…….”
키잉!
늘어졌던 사복검을 다시 장검 형태로 합쳤다.
가면 사냥꾼을 향해 칼끝을 들이밀었다.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