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68화 (68/235)

68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4)>

이브를 옆구리에 단단히 끼우고, 그대로 10분가량을 남서 방향으로 날았다.

도착지는 김포 공항이다.

“아빠아. 여긴 어디야?”

김포 공항의 정문 언저리에 착지한 뒤, 이브가 연신 탄성을 흘리며 내게 물었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해줬다.

“공항이라는 곳이다. 이브.”

“공…항? 공항이 뭐야?”

“비행기라는, 사람을 태우고 날아다니는 탈것들이 모이는 곳.”

이브가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한층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사방을 샅샅이 둘러본다.

“으엥? 날아다녀? 아빠처럼?”

“그래, 나처럼.”

“그럼, 아빠도 비행기야? 나 태우고 날아다니잖아!”

“…맞아, 그런 거로 하자.”

“헤에! 아빠는 비행기구나! 비행기 아빠! 히히.”

어차피 길게 설명해봤자, 이브의 ‘이건 뭐야, 저건 뭐야?’ 무간지옥에 빠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긍정해 버렸다. 난 지금부터 비행기다.

비행비행.

“아빠아! 다른 비행기는 어디 있어?”

이브가 한층 신난 어조로 물어왔다.

“…….”

나는 고개를 슬쩍 좌측으로 돌렸다.

반토막 난 비행기의 선두 부분, 불타고 폭발해 산산이 조각 난 날개와 몸통 부분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수많은 비행기들이 대파(大破)되어, 공항 옆으로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저거야? 저거야, 아빠?”

문득 이브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내 소매를 꾹꾹 잡아당겼다.

나는 비행기 잔해에서 눈을 떼고 그쪽을 쳐다봤다.

“…히힉……!”

“뭐, 뭐야. 저놈은…….”

공항 안쪽.

투명한 출입구 너머로 일련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았는데?”

“헌터? 허, 헌터인가?”

“설마. 우, 우릴 여기서 퇴거시키려고……?!”

얼굴이 온통 땟국에 절었고, 나를 향해 두려움에 찬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노숙자처럼 꾀죄죄한 몰골에, 넝마가 된 옷들을 걸치고 있다.

“저게 비행기구나, 그치? 아빠! 응?”

이런, 이브의 상식관이 곱창 나버렸다.

내가 나 자신을 비행기로 소개해 버린 게 화근이었다.

옆에 거대한 쇳덩어리들이 박살 난 비행기일 거라곤 상상도 못하고 있다. 나처럼 사람 같은 뭔가가 비행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대로 말해줘야 하나, 이거.’

당연히 저게 비행기일 리는 없고, 부랑자들이다.

8차 붕괴 때의 지하철역과 같은 맥락이지. 연일 펑펑 터지는 사람 간 몬스터 간의 전쟁을 피해 모여든, 힘없는 난민들이다.

“맞아, 저게 비행기들이다.”

“우와! 신기해!”

나는 결국 진실을 은폐하기로 했다.

거짓말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는 악순환.

어쩔 수 없다. 이제 와서 처음부터 설명하긴 너무 귀찮아.

“헤에! 아빠아! 비행기 집, 대따 커!”

이브가 공항 건물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가 정문 방향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김… 김포, 국제… 공항?”

정문 위의 거대한 문자열을 읽은 듯했다.

나도 모르게 옅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

얘는 뭔데 생후 1개월 차가 벌써 한글을 읽냐.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지 않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외계인이니까’라는 치트키가 곧 모든 것을 납득하게 해줬다.

“어… 키, 킴포… 이… 인터넷? 인터, 인터네셔널, 에아뽀트~”

옆에 적힌 영어도 마침내 읽어낸다.

이브가 퍼뜩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대 어린 시선에 내게 쏟아졌다.

“아빠, 맞아? 나 잘 읽었어?”

“그래, 둘 다 정답이다. 천재구나, 이브.”

“으히히, 그러엄! 난 천재야, 천재! 으햐아!”

내 칭찬에 팔다리를 배배 꼬며 기뻐하는 이브.

아무렴. 우리 딸 이브는 세기에 다시없을 영재가 분명했다.

외계인이지만.

파지지직―!

실없는 짓거리로 시간을 죽이자니, 마침내 김포 공항 상공의 하늘이 굉음과 함께 찢어졌다.

웅장한 마력 파동에 이브가 시선을 들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왔다.”

거대하고 시커먼 균열 속.

10차 게이트 붕괴의 주역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들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본 나는…….

“X발.”

참지 못하고 욕설을 발사했다.

내가 그러든 말든. 쉬쉬쉭! 게이트 균열을 빠져나온 몬스터들이, 일제히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총 다섯 개체, 모두 인간형 몬스터들이다.

―하아아앗!!

―아하하하하핫!!

놈들의 유쾌한 폭소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허공에 다섯 개의 궤적이 꼬리를 늘여간다.

모두 속도가 유성처럼 빠르다. 혈천갑을 사용해야 간신히 따라갈 수 있을 정도.

“하필이면 저놈들이냐, 하필이면.”

억울하고 치사한 나머지 씨근거렸다.

전부터 누누이 말하지만, 이번 회차는 유독 붕괴하는 게이트 운빨이 더럽게도 없었다.

‘10차 붕괴의 유일한 장점이 상쇄돼 버렸잖아.’

이 시기쯤 김포 공항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박살 난 비행기만 즐비한 것만 봐도 알겠지만, 공항은 진작에 계엄령과 함께 폐쇄됐으니까.

‘모여든 부랑자들을 다 합쳐봐야 수천 명.’

그러니까 붕괴한 게이트를 빠르게만 닫으면, 그 수천 명의 희생만으로 10차 붕괴가 종식될 수도 있었다.

“이젠 그것도 옛말이구만.”

하필이면 붕괴한 게 저거… 제33던전. <사냥꾼 도시>다.

여기서 모든 게 어그러졌다. 나는 연신 혀를 차며 혼자 씨부렁거렸다.

“아빠아.”

꾹꾹.

옆에서 이브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이브의 순진무구 깜찍발랄한 얼굴을 보자, 거짓말처럼 억울함이 좀 가라앉는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냐, 이브.”

“방금 튀어나온 그 사람들, 뭐야?”

뭐냐고?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하지.

제33던전의 던전 마스터들, 통칭 인간 사냥꾼 5인조. 이게 놈들의 정확한 정체이긴 한데.

‘이걸 그대로 말해주면 되나?’

아니, 그건 아니다.

보나마나 ‘던전 마스터는 뭐야?’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질문이 또 꼬리를 물 거다.

안 그래도 일이 바빠지게 생겼는데 스무고개 할 시간 없다.

이내 나는 가장 적합한 설명을 찾아냈다.

“…나쁜 사람들이다. 아주아주 나쁜 사람들.”

놈들은 나쁜 새끼들이다. 보이면 즉시 쳐 죽여야 할 정도로.

지구인 입장에선 근본부터 못돼 처먹은 새끼들이지.

“그러니까, 이브.”

굳이 뭘 더 알아야 하냐.

알 필요 없다. 나도 이브도, 그것만 알면 된다.

“힘을 빌려줘, 이제 나쁜 놈들 혼내주러 갈 거다.”

나는 이브를 향해 슬쩍 손을 뻗었다.

이브가 내 손을 힘껏 맞잡는다. 그리고 쌍심지를 세우며 콧김을 뿜었다.

“응! 나쁜 놈들은 혼내줘야지! 얼마든지 써, 아빠!”

아주 모범적인 대답이다. 이브는 외국어 영재인데다 인성 함양도 훌륭했다.

애비가 누군지, 아주 가정 교육이 잘 돼 있는 새 나라의 어린이다.

…외계인이지만.

“읏차.”

“꺄우.”

이브를 단박에 들어 올려 안아 들었다.

이브가 앙증맞은 탄성과 함께 내 품으로 안착했다.

나는 후드 집업의 지퍼를 풀고, 와이셔츠 단추를 빠르게 끌러 내렸다.

“앙.”

콰드득!

이브의 날카롭게 벼려진 이빨이 가슴팍을 파고든다.

던전이 붕괴하면 몬스터가 역류한다.

그리고 지구에 넘어온 몬스터들은 가장 먼저 자신만의 활동 영역, 테리토리(Territory)를 구성하는 작업을 거친다.

지구의 환경은 그들에게 낯설고 변수가 많다.

그러니까 자기들에게 익숙한 거점……. 제대로 활개 칠 수 있는 영역부터 제작하는 것이다.

‘까마귀들의 검은 늪. 에티의 장난감 성… 아스트라에아의 빙결 지대도 그렇고.’

대부분은 그게 국룰인데. 물론 예외도 있다.

첫 붕괴마다 나오는 드래곤 부대와 묘지기 광대, 코스모의 거신병과 기타 등등… 생각보다 예외 사항이 많다.

얘네는 딱히 영역 구성 과정 없이, 나오자마자 깽판을 친다.

‘그리고 이번 던전은, 둘 중 무엇도 아니지.’

제33던전 <사냥꾼 도시>.

비선형 던전이다. 잡몹은 없고 던전 마스터 5명만 존재한다.

그리고 얘네들은 다섯 명의 던전 마스터가, 각자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5개의 독자적인 테리토리를 구성한다.

전자도 후자도 아닌 독특한 구조다.

“일일이 다 찾으러 다녀야 하니, 이거…….”

혈천갑의 블러드 스트림으로 비행하는 와중, 나는 던전 마스터 다섯 놈의 면상을 하나씩 곱씹어 봤다.

중노가다를 벌일 생각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폭발 사냥꾼과 갈고리 사냥꾼, 가면 사냥꾼과 혈액 사냥꾼, 그림자 사냥꾼… 맞던가?”

‘사냥꾼 도시’답게, 던전 마스터 5인방은 모두 사냥꾼을 자처한다.

그리고 앞에 붙은 수식어가 놈들이 사용하는 무기, 혹은 전투방식을 암시한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이 있다면.

‘최소한 영역 위치는 고정이었지.’

무려 1천 번이다.

2차 붕괴부터 14차 붕괴까지, 제1던전부터 99던전까지. 이 던전들을 모든 타이밍에 한 번씩은 경험해봤다.

그러니 10차 붕괴에서 다섯 놈이 각각 어디에 진을 치고 있는지, 그런 기본적인 사항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중요한 건…….’

순서.

놈들을 쳐 죽일 순서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 역시 가장 효율적인 루트가 이미 구비된 상태다.

‘일단 정석대로 간다.’

최우선 고려 사항은 놈들의 인간 사냥 속도. 잠깐만 내버려 둬도 천문학적인 피해를 내는 놈을 우선적으로 척살해야 한다.

다섯 사냥꾼 중 그 조건에 제일 부합하는 건.

“…폭발 사냥꾼.”

각종 폭발물과 함정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사냥꾼.

이놈이 가장 먼저다.

―흐하! 하하하핫!

그렇게 내가 강서구의 어느 시가지로 들어선 무렵이었다.

문득 어디선가, 찢어지는 광소가 귀를 찔렀다.

―아하하하학!!

뒤이어 콰콰쾅! 지척에서 폭음이 터졌다.

인근에 서 있던 한 빌딩이었다. 허리 부근에서 시퍼런 마력 폭발이 일어났고, 빌딩 전체가 굉음을 내며 무너지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끄아아악!!”

무너지는 빌딩 주변으로 무수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목숨들이 뭉텅이로 으깨지는 소리였다.

―아―하하하하하학!!

그리고 다시 한번.

빌딩의 굉음과 비명을 꿰뚫고, 광소가 들려온다.

소리의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곧 광소의 발원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아?

인간이었다.

약간 특이한 복장을 제외하면, 외관 자체는 놀랍도록 지구인과 비슷하다.

―야, 빨간 갑옷.

덥수룩한 갈색 더벅머리와 붉은 눈동자.

얼굴 한쪽을 하얀 천으로 둘둘 감아 가리고 있다. 드러난 한쪽 눈은 광기에 쩔어 번들거린다.

청색 가죽 재킷에 검은 가죽 바지. 온몸 구석구석에 벨트를 매고, 거기엔 각종 폭발물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리고.

―뭐냐, 넌?

말을 한다.

물론 한국어는 아니다. 이계의 언어가 자동 번역 되어 들려온다.

지성체. 이세계 어딘가의, 인간을 지나치게 닮은 생물.

사냥꾼들의 정체는 외계인 그 자체였다.

―큭, 흐히. 기운… 너, 뿜어내는 살기가… 심상치 않은데? 대체 뭐냐, 넌?

까딱까딱.

놈이 오른손의 폭탄을 만지작거리며 내게 물어온다.

호두 정도 크기의 작은 폭탄이 세 개. 놈의 손아귀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방금 20층짜리 빌딩이 무너진 것, 저 폭탄 단 하나의 위력이다.

―대답, 새꺄. 대답, 안 해? 안 할 건가 보지? 으흑. 으크크큭!

폭발 사냥꾼은 혼자 중얼거리다 말고, 발작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순간, 놈의 목소리가 우뚝 멎었다.

―…뭐, 상관없지.

놈이 한마디 내뱉었고, 미세하게 경련하던 몸도 거짓말처럼 멈춘다.

이내 놈의 고개가 번쩍 쳐들렸다. 번득이는 광기의 눈동자가 날 직시한다.

―어차피 다 죽어.

쉬릭!

놈이 허리춤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원통형의 무언가, 끝자락엔 붉은 스위치가 달렸다. 놈은 그것을 엄지로 힘껏 눌렀다.

―너나, 나나. 결국 다 죽는다고.

삐―삐비빅!

내 주변 사방팔방, 일제히 경고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빠르게 소리의 근원을 찾는다. 이내 시선은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

아니, 지하.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 균열 너머, 시뻘건 불빛이 불길하게 번쩍거린다. 소리도 거기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위험. 나는 본능적으로 블러드 스트림을 발동했다.

―으하하하핫!!

폭발 사냥꾼의 광소가 귓전을 때리는 한편.

콰콰콰쾅! 붉게 점멸하던 지면이 일제히 폭발한다. 공중으로 솟구치는 나를 추격하듯, 시퍼런 폭연이 엄청난 기세로 일대를 뒤덮었다.

“…….”

발밑을 이글이글 조여 오는 화끈한 열기.

방금 폭발로 반경 100미터가량이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파먹은 아이스크림처럼 황량한 지면이 시야에 한가득하다.

미리 간파해서 부상은 없지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뢰.”

안일하게 지면에 착지하다니.

약간 방심하고 있었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한정용.

여기는 다른 놈도 아니고 폭발 사냥꾼의 사냥 영역이다.

이 일대 수 킬로미터.

어딜 가도, 방금 같은 지뢰가 쫙 깔려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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