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3)>
2031년 12월 16일.
1001번째 10차 게이트 붕괴의 날이 밝았다.
오늘의 정확한 붕괴 시각은 12시 정오 즈음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일어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이세라, 몸 상태는 어떠냐.”
이세라의 신체검사(?)였다.
아니, 농담 아니고. 이거 진짜 중요한 문제다. 당장 몇 시간 후에 있을 던전 역류를 막는 것만큼이나.
어떤 의미에선 그것보다도 중요하다.
“아픈 데, 아니면 어디 안 좋은 데 있으면 말해봐라.”
9차 붕괴 이후로도 살아있는 이세라.
그녀는 지금, 이 회차에서 틀어진 운명의 결정체. 귀중한 표본이자 유일한 샘플이다.
‘일단은 작은 변화만이라도 좋아.’
지금까지 회귀를 겪어본바, 이런 작은 변화가 모이고 모여서 큰 변화를 만들곤 했다.
그러니 나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세라를 최대한 오래 살려놓을 생각이다.
이세라의 생존이 탄생시킬 무수한 변수를 내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어… 저, 정용 씨. 아, 아침 댓바람부터 대체……?”
이세라는 내 이글거리는 시선에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이내 헉, 하고 숨을 삼킨다. 그리고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저, 정용 씨. 뭐, 뭐 하는 짓이에요?”
그녀가 연신 말을 더듬었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부터 할 짓을 미리 본 것 같은데,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성큼성큼, 서슴없이 다가가 거리를 좁혔다.
“윽.”
이내 털썩, 이세라의 후퇴가 멈췄다.
등 뒤엔 술 선반이 가로막고 있었다. 코너에 몰렸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나는 우선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덥석 쥐었다.
“흑……?!”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이세라.
S급 헌터치곤 귀여운 신음성을 낸다.
그러든 말든, 나는 그녀의 이마를 부여잡은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
“…….”
쥐 죽은 듯한 침묵이 흐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그쯤에서 손을 떼줬다.
“일단 열은 없고.”
말했듯이, 지금부터 할 것은 신체검사.
이세라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체크해 볼 생각이었다.
“끄, 끝난 건가요?”
“아니, 이제 시작이다.”
“그, 그렇겠죠…….”
그러니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열 재는 건 혹시나 해서 형식적으로 해봤고, 진짜 걱정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다음은 팔.”
이번엔 그녀의 왼팔을 덥석 쥐었다.
스르륵, 이세라의 와이셔츠 소매 단추를 거칠게 풀어버렸다. 그리고 단숨에 팔꿈치 위까지 걷어 올렸다.
“으아아! 저, 정용 씨! 왜, 왜 이래요!”
이세라가 잡힌 팔을 격하게 버둥거린다.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절대 놔주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
“으윽……!”
“꼭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런다.”
검지를 바짝 세워 이세라의 손등에 갖다 댔다.
그대로 스르륵. 팔뚝 위까지 선을 그리듯, 섬세하게 어루만졌다.
“앗, 아으!”
안타까운 신음이 이세라의 입에서 흐른다.
팔을 포함한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반응이 아주 자지러지는군, 간지럼에 약한 건가.
일단 저 반응을 봐서, 피부 감각은 문제없이 재생된 듯하다.
“……!”
어색한 침묵 가운데, 두근두근. 이세라의 심장 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거기까지,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도… 일단 이상 없고.”
리스토레이션 스킬의 부작용.
내가 진짜 궁금했던 게 바로 이거다.
‘다른 사람에게 써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그거.’
그렇다 보니 이게 제대로 작동을 했는지. 혹 하루가 지난 지금, 부작용이 뒤늦게 나타나진 않았는지.
그걸 확인하지 않으면, 뭘 해도 집중이 안 될 것 같았다.
“다음은…….”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아래쪽을 훑었다.
이세라가 치명상을 입었던 부위는 분명 왼팔과 오른 다리. 그리고 상복부였다.
순서대로 가자, 순서대로.
“…다리.”
내 손이 홀린 듯이 이세라의 다리를 향했다.
파박! 이세라가 화들짝 뒷걸음질 쳤다. 위기를 감지한 들짐승 같은 움직임이다.
“그, 그만! 좀 진정하세요, 정용 씨!”
이세라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제가 걱정돼서 그러시는 건 알겠는데, 저 진짜 멀쩡해졌어요! 봐요! 진짜 아무렇지도 않다니까요?!”
“그건 전문가인 내가 보고 판단한다.”
이세라도 필사적이었지만.
나는 한 꺼풀 더 완고했다.
“다리, 이리 내.”
이번 생의 남은 일과의 시작은, 무조건 이세라의 신체검사부터다.
네가 어떻게 살려낸 생명이고. 얼마 만에 찾아온 귀중한 예외 사항인데.
절대로 죽게 놔두지 않는다.
“고, 곧 수아 씨랑 이브도 깨어날 거예요! 이, 이러고 있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들키면 뭐, 중요한 검사 작업이다. 애먼 짓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정용 씨야 아니긴 한데! 보는 입장에 따라선 좀……!”
“헛소리. 애도 아니고, 환부 좀 검사하겠다는데 왜 이리 튕기냐.”
자꾸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해가며 거부하니, 슬슬 짜증이 좀 일었다.
그런데 웬걸, 내 말에 오히려 이세라가 한층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아니, 제가 뭐 검사받기 싫어서 이러는 줄 아세요?!”
“아니면 다행이네, 빨리 다리나 내놔.”
“…으, 진짜!”
결국, 이세라는 머뭇거리면서도 천천히 오른 다리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내가 망설임 없이 손을 가져가는 순간.
“제, 제가! 하다못해 바지는, 제가 걷게 해주세요.”
이세라가 다리를 퍼뜩 오므리며 그런 말을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걷든 상관있나? 난 검사만 제대로 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못 들어줄 건 없다.
“그래라, 걷어.”
“으으… 미치겠네, 진짜.”
“최소 무릎 위, 넉넉하게 허벅지까지는 올려라. 절단 부위는 대퇴부 하단쯤이었으니까.”
“네에, 알겠다니까요.”
스르륵, 스륵.
이세라가 천천히 바지를 걷어 올린다. 손끝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내 그녀의 새하얗고 얇은 다리가 내 앞에 대령되었다.
“…음.”
나는 그 앞에 조심스럽게 무릎 꿇었다.
그리고 아까 왼팔에 했듯이, 터벅. 발등부터 시작해 허벅다리 부근까지 손끝으로 쓸어 올렸다.
우웅. 손가락 끝에서 푸른 마력이 공명해, 이세라의 피부에 스며든다.
“흐읏!”
온몸을 움찔거리며 야릇한 신음을 내는 이세라.
슬쩍 위를 올려다봤다. 이세라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모르는 행색이다.
‘…왜 저러냐.’
분명 이상한 짓은 안 하고 있는데.
괜히 죄책감 들게 반응이 유별나다. 나까지 뭔가 초조해진다.
빨리 이 짓을 끝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다리도 이상 없다. 이제 마지막 한 군데, 가자.”
“또, 또요?”
“그래, 한 번만 더 참아.”
“이번엔 어디죠? 저 사실, 다리가 잘렸던 것까진 알겠는데. 그 뒤론 기억이 애매해서…….”
내가 검사를 진행한 팔과 다리, 그리고 이제 검사할 상복부. 이건 그녀가 상처를 입었던 순서를 그대로 순행한 거다.
이세라는 팔뚝 이후 다리가 잘린 시점에서 혼절했던 모양이다.
‘뭐,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
S급 헌터라고 신체 절단 수준의 고통이 익숙하리라는 법은 없다. 다리가 토막 난 순간 쇼크로 기절했어도 이상하진 않다.
특히나 이세라는 보조계 헌터인 만큼 더더욱 그렇다.
“어디냐면…….”
그래서 나는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이세라의 상복부로 손가락 끝이 향했다.
“여기.”
순간 이세라가 어깨를 떨었다.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대던 그녀가 까딱, 고개를 가까스로 갸웃거렸다.
“…어디요?”
“배, 좀 위쪽. 까봐라.”
“배라니… 먹는 배?”
“어제 화채를 얼마나 먹었으면 이런 헛소리가 나오지. 복부 말이다.”
“…….”
이세라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가 상의 밑단을 잡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내 나를 흘깃 노려봤다.
“그냥 제가 당황하는 게 보고 싶어서, 없는 말 지어내는 건 아니죠?”
“나 오늘 바쁘다. 영양가 없이 개짓거리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그야 그렇긴 한데.”
“그래. 알았으면 까, 빨리.”
자꾸 움찔움찔 꼼지락꼼지락하는 게 답답해 죽겠다.
슬슬 내 쪽에서 피곤해진다. 얼른 이 짓거리를 끝내고 싶었다.
“…하아.”
이세라는 입술을 잘근 깨물다가,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녀가 천천히 상의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하얗고 잘록한 허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는 득달같이 손을 가져갔다.
“으, 으!”
이세라가 결심한 얼굴로 눈을 질끈 감는다.
그렇게 손끝이 닿으려는 순간, 덜컹. 휴게실 문이 열렸다.
수아와 이브,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 나온다.
“…아?”
“헤에?”
수아와 이브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둘이 손을 꼭 붙잡고 이쪽을 빤히 쳐다본다. 수아의 눈이 점점 멍하게 풀려갔고, 이브는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
그리고 이세라는 너무 놀랐는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걷어 올린 상의를 내릴 생각조차 않고 있다.
“아빠아.”
문득 이브가 날 부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줌마랑 뭐 해? 배는 왜 만지고 있어? 응?”
이브가 날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빛내고 있다.
나는 빠르게 눈치를 살폈고, 무겁게 침묵이 깔린 분위기를 읽었다.
이내 가장 적절한 대답을 도출해 냈다.
“…병원놀이.”
“……!”
수아한테 얻어맞았다.
성희롱하는 줄 알았단다.
“수아 씨, 진정해 봐요. 저 괜찮아요.”
“아뇨! 이걸 참으면 안 되죠, 언니!! 응징!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고요!!”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된 거냐면…….”
이세라가 적극 상황설명을 도왔다.
그럼에도 해명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미, 미안해요. 오빠. 제가 오해를…….”
해명이 끝나고 수아가 내게 사과를 해왔을 때, 이미 시간은 11시 반. 출근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수아는 오해한 게 쪽팔린다고 휴게실에 틀어박혔다.
“아휴, 그러게 왜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해요.”
10차 붕괴를 막으러 가는 나를 배웅해 주는 건, 이세라였다.
이브는 내가 옆구리에 단단히 끼운 상태. 봇짐처럼 내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놔뒀으면 제가 알아서 다 설명했을 텐데, 병원놀이 발언 때문에 오해가 깊어졌다구요…….”
정정한다.
이제 보니 배웅이 아니다. 뒤늦게 불만을 토로하는 거였다.
‘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좀 피곤하다. 그냥 빨리 게이트 붕괴나 막으러 가고 싶다.
천 번이나 반복했더니, 이제 이게 그냥 내 천직 같고 그렇다.
“갔다 온다. 수아 잘 부탁하고, 너도 몸조심해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출입구 문고리를 힘껏 부여잡았다. 열고 나가기 직전.
“…저기, 정용 씨.”
별안간 이세라가 말을 걸어왔다.
“제 몸을 수복했던 그 스킬 말인데요.”
고개를 슬쩍 돌려봤다. 말할지 말지 주저하는 기색의 이세라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응수했다.
“리스토레이션, 그게 왜.”
“정용 씨는… 항상 그 끔찍한 스킬을, 자기한테 쓰는 건가요?”
“항상은 아니지, 다칠 때만.”
“그러니까요. 다치면 항상 쓰시는 거죠?”
“당연하지. 회복 기술이 그것밖에 없어.”
애초에 던전 마스터들이 회복 스킬 자체도 거의 안 갖고 있다. 그나마 있는 것들도 잘 안 떨군다.
어쩌다 회복 스킬이 나왔을 때도, 그 회차에 항상 더 좋은 공격 스킬이나 아이템이 나왔고. 나는 고민 끝에 그쪽을 계승하곤 했다.
“뭐, 이것도 사실 인체 회복용 스킬은 아니다만.”
지금까지 계승한 회복 스킬은 리스토레이션, 딱 하나.
이 스킬만큼은 최후의 계승 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수복 효율이 워낙 높아야 말이지.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사람 몸 고치는 스킬이 아니라서, 나한테 선택받은 것이다.
“그런 끔찍한 고통을… 매번 느끼고 계시겠네요.”
문득 이세라가 몸서리치며 중얼거렸다.
얼굴에 공포가 한가득하다. 자기 몸이 수복되던 그때라도 떠올리는 모양이다.
“…익숙해졌다.”
피식.
입가에 익숙한 가짜 웃음이 감돌았다.
“이제 참을만해.”
끔찍한 고통 자체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 때문에 찾아오는 아득한 공포, 그건 익숙해진다.
‘익숙해진다 해야 하나…….’
점점 마비되지. 무감각해진다.
살인이나 자살을 반복할 때의 감각과 비슷하다.
“어쨌든 컨디션에 이상은 없다. 확실한 거겠지?”
나는 직접 확인하고도 모자라서, 다시 한번 이세라에게 확인했다.
이세라가 아주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끄덕, 보란 듯이 힘껏 주억거렸다.
“괜찮다니까요. 정용 씨 덕분에 진짜, 정말로 괜찮아요! 당신이 지금 남 걱정할 처지예요?!”
“…후우…….”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리스토레이션을 남한테 써본 적이 이전에 딱 한 번 있었다.
‘수아랑은, 다르구나.’
아주 옛날, 잘 기억도 안 나는 언젠가의 강수아에게 썼다.
그때도 수아가 내 말을 무시한 채 바깥을 쏘다녔고, 몬스터의 공격에 휘말려 온몸이 갈려 나갔다.
그때 딱 한 번, 그녀에게 써봤었다.
‘수아는… 견디지 못했는데.’
육체가 처음엔 잘 수복돼 가나 싶더니, 일순간에 체내 마력이 폭주하면서 그대로 전신이 폭발해 버렸다.
공포에 절어있는 절규가 아직도 생생하다.
“오, 오빠… 사, 살려줘… 살려줘요! 살려줘어어어!!”
그런데 역시 던전물을 많이 먹은 S급 헌터의 육체.
일반인인 수아와는 달리, 이세라는 리스토레이션의 강제수복을 충분히 견뎌내 줬다.
“…다행이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안심했다.
뜻밖의 말이 나와서인가. 이세라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미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정용 씨도,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인사해왔다.
덜컹! 나는 주점 문을 열었다.
“갔다 온다.”
붕괴 예정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층 경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