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48화 (48/235)

48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4)>

―키이이!

―키기기기기!!

어느새 나와 수아 주변엔, 수백 마리의 기생충 숙주들이 우글거렸다.

스릉. 나는 블라이스의 단검을 뽑아 들고 사주를 철저히 경계했다.

“위험한데… 이거.”

던전의 심부까지 너무 무방비하게 빨려 들어왔다.

이미 주변에 기생형 몬스터가 한가득. 에스컬레이터는 물론이고, 철로 쪽으로도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 힘으론 이 정도 다대일은… 무리다.’

탈출해서 재정비를 하고. 다시 차근차근 초입부터 공략해야 한다. 그래도 성공률을 점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나 혼자라면 지금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탈출했겠지만… 지금 나는 수아와 같이 있다.

수아와 함께 이곳을 돌파할 힘은, 확실히 없다.

‘난 죽는다.’

대충 예상은 하고 왔다만. 그 예정된 결말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던 그때.

“흐, 으으……!”

“살려줘. 살려줘. 사, 살려줘……!”

문득 주변에 엎어져 바들바들 떨고 있던 부랑자들이 보였다.

지하도에서 탈출할 타이밍을 놓친 채, 먹힐 순간만을 기다리는 자들이었다.

번득. 머리맡에 섬광이 스쳤다.

‘이렇게 되면…….’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천천히 신형을 낮추고, 지면을 힘껏 박찬다.

[스킬 발동: 비약(飛躍)]

카카카칵!

순식간에 5번의 발동. 다섯 장소에서 동시에 신형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내 스킬은 몬스터의 숙주들을 향하지 않았다.

“으아, 아아아악!!”

“다, 다리! 내 다리이이!!”

공포에 떨던 부랑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른다.

총 다섯 명. 하나같이 신체의 어딘가가 잘려나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후두둑. 바닥에 흥건하게 떨어지는 핏방울.

―크르… 키이이이!!

거기에 몬스터 숙주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번득. 눈구멍에서 꿈틀거리던 촉각을 바짝 치켜세웠다.

―카가가가각!!

―크게게게게겍!!

두두두두!

놈들이 피가 쏟아진 방향으로 달려든다.

다섯 방향으로 인파가 일제히 몰리며, 순간적으로 포위망이 느슨해졌다.

“성공이다……!”

먹힌다.

놈들은 사람의 피에 반응한다.

‘할 수 있어!’

이건 빠져나갈 수도 있겠다. 희망과 긴장을 근육에 바짝 새겨 넣는다.

다시 한번. 맹수처럼 상체를 바짝 낮췄다.

‘비약……!’

쉬쉭! 신형이 놈들 사이를 종횡무진한다.

순간적으로 지하도에 강풍이 몰아쳤다.

―키에에에엑!

“끄아아아악!!”

정확히 반수. 숙주와 살아있는 인간이 도처에서 비명을 지른다.

적게 잡아도 50명 이상. 사방에서 쏟아지는 선혈 줄기로 숙주들의 이목이 잔뜩 쏠렸다.

―크라라라락!!

콰드득! 우직!

피를 쏟아내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숙주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뒤틀린 팔다리로 사람들을 단단히 붙잡고, 입을 강제로 벌렸다.

―궤에에에엑!!

쩌적. 놈들의 배가 훤히 열린다.

거기서 새하얗게 번들거리는 촉수가 꾸불텅 흘러나왔다.

“끄, 으욱, 구우우욱!!”

허연 촉수 다발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입 안을 파고들었다.

수많은 촉수가 피 흘리던 사람들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촉수가 쑤셔 넣어진 사람들은, 눈이 허옇게 뒤집어지고 온몸을 경련한다.

“끄, 어… 그어억……!”

이내 꾸드득, 뿌드득.

온몸의 관절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크가가가가각!!

그리고 쩌적. 뱃가죽이 열리고, 입 안에서 번득이는 눈알이 튀어나온다.

그 과정이 도처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지금이다.’

모든 생물이 가장 긴장을 놓는 순간이 있다.

바로 수면 시간과 포식의 순간이다.

“가자, 수아야!”

나는 패닉에 빠져있는 수아를 번쩍 안아 들었고. 부릅뜬 눈으로 숙주들의 배치를 빠르게 파악했다.

찾았다. 탈출 경로.

“비약!!”

콰콰쾅!

아까처럼 은밀하고 정확하진 않다.

우악스럽고 거칠게 포위망을 돌파했다. 폭음이 이어지며, 뇌전으로 박살 난 숙주의 시체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 키기기긱!

―키가가가각!!

내게 숙주들의 이목이 쏠리며 포위망이 일순 촘촘해졌다.

앞으로 조금이다. 어쩔 수 없어. 양손에 나선의 뇌전을 그러모았다.

“라이트닝 헬릭스.”

파자자작!

지하의 어둠을 새하얗게 꿰뚫는 섬광의 폭발. 방사형으로 퍼진 뇌전 다발이 무차별적으로 사위를 타격한다.

‘라이트닝 헬릭스. 헬릭스. 헬릭스……!’

번개를 정신없이 모은다.

쏜다. 다시 쏜다. 모으고 또 쏜다.

여전히 내 공격엔 적아 구분이 없었다.

―키게게게겍!!

“으그그그극!!”

선릉역 지하공동이 숙주와 인간의 비명 소리로 들끓었다.

번개에 타 죽어버린 인간들. 그리고 죽어가는 몸을 버리고, 숙주를 갈아치우려는 기생충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달음에……!’

파파파팍!

스킬 발동, 비약. 10연속.

축지(縮地)에 가까운 속도였다. 주변 풍경이 접히듯이 빠르게 흘러간다.

마침내 역사의 출구까지 도달한 나는, 콰앙! 한달음에 에스컬레이터를 거슬러 올랐다.

“후욱……!”

화악.

지하를 빠져나오자 시야가 순식간에 햇빛으로 물들었다.

“푸하악!”

지나치게 많아진 광량이 적응이 안 된다.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털썩. 선릉역 1번 출구 앞에서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후우. 하아……!”

스킬 ‘비약’은 B급이면서도 A급에 준하는 성능을 가진 스킬이다.

마력의 소모가 적고 쿨타임은 없다. 그러나 그만큼 스태미나 소모가 심하고, 육체적으로 부담이 많이 오는 스킬이기도 하다.

한동안 탐욕적으로 공기를 탐했다.

“하아. 하아악…….”

그리고 맑은 지상의 공기가 폐에 들어차는 순간.

나는 실감했다.

“성공, 했다……!”

무사히 수아를 데리고 빠져나온 것이다.

여지없이 수아와 함께 죽을 줄 알았는데. 역시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길이 열리는 법이지. 인간 승리다, 개새끼들아.

그런 달성감과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오빠.”

문득 정신을 차린 수아가 우중충한 목소리를 낸다.

나는 반갑게 고개를 돌렸고. 쫘악! 화끈한 사운드와 함께 다시 고개가 홱 돌아갔다.

수아가 내 뺨을 후려갈긴 것이다.

“오, 오빠가…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쫘악, 쫘악! 쫘아악!!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싸대기 퍼레이드는 그 뒤로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고개가 양옆으로 홱홱 돌아간다.

“그 괴물들이랑……! 오빠가 다를 게 뭐예요!!”

정신없던 와중에, 지하에서 내가 벌인 행각을 전부 보고는 있었나 보다.

수아는 펑펑 울면서 내 양 뺨을 미친 듯이 후려쳤고. 이내 우뚝 멈췄다.

고개를 땅에 처박고 고래고래 소리친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희생해서 살아봤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울컥. 억하심정이 물밀듯이 치고 올라왔다.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지는 듯하다.

“…그러면.”

그러면. 그대로 네가 죽도록 내버려 뒀으면 됐냐?

지난번 수십 번의 전생에서 그랬듯이? 그거엔 무슨 의미가 있냐.

말해봐. 죽은 당사자인 네 입으로. 네 개죽음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냐고.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 입을 열었고.

“…….”

그대로 다시 닫았다.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입 열면 쌍욕부터 나갈 거 같아서 그런 것도 있다.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던 수아가, 별안간 피식. 뒤틀린 웃음을 피웠다.

“미안해요. 오빠. 괜히 오빠 탓해서.”

“…뭐라고?”

별안간 사과를 해오는 강수아.

이내 그녀가 미친년처럼 실실 웃더니, 스스로 자학하기 시작했다.

“저 진짜 미친년이다. 그죠? 오빠는, 저를 살리려고…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어, 그… 그게.”

“오빠, 고마워요. 항상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정말, 정말로, 너무 미안해요.”

그리고 덥석.

내 왼손에 들려있던 블라이스의 단검을 재빨리 낚아챘다.

“근데요. 오빠.”

아. 짤막한 탄성과 함께 뒤늦게 반응했다.

수아의 얼굴엔… 지독한 공허가 끼어있었다.

안 돼. 그만해. 그러지 마.

“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지 말아요. 제발.”

이미 늦었다.

수아의 볼에 흐르는 눈물 한 줄기가, 슬로모션처럼 느리적하게 떨어진다.

푸직. 단검이 그녀의 여린 목줄기를 관통한다.

“아, 그욱… 으극……!”

수아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신음이 흘렀다.

털썩. 그녀가 그대로 엎어진다. 대량의 선혈이 바닥 위로 빠르게 면적을 넓혀간다.

“…….”

솔직히 말하겠다.

그 당시 스펙으로도 충분했다.

내 반응속도면, 분명 수아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

“…….”

하지만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찰나의 주저는 곧 비극으로 이어진다.

“하.”

하하. 하하하.

실성한 듯이 웃음을 질질 흘렸다.

“못해먹겠네. X발.”

허탈하게 한마디 싸지른 후.

푸각! 거침없이 내 배를 가르고 자살해 버렸다.

…….

…….

뭐, 그런 흑역사도 있다.

* * *

―크에에에에엑!!

“아가리 해.”

콰자자작!

괴물 배때기에 번개 펀치를 쑤셔 넣었다.

―그, 그걱, 크거걱……!

놈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단백질 타는 냄새가 물씬 올라오며, 바싹 메마른 숯덩이가 되어 바닥에 엎어진다.

후우. 나는 손아귀의 스파크를 흩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구역은 방금 놈이 마지막인가.”

주변을 슬쩍 훑어봤다.

어둠이 드리운 철길과 지하통로 한복판. 버려진 인간 숙주와, 타르타로스의 기괴한 기생충들이 새카맣게 타죽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좀 더 가면 던전 마스터가 나오겠군.’

여기는 2호선 라인의 지하철길.

선릉역에서 철길을 따라 역삼역 쪽으로 한참 걸어온 어딘가다.

다만 내가 연신 발사한 나선 번개 때문인가. 터널 구조물이 죄다 파괴돼서, 무슨 지하철길이 아니라 북괴가 뚫어놓은 땅굴 같이 돼버렸다.

“무너지지 않게 조심해야지, 이거…….”

이건 지하도의 부랑자 목숨 때문이 아니다.

나도 같이 매몰되니까 그게 문제다. 생매장되면 마력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져서 텔레포트도 잘 안 된다.

땅 파고 탈출하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뭐… 그래도 아직까진 순조롭다.’

내가 선릉역에 진입한 지 약 30분.

이미 8할에 달하는 기생충들을 박멸했다.

애초에 타르타로스는, 지금의 내 무력이면 딱히 어려운 던전도 아니다.

‘기생충들 와꾸가 살벌해서 그렇지.’

그리고 8차 붕괴에서 타르타로스가 붕괴할 경우. 거의 확정적으로 ‘친구 성유미 씨의 구원요청 문자’ 이벤트가 발생한다.

다른 이유가 아니고. 이 에피소드 때문에 기억에 강렬히 박혀있을 뿐이다.

‘그것도 이미 공략법을 찾았으니.’

내가 어젯밤 이세라에게 부탁해 놨던 것.

그게 바로 그 공략들이다.

“혹시나 해서 부탁했던 건데…….”

설마 이번엔 진짜 타르타로스가 붕괴할 줄이야. ‘유비무환’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나,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내가 부탁했던 건 다른 게 아니다.

―수아가 자는 틈에 핸드폰을 숨겨. 그리고 어디 있는지 모르는 척해라.

수아가 던전 붕괴지에 제 발로 찾아가게 만드는 트리거. 그 원초적인 말살.

그리고 혹시나 해서 또 하나.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하루 동안 수아를 가게 밖으로 내보내지 마라.

철저한 이중 보안으로 부탁을 남겨놨다.

이세라가 내 부탁을 제대로 이행만 해준다면. 적어도 이번 붕괴로 수아가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배리어도 오라클에 새로 둘러쳤으니… 문제없겠지.”

어제가 딱 회귀 후 15일 차 되는 날이었고. 쿨타임이 15일인 ‘아이기스 암즈’를 새로 칠 수 있는 기간이었다.

원래의 내 집에 쳐놨던 배리어는 지금쯤 자연 소멸 했을 것이다.

“우엥… 아, 아빠아… 콜록, 콜록!”

문득 등 뒤에서 이브가 징징댄다.

연신 기침을 하며 눈물 맺힌 붉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시선이 하도 간절해서 무심결에 걸음을 멈췄다.

“이브. 왜 그러냐.”

“우으. 여기, 냄새나. 이상해애. 숨 안 셔져어. 힘드러어…….”

“지하라 그렇다. 잠깐만 참아.”

“으으응~! 아빠아. 나가자아. 나가면 안대애?”

터무니없는 개소리를 칭얼대는 이브.

내가 여기서 홀라당 나가버리면 던전 마스터는 누가 죽이겠냐. 우리나라 최강이었던 양호성도 나한테 모가지 슥삭 잘린 마당인데.

이 던전. 한 2시간만 내버려 둬도 기생충이 수십, 수백만 마리까지 번식한다.

그리고 지하에 먹잇감이 다 떨어지면? 먹잇감 찾아 지상으로 꾸역꾸역 올라오기 시작한다.

거기까지 방치하면. 그 뒤론 나도 손 못쓴다.

서울 전역 중 7할은 쑥대밭 된다고 봐야 한다.

“그럼 이브. 최대한 빨리 나가도록 해주마.”

“우햐아! 아빠, 조아!”

“대신. 이번엔 무상으로 힘을 빌려줘.”

“응애?”

“30분. 이번엔 30분이면 충분하다. 웬만하면 15분 내로 일 끝내고 나가줄게.”

“으, 으우우웅…….”

이브가 포대기 속에서 꼬물댄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눈치다.

이내 그녀가 어려운 결정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웅. 알았어어. 빨리 해조, 아빠아.”

“말이라고.”

이겼다.

훌륭한 외교 승리에 뿌듯해하는 한편.

“…스읍.”

딸기우유 안 뺏겼다고 기뻐하는 자신한테 자괴감도 든다.

어쨌든 나는 이브를 앞으로 안아 들었고. 곧장 상의 앞섶을 풀어 헤쳤다.

“얼마나?”

이브는 직전에 생각났다는 양 내게 물었고.

나는 히죽, 입매를 비틀었다.

“한계까지 빨아. 앞으론 묻지도 말고, 무조건 그렇게 해라. 이브.”

“으응. 알았어 아빠. 히히.”

이브도 히죽거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리고 쩌억. 기다렸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아웅.”

콰드득!

앙증맞은 탄성과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살 씹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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