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47화 (47/235)

47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3)>

8차 붕괴부턴 던전의 몬스터들이 한층 더 강해진다.

1~4차 붕괴의 던전 마스터급 몬스터가, 5차 붕괴 후론 잡몹 수준이 되고. 5차 이후의 던전 마스터들은 8차 이후엔 잡몹 수준이 된다.

마찬가지로 12차에서도 한 번 더 비슷하게 난이도가 상승한다.

“오, 오빠.”

상당히 초창기 전생 때의 일화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만. 1백 회차 전후 정도였을 거다.

여전히 변변찮은 지금보다도 한참 더 무력하고. 쓸모없고. 답답하던 시절의 나였지.

“톡… 무, 문자가… 왔어요.”

별안간 수아가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로,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감정 표현이 풍부했다.

“무, 문자라니. 갑자기? 이 시국에?!”

말을 더듬었다. 불안과 의문이 섞인 표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8차 붕괴일까지 살아남은 게 그 회차가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한없이 낯설었고 불안했다.

나와 수아의 생존. 그 명제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 시기에 갑자기 날아온 의문의 문자?

경계심이 하늘까지 치솟는다.

“누, 누구한테 온 거냐. 수아야.”

“그, 그게… 제 친구. 고등학교 친구요!”

“친구……?”

“네! 성유미라고, 저랑 엄청 친한 절친이라, 지금도 자주 만나는 앤데……!”

번쩍!

수아가 다급한 행색으로 핸드폰 액정을 내밀었다.

문제의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살려줘 수아ㅐㅑ 지금 지하 선릉여ㄱ ㅇ완전 미ㅏㅏㅏ]

다급하게 갈기다가 끊어진 문자.

보낸 이의 절박함이 절로 연상되는 오타들의 향연.

나는 문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지하… 선릉역.”

헌터 전용 스마트워치를 슬쩍 쳐다본다.

그러나 시계는 묵묵부답. 붕괴 초창기처럼 협회의 호출도 오지 않고, 게이트 붕괴지를 통보해 주지도 않는다.

그 회차에서도 헌터 본부는 7차 붕괴 즈음해서 궤멸했으니까.

‘거기구나. 8차 게이트 붕괴 지역.’

본능적으로 그것을 직감했다.

그제야 위기감이 서서히 뇌리를 파고들었다.

“수아야.”

“아, 네?”

“설마 친구를 찾으러 가겠다… 뭐, 그런 쌉소리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야 당연히 구하러 가야죠! 딱 봐도 유미가 위험해 보이는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오빠!!”

“…….”

어질어질해지는 대답이다.

큰일 났다. 지금 수아는 거듭된 재난과 비극으로 반쯤 제정신이 아니야.

똥오줌 구분이 안 되고 있는 듯하다. 당장 말려야 한다.

“음… 그.”

하도 당황한 나머지 대꾸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사이 수아가 몰아붙이듯, 오히려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엄마도, 언니도! 아니, 제가 살던 동네가! 송두리째 폐허가 돼서 없어져 버렸잖아요……!”

“어, 뭐. 그야 그렇긴 한데.”

“어쩌면 얘가, 아직 유일하게 살아있는 제 지인일지도 모른다고요! 그렇잖아요?!”

“그건 좀 비약이 아닐까 싶은데… 그, 그리고 자. 나도 있잖아?”

어떻게든 수아를 진정시키려던 나는, 어느 순간 번뜩.

뇌리를 스치는 사실 하나에 눈을 부릅떴다.

“아니.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기다리긴 뭘 기다려요! 아무리 말리셔도 소용없어요! 저 혼자라도 친구 구하러 갈 거예요!!”

“그래. 가는 건 그렇다 치는데. 뭔가 이상하지 않냐?”

“…이상하다뇨?”

어리둥절하게 눈을 끔벅이는 수아.

나는 그런 그녀의 핸드폰을 덥석 낚아챘고. 액정에 떠있는 문자를 가리켰다.

이상한 점은 바로 이 문자. 그 자체였다.

“지금 이쪽 구역에서 데이터가 터진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당시 우리가 자리 잡았던 곳은 강북구 어귀의 한 호화스러운 아파트 단지.

이곳은 지난 몇 번의 게이트 붕괴로, 마력 파장의 간섭 현상이 심하게 발생한 지역이다.

데이터나 통화가 터지긴 개뿔.

EMP 폭격을 맞은 수준으로 전자제품들이 온통 맛이 가버렸다고.

“지금까지 핸드폰도 제대로 작동 안 하다가, 갑자기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는 거냐? 선릉역 쪽으로 와달라고?”

“…윽.”

이건 함정이다.

이 등줄기를 핥는 기분 나쁜 감각. 수없이 회귀한 나는 직감적으로 견적이 나왔다.

유도당하고 있다. 놈들이다. 던전의 몬스터들이, 꾀를 부려서 먹잇감을 둥지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봐. 수아야. 너도 뭔가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잖아.”

“그, 그건… 그건!”

수아가 입술을 깨물고 안절부절못했다.

이리저리 방황하던 그녀의 시선이 어느 순간, 탁하게 풀어졌다.

“…기적.”

갑자기 그런 말을 중얼거리더니.

본인의 말에 본인이 설득당하기라도 한 양, 대번 화색을 띄었다.

“그러니까, 기적인 거죠. 기적!”

“…기적?”

“네!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저한테 연락이 닿았겠어요! 그야말로 신이 내린 천금 같은 기적이라니까요!”

신. 신이라.

위태롭게 웃는 수아에게서 신 같은 소리까지 나왔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실실 흘렸다.

“수아야. 니체가 그랬다더라. 신은 뒤졌다고.”

“…가, 갑자기 그런 소리를, 왜?”

“이거. 네가 나한테 말해준 거다. 수아야.”

수아는 철학을 좋아한다.

철학자 중에서는 니체를 특히 좋아했다.

그런 천하의 강수아가 신을 찾고 있었다. 잇달아 닥쳐온 전 지구적 불행은, 니체 빠순이였던 그녀를 유신론자로 만들었다.

얼마나 정신적으로 몰려있는지 짐작이 된다.

“…그, 그럴 리가요? 저는 오빠 앞에서, 철학 얘기 같은 거… 한 번도 안 했어요.”

수아의 반응은 그것이었다.

그 말이 맞다. 이번 생의 그녀는 한 번도 안 했지.

하지만 전생에선. 그리고 3회차 전의 전전전생에선… 분명히 나한테 해줬다.

그렇지 않고서야. 니체인지 니기미 X발인지.

옛날에 처뒤진 독일 남정네 새끼가 씨불인 말 따위, 내가 어떻게 알겠냐.

“그래. 미안하다. 헛소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텐가?

말해 뭐 하냐고.

“너랑 비슷한… 다른 사람이 말해줬지. 착각했나 보다.”

생각하면 대가리 아프고.

말하면 아가리 아플 뿐이다.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예 설득하기를 포기해 버렸다.

애초에 말주변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기도 하고. 또 약간의… 억하심정이 없진 않았다.

‘어쩌면… 현실을 보여주는 게 답일지도 모르지.’

수아가 이 악물고 외면하는 잔인한 현실.

지금까진 그 도피를 정도껏 묵인해 줬지만. 이렇게까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아무리 나라도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선택을 서슴없이 했다.

“선릉역까지 지켜주마. 수아야.”

체념의 웃음을 띠었고. 신이 나서 나갈 준비를 하는 수아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가만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자. 기적을 실현하러.”

그렇게 우리는 선릉역을 향했다.

쑥대밭이 된 서울을 가로지르는 와중. 굉장히 많은 방해를 받아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주로 방해했던 건 몬스터가 아니고, 사람들이었다.

“다, 다가오지 마. 개새끼들아……!”

화르륵!

스태프 끝에 불꽃을 머금은 남자. 그리고 날이 시퍼런 쌍단도를 든 여자. 막간에 마주쳤던 그 듀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뿔뿔이 와해된 헌터 협회에서 도망쳐 나온, 헌터 부랑자 중 하나였으리라.

“없어. 뺏길 만한 건 이미 다른 놈들한테 다 뺏겼다고! 그러니까, 우릴 좀 내버려 둬!!”

퍼엉!

남자는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스태프를 휘두른다. 이글거리던 불꽃이 우리의 정면으로 쏟아진다.

난데없는 기습에 수아가 몸을 움츠렸고.

‘스킬 발동.’

반면 나는 즉각 대응을 시작했다.

[스킬 발동: 안티 매직 리플렉터]

파지지직!

샛노란 스파크와 함께 수아의 앞으로 반투명한 막이 생성된다. 거세게 날아온 화염구는 그것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콰쾅! 네트에 걸린 배구공처럼 화염구가 출렁이길 잠시.

“…감히 누굴 노려. X발아.”

투학!

화염구가 날아왔던 방향을 그대로 거슬러 튕겨나갔다.

날아올 때보다도 훨씬 빠르다. 평범한 인간의 반응속도론 도저히 피할 수 없을 정도.

그리고 남자 헌터는, 평범한 인간의 반응속도였다.

“으, 으아……!”

남자가 허둥지둥 또 다른 스킬을 캐스팅했지만. 반사된 화염구가 살짝 빨랐다.

푸화악! 남자의 가슴팍에 직격한 화염구가 폭발한다.

“끄아아아악!!”

불길에 휩싸인 남자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오빠!! 아, 안 돼! 안 돼애애애!!”

옆에 쌍단도를 들고 있던 여자가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한다. 외투를 벗어 남자의 몸을 마구 후려쳐, 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을 내가 아니다.

“라이트닝 헬릭스.”

치지직.

새파란 번개의 나선이 손에 응집된다.

회귀 초창기라 지금보단 기세도 규모도 훨씬 작지만. 낙오자 저급 헌터들 죽이기엔 차고 넘치는 힘이다.

“죽어.”

여자의 미간을 향해 똑바로 날아가는 번개 폭격.

불길을 끄느라 정신이 없던 여자는, 그대로 번개에 얻어맞았다.

파지지직!! 춤추는 섬광. 여자가 온몸을 바르르 떨다가 바닥에 엎어졌다.

“어, 그, 그극……!”

잠시 경련하다가, 털썩. 그대로 사망한다.

나는 무심하다 못해 싸늘한 표정으로, 불타고 지져진 두 시체를 내려다봤다.

그러자니.

“오, 오빠.”

문득 옆에서 수아가 중얼거렸다.

부릅뜬 시선에 놀람과 혼란, 그리고 약간의 공포가 맺혀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힘을……?”

자기가 전혀 모르던 한정용.

영원회귀 전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

괴물이 돼버린 나를 향한, 지나치게 솔직한 시선이 쏟아진다.

“아니. 그것보다! 주, 주, 죽일 필요까진 없었잖아요!!”

“선제공격을 해왔어.”

“그, 그건. 그렇지만……!”

“죽이지 않았으면 네가 죽었을지도 몰라.”

여기만큼은 딱 잘라 단언했다.

일말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어조. 수아도 그것을 느꼈는지 흠칫 입을 다물었다.

이내 혼자 불평하듯 중얼거린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들일지도 모르는데……!”

“그건 그냥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아야.”

모르고 봐도 좋은 놈이 세상에 수두룩하다.

이런 막장 세상에서 알고 봐야 좋은 놈은 필요 없다. 알고 보는 과정이 강제된다는 건, 그 새끼의 가성비가 구려 터졌다는 뜻이다.

그냥 나쁜 사람과 다를 게 없다.

“그, 그게 뭐예요… 흐흑! 그게, 뭐냐고요……!”

수아는 울먹거리며 계속 그 말만 반복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전진할 뿐이다. 방해되는 건물 잔해, 그리고 인간들을 죄다 치워나가면서.

“…….”

그런 천신만고 끝에 선릉역 지하까지 도달했다.

“…….”

“…….”

그래서. 우리는 그 음습한 지하도에서 신의 기적을 목도하게 되었을까?

수아의 간절한 바람대로, 도움을 부르짖던 친구와 무사히 만날 수 있었을까?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 만나긴 만났다.

“유, 유미야……?”

다만 수아의 절친이라는 유미… 성유미 씨는, 이미 수아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지. 모습은 둘째 치고. 사람도 아니었다.

―수, 수아… 수아야… 아악. 가각.

말하는 게 좀 늦었는데. 미궁 던전 타르타로스는 기생충들의 군락이다.

잡몹 및 던전 마스터가, 전부 기생형 생물들이다.

―수, 수아, 야아아아, 아, 아가가가…가각……!

인간을 죽이고. 죽인 인간을 숙주 삼는다.

그리고 그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또 다른 인간을 죽인다. 그러면 새로운 숙주가 된다.

그것을 무한반복 하는 기생충.

―가가가가가각!!

뿌드득, 우지직!

성유미의 두 눈을 뚫고 솟아난 달팽이 같은 촉각. 등가죽을 찢고 자라난 8개의 다리. 쩍 벌어진 입 안에서 뒤룩거리는 거대한 눈.

―그아가가각! 가아아악!!

쇠 긁는 듯한 괴성은 가로로 쭉 찢어진 뱃가죽 안에서 나온다.

입이었다. 훤히 열린 그녀의 배 안에는, 장기 대신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유, 유, 유미… 아, 아아!!”

뒤틀린 황천의 마법소녀 대변신 과정을 눈앞에서 봐버렸으니. 수아의 멘탈이 박살 나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수아는 머리를 쥐어 싸매고 연신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일단 그 시점에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수아의 친구인 성유미 씨를 만나고. 구해내는 것. 실패해서 문제지 달성은 달성이었다.

그 시점부턴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해 선릉역 지하도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퀘아아아악!

박살 난 광고판을 뚫고, 수많은 지하상가들을 비집고.

심지어 지하철이 멈춘 지하도 너머에서도.

―키이이!

―키기기기기!!

우글우글우글.

인간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들이, 속속들이 스멀스멀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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