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46화 (46/235)

46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2)>

이세라는 결국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을 탈의해 버렸다.

나는 망치에 한 대 얻어맞은 듯 망부석이 되었다.

야릇한 침묵이 강림했다.

“…….”

“…….”

분명 난 박상아의 행방을 이 여자에게 물어봤다.

그것뿐이다. 그 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잠깐 정신을 잃었었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잖아. 뭔가 중간 과정이 숨어있지 않고서야. 갑자기 왜 이런 그림이 나오냐고.

내 머리론 도저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옷은 왜 벗냐.”

이해할 수 없으니 질문을 했다.

이세라는 화들짝 어깨를 떨었고. 이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 이것밖에… 방법이 없어서요.”

나온 대답은 그것이었다.

얼굴이 귀까지 새빨갛다.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떨린다.

제 손으로 벗은 것치곤 굉장히 부끄러워하고 있다.

“방법이 없다?”

이해 못할 태도에 이해 못 할 말. 의문의 연속이다.

나는 결국 한 번 더 물어봤다.

“무슨 방법을 말하는 거지.”

“상아를 살릴 방법… 이요.”

“…….”

대답은 인상 깊었다.

내 살해 의도를 그녀가 이미 간파했다는 뜻이니까.

이세라가 예언자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나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이냐.”

이쯤 되면 박상아의 목숨 따윈 아무래도 좋다.

내 관심과 주목은 눈앞의 여자, 이세라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나의 이글거리는 살기가 피부로 느껴졌음인가. 이세라는 반라가 된 몸을 한껏 움츠렸다.

“사, 사실, 저는…….”

이름. 나이. 그리고 자기의 정체부터 박상아와의 관계까지. 소상히 밝히기 시작했다.

전 S급 헌터. 협회가 철저하게 숨겨왔던 진짜배기 예언자.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그녀가 나의 살의를 간파한 것을 납득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되는데.”

“네……?”

“미래를 읽는 것과 갑자기 스트립쇼를 하는 거. 무슨 관련이 있는 거냐.”

“아, 그… 그게.”

대놓고 지적하자, 이세라는 화들짝 얼굴을 붉혔다.

그녀가 손발을 연신 꼼지락거리며 더듬더듬 목소리를 흘렸다.

“당신은 이제, 저한테 세 가지 선택지를 주려고 했을 거예요.”

사실이다.

갑자기 이세라가 벗어젖히는 사태만 없었으면. 나는 그녀에게 세 가지 선택지를 주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었을 거다.

그 선택지가 뭐냐 하면…….

“박상아의 위치를 순순히 불거나.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술 한 잔을 건네주거나. 맞죠?”

내 생각을 그대로 출력하듯, 이세라가 선수를 쳤다.

좀 어안이 벙벙해진다. 나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전부 정답이다.”

“역시…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군요.”

이세라는 미적지근하게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주절주절 말을 덧붙였다.

“상아의 위치를 순순히 불어주면… 당신은 상아를 곧바로 죽여버리겠죠.”

“그래. 그럴 생각이었어.”

“제가 자결을 하면. 여기를 중심으로 보이는 족족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해요.”

“그것도 맞다.”

“그리고 제가 칵테일을 드리면… 당신은, 곧바로 저를 죽여버리겠죠.”

“…….”

“당신을 진정시킬 방법. 정확히 말하면, 잠깐이라도 살인 행진을 멈출 방법. 수많은 미래 중에서도 이것 하나뿐이었어요.”

이세라는 내게 빤히 얼굴을 마주했다.

기분 탓인가. 눈을 감싼 시커먼 천 쪼가리 안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피식.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게 지금 네 행동이냐.”

“…네, 네. 당신이 도저히 예측도 못할 정도의, 돌발 행동이죠.”

“그래서. 원하던 미래는 실현될 것 같냐?”

“아직 아무도 안 죽이셨잖아요?”

“…….”

그 말이 맞군.

실제로 지금 나는 당황한 나머지, 작심했던 살인 계획조차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짝짝짝. 순수한 경탄을 담아 박수를 쳤다.

“기분 나쁠 정도로 정확하다. 놀라운데.”

“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정말로 저는, 미래의 가능성들을 엿보는 스킬을 갖고 있어요.”

“흠.”

전에도 말했는데.

세계관은 곧 그 사람의 상식관이다.

예언 스킬 같은 게 진짜 실존한다니. 수백 번의 영원회귀로 상식관이 개박살 난 나조차, 그건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지. 오히려, 반복했기 때문에 더 납득이 안 돼.’

대한민국 영토를 뒤덮을 수 있을 정도로 몬스터의 시체를 쌓았다. 이때 기준으로도 최소 수십만 마리는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도 예언 스킬 같은 건 구경도 못 해봤단 말이다.

“일단 네가 던전 마스터가 아닌 것에 감사해라. 이세라.”

“…아, 네?”

타인의 스킬은 아이템과 달리 죽여서 뺏을 수 없다. 아니었으면, 이미 진작에 이세라의 목은 내 손에 잘렸다.

나는 별안간 주머니를 뒤져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들었다.

“혹시 모르니 테스트나 하지.”

팅. 가볍게 튕겨 공중에서 낚아챘다.

쥐고 있던 동전을 왼손 손등에 포개어, 그대로 이세라의 얼굴 앞에 가져간다.

“그림이 앞. 숫자는 뒤다.”

코인 토스를 10번 연속으로 맞출 확률. 2의 10승 분의 1.

0.001%보다 살짝 적은 걸로 안다.

“열 번을 할 거다. 틀리는 순간 네 목은 반으로 접힌다.”

그 정도 확률을 운으로 때려 맞힌다면. 그건 어떤 의미에선 예언보다 대단한 능력이다.

내 의도를 이세라도 눈치챈 듯하다.

“으음.”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핏기 없는 입술을 천천히 뗀다.

“앞. 뒤. 뒤. 뒤. 앞. 뒤. 앞. 앞. 뒤. 뒤네요.”

“…….”

순간 벙쪘고.

잠시 후에야 이해했다.

“…아. 그래.”

퍼포먼스를 좀 아는 여자군. 열 번의 결과를 한꺼번에 말해버릴 줄이야.

인정하지. 방금 건 좀 예언자 같았다.

“흐.”

나는 피식 웃으며, 우선 이번 판의 동전을 확인해 봤다.

앞면. 당연하다는 듯이 이순신 장군이 얼굴을 내민다.

“…우선 첫 번째는 정답인가.”

나는 계속해서 동전을 튕겼다. 그리고 곧바로 앞뒤를 확인했다.

그 과정을 진득하게 9번 반복했고. 그 결과는?

“진짜 예언자 맞구만.”

반전은 없었다.

전부 정답이었다.

“축하한다. 이세라. 네가 원하던 미래가 왔다.”

“그, 그 말은……?”

“박상아도 너도, 그 외에 아무도 안 죽여주지.”

“…후아아.”

이세라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 네가 안심하고 있을 땐가? 내 생각엔 아닌 것 같은데.

내 관심사를 돌려버렸잖아. 네가 대가를 지불할 시간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조, 조건이요? 뭐죠?”

“내일부터 12월 27일까지. 한국에서 이틀에 한 번씩 게이트가 붕괴할 거다. 이건 이미 알고 있나?”

“……!”

“그 붕괴할 게이트가 무슨 던전이냐. 15개를 순서대로 말해. 진짜 미래를 읽는 예언자라면… 그것도 못 읽을 이유가 없겠지?”

“아. 그, 그건…….”

이세라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그녀가 말끝을 흐리더니, 입을 닫고 고개를 푹 수그린다.

“…뭐냐.”

잔뜩 기대하고 있던 나로선 당혹스러운 반응.

나는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문제라도 있냐.”

무심결에 살기가 섞인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들짝, 이세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 그게… 네. 죄, 죄송해요. 요청하신 부분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리고 이세라는 내 말에 긍정하며, 침통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흐음,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고. 이내 입맛을 다시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유독 붕괴할 던전들에 대해서만 미래가 읽히지 않던가?”

“아… 네. 어, 어떻게 그걸?”

단박에 정답을 맞히자 이세라가 경악한다.

나는 재차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럴 것 같았다.”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다. 뭐 하나라도 쉽게 풀리면, 내 회귀자 인생이 아니지.

어쨌든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믿어주지.”

“…어? 이, 이렇게 쉽게요?”

“얘기가 원만하게 흘러가던 지금 상황에서, 네가 굳이 목숨 걸고 초를 칠 이유가 없어. 그래서 믿는다.”

“그, 그렇군요…….”

나는 아직도 어색하게 쭈뼛거리는 이세라를 스윽 훑어봤다.

이내 툭, 던지듯이 입을 열었다.

“대신 다른 걸 좀 부탁하지.”

“다른… 거요?”

“그래.”

“뭐, 뭔가요? 제 선에서 가능한 거라면 기꺼이……!”

“네 선에서 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이세라 본인만이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다.

나는 그녀의 정면으로 삿대질했고.

“옷 입어라.”

부탁했다.

* * *

길었던 추억팔이는 마무리됐다.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이세라는 아까부터 통 말이 없다. 나는 그녀의 행색을 빤히 쳐다봤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군.”

이세라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만한 상태도 아니다. 시계를 보니 시간도 벌써 새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의 옛날얘기에 나도 좀 신이 났던 듯하다.

“네 얘기는 다음에 듣는 걸로 하자. 사실 많이 궁금하지도 않긴 했어.”

내일 일어날 8차 붕괴는 새벽바람부터 시작된다.

적당히 수면을 취해놓으려면 지금부터는 자야 한다. 아무리 스탯이 강화돼도 수면욕과 식욕, 성욕 같은 기본욕구는 해결할 수가 없다.

“먼저 잔다.”

비척비척 걸어가, 근처에 있던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대충 아무렇게나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

“저기, 이불이라도 갖다 드릴까요?”

이세라가 달아오른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물어온다.

나는 손사래를 쳐서 만류한 뒤. 다시 쪽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아.”

선잠에 빠지기 직전. 나는 별안간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생각났다. 깜빡 잊을 뻔했다. 나는 절대 이대로 자면 안 된다.

한 가지. 필수적인 조치를 잊고 있었다.

“이세라.”

“네, 네?”

“부탁이 하나 있다.”

“부탁……?”

“들어줄 거냐.”

“제, 제 선에서 가능한 거라면요? 기꺼이.”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세라.

내 부탁에 이세라는 항상 저렇게 대답을 했지. 믿음직한 미소를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역시 내 편인 NPC 하나 옆에 있는 것도, 여러모로 나쁘진 않군.

“부탁할 건, 다른 게 아니고…….”

* * *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이브를 싸매고 강남의 선릉역 1번 출구로 향했다.

아직 동도 제대로 트지 않은 시각. 새벽의 어스름이 사위를 뒤덮은 6시 언저리였다.

―키에에에엑!!

괴성이 지하 깊은 곳에서 끓어오른다.

8차 게이트 붕괴의 서막을 알리는 소리였다.

―꺅!! 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구동을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 너머. 지하의 어둠 속에서 수많은 비명이 섞여 울렸다.

나는 그제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후우.”

짧게 심호흡을 했다.

계단을 밟고 지하철역 쪽으로 빠르게 내려간다.

이번 8차 붕괴는 지하다. 선릉역 일대를 중심으로, 서울의 2호선 지하도 전역에 몬스터의 테리토리가 구성된다.

“지하철은… 역시 멈췄나.”

선릉역 개찰구 앞에서 가만히 중얼거렸다.

시선은 좀 더 아래. 바닥 너머의 지하철도 쪽으로 가있었다.

[스킬 발동: 간파안(看破眼)]

새파랗게 변한 시야.

역 한가운데 미동도 않는 지하철이 훤히 보였다.

간파안은 기본적으로 적의 약점을 간파해 주는 스킬. 그러나 레벨이 마스터 레벨까지 올라가면서, 웬만한 벽 정도는 투시가 가능해졌다.

현자의 눈이 생긴 뒤론, 좀처럼 쓸 일이 없던 스킬이기도 하다.

“뭐, 멈추겠지. 아무래도.”

헌터 협회도 어제부로 괴멸했다.

정부 소속 계엄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어 초토화됐다. 국회의사당이 무너졌고 청와대도 박살났다.

정재계 주요 인사, 연예인, 기타 셀럽들이 수많은 민간인들과 함께 소리 소문 없이 죽어나갔다.

‘한국의 국가 체계는 이미 8할쯤 붕괴했다.’

지하를 향해 걸으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이미 갈기갈기 토막 난 인간의 시체들이 한가득. 역사 전체가 피로 새빨갛게 젖어있었다.

나는 깔끔하게 반토막 난 중년 남자의 머리통을 들어 올렸다.

“흐음.”

이 중년 남자는 아마, 이맘때부터 창궐하기 시작하는 ‘부랑자’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남자뿐만이 아니다.

거적때기 둘러쓴 채 사지가 찢긴 노인. 저쪽에 배 한가운데가 뻥 뚫려 죽은 여고생도. 전부 부랑자들이다.

‘살 이유를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하로 많이 모였지.’

집이 박살났다.

가족들이 몰살당했다.

별의별 이유로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 그런데 목숨은 아직도 붙어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정부도 초토화돼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집 바깥에는 폭도들이 들끓는다.

그저 떠돌고 방황하다가, 똑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홀린 듯이 이곳으로 모였다.

그래서 열차도 안 다니는 지하철 역사에 시체가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절단면은 아주 지저분한 편… 그리고 배에 둥근 관통상.’

나는 조사를 마친 남자의 머리통을 대충 던져버렸다.

철퍽. 질척한 파육음과 동시에, 중얼거렸다.

“그놈들이군.”

파악했다.

제66던전. 미궁 던전 타르타로스다.

“…옛날 생각나네.”

8차 붕괴에서 타르타로스.

X발.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내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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