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1)>
이세라가 카운터에 턱을 괴며 말했다.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얘기를 듣고 싶네요.”
스륵.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술잔을 미끄러뜨렸다.
이번에도 진토닉. 뇌물 비슷한 건가.
고개를 가로로 슬쩍 저었다.
“치매 있냐. 어제 처음 만났으니 어제 일을 떠올리면 된다.”
“그 얘기 아닌 거, 알고 있잖아요?”
당연히 안다.
이세라에게 있어서 첫 대면이 아니라. 내 기준의 첫 대면을 말하는 거겠지.
이번 회차가 아닌 전생의 자기 얘기를 해달라. 뭐 이런 소리다.
“혹시, 얘기하기 거북하신 내용인가요?”
이세라가 살짝 주저하며 넘겨짚었다.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딱히. 그냥 한 번 튕겨봤다.”
“푸후. 엉뚱한 면도 있으시네?”
“나보다는 네 쪽이 문제겠군.”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얘기하는 내 쪽은 괜찮은데. 네가 듣기엔 좀 거북한 내용일 수도 있다.”
“어… 무슨 내용이길래?”
불안한 듯이 상체를 물리는 이세라.
이내 그녀가 앗, 하고 짧은 탄성을 흘리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화악,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제, 제가 진짜로, 그랬어요?”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들이 미래시에 보여버린 듯하다.
이번엔 고개를 상하로 끄덕였다.
“진짜로 그랬다.”
“에이. 거짓말.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요?”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랬다.”
“…으아.”
“나도 그래서 생각했지. 이것도 어지간히 정신 나간 년이라고.”
이미 다 보였다면 나로선 다행이다.
굳이 내가 나서서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도 흑역사라 굳이 언급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이세라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말해주실래요?”
기껏 없던 일이 된 흑역사를 굳이 파헤치려는 이세라.
아무래도 그녀에게 보인 미래에선, 내가 간략하게 요점만 설명한 듯하다. 안 그래도 지금 내가 그러려던 참이긴 했다.
“…….”
웬만하면 말리고 싶은 심경이지만.
내가 아는 그녀의 성격상, 말려도 끝까지 우겨서 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원한다면야. 말해줘야지.”
그러니 흔쾌히 수락했다.
쓸데없는 논쟁으로 시간 쏟는 건 사양이다.
이번 생에선 이미 수아랑 질리게 했다.
“정확히 몇 회차 전인지는 생각 안 난다. 대충 2백에서 3백 회차 전… 그러니까 7백 몇 회차였던 걸로 기억한다만…….”
나는 우리의 첫 만남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침잠된다. 한참 전의 전생 속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참고로 이거, 꽤 우울하고 질척한…….
그리고 기분 나쁜 이야기다.
* * *
날씨는 의외로 랜덤성 요소다.
회차마다 비 오는 날이나 안개 끼는 날, 눈 오는 날은 항상 다르곤 했지.
회귀자도 못 맞추는 게 그날의 날씨니 이거. 기상청의 노고에 새삼 경의를 표하는 바다.
“…….”
비가 많이 내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밤. 때 아닌 국지성 폭우가 서울 남부를 중심으로 쏟아졌다.
나는 입 꽉 닫고 폭우 속을 거닐고 있었다.
“…….”
11월의 비는 생으로 맞으면 춥다.
그래서 꽤 추웠다. 우산은 쓰지 않았으니까.
온몸이 흠뻑 젖어, 신체 말단에서 감각이 점차 사라질 정도다.
“…….”
왜 우산을 쓰지 않았냐?
감성적으로 좀 센치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소위 그냥, 가오가 잡고 싶었던 거지.
그날 강수아가 죽었거든.
“…….”
아직 1차 붕괴조차 시작하기 전이었다.
회귀 직후였다. 11월 27일에서 28일로 넘어가는 자정쯤. 죽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강수아는 죽어버렸다.
내가 죽였으니까.
“흐.”
회귀 후 그때 처음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비웃음이었다.
대상은 나다.
“…후련하군. 그래. 차라리, 후련해.”
이건 내가 한창 ‘네거티브 한정용 모드’일 때의 일화.
수십 회차 동안이나 집 안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고. 게이트가 붕괴하면 붕괴하는 대로 방치했던 시절의 얘기다.
“이대로 도망이나 다녀야겠다.”
내가 개입을 안 할 경우. 통상적으로 강수아는 4차 붕괴 즈음에 별의별 이유로 죽는다.
그리고 5~6차 붕괴 정도만 돼도 여지없이 대한민국은 망한다.
10차 붕괴 정도면 세계 인구 7, 8할 정도가 폐사한다.
전에 열렸던 게이트가 닫히지 못한 채 곧바로 다음 게이트가 열리고. 또 그다음 게이트가 이틀 간격으로 계속 열리니까.
멸망의 속도가 미친 듯이 가속되는 것이다.
15차 붕괴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없으면. 사실상 12차까지만 와도 인류는 쌈박하게 멸망해 있다.
유례없는 몬스터 천국의 개막.
지구는 몬스터들의 정육점 진열대. 인간은 지구라는 목장을 뛰노는 식용 고기들로 전락한다.
살아남은 극소수 인간들의 처절한 유년기가 시작된다.
“5년은 된 것 같네. 밖에 나와 본 것도.”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적어도 50회차 이상이다. 나만이 없는 세계의 풍경을, 철저한 방관자가 되어 감상했다.
그리고 이번 회차엔 정말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
“어, 오빠? 이 밤중에 무슨 일…….”
나오자마자 한 일은 옆집에 찾아가기.
푸직. 일언반구 없이, 수아의 뱃가죽에 단검을 쑤셔 박았다.
“아, 윽… 어??”
고통. 그리고 의문과 혼란.
수아의 표정이 사정없이 찌그러졌고. 떨리는 눈은 내 얼굴을 필사적으로 훑는다.
주륵, 후두둑.
새빨갛게 젖은 그녀의 티셔츠에서 핏물이 콸콸 흘러나온다.
‘스킬 발동.’
[스킬 발동: 페인 킬러]
[스킬 발동: 버서크]
신체의 모든 통각을 차단해 버리는 스킬.
그리고 체력이 낮아질수록 흥분감과 황홀감을 극한까지 고양시켜 주는 스킬을, 차례대로 수아의 몸에 발동했다.
“아… 하, 흐읏……!”
천천히 초점과 생기가 사라지는 수아의 눈.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되며 황홀경에 젖어 들었고, 이내 털썩. 온몸에서 완전히 힘이 없어졌다.
뿌득. 나는 그제야 단검을 뽑았다.
“이게 제일 해피엔딩이야.”
수아가 죽는 순간.
아마 극상의 황홀함과 쾌락을 느꼈을 거다.
어느 던전 마스터도 이렇게 자비로운 죽음을 선사해 주지 않는다. 그것을 수아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건, 나뿐이다.
그래.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오직 나만.
나뿐이었던 거다.
“빨리 퇴장하고… 푹 쉬어라. 수아야.”
수아를 이 지옥에서 최대한 빨리 빼내야 한다.
그게 바로 올바른 자비다. 그녀가 더는 고통받지 않도록. 순식간에 안락사 시켜주는 것.
이게 나의 권리요. 의무다.
‘이걸 위해서… 나는……!’
그래. 이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
내가 영원회귀를 반복했던 거야. 그런 게 틀림없어.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할 정도로, 당시의 나는 완전히 꺾여버렸고.
이미 어지간히 미쳐있었다.
“후우.”
여운에 젖은 한숨을 흘렸다.
수아를 죽이고 빌라 밖으로 나온다. 쏟아지는 폭우를 얻어맞으며 정처 없이 걸었다.
그야말로 유령처럼. 목적 없이 서울 밤거리를 배회했다.
“큭. 크크큭…….”
아직도 심장이 벌컹댄다.
이번 회차. 지금 이 세상엔 더 이상 수아가 없다.
그 사실이 더없는 공허함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흐. 흐…….”
문득 웃음이 잦아들었다.
슬픔과 의문이 범벅됐던 수아의 눈동자. 죽어가던 그녀의 표정이 계속 어른거렸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뭐 어때. X발.”
어차피 다 잊을 거잖아.
내가 뒤져버리면. 앞으로 한 달만 지나면. 모두 리셋된다.
아무리 서로 즐거웠어도, 슬펐어도, 증오하거나 사랑했어도. 몸을 섞었거나, 서로 죽이려 했어도. 결국 전부 다 없었던 일이 된다.
내가 그녀의 연인이 되든, 살해자가 되든.
결국 다 죽고, 다 잊어버릴 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세상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겠지.
아무리 개지랄해도 결괏값이 한없이 똑같은데.
나는 지금까지 대체, 뭔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냐고.
“흐. 흐흐. 푸흐흐흐.”
신, 혹은 그에 준하는 누군가야.
네가 이 영원회귀로 바라는 게 한정용의 흑화였냐?
그렇다면 기뻐해라. 성공했다.
“화풀이나 좀 하고… 리셋할까?”
나는 틀림없이 그때 흑화를 했다.
방관자를 넘어서. 이 X같이 잔인한 세상에 패악질을 부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던전 마스터들아. 우리 내기나 하자?”
이번 생에 너희들과 나. 누가 더 사람을 많이 죽일까.
지금부터 겨뤄보자.
“어디.”
푸쉬익!
비행 스킬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밤하늘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장난감처럼 작아진 서울을 내려다보며, 나는 이죽거렸다.
“어디부터 시작을 해볼까.”
사실 시작이야 어디든 상관없겠지. 결과적으론 전부 다 부수고 죽여버릴 거니까.
그래서 대충 임의의 지점을 선택했고. 그곳을 향해 빠르게 추락했다.
털썩. 급강하한 속도가 무색하게, 깃털처럼 사뿐히 착지한다.
“…여긴…….”
주변을 둘러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후줄근한 아파트 단지 인근. 낙후된 상가였다. 주소지가 노원구 상계동이라는 건 좀 나중에 알게 된다.
‘뭐, 어디면 어떠냐.’
여기부터 시작해 보자.
한정용의 인류 멸망… 아니. 세계 정화 프로젝트.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렇게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인기척을 찾아 나섰다.
‘길거리에 사람이 없군.’
폭우 때문인가.
아무리 걸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최초 먹잇감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길 잠시. 곧 먹잇감이 하나 포착됐다.
“아.”
여자였다.
명품을 몸에 줄줄 두르고, 타이트한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
고급 우산을 쓰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폭우를 가르고 있다.
“…….”
날카롭고 도도한 인상하며, 복장하며. 이 낡아빠진 동네와는 좀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다른 것보다도 낯이 익어서 좀 놀랐다.
“저거… 박상아 아닌가.”
지인이란 소리는 아니다. 인터넷에서 꽤 많이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그녀는 무려 S급 헌터 박상아. 그것도 서열 5위의 오버랭커니까.
‘운빨 끝내주네.’
정체를 알고 나서는 히죽.
한층 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전생에서 당한 게 많다 보니 난 헌터를 싫어한다. 강서윤을 제외한 랭커와 오버랭커는, 가히 몬스터와 비견할 정도로 혐오한다.
‘처음은 너다. 박상아.’
박상아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파지직! 은폐 스킬로 전신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내 신형은 빗속에 녹아들 듯 홀연히 사라졌다.
박상아는 피지컬 계열 헌터.
내 마력 은폐장을 죽었다 깨어나도 간파하지 못한다.
‘어느 타이밍에 죽일까.’
살벌한 고민을 하며. 느긋하게 미행을 계속하자니.
덜컹. 문득 박상아는 한 상가로 진입했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빠르게 내려갔다.
“…….”
박상아는 지하에 자리한 칵테일 바 앞에서 멈춰 섰다.
그녀가 별안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행색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 꺾었다.
‘오버랭커가 저렇게 조심을 하다니. 어디길래.’
띠리링.
박상아가 출입구를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간다.
나는 잠깐 미행을 멈추고, 가게 간판에 적힌 이름을 가만히 읽어본다.
[오라클]
알록달록한 네온으로 그렇게 써있다.
치지직. 은폐장을 풀었다.
‘뭐… 들어가 보면 알겠지.’
나도 출입문을 열고 바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카운터 너머. 눈가를 안대로 칭칭 뒤덮은, 기묘한 여인이 서있다.
이세라를 처음 봤을 때. 솔직한 감상은 이거였다.
‘뭐냐. 저 안대는. X발 일리단이야?’
나는 그 당시 이세라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전 S급 헌터라는 건 물론이고. 예언자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지.
예언자라는 초희귀 특성 덕분인가. 이세라는 현역 시절에도 관련 정보가 엄청 철저하게 통제됐었다.
D급 따리 말단 헌터인 나는 존재조차 몰랐을 정도다.
“어서… 오세요.”
그래서 이세라가 이미, 내 통제 불능의 살의를 간파했다는 것도 몰랐고.
헌터 시절 절친인 박상아를 황급히 숨겨줬다는 사실도, 당연히 모르는 상태다.
“…….”
나는 말없이 카운터로 다가가 걸터앉았다.
“…….”
이세라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핥는 듯이 주변을 둘러본다. 점포 내 박상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흐. 흐흐.”
나는 실실 웃으며 이세라를 빤히 쳐다봤다. 기분 나쁜 웃음 때문인지, 이세라가 어깨를 흠칫거렸다.
잠깐 선녀와 나무꾼 놀이나 해보기로 했다.
“방금 들어온 여자. 어디에 있냐.”
“…아, 예?”
“S급 헌터 박상아. 모른다고는 못 하겠지.”
“그, 그게. 혹시 사람을 잘못 보신 건……?”
“분명히 여기로 들어왔다. 3미터 뒤에서 바짝 따라왔으니 잘못 봤을 수는 없어.”
“윽.”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이세라. 온몸을 움찔거린다.
이내 그녀는 안절부절 발을 동동 굴렀고. 초조한 듯이 손톱을 깨물다가.
“하아아.”
깊은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분한 듯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직후 스륵, 스르륵.
정장 마이와 넥타이, 그리고 와이셔츠까지.
이세라가 하나씩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
이건 대체 뭔 상황. 하도 뜬금없는 전개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느 정도나?
“쿨럭. 크흡. 켁.”
침 삼키다 사레들릴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