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1)>
수아는 머리를 푹 수그리고 한참 침묵에 잠겼다.
“…저기요. 오빠.”
그리고 이내 조심스레 입술을 뗀다.
“어, 어쨌든 결론만 말하면. 나쁜 마음 먹고 저를 재운 건 아니었다는 거죠?”
오호. 여기서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시겠다?
몰아치는 쪽팔림을 회피하기 위해 정면 돌파를 택하는가. 멋진 전략이다.
나로서도 나쁠 건 없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절대 아니지.”
“지금까지 설마, 이,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죠?”
“그것도 절대 아니다.”
연속으로 단호하게 부정했다. 명백히 사실이기에 주저는 없다.
그것만으로도 수아의 얼굴에서 불안이 많이 사라졌다.
“진짜죠? 저, 믿어도 돼요?”
“믿을지 말지는 네 자유다.”
“예? 제 자유요?”
“나쁜 마음이 없었다는 증거랄 게 딱히 없어.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안심시켜 줄 수 없는 게 미안할 따름이다.”
“…아하핫.”
내가 차분하고 정중하게 말하자, 수아는 대뜸 미소를 머금었다.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이다.
“다행이네요. 덕분에 안심했어요.”
“뭐가 말이냐.”
“오빠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요.”
“…무슨 근거로.”
“에이. 오빠는 거짓말하면 바로 얼굴에 티 나요! 제가 몰라봤을 리가 없다구요. 몇 년이나 알고 지냈는데요!”
내가 강수아에게 거짓말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 바로 이것이다.
나는 씁쓸하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렇구나.”
수아는 나의 거짓말을 지나치게 잘 간파한다.
그래서 거짓말의 말로는 보통 비극이다.
의외로 대부분의 상황은, 사실대로 이실직고하는 게 오히려 잘 풀린다.
바로 지금처럼.
“갸우! 흐햐아! 맘마, 맘마 마싯서어…….”
옆에선 그새 딸기우유를 싹 비운 이브가 만족스럽게 헤죽거렸다.
인정하지. 이번엔 적절한 타이밍에 분위기를 환기시켜 준 이브의 공도 컸다.
‘나중에 포상으로 딸기우유나 줘야겠군.’
포식하고 잠들려 하는 이브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옆에서 수아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 * *
이맘때의 세계정세는 상당히 불안정하다.
게이트 붕괴로 우리나라에서만 죽은 사람이 벌써 수십 만 명. 거의 50만 명대를 바라보고 있다.
첫 게이트가 붕괴하는 11월 29일부터, 고작 10일 가량.
열흘 만에 게이트가 5번이나 붕괴되고. 죄다 죽어나간 거다.
[아니 X발. 이거 진짜 큰일 난 거 아님?]
[게이트 왜 자꾸 붕괴한대? 뭐 아는 거 있음?]
[우리 엄마 어제 광진구 사태 때 돌아가셨다. 질문 안 받는다. 지금 너무 힘들다…….]
항상 날 서있고 조롱기가 가득한 인터넷 댓글에서조차 웃음기가 점점 사라진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사람들이 심각성을 느낀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거 아냐? 우리 이제 다 개X되는 거 아냐?
그걸 이제 와서야 직감한다.
[정부는 뭐 하고 있냐. 빨리 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님?]
대중은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다.
제일 만만한 게 정부. 그리고 비난받을 명분이 빵빵한 헌터 협회였다.
[X발 헌터 협회 무능한 개새끼들 ㄹㅇ. 세금 빨아 처먹고 지금까지 뭐함?]
[헌터 새끼들 평소에 존나 뻐기고 다니더니. X발 사람들 처뒤져 나갈 때 뭐했냐?]
[개족같은 새끼들. 랭커부터 차례대로 다 참수시켜야 됨. ㄹㅇ로다가.]
민중들이 영웅의 탄생만큼 좋아하는 게 뭘까? 바로 영웅의 전락이다.
전에 없던 맹비난이 그들을 향해 쏟아졌다.
[비정상적 게이트 붕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정부의 특별 조사팀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헌터 협회는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정부와 협회 측에서는 그 말만 매크로처럼 내놓았다.
그게 엄연히 사실이긴 한데. 인간의 힘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옛적에 지났다. 그렇기에 나오는 아웃풋도 딱히 없다.
그 점이 대중들의 분노를 더욱 부추겼다.
“정부는 국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헌터 협회는 무얼 했나! 양호성 회장을 단죄해라!!”
“단죄하라! 단죄하라!”
곳곳에서 시위, 그리고 무력 폭동이 일어났다.
화염병으로 활활 타는 광화문 거리. 수많은 사람들이 헌터부대, 전경대와 맞붙어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뉴스에 자주 비쳤다.
유례없는 혼란의 시대가 도래한다.
[전국 강력범죄율 폭등… 사상 최대치 기록.]
[사이비 종교 횡행으로 인한 사회 혼란, 이대로 괜찮은가?]
이때다 싶어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자기 욕망을 각양각색으로 쏟아내는 버러지들이 속출한다.
살인. 강간. 사기. 인신매매. 집단적인 폭행 및 사이비 종교까지.
범죄율은 전주에 비해 2037%나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것이 오늘.
2031년. 12월 7일. 내가 직면한 1001번째 현실이다.
“…수아야.”
그리고 이건 오늘 아침의 일이다.
강서윤이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피곤에 찌든 얼굴을 비쳤다.
“아, 언니! 웬일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밥은 잘 먹고…….”
“아니. 수아야. 인사는 나중에 하고.”
피해복구에 쉴 새 없이 투입되었던 강서윤은, 반가워하는 수아의 인사도 매몰차게 뿌리쳤고.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턴 절대. 절대! 내 허락 없이는 집 밖에 나가지 마. 알겠지?”
말은 부탁이었지만 사실상 명령이다.
언니의 얼굴이 워낙 진지했기 때문일까. 수아는 찍 소리도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아, 응. 아, 알았어……?”
“좋아. 널 믿을게, 수아야. 너도… 나 믿지?”
“으, 응. 그야 당연하지!”
“그래. 고마워. 날 믿어줘. 부탁해. 수아야.”
강서윤은 그 말만 마치고 바로 떠나려 했다.
집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확답. 강서윤은 단지 그것을 듣고 싶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국에도 집에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떠나기 직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는 우리 집에도 찾아왔다.
“수아가 널 많이 의지하고 있어. 나도 알아. 분하지만, 나보다 널 더 믿는 것도 안다고.”
아무튼 강서윤은 대뜸 우리 집에 찾아왔고. 간략한 자초지종과 함께 혼잣말을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끝내는 이런 부탁을 남겼다.
“그러니까. 수아를 꼭 지켜줘. 꼭이야.”
그 자존심 높고 드센 강서윤이, 나한테 90도로 고개를 숙여 정중히 부탁했다.
“부탁해. 수아를 지켜줄 사람, 이제 너밖에 없어. 정용아.”
당연히 이건 처음 맞이한 전개가 아니다.
최소 200번 이상은 반복해 본 토할 것 같은 레퍼토리다.
그게 아니면, 강서윤이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수아와 뭔 대화를 했는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겠는가.
“걱정하지 마라. 서윤아.”
그래서 내가 해줄 말도 변할 게 없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강서윤이 가장 만족할지. 이미 전부 알고 있다.
“네가 그러지 않아도 난 네 동생을 지킬 거다.”
여기서 천만다행인 점.
거짓말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천 번 넘게 죽었다 깨어나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수아만은 살려낼 거야.”
부탁한 강서윤보다도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강서윤이 그 기세에 살짝 주춤거렸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푸흐흐. 뭐래. 십덕 새끼가, 어디서 또 뭔 애니를 봤길래 지랄이람.”
악수 요청.
나는 거침없이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너도 조심해. 한정용. 괜히 죽거나 그러면… 나도 꿈자리 사나워져.”
문득 강서윤이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린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그녀의 얇은 손을 보며, 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너야말로 조심해라. 강서윤.”
“응? 뭐?”
“아니. 아니다.”
“아니긴. 방금 뭐라 그랬잖아. 뭐라 그랬는데?”
“독수리 부리는 왜 노랄까. 그렇게 말했어.”
“…뭐어?”
강서윤이 해괴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내 찰싹! 내 손바닥을 가볍게 후려치고 악수를 그만뒀다.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가 입가에 걸려있었다.
“흐흐. 예나 지금이나 이상한 새끼라니까! 진짜로.”
그렇게 강서윤은 떠났다.
그녀가 떠나고 휑해진 현관 복도를 잠시 주시했다.
입가에 쓴웃음이 슬그머니 맺혔다.
“조심하라니.”
강서윤에게 하려던 마지막 말은 일부러 얼버무렸다.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강서윤은 곧 죽을 텐데.’
내일. 6차.
6차 붕괴 때 확정적으로 사망한다.
그런데 뭘. 강서윤이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데. 나조차 막을 수 없는 강서윤의 죽음을, 한참 약한 그녀가 발악한들 막을 수 있겠냐고.
“…할 일이나 하자.”
덜컹.
현관문을 닫고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소파 앞에서 멈춰 섰다. 소파 위에는 딸기우유를 세상 행복하게 할짝이는 이브가 앉아 있다.
“우에?”
이브가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나를 쳐다봤다.
빤히 마주 보던 붉은 시선이, 어느 순간 씨익. 짙은 호선을 그렸다.
“히히. 아빠아. 왜애?”
태어난 지 열흘도 안 된 애한테 쓸 표현은 아니긴 한데.
실로 고혹적인, 요망한 기색이 느껴지는 미소와 눈동자. 그렇게밖에는 형용할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 거래를 하자.”
이브는 더 이상 아이템 ‘하트 기어’가 아니다. 명실상부 말이 통한다.
그래서 난 이 외계인 년을 더 이상 갓난쟁이 취급하지 않는다.
“1시간. 오늘 1시간만 내게 힘을 빌려줘라.”
동등한 인격체. 그렇게 취급하기로 했다.
그러니 앞으로 이브의 힘을 사용하고자 할 땐, 그녀의 허락을 맡을 것이다.
나는 손가락 세 개를 쫙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대가는 딸기우유 3개.”
동등한 인격체 취급은 하되. 거래의 수준과 니즈는 좀 맞춰줄 필요가 있지.
억만금의 재화도 지금 이브에겐 딸기우유 3개만 한 가치가 없다.
“헛.”
이브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큰둥하게 쳐졌던 이브의 눈에 쌍심지가 들어왔다.
거기서 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것도 500ml짜리로.”
“갸우! 응애애!!”
이브가 회까닥 돌아간 눈으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녀가 내게 온몸으로 말한다.
‘뭐 하고 있어! 어서! 어서 내 힘을 빌려 쓰지 않고!!’
아직 거기까지 디테일한 감정 표현은 좀 힘든 것인가. 입 밖으론 다급한 어조로 “응애, 응애애!” 하는 옹알이만 나왔지만.
딸기우유에 대한 욕망이 그득한 그 시선은,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좋아. 계약은 성사되었다.”
나는 왼손으로 이브를 안아 들었고. 오른손은 아공간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파지직! 이내 허공의 균열 속에서 딸기우유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선불 계약금이다. 이브.”
500ml짜리 딸기우유를 이브에게 안겨줬다.
이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했다.
“우햐아! 갸우우우!!”
“나머지 둘은 내 용건이 끝나면 주지. 그러니 그동안 잘 부탁한다.”
“응응! 아라써, 아빠!!”
해맑게 웃으며, 딸기우유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이브.
나는 그녀를 안아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가자.”
“우웅! 헤헷.”
낡은 빌라 복도를 빠르게 질러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쉬쉭. 복도의 난간을 박차고 하늘을 날았다.
* * *
내가 이브와 거래까지 벌여가며 하려 한 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다크 히어로, 레드 저거너트가 할 일이 뭐가 있겠냐.
악당 퇴치다.
“사, 살려줘. 제발……. 사, 살려달라고! 이 개새끼야!!”
아니지.
아가리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정확히는 ‘악당이 될지도 모르는 것’을 사전에 퇴치하는 중이었다.
“뭐, 뭐야! 다, 당신. 대체 뭔데!”
서울시 강남구.
수십 층짜리 거대한 건물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표면상으론 평범한 한 사옥.
거기엔 대낮부터 인간의 살점과 피로 점철된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왜!! 갑자기, 왜……!”
사옥의 가장 높은 곳. 회장실.
널찍한 실내에 토막 난 시체가 열 구 정도 뒹굴었고. 아직 유일하게 생존한 돼지 새끼 한 마리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이, 이 씨X놈아!!”
엎어져 오줌을 질질 싸는 저 돼지가 오늘의 메인 타깃이다.
나머지 시체들은 놈을 지키려다 죽은 경호원들. 일진이 좀 사나웠던 이름 모를 A급과 B급 헌터들이다.
“대, 대답해! 안 들려?! 대답 하라고! 이 개새끼야!!”
놈은 무에 그리 억울한지, 아까부터 날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후우. 나는 시뻘건 투구 안에서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용설 그룹 회장 우장선. 맞냐?”
그리고 벌벌 떠는 돼지 새끼에게 말했다.
드디어 처음으로 내가 입을 열어서인가. 돼지 새끼… 우장선의 눈가에 희망의 기색이 어렸다.
“오, 오냐! 알긴 아는구만! 내가 우장선이야 인마!”
“그래. 확인했다.”
“너. 이 X발, 대체 뭘 원하는 거냐!”
“…내가 원하는 거?”
“그래! 돈이냐? 지위냐? 아니면 뭐, 여자? 말만 해봐! 내, 내가 다 해줄 수 있……!”
“목숨.”
구구절절한 호소를 단박에 잘라먹었다.
우장선이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뭐, 뭐?”
“용설 그룹 회장 우장선의 목숨. 내가 원하는 거.”
“그, 그, 그런……! 이, 미, 미친 새끼가!”
정확히는 용설그룹 회장이 죽이고 싶은 게 아니다.
곧 대한민국 전역에 역병처럼 퍼질 사이비 종교. ‘던전교’의 창시자를 죽이고 싶다.
초대 교주 우장선.
그 개새끼를 죽이고 싶었다.
“그 외엔 없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철컹! 사복검을 장검 형태로 합쳤다.
뿌드드득! 그대로 우장선의 정수리에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구, 허, 커헉……!”
놈의 하체에서 칼끝이 튀어나왔다.
몸속을 채우고 있었을 내용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