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6)>
2031년. 12월 4일. 오후 11시 29분.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시 광진구. 서울 어린이대공원 동쪽 부근.
제5차 붕괴가 일어나는 곳은 바로 여기다.
―퀘에에에에엑!!!
하늘 전체를 진동시키는 듯한 포효 소리가 시작이었다.
웅장하고, 공포스럽고,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정체불명의 포효였다.
파지직, 빠지직!
어린이대공원 상공에 생긴 거대한 공간의 균열. 그 일그러진 틈바구니에서, 포효의 주인이 어기적거리며 기어 나온다.
―크르르… 캬아아악!!
굳이 표현하자면 거대한 지네 같다.
인간의 살점과 척추뼈를 덕지덕지 기워 붙여 몸통을 만들고. 그 양쪽에 거대한 팔뚝을 마구잡이로 기워 붙인 듯한… 터무니없이 거대한 지네.
―케아아아아악!!
연신 찢어지는 포효를 내지르는 얼굴. 얼굴도 인간의 면상을 닮아있었다.
입이 여섯 갈래로 찢어지고, 그 안에 무수한 이빨이 목구멍 너머까지 달려있다는 점은 물론 달랐지만.
―크그그그그그!!!
체장이 100미터. 직경은 약 3미터.
그리고 체고는 10미터를 훌쩍 상회할 듯한 거대한 괴물. 살아서 꿈틀거리는 악몽의 현현 그 자체.
그것이 허공의 균열을 비집고 나왔고.
쿠구구궁! 마침내 수많은 발을 지면에 내디뎠다.
“이번엔 너냐?”
나는 놈이 현현하기도 전에 이미 좌판 깔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품에는 하트 기어 베이비, 종말의 이브를 안고 있었다.
“응애!”
이브가 인상을 팍 찌푸리고 지네를 쳐다봤다.
이브를 안아 든 손으로 미약한 떨림이 전해져왔다. 그녀가 보기에도 몬스터 외관이 어지간히 혐오스러운 모양이다.
“응애! 응애!!”
이브가 내게 뭐라고 막 호소의 옹알이를 했다.
빨리 저 끔찍한 괴물 새끼 때려잡고 나랑 놀아줘라. 그런 요구가 전신에서 무럭무럭 쏟아진다.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주는 걸로 일단 분노를 달래줬다.
―쿠에에에엑!!
“응애애애!!”
눈앞에선 빌딩만 한 지네가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품에는 은발 적안의 갓난애가 버둥거린다.
기가 막힌 내 꼬라지에 절로 혀를 내둘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당연히 이브는 집에 두고 올 생각이었다.
5차 붕괴 시각이 다가오자, 나는 배리어를 점검한 뒤 어김없이 수아를 재웠고. 이브를 그 옆에 누인 후 어린이대공원으로 나오려 했다.
―응!! 애!!! 응애!!!
하지만 지금까지 비정상적으로 얌전하던 이브가, 그때만큼은 엄청나게 발광을 했다.
울고불고.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그 작은 몸이 할 수 있는 온갖 지랄발광을 순식간에 모두 이룩했다.
―빼애애애애액! 우아아아앙!!
목청이 얼마나 큰지, 온 빌라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내 집은 낡은 빌라라 방음이 잘 안 된다. 고작 3분 만에 사방에서 고함과 민원이 들어왔을 정도.
방 전체에 침묵 마법을 걸어도 무용지물이다.
공교롭게도 이브는 모든 스킬 면역이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내가 너한테 뭔 잘못을 했다고 그러냐. 이브.”
“응애?”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이브를 둥가둥가 해줬다.
참고로 30분 전부터 여기에 도착해 있었다. 기다리다 지루해서 뒤지는 줄 알았다.
“읏차.”
벌떡. 상체를 튕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러워진 엉덩이를 대충 털고, 내 앞에 시야를 가득 메운 괴물 지네를 쳐다봤다.
“언제 봐도 족같게도 생겼구나. 복족아.”
저놈의 별명은 ‘복족이’다.
대단한 이유로 붙은 건 아니고. 놈의 본명 때문이었다.
[몬스터 정보]
[명칭: 장송(葬送)의 백족(百足)]
[체력: 128 마력: 39]
[힘: 55 민첩: 36 지능: 19]
[상세: 제84던전 ‘진화의 끝자락’의 던전 마스터. 실패작 키메라들이 만연한 폐기장에서, 약한 키메라를 흡수하고 진화를 거듭해 모든 키메라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백족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어떻게 몬스터 이름이 백족이냐.
그래서 나는 ‘백족’보다 좀 더 귀여운 ‘복족이’로 불러주는 편이다.
‘오랜만에 붕괴 운이 좋았군.’
게이트가 열리고, 저 괴물 놈의 추악한 대가리가 얼핏 보인 순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엔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겠는데.”
여기는 심야의 어린이대공원.
평소 유동 인구는 상당해서 그 마력 잔향 때문에 여기에 열리는 듯한데. 심야에는 상주인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놈들에겐 치명적으로 불리한 점. 내겐 유리한 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놈들은, 생물을 먹어서 진화를 하니까.’
놈들의 살육 메커니즘은 지극히 심플하다.
살아있는 인간을 뜯어먹어 실시간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지능을 높이고. 또 전에 없던 기능이나 신체 부위를 추가해 스펙이 강화된다.
그 진화의 매개체인 먹이. 살아있는 생물… 인간이 주변에 별로 없다.
이건 크다.
―크르르륵!
―키키키키!
―치이이이!
끝도 없이 괴물의 울음소리가 이어진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장송의 백족을 기점으로, 게이트에서 각양각색의 기괴한 키메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 *
괴물들이 게이트를 비집고 바글바글 쏟아져 나온다.
어둠에 잠긴 어린이대공원이, 순식간에 기괴한 살덩이들의 낙원으로 변해간다.
―크르르륵!
―키키키키!
―치이이이!
장송의 백족처럼 거대한 놈까진 없다.
그러나 기기괴괴한 외형과 기본 2미터를 훌쩍 넘는 체장. 그리고 끝도 없이 수천 마리나 쏟아져 나오는 너덜너덜한 살덩이들의 향연은,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기 충분했다.
―크로로로로!
―퀘에에에엑!!
곤충과 인간, 동물과 인간 등. 생물 언저리의 모습을 띈 키메라가 있는가 하면.
뭐라 형용조차 못할 불가해한 괴생물도 부지기수였다.
―그루룩. 부루루룩.
커다랗고 둥근 살덩이에 수백 개의 눈과 입, 그리고 촉수가 불규칙하게 달린 생물.
내 앞에서 요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플레시 썬’이 그중 대표적인 예다.
‘저 새낀 이름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
얼마나 족같은 생김새냐면. 건망증이 심한 내가 정확한 풀 네임을 기억할 정도다.
플레시 썬. 살덩이 태양.
살색 점액질이 흐르는 둥근 몸체에 수백 개의 촉수가 꿀렁대는 모습을 보면. 이름 하난 기깔나게 지어놨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구루룩.
문득, 번쩍.
놈이 수백 개에 달하는 눈을 동시에 내게 향했다.
―브루루루루!
쉬리리릭! 수백 개 촉수들이 기습적으로 날아왔다.
사방팔방, 그야말로 전방위를 메우고 사각 없이 쇄도한다.
“흐.”
쓴웃음을 흘리며 무기를 들어 올렸다.
키잉! 청백색 칼날의 예리한 단검. 블라이스의 단검이었다.
상체를 가볍게 낮추고, 그대로 지면을 박찼다.
[스킬 발동: 비약(飛躍)]
쉬쉬쉭!
지그재그를 그리며 빛살처럼 움직였다.
단숨에 5번의 섬광이 튀기며 플레시 썬과의 거리를 좁혀간다.
순간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짧은 직선 돌격을 하는 스킬, 비약.
그것을 5연속으로 사용한 결과다.
―크리릭?!
플레시 썬은 허겁지겁 내 꽁무니를 쫓아 촉수를 발사했다.
콰콰콱! 무수한 촉수들이 스쳐 지나간다. 뺨, 어깨, 그리고 허벅지. 자잘한 상처에서 피가 찔끔 새어 나온다.
그러나 치명상은 하나도 없었고.
“어딜.”
나는 이미, 놈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콰자작! 꿈틀거리는 살덩이 본체에 단검을 깊숙이 쑤셔 박았다.
―크루루루루루!!
둥그런 살덩이가 마구 꿀럭거리고, 거기 박힌 수많은 눈이 일제히 경련한다.
기괴한 소리가 살덩이를 찌르르 울리며 뿜어져 나왔다.
“악즉참이다.”
푸직, 우득! 뿌드득!
나는 그 소리가 멎을 때까지 계속 단검을 쑤셔 넣었다.
새빨간 피보라가 연신 쏟아진다.
―크륵… 그루룩……!
8번을 순식간에 쑤셔버리자, 놈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철퍽. 쏟아낸 피 웅덩이 위로 널브러지는 플레시 썬.
이미 죽어서 미동도 없다.
“갸우우.”
문득 품에 있던 이브가 앓는 소리를 냈다.
슬쩍 쳐다보니, 그녀의 온몸이 피 칠갑 돼있었다. 플레시 썬을 죽이는 와중에 피가 잔뜩 튄 듯하다.
“우냠.”
문득 찐득한 피를 만지작대던 이브가, 덥석. 그것을 입 안으로 가져갔다.
X발 이브. 지지다, 지지. 뭐라 경고할 할 틈도 없었다.
“…꾸에엑……!”
그 결과는 잔뜩 찌그러진 이브의 인상이 말해줬다.
존나게 맛이 없었던 모양. 그러게 포장지만 봐도 배탈 날 것 같은 걸 왜 입에 넣고 그러냐.
―크레레레렉!
―키이이이이!!
잠깐 한눈 파는 사이, 키메라 십수 마리가 나를 둘러싸고 공격해왔다.
전방위가 키메라들로 꽉 막혔다. 각각 위협적인 손톱과 발톱, 이빨을 들이밀며 나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
놈들이 내 살갗을 찢어발기기 직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뜨고 있던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후우.”
바로 지금.
나는 타이밍을 맞춰 눈을 번쩍 떴다.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파지직! 단전에서 휘몰아친 거센 전류를 양손에 각각 장전.
양손으로 동시에 바닥을 후려쳤다.
콰자자작!
압도적인 번개의 폭발. 나선을 그리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번개 줄기가, 몰려든 키메라들을 일거에 태워 죽였다.
―끄에에엑!
―까아아아악!!
비명.
외형만큼이나 각양각색의 비명 소리가 사운드를 가득 채웠다.
생살을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방해하지 마라.”
나는 손아귀에 어른거리는 스파크를 털어냈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시선은 전방. 나를 향해 잔뜩 몰려든 수십, 수백 마리 키메라 괴물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룩… 크로로로!
―끼이이! 키이익!
놈들은 공포스럽고 위압적인 외관이 무색하게, 두려운 표정으로 내게서 주춤거렸다.
저벅저벅. 내가 걸어갈 때마다 놈들은 그만큼 주춤거린다.
“뭐. 눈 깔아.”
마치 내 주변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생긴 듯하다.
약 20미터 이내로 절대 다가오지 못한다.
[스킬 발동: 수라흉인]
물리적인 방벽은 아니지만, 실제로 스킬의 효과긴 하다.
나보다 현격하게 약한 개체에게 공포 상태 이상을 부여하는 스킬. 효력 범위가 반경 20미터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 거다.
“비켜있어라. 너희는 나중에 몰살해 줄 테니까.”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만 전진했다.
그리고 내 진로 앞에는 던전 마스터, 장송의 백족이 있다.
‘우선은 한시라도 빨리 게이트를 닫는다.’
원래 게이트 붕괴 대처 매뉴얼 1순위가 그것이긴 한데. 얘는 특히 그렇다.
빨리 닫지 않으면 잡몹 키메라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저 게이트 너머의 키메라가 동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게이트를 닫으려면…….”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투학!
지면을 박차고, 한달음에 백족의 머리 앞까지 도약했다.
“너를 죽여야겠지.”
스르릉!
단검을 재빨리 허리춤에 납도. 인벤토리에서 또 다른 무기를 꺼내 빠르게 스왑한다.
대태도. 칼날 길이만 내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대태도였다.
“죽어.”
어깨 뒤로 대태도를 한껏 당긴 뒤. 그대로 있는 힘껏 휘둘렀다.
푸화악! 깔끔한 횡 베기가 백족의 허리께를 가르고 지나갔다.
―크에에에엑!!
백족은 수많은 다리를 발발거리며 그 자리에서 발광했다.
푸쉬익! 예리하게 잘려나간 살점 사이. 새빨간 피 분수가 솟구쳐 바닥을 적신다.
하지만 나는 쯧, 혀를 낮게 찼다.
‘제대로 안 들어가는군.’
얕았다.
원래는 그대로 몸통을 양단해 버릴 생각이었는데. 역시 단순한 살덩이 같아도, 5차 붕괴쯤 되니 육질과 갑피가 굉장히 단단하다.
그것을 새삼 느꼈다.
―그르르르……!
스르륵. 놈의 이마에 달린 수많은 눈알들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부릅뜬 눈들이 하나같이 충혈되어 있었다.
―크에에에에엑!!
아파서 저러는 게 아니다.
상처를 입은 것에 화가 난 거겠지.
2미터를 훌쩍 넘는 거대한 대태도도, 지금 백족의 덩치에 비하면 이쑤시개 수준이다. 제대로 대미지를 주려면 한세월 패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백족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케레레레렉!!
쿠구구구!
놈이 그 거대하고 긴 다리들을 발발거리며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쿠콰쾅! 우지끈!
뱀처럼 땅 위를 유영하는 거대한 몸통이, 어린이대공원의 무수한 어트랙션들을 일거에 박살 낸다.
―퀴오오오오오!!
내가 백스텝으로 벌린 거리가 속절없이 따라잡힌다.
순식간에 놈의 대가리가 가까워졌고. 백족은 아가리를 여섯 갈래로 쩍 벌렸다.
“이런.”
반응이 살짝 늦었다.
어딜 둘러봐도 이빨 천지. 사방이 시커먼 그림자로 뒤덮였다.
백족이 나를 삼키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퀘에에에엑!!
콰자작!
섬찟한 파육음이 울렸다.
놈의 거대한 입 안에 그대로 삼켜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