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7화 (27/235)

27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3)>

“아… 아. 의, 의식이……!”

문득 아델라의 머리가 아찔한 목소리를 흘렸다.

나는 슬쩍 시선을 내렸다. 아델라의 피로 젖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의식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 는데.”

꿈틀꿈틀.

토막 난 아델라의 육편들이 제각기 제단 방향으로 기어갔다.

죽음조차 거부하는 필사적이고 광기 어린 행색.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의식은 완성되지 않는다.”

나는 싸늘하게 말하고는 아델라의 시신에 다가갔다.

“적당히 하고. 뒤져.”

푸직, 우지직!

산낙지처럼 꿈틀대던 아델라의 육체 조각을 하나씩 밟아 터뜨렸다.

발아래로 느껴지는 질척한 촉감이 기분 나쁘다.

“아아아… 안 돼. 싫어… 그럴, 순, 없어……!”

부들부들 떨리던 아델라의 수급이 피눈물을 철철 흘리기 시작했다.

뒈지라는 말에 무서워서 저러는 게 아니다. 의식이 완성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해서 저러는 것이다.

“아아. 저무는 태양이여. 영원한 노을의 왕, 에스파라드시여.”

아델라는 울먹이며 혼자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용서하세요. 부디 제발, 미련하고 무능한 저를, 부디 용서하세요.”

푸직, 우지직.

아델라가 자학에 빠져있는 순간에도, 나는 그녀의 신체를 하나씩 밟아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뿌드득! 지금은 막 상체를 완전히 짓이긴 참이었다.

“육체, 시간, 과거, 현재, 미래까지 바쳤는데도. 땅거미의 의식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땅거미의 의식.

아델라가 완성하려고 하는 의식이 바로 그건데. 이게 꽤나 무서운 거다.

사양의 신전이 열린 상태로 오래 방치할 경우. 아델라가 이 의식의 준비를 마쳐버린다.

일단 한 번 완성되면 무슨 수를 써도 돌이킬 수가 없다. 상상을 불허하는 끔찍한 재앙이 일어난다.

‘8년 전인가. 그때도 개지옥이었지.’

‘사양의 신전’은 반복되는 한 달 이전에도 한 번 열렸었다.

2023년 미국의 일리노이 주. 시카고 한복판이었다.

당시엔 던전 붕괴의 개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시기. 미 연방정부는 세월아 네월아 던전을 방치하며 한창 재화들을 채굴하고 있었다.

신전은 몬스터가 강한 대신 가치 있는 마정석과 아티팩트도 넘쳐났다. 그래서 미 정부도 헌터들도 웃음꽃이 마를 일이 없었다.

‘그 덕분에, 시카고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일단 땅거미의 의식이 발동되면. 그 신전 일대의 모든 빛이 사라진다.

적게 잡아 반경 300킬로미터. 땅에서 스멀스멀 솟아나는 어둠이 그야말로 세계를 집어삼킬 기세로 확산된다.

어둠의 영역 안에 있는 생물들은 여지없이 멸절. 그대로 몰살된다.

그래서 시카고의 전체 인구인 약 270만 명. 그대로 그날 몰살당했다.

‘이 사건 덕분에 그나마 던전 붕괴는 좀 연구가 됐던가.’

다른 던전 붕괴 희생자는 끽해야 수백 수천. 많아도 수만이었다.

물론 그것도 적은 건 아니지만. 일거에 270만 명은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전 세계가 경악한 대사건.

아직도 이때의 희생자를 상회하는 던전 붕괴 참사는 없다.

‘헌터들의 우상화도 그때 이후로 심해졌고.’

물론 앞으로 이어질 10차 이후의 던전 붕괴들은 논외다.

그때부턴 희생자 백만 대가 기본인 던전 붕괴만 이어진다. 전 세계 하루 희생자가 1억 단위씩 우습게 찍힐 정도.

“아아… 아, 안 돼.”

그 시점에서 나는 아델라의 모든 신체를 짓이긴 상태였다.

이젠 마지막으로 그녀의 추악한 머리통만 남았다.

“나는. 의식을… 의식으으으을……!”

그녀는 입 안에서 뒤룩거리는 눈알을 파르르 떨었다.

피눈물을 쏟아내며 꺼이꺼이 오열을 한다.

“왕이시여… 나, 나의 왕이여…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합니다. 아아, 아아아……!!”

어지간히도 시끄럽다.

아가리가 좀체 쉬지를 않는군.

처음부터 대가리를 먼저 터뜨려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든다.

“개소리 컷.”

퍼걱!

어쨌든 나는 아델라의 머리까지 밟아 터뜨렸다.

[제26던전의 던전 마스터, ‘전추한 성녀 아델라’가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던전 패널이 아델라의 완전한 죽음을 통보했다.

다른 던전이었다면 직후에 게이트 소멸 통보로 이어졌겠지. 하지만 이어지는 패널은 그것이 아니었다.

[알림: 미완의 의식]

[땅거미의 의식은 완성되지 못한 채 중단되었습니다.]

[의식의 제단이 붕괴하며, 제단에 축적된 에너지가 일제히 방출됩니다. 즉각 신전을 탈출하십시오.]

[폭발까지 남은 시간: 1분 21초]

아직 최후의 깜짝 이벤트가 남아있었다.

아델라, 이 존나게 구질구질한 년. 끝까지 그냥 가는 법이 없다.

내가 이 던전을 혐오하는 이유 중 하나다.

“슬슬 준비해 볼까.”

어쨌든 나는 이제 탈출을 준비해야 한다. 겸사겸사 저 대폭발의 규모를 줄일 작업도 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준비해 왔던 ‘준비물’이 빛을 발할 차례다.

“읏차.”

나는 아무 데나 던져놨던 오경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놈이 입고 있는 A급 갑옷, <수룡왕의 가호>를 조심스럽게 벗겼다.

주섬주섬, 갑옷을 내 인벤토리로 챙겨 넣었다.

“이건 내가 잘 보관해 줄게. 경태야.”

부모들의 세뱃돈 갈취 단골 멘트를 중얼거렸다.

어차피 오경태는 이제 내 손에 죽는다. 비싼 갑옷 입고 죽어봐야, 때깔 좋은 귀신밖에 더 되겠냐.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인신 공양.

나는 지금부터 오경태를 제단에 바칠 것이다.

지금 제단에서 폭발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려면 그것밖에 없다.

이것도 그나마 최근에 알게 된 방법 중 하나다. 그 전엔 이 대폭발로, 어디서 폭발하든 최소 수십만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났다.

“오경태. 너의 희생은 내가 기억하마.”

이것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딱히 죄책감 때문은 아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혼잣말은 내 기나긴 회귀 생활의 찌꺼기.

그냥 고질적인 악습관에 불과하다.

“흐음.”

나는 놈을 어깨에 메고 제단으로 걸어갔다.

불길한 해골 그림이 음각된, 기분 나쁜 제단 앞에 당도했다.

한계까지 응축된 빛무리가 거칠게 휘몰아치는 제단. 나는 그것을 가만히 손끝으로 쓸어봤다.

[제사장 아델라의 깊은 원한과, 저무는 태양신의 분노가 느껴진다.]

삐빅. 기다렸다는 듯이 패널이 튀어나왔다.

나는 거기서 한 번 더 기다렸다.

[격렬한 분노를 잠재울 제물을 공양하시겠습니까?]

바로 이걸 기다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먹고 떨어져라.”

퉁명스럽게 말한 뒤, 휙! 들고 있던 오경태를 제단 위로 던졌다.

털그럭! 오경태는 제단에 있던 거대한 은제 그릇 안으로 안착했다. 그릇에 수북이 쌓인 해골 더미에 놈의 신형이 파묻힌다.

그리고 직후.

[저무는 태양신의 분노가 일부 사그라듭니다.]

[성녀 아델라의 원한이 일부 사그라듭니다.]

그런 패널이 내 앞으로 떠올랐고.

화르륵! 새파란 불꽃이 은제 그릇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날뛰는 저주의 파동 일부가 잠잠해집니다.]

순식간에 번져나간 푸른 불꽃은 해골들을 지글지글 불태웠다.

이내 오경태의 몸도 빈틈없이 감싸, 순식간에 새카만 숯덩이로 만들어버렸다.

“…….”

나는 한동안 그 모습을 가만히 관망했다.

오경태가 전소되어 새하얀 뼈만 남은 것까지 확인한 순간. 미련 없이 등 돌려 신전을 출구로 향했다.

‘텔레포트.’

혹시나 싶어서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해 봤다.

그러나 삐이익! 날카로운 경고음이 귓전을 강타했다.

[알림: 이동 스킬 사용 불가]

[신전을 둘러싼 미지의 힘이 성소에서의 부정한 탈출을 제한하고 있다.]

[최후의 제사장 내에선 공간이동계 스킬을 일체 사용할 수 없다.]

순간이동은 불가능.

역시 이건 아무리 반복해도 똑같은 결과다.

솔직히 이젠 시도하는 것도 지친다. 혹시나 다음 회차 때 나오면, 아예 시도도 하지 말아야겠다.

‘남은 시간은…….’

시야 구석의 던전 패널로 시선을 옮겼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이 보인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 0분 6초]

남은 시간 6초.

말씀드리는 순간 5초가 됐다.

아무리 1001회차 경력 있는 신입이라도, 이 넓은 제사장을 5초 만에 다시 주파해서 탈출할 재간은 없다.

벽을 죄다 부수고 가도 5초보단 더 걸린다. 신전이 워낙 넓어야지.

“맞아야지 뭐. 별수 있나.”

이 던전은 여러 면에서 ‘유령의 축제’ 던전과 닮았다.

던전 마스터보다 잡몹이 핵심인 점도 그렇고. 이렇게 예술은 폭발 엔딩인 것도 그렇고.

전체적인 클리어 과정이 성가시다는 점도 그러하지.

“스킬 발동.”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스킬 발동: 금강불괴]

[스킬 발동: 아이언 스킨]

[스킬 발동: 경질화]

…….

…….

무수한 스킬이 발동되며 방어력이 극한까지 강화된 순간.

콰과과과과! 눈부신 백색광이 제단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팽창했다.

“…….”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온몸을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격류가 끝나길 가만히 기다렸다.

―쿠구구궁!!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웅장한 먹먹함이 귓가에 감돌았다.

그렇게 1001번째 전생의 4차 붕괴는 종식되었다.

“다녀왔다.”

나는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폭발의 규모를 축소시켜서 우리 집 근처는 여파가 닿지 않았다. 당장 집 구할 걱정 안 해도 돼서 한시름 놨다.

집에선 아직 새근새근 자고 있는 수아와, 여전히 띠꺼운 표정을 고수하는 이브가 나를 반겼다.

“…….”

애 하나에 내 또래 여인 하나.

이런 구성이니 꼭, 일 끝내고 귀가한 가장 느낌이군.

침묵에 잠긴 채 의미 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응애.”

이브가 침대 위를 발발발 기더니. 이내 나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이브는 그새 기어 다닐 수 있게 됐다. 손짓을 보아하니, 내가 안아주길 바라는 행색이다.

“…오냐. 와라.”

못 해줄 건 없지. 나는 한 손으로 이브를 거뜬히 안아 들었다.

꾸욱. 단단히 품으로 껴안아 고정했다.

“우웅. 응애!”

이브가 흡족한 표정으로 옹알이를 했다.

나는 그녀의 새빨간 적안을 빤히 쳐다보다, 허탈하게 웃었다.

“만족하냐.”

“응애.”

“그래. 앞으로도 내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어주면, 수시로 안아주지.”

“응애!”

이브는 포대기 속에서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얘는 지금 확실히 내 말을 알아듣고 있다.

‘겉모습만 아기지. 알맹이는 좀 성숙한가?’

겉모습은 영락없는 인간 신생아지만, 얘는 명실상부 외계인 애새끼. 무슨 괴상한 생리를 가졌어도 이상하진 않다.

원만하게 지내려면 무엇보다도 유연한 사고가 필수겠지. 납득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TV나 보자. 이브.”

“응애.”

나는 안방을 나와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멍하니 뉴스를 주시했다.

그런 나를 보고 따라 하는 것인가. 이브도 빨간 눈망울을 TV 쪽으로 향했다.

“…….”

“…….”

뉴스에선 오늘의 참사 브리핑이 한창이다.

신전의 마력 폭발로, 현장에 출동했던 S급 헌터 부대원 5명이 폭사.

그리고 폭발의 여파에 휘말린 여의도 일대에서 수만 명이 추가로 숨졌다고 한다.

‘국회의사당 완전 붕괴. 국회의원들도 회차 평균보다 좀 더 많이 죽었군.’

초토화된 여의도. 국회의사당 초토화.

그리고 출동한 S급 헌터 부대 전멸. 수만 명의 시민이 사망.

결국 예정된 미래는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

“…지겨운 전개다.”

나는 한 손으로 이브를 둥가둥가 해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응애.”

이브가 타이밍 좋게 옹알거렸다.

마치 내 말에 동의하는 듯하다.

* * *

이번 회차는 전과 달리 4번째 게이트 붕괴를 무사히 저지했다.

그리고 수아도 죽지 않았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회귀 8일 차. 나는 무사히 4번째 휴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할 일은 바로.

“수아야.”

“어, 네?”

“약속을 지키러 왔다.”

“아? 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질색하는 사람이다.

“놀러 가자. 나랑, 너랑.”

“…네에???”

작정하고 농담하는 게 아닌 이상,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킨다.

지나가듯 내뱉은 말이라도 예외는 없다.

“이틀 전에 내가 약속했잖아. 같이 놀러 가주겠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 날이 밝자마자, 이브를 안아 든 채 강수아의 집으로 찾아왔고.

아직 잠도 덜 깬 그녀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같이 놀러 가고 싶은 데를 말해봐라. 수아야.”

그에 대한 수아의 반응은 황당함.

수아가 미간을 한껏 좁힌 채 연신 헛바람을 삼켰다.

“하. 아니… 지, 진짜 어이가 없네. 이, 이렇게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냐. 이틀 전에 약속했지.”

“아오, 오빠 진짜 바보예요? 애초에 지금이 어디 놀러 다닐 시국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막 엄청나게 죽어나가는데!”

“그런가. 나랑 놀러 가기는 싫으냐?”

“아니… 아니이이! 진짜! 오빠랑 놀러 가는 게 싫을 리가 없잖… 아, 아무튼!! 너무 갑작스러워서 생각이 안 나요! 나중에요!!”

콰당.

수아가 허둥지둥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닭 쫓던 개새끼처럼 닫힌 문을 쳐다봤고. 이내 품에 안긴 이브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브는 아까부터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심은 쉽지 않구나. 이브.”

“응애.”

이브가 타이밍 좋게 옹알거렸다.

이번엔 동의 대신 “븅신” 소리가 들린 것 같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