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4화 (24/235)

24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0)>

그로부터 약 1시간 뒤. 오후 3시.

수아가 낮잠에서 깨어났다.

“으으음. 내 정신 좀 봐. 깜빡 졸았나……?”

강수아가 비몽사몽한 비음과 함께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그녀는 한동안 눈을 부비적거렸고, 이내 소파 옆자리에 앉아있던 내 쪽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

그리고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녀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지기 시작한다.

“저, 오빠?”

“어.”

“그, 제가 자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럼 지금 안고 있는 그 애는 뭔데요?”

“…….”

그 말대로다.

내 품에는 웬 갓난아기 하나가 안겨있었다.

수아의 혼란스러운 눈빛을 따라 나도 시선을 내렸다.

“…….”

“…….”

품에 안아 든 아기와 시선이 맞았다.

침묵이 이어진다.

“…….”

“…….”

온통 눈처럼 새하얀 아기였다.

머리색도 흰색. 피부도 흰색. 조막만 한 몸을 감싸고 있는 천 쪼가리조차 흰색이다.

단 하나, 눈동자는 새빨간 붉은색이다.

하얀 색조에 대비돼서 그런가. 유난히 선명하고 불길하게 느껴졌다.

설원 한가운데 찍힌 핏방울을 연상시킨다.

“…….”

“…….”

아기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울지도 않는다. 입을 꾹 다물고, 새빨간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중이다. 아기 주제에 쏘아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

얼마나 그렇게 눈싸움을 계속했을까.

“응애.”

아기가 미간을 팍 찌푸리며 한마디… 아니, 한 옹알이 했다.

특유의 딱딱한 표정 때문인가. 옹알이가 “뭘 봐 X발아.”라고 자동번역 돼서 들려온다.

‘허. 개놈 새끼 이거.’

어떻게 갓난애 표정이 이렇게까지 띠꺼울 수가 있지.

보고 있으니 좀 경이롭다.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니, 오빠! 그, 그 애 뭐냐니까요? 무시하기예요?”

내가 아기와 뒤틀린 교감을 나누는 게 질투 난 것인가. 수아가 조바심을 내며 추궁해 왔다.

그래. 궁금하다는데 대답해 줘야지.

얘가 누구냐면…….

“…나도 모르는데.”

나도 모른다.

변명이 아니다. 진짜로 모른다.

그래서 수아가 일어나기 전까지 나도 엄청 당황하고 있었다.

이렇게 진심으로 당황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다.

“모른다니? 아니 오빠.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수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따지고 들었다.

내가 장난을 친다고 여기는 거겠지. 그녀의 어조엔 슬슬 노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자, 봐요? 제가 자기 전엔 그 애가 없었죠?”

“그랬지.”

“근데 일어나니까 생겼잖아요?”

“…그랬지.”

“그럼 뭔가 있었으니까 그 애가 생긴 거잖아요! 뭐, 허공에서 갑자기 뿅 하고 생겨났겠어요?!”

진짜 허공에서 뿅 하고 생겨났는데.

그렇게 말해봤자 지금 분위기에선 믿지도 않겠지. 농담하지 말라고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겠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막지 않았다.

“후우.”

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태어났는지 경위는 안다.

바로 하트 기어다. 하트 기어가 번쩍 빛나더니 온 시야가 섬광으로 물들었지.

섬광이 잦아들었을 땐, 이미 하트 기어는 온데간데없고 얘만 덩그러니 나타난 상태였다.

“오빠. 아까부터 헛소리 살살 치면서 대답을 회피하는 게… 좀 수상한데요?”

이내 수아의 따가운 시선에 의심이 잔뜩 어렸다.

그녀는 팔짱을 단단히 끼우고, 내 품의 아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진짜, 솔직히 말해 봐요. 그 애 뭔데요?”

“…솔직히?”

“네. 솔직히.”

“화 안 낸다고 약속하면. 말해주마.”

“화 안 낼게요. 약속! 애초에 제가 왜 화를 내겠어요? 대체 누구길래?”

가슴을 팡팡 치며 호언장담하는 강수아.

나는 잠깐 고민했고.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저렇게까지 말하니 도망칠 곳이 없군.

하트 기어까지 소상히 밝히자면 얘기가 너무 길고 복잡하다. 그러니 대충 그녀가 납득할 만한 선에서 얼버무려 줘야겠다.

“얘가 누구냐면.”

“응응.”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아기다.”

“…응?”

“일단은 내 애라고 해둘게. 정확하진 않지만, 그게 제일 비슷한 표현 같다.”

강수아는 한동안 고장 난 것처럼 미동도 않았다.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삐걱거리더니. 이내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어, 으에?! 오빠 애라고요?!!”

마침내는 경악에 찬 괴성을 터뜨렸다.

좀 이상한 데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은데. 나는 정정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수아가 살짝 빨랐다.

“오, 오, 오빠! 설마. 설마!! 어, 언니랑……?!”

수아는 이미 아기의 정체를 결론지은 상태다.

‘강서윤과 나의 은밀한 사랑의 결실’이라는 개족같은 결론이었다.

“잠깐. 잠깐만.”

웬만한 뇌피셜은 그냥 인정해 버리려고 했는데. 여기서 갑자기 강서윤이 왜 나와.

사람이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그것만은 도저히 못 참겠다.

“그건 오해다. 수아야. 무조건 오해야.”

생각보다 해명하는 데 한참 동안 진땀을 뺐다.

직전의 ‘내 애가 맞다’ 발언이 독이 되는 바람에, 수아의 불신이 한층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찔한 표정으로 연신 휘청거렸다.

“월미도… 여행… 1박 2일… 아기……! 10개월……? 어, 언니. 대체, 도대체 어느 틈에……?!”

“오해. 수아야. 오해 멈춰. 반인륜적인 끔찍한 상상은 그만.”

역시 나는 웬만하면 아가리를 닫고 사는 게 낫겠다.

새삼 그것을 통감했다.

* * *

오랜 설전 끝에, ‘지인이 잠깐 맡기고 간 아이’라는 설정으로 합의를 봤다.

“그, 그래요. 네. 좋아요.”

당연히 존나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그 지인이랑 무슨 사이길래 애를 맡기고 가냐.

그리고 하얀 머리에 빨간 눈이라니. 이 이국적인 이목구비는 어떻게 설명하고?

“차라리… 차라리 그걸로 하죠. 네.”

사실 수아도 강제로 납득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강서윤과 나의 사랑의 결실’ 설이 ‘지인이 싸놓고 튀었다’ 설보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보다.

나로선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와부. 아부부.”

그래서 지금은 문제의 아기를 침대에 누인 뒤.

수아와 나란히 앉아 아기의 동태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응애. 아우웅.”

아기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팔다리를 마구 버둥거리기도 하고. 의미 불명의 옹알이도 한다.

“우그그. 우갸아!”

여전히 세상 불평불만 혼자 다 짊어진 죽상인데. 하는 짓만 보면 또 영락없는 갓난아기긴 하다.

일단 기특하게도 빽빽 울어대지는 않는다.

저건 좋네. 세상 모든 신생아들의 귀감이었다.

“…평범하게 귀엽네요. 출생의 비밀 베이비.”

“그렇구나.”

수아와 내가 한마디씩 했다.

뭔가 보고 있으니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다. 우리는 해바라기처럼 완전히 아기의 행동거지에 시선을 빼앗겼다.

“생후 몇 개월이래요?”

“잘 모르겠다. 1개월 미만인 건 확실한데.”

“머리랑 눈 색 엄청 특이하다. 알비노인가? 아니면 외국인?”

당연히 외국인은 아니다.

던전발 아이템에서 튀어나왔으니, 아마 외국보단 외계인 비슷한 뭔가지.

물론 그렇게 말해줄 순 없다. 그래서 그냥 외국인 쪽으로 긍정해 줬다.

“헤에. 어느 나라 혼혈이에요?”

“…마케도니아?”

“오빠. 방금 지어냈죠.”

방금 지어냈던 입을 흠칫 다물었다.

이럴 땐 또 눈치가 귀신같군. 아니면 역시 내 거짓말이 너무 티가 나는 건가.

나는 이번에도 순순히 긍정했다.

“어. 미안.”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해요. 오빠.”

“그래. 사실 모른다.”

“오빠. 쟤에 대해 아는 게 뭐예요?”

“너랑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돼.”

멍하니 대화의 티키타카가 오갔다.

그사이 우리 하트 기어 베이비(?)는 열심히 침대를 휘적거린 끝에, 생에 첫 뒤집기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갸우우!”

아.

나와 수아에게서 동시에 탄성이 튀어나왔다.

생후 2시간 차 아기가 뒤집기라니. 외계인이라 그런지 배움이 지나치게 빠르다.

“음훗. 갸부부.”

뒤집혀 엎드린 아기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머금었다. 스스로 굉장히 만족하는 행색이다.

지켜보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간을 좁혔다.

“웃네요.”

“웃는구나.”

“표정이 좀… 뭐랄까. 아기치곤, 음. 그렇네요.”

“띠껍다고?”

“아, 네. 좀. 애답지 않게, 찌들었다고 할까…….”

“동감이다.”

우리는 아가의 뒤집기 쇼로 끊어졌던 대화를 다시 이어나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얘 남자예요, 여자예요?”

“암… 여자.”

‘암컷’ 소리가 목젖까지 나왔다가 삼켜졌다.

외형이 사람 같다곤 해도. 던전발 새끼 외계인 년을 ‘여자’라 불러야 하나. 던전에 맺힌 게 많다 보니 생각보다 거부감이 심했다.

“어머. 그건 또 아네요?”

“아까 직접 확인해봤다.”

“…아.”

“안 달려있더라.”

“거, 거기까진 굳이 안 말해도 돼요! 오빠 변태예요?!”

“궁금해하는 표정이길래.”

퍼억. 수아가 항의의 의미로 내 어깨를 슬쩍 때렸다.

인정한다. 이건 내가 섬세함이 부족했군. 나는 고개를 푹 숙이는 걸로 사죄했다.

수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이내 화제를 돌려버렸다.

“아휴. 아무튼. 얘 그럼 이름이 뭐예요?”

“…이름?”

“네. 계속 출생의 비밀 베이비라고 부를 순 없잖아요?”

“그렇지. 옳은 말이야.”

이름. 그래.

지금까지 그 당연한 걸 잊고 있었다.

나는 뒤늦은 깨달음에 멍하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자의 눈. 상태창 패널을 안 보고 있었잖아.’

수아가 이름을 언급한 탓에 이제야 떠올랐다.

나도 오랜만에 진심으로 당황을 해서 그런가. 이젠 낯선 걸 보면 거의 습관처럼 현자의 눈을 사용하던 나였건만. 생각지도 못한 불찰이었다.

‘…현자의 눈.’

자책은 이 정도면 됐다.

아기를 향해 현자의 눈부터 발동시켰다.

삐빅. 아기의 정체가 눈앞에 소상히 떠오른다.

[인물 정보]

[명칭: 종말의 이브]

[별칭: 유년기의 끝, 시간의 탐식자]

[체력: 1 마력: 1 신체 상태: 정상]

[힘: 1 민첩: 1 지능: 1 포텐셜: 99]

[최종 전투력: 1]

패널을 읽고 또 읽었다.

뭐랄까. 정신 나간 포텐셜 수치만 빼면, 그냥 평범한 인간 아기 급의 능력치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잔뜩 긴장하던 나로선 좀 김빠지는 결과였다.

“…….”

다만 한 가지.

나는 그 상태창에서 원인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뭔가는 확실히 이상하다.

근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그냥 평범한 인간의 상태창인데. 나는 뭐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거지?

“…아.”

이내 깨달았다.

포텐셜 수치가 표시돼 있다. 인간의 상태창.

바로 그것 자체가 문제다.

‘왜. 몬스터 정보창이 아니라… 인간의 정보창이 뜨는 거냐?’

저 아기는 하트 기어에서 부화했다.

이건 내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확실하다.

그리고 하트 기어는 던전발 아이템.

던전 내부의 모든 생물들은 잡졸이든 던전 마스터든, 현자의 눈에서 무조건 몬스터로서 정보가 표기된다.

지금까지 반복한 1천 번의 회차. 예외 사항은 단 한 개체도 없었다.

‘이 새끼…….’

두근, 두근.

심장이 요동친다.

약간의 설렘. 긴장. 그리고 공포.

‘대체 정체가, 뭐야.’

이 감각. 정말 오랜만이다.

낯선 존재에게서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브.”

종말의 이브.

상태창의 최상단에 기재된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읊조렸다.

그리고 그것이 수아에게도 들린 모양이다.

“이브? 그게 저 애 이름이에요?”

“음? 아… 그, 그래.”

“크리스마스이브 할 때 그 이브요?”

“어. 그 이브.”

“흐응.”

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콧소리를 길게 흘렸다.

이내 그녀가 샐쭉, 특유의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다.

“되게 예쁜 이름이네요. 이브! 하얀 머리칼이랑 잘 어울려요!”

그 웃음을 보자, 지레 겁부터 먹었던 내가 굉장히 한심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도 피식.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

“아! 얘 또 뒤집는다! 오빠, 봤어요?”

“보고 있어.”

“아하하. 저 의기양양한 표정 좀 봐. 계속 보니 저것도 은근 귀엽네요!”

“…그런가?”

“그렇다니까요! 아우~! 너무 귀여워. 확 깨물어 주고 싶다아.”

수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이브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수아가 눈치채지 않도록, 시선을 슬쩍 날카롭게 벼렸다.

“그래. 나도… 동감이다.”

종말의 이브.

넌 앞으로 최소한 하트 기어를 능가하는 엄청난 전력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수아를 살리는 실마리라도 토해내야 할 거다.

안 그러면 내가 깨물어 죽여버릴 거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