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4)>
다음 날.
나는 월미도 공원 앞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꺄아아악!
―우후우우~!
수많은 인파가 내지르는 즐거운 비명 소리가 멀찍이 들려온다.
바이킹 쪽이다. 육중하게 진자운동 하는 바이킹에서, 주기적으로 사람들이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
나는 입을 닫고. 멍하니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봤다.
어제 용산에선 1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월미도엔 오늘도 사람이 제법 붐볐다.
“태평하시군. 다들.”
물론 전생만큼은 아니다.
이전 붕괴의 피해 규모가 심각할수록, 월미도에 모이는 사람의 총량은 확연히 줄어든다. 그럼에도 아직 운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웃길 뿐이다.
“너희한텐 1만 명도 남 일이냐?”
국가 재난 사태가 우스운가 보구나.
진짜로 감정이 죽은 사이코패스는 의외로 내가 아니라, 너희들 아니냐?
괜히 아니꼬운 마음에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후우.”
평화롭다 못해 지루해 죽을 것 같은 일상의 한복판. 나는 한숨과 함께 하늘에서 시선을 뗐다.
“죽기 딱 좋은 날이군.”
이 대사 한 번쯤은 직접 해보고 싶었다.
소원성취 했으니, 이번 생 끝날 때 미련은 적겠어. 비릿한 자조를 머금었다.
―꺄아아아악!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던 즐거운 고함 소리가, 어느 순간 성질이 격변했다.
―끄악, 카하아아악!!
―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괴로움에 찬 비명. 절규가 사운드를 가득 메운다.
시작됐나. 나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드가자.”
슬쩍 고개를 들어 바이킹 쪽을 쳐다봤다.
쿠구구구구! 육중한 굉음과 함께, 바이킹이 종잇장처럼 으스러지고 있었다.
* * *
게이트 붕괴의 중앙 지점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갈수록 길가에 눈에 띄게 시체가 많아졌다. 어트랙션은 이미 죄다 박살 나 무너져 버렸고, 새빨간 피가 보도블록 위로 강처럼 흘렀다.
“으, 아… 그으윽……!”
“끄으. 카하아악……!”
성한 인간은 아무도 없다.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사람들뿐이다. 벌거벗은 인간의 시체가, 테마파크 곳곳에 산처럼 쌓여있다.
마치 도살장. 아니, 차라리 쓰레기 매립지 같다.
“사, 살려… 살려……!”
“으흑, 그우욱……!”
아직 죽지 못한 사람들의 곡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온다. 월미도 테마파크 전체가 거대한 유령의 집이 된 듯하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악취미군. 이건… 일부러 안 죽인 거다.’
배가 뚫리고, 사지가 뜯어진 인간들이 꾸역꾸역 살아있다. 이미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출혈량인데. 기절조차 못하고 꺽꺽대고 있는 것이다.
‘본 기억이 있다. 아주 많이.’
강림한 영역 전체를 거대한 도살장으로 만들고. 수많은 인간을 서서히 가지고 놀다가 말려 죽이는 방식.
익숙한 살해 패턴이다. 내가 인간 도살장 한가운데 발을 들인 순간.
“이야, 초인. 꽤 오랜만에 만나는 거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심하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르무르.”
눈앞에 보이는 괴물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나는 불쾌감을 담아 오만상을 썼다.
“역시 너였군.”
은청색 털을 덥수룩하게 기른 둥글둥글한 괴물이었다.
크기는 고작 내 손바닥보다 좀 큰 정도. 몸통 한가운데 박힌 거대한 외눈과, 그 위의 거대한 외뿔. 그 아래엔 길게 찢어진 입이 보인다.
“기분 나쁜 괴물 새끼 같으니.”
몸통에서 뻗어 나온 팔다리는 나뭇가지처럼 앙상했다.
산처럼 쌓인 시체 위에 걸터앉아, 특유의 오만한 외눈박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현자의 눈.’
곧바로 놈의 상태창을 띄웠다.
[몬스터 정보]
[명칭: 악의 꽃, 무르무르]
[체력: 109 마력: 55]
[힘: 56 민첩: 21 지능: 36]
[상세: 지혜의 끝을 추구한 끝에 광인이 되고, 추악한 괴물로 변해버린 옛 현자. 태산 같은 거구를 자랑한다.]
놈의 이름은 무르무르.
꽤 옛날부터 이어진 질긴 악연이다.
“어쨌든 만나니 반갑군. 우리의 재회가 정확히 얼마만이지?”
놈이 크큭, 하고 낮은 웃음을 토해냈다. 예나 지금이나 기분 나쁜 면상. 그리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다.
“아니. 말이 좀 잘못됐구먼. 몇 회차 만에 만난 겐가?”
게다가 ‘초인’이라는 저 호칭도 뭔가 짜증난다. 나는 대차게 고개를 저었다.
“알 바냐. 딱히 궁금하지도 않아.”
“쯧쯔. 자네는 몇 번을 회귀해도 여전히 야박하군 그래. 성질머리는 어떻게 전으로 회귀가 안 되나?”
“너한테만 이런다. 너한테만.”
무르무르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옛날의 무르무르라면 못 알아봤겠지. 하지만 내가 회귀를 반복하면서, 그는 이것이 욕이라는 걸 학습한 상태다.
무르무르는 안타깝다는 양 고개를 저었다.
“그건 더 슬프군. 자네는 나와 좀 더 친해질 필요가 있어. 초인.”
“누구 좋으라고.”
“자네가 좋으라고! 나는 그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얼마 안 되는 놈이잖나. 게다가 나는 자네에게 유용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단 말일세.”
“…….”
“고독과 무기력이 사람을 죽이는 법이지. 지난 1000번의 자네가 그렇게, 고독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듯이. 크크큭.”
딱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놈은 내가 영원회귀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옥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나와 무르무르가 이번으로 몇 번째 재회인지도 전부 안다.
“내 자네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초인.”
인간, 몬스터, 던전 마스터를 통틀어서 그런 새끼가 한 세 명쯤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저 새끼다.
무르무르는 나처럼 시간이 회귀해도 기억을 잃지 않는다. 만난 건 벌써 수십 번째인데. 놈은, 만날 때마다 내게 반가운 체를 해왔다.
‘짜증나지만… 솔직히 이제 나도 좀 반갑긴 해.’
무르무르의 말은 지극히 옳다.
나는 실제로 가끔씩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 때문에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져, 수십 회차를 반복할 동안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적도 있다.
‘그래도. 안 돼.’
아무리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래도 저 괴물과 나는 영원히 친해질 수 없다.
‘저 새낀 위험하다.’
무르무르는 통제할 수 없는 광기의 현신. 살육은 삶의 낙이다.
지금 월미도 전역에 펼쳐진 처참한 인간 도살장. 이게 하루에도 수십 번, 한국 팔도강산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건 곧 수아의 목숨에 대한 위협이 된다.’
그러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협상의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네가 앞으로 살인을 멈춘다고 약속하면. 친해지는 것도 고려해 보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초인. 내가 인간의 살갗을 뜯어먹고 사는 걸 알잖나. 오늘부터 당장 식사를 멈추라는 건가.”
“식사거리라면 내가 매일 제공해 주마. 하루 천 명 정돈 꼬박꼬박 죽여서 바쳐주겠다.”
푸핫, 무르무르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덥수룩한 하얀 털 뭉치 속. 놈의 시뻘건 안광이 탐욕적으로 번들거렸다.
“고작 하루 1천으로 만족하라? 너무하는군.”
“모자라냐.”
“모자라다마다. 하루 최소 10만. 그 정도면 내가 참아보지.”
“때려쳐라. 돼지 같은 털쟁이 새끼야.”
이렇게 끝날 줄 알고 있었다.
아마 무르무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천 번의 전생 속에서 수십 번이나 지긋지긋하게 반복한 대화고. 둘 다 그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협상은 결렬이다.”
“이번에도인가. 유감이군. 초인.”
나는 하트 기어를 심장에 박았다. 그리고 곧장 생명력을 극한까지 뽑아내 버렸다.
뿌드드득! 심장에서 뽑혀 나온 핏줄기가 전신을 감싸는 갑주를 만들고, 오른손에 사복검을 만든다.
“이제 뒤져.”
투학!
섬광처럼 무르무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블러드 스트림으로 허공을 한 번 밟고, 도약한다. 쇄애액! 가속도가 붙은 사복검의 칼날이 무르무르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오호. 그 갑옷은…….”
무르무르는 도망가지 않는다. 다만 내가 두른 갑옷을 보며, 나직한 감탄사를 터뜨릴 뿐이다.
채애애앵!
귀를 찌르는 금속음이 공원을 쩌렁쩌렁 울린다. 내가 내려친 검을 중심으로 가공할 충격파가 터졌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스읍.”
사복검은 무르무르의 얄팍한 팔에 막혀있었다.
전번 회차까지 통틀어서 처음이다. 공격이 처음으로 몬스터에게 막힌 것이다.
“드디어 그 갑주를 손에 넣었군.”
“…….”
“전생? 아니면 전 전생쯤에서 노스페라드를 처치한 겐가? 굉장히 희박한 확률인데, 마침내 그걸 얻어냈군. 대단하네.”
“아가리 여매.”
“축하하네. 1천 번이나 반복하고 이제야 첫걸음 뗐구먼. 크크큭.”
놈이 나와 칼을 맞댄 채, 여유만만하게 깐족거린다.
또다. 전에도 저랬지.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도 않을 거면서. 뭔가 나의 영원회귀에 대해서 아는 척을 오지게 해댄다.
“꼭 있지. 너 같은 새끼들.”
스포일러충은 사지절단. 사형이 답이다.
감정이 많이 마멸된 나조차 상당한 짜증을 느꼈다.
“역시. 너랑은… 친해지기 힘들 것 같다.”
뿌드드득!
사복검을 채찍 형태로 변형시킨 뒤,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파파파팍! 털실 뭉치 같은 무르무르의 형상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핏줄기가 확 튄다.
“크, 하악……!”
놈의 쩍 벌어진 입에서 단말마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콰자작! 그나마도 사복검을 마저 휘둘러 완전히 찢어발겨 버렸다.
“…….”
놈이 앉아있던 자리엔 잘게 썬 육편 조각과, 피로 물든 하얀 털들만 즐비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크큭. 장난칠 기분이 아니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오히려 본격적인 시작일 뿐이다.
―그렇다면 좋다.
푸화아악! 사산(四散)한 무르무르의 시체쪼가리에서 붉은 안개가 솟구쳤다.
기분 나쁘게 구불텅거리는 안개가 허공에서 한데에 뭉쳤고. 이내 거대한 눈알이 되어 나를 내려다봤다.
―이번에도 시작해 보지, 초인.
꿀럭꿀럭. 거대한 눈알 주변으로 어둠이 뭉친다.
형태를 가지고 꿈틀대는 어둠은 곧, 거대한 야수의 형상을 만들어나갔다.
쿠르르르!
백청색 갈기가 하늘 높이 휘날렸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어둠 속에서 예광을 뿜었다.
―꼬박 61번째 싸움이구나. 크크큭.
체고가 30미터는 될 듯한 외눈박이 사자. 본래 형상으로 변한 무르무르가 내 앞에 위풍당당하게 섰다.
―이번 생을, 함께 즐겨보자꾸나!
즐거운 듯한 목소리와 함께, 쿠구구구구!
놈의 거대한 앞발이 온 시야를 가리고 진격해왔다.
* * *
싸움은 지리멸렬한 소모전의 양상으로 흘렀다.
―크하하하하!
콰앙! 콰콰쾅!!
무르무르가 파상 공세로 앞발을 휘두른다. 사방팔방에서 숨 쉴 틈도 없이, 거대한 발톱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즐겁군! 역시 나는, 자네와의 싸움이 가장 즐겁다, 초인!!
콰직! 콰자작!
무르무르라는 거대한 재앙이 일대를 무자비하게 휩쓸었다.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쑥대밭이 된 폐허가 실시간으로 넓어진다.
“…쓰읍.”
그러면 나는 허공을 요리조리 날아 모든 공격들을 피해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
쉬쉭! 휘둘린 앞발의 빈틈을 오히려 파고들었다.
그야말로 찰나의 틈이었다.
“잡았다.”
푸화악!
파육음. 무르무르와 내 신형이 교차한다.
―크오오오오!!
놈이 괴로움에 찬 신음을 터뜨렸다.
푸쉬이익! 대량의 핏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무르무르의 잘려나간 왼쪽 앞다리에서 쏟아지는 것들이었다.
―아아. 크크큭. 역시 녹록지 않군. 초인.
켈켈켈.
무르무르가 하나뿐인 눈알을 구부렸다. 놈의 무시무시한 면상에 기분 나쁜 미소가 가득하다.
“…쿨럭.”
나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후두둑. 울혈이 입가로 잔뜩 쏟아졌다. 핏방울은 붉은 갑주의 표면을 타고 흘러, 허공으로 흩어졌다.
‘내상을 입었군.’
완벽하게 빈틈을 파고들었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나 보다. 혈천갑의 흉갑 부분이 깊숙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놈의 냥냥펀치가 스친 부위였다.
―크큭. 초보자치곤 갑주를 제법 다루는구나. 초인.
무르무르가 잘린 다리로 절뚝절뚝 내게 다가왔다.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투성이였다. 눈부실 정도로 빛나던 백청색 갈기도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두 번째 붕괴부터 내가 나온 것에 감사하거라. 초인.
놈은 확실히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서슬 퍼런 붉은 안광만은, 오히려 처음보다 더욱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지금 자네의 실력을 보아하니. 13번째 이후의 붕괴에서 내가 나왔으면… 여전히 내가 이겼다.
총 전투 시간, 약 10분.
10분간 이어진 우리의 혈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초토화 돼버린 월미도와, 만신창이가 된 무르무르의 육체가 보여주고 있었다.
―이로서 61전, 30승. 31패…인가.
쿠우우웅!
무르무르의 육중한 거체가 마침내 바닥에 엎어졌다. 그르륵, 그륵. 죽기 직전의 짐승처럼 힘겨운 숨소리가 이어진다.
―다음엔 내가 이겨서, 다시 승률을 맞춰주지. 크크큭.
놈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내게 시선을 똑바로 박았다.
끝까지 재수 없는 소리만 씨불이는군. 나는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다음은 없어.”
놈의 눈알을 향해 사복검을 발사했다.
뿌드드득! 채찍처럼 늘어난 사복검이 놈의 거대한 눈알을 파고들었다.
―그, 오, 크오옥……!
푸지직, 푸드득!
섬찟한 파육음의 향연. 나는 채찍형 사복검을 붉은 눈알 깊숙이 박아넣은 채. 손목을 이리저리 휘둘러 무르무르의 두개골 안쪽을 마구 짓이겼다.
―크… 그, 그극.
부르르, 털썩.
놈의 온몸이 자잘하게 경련하다, 이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다. 나도 입가에 철철 흐르는 피를 닦아냈고. 참았던 한숨을 한껏 토해냈다.
“후우.”
끝났다.
1001번째 전생. 두 번째 게이트 붕괴는 종식되었다. 이번에 월미도에서 살아남은 이는…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라스트 맨 스탠딩이었다.